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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직은 부작용 속출, 임금피크제 희비 쌍곡선

 

 

 

관리직은 부작용 속출, 임금피크제 희비 쌍곡선


[동아일보]



감정원 “상하관계 역전… 업무 삐걱” 3년만에 폐지

제조업 노사 “정년 연장-숙련 기술인력 활용” 만족

“연공서열식 조직 문화가 관리직 적용에 걸림돌”

한국감정원이 2004년 말 도입한 ‘임금피크제’를 지난해 11월 폐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국내 100여 개 기업 중 이 제도를 폐지한 곳은 한국감정원이 처음이다.

13일 윤태홍 한국감정원 경영관리실장은 “지난해까지 임금피크제에 편입된 30여 명에게는 기존 제도를 적용하지만 올해부터는 이 제도를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감정원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만 59세로 1년 연장했던 정년을 다시 58세로 낮췄다. 또 정년 이전 3년간 단계적으로 낮아지던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연봉도 원상 복구하기로 했다. 감정원이 임금피크제를 폐지한 이유는 조직 내 상하관계의 역전, 단순 업무에 배치된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의 불만 등의 문제점이 예상보다 컸기 때문이다.

○ “품위 지킬수 있는 업무 달라”

한국감정원은 2004년 말 만 56세가 되는 직원들에게 첫해는 기존 임금의 80%, 2년차에 70%, 3년차에 50%를 주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후 이 제도가 적용된 20여 명의 실무자는 기존 업무를 그대로 하게 했지만 부장, 지점장급 관리직 7, 8명에게는 현장에서 부동산 시세 등을 조사하는 단순 업무를 맡겼다. 이 때문에 해당 관리직들은 “간부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관리 업무를 달라”며 반발했다.

감정원 관계자는 “전체 직원이 800여 명밖에 안되는 조직에서 얼마 전까지 상급자였던 사람이 후배 밑에서 단순 업무를 맡게 되자 회사 분위기가 상당히 침체됐고 관리직들이 맡은 일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령에 따른 상하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적 조직 분위기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결국 지난해 말 감정원은 노사 합의를 거쳐 3년 만에 임금피크제를 폐지했다.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임금피크제 폐지 사례가 보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 관리직, 마땅한 업무 없어

2003년 신용보증기금을 시작으로 금융권에서는 우리 하나 국민 등 시중은행이, 공기업 중에서는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공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들 기업 중 상당수는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에게 채권추심, 채권 사후관리 등의 업무를 맡기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사 적체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제도를 도입했지만 맡길 일이 마땅치 않아 지역본부 감사직을 신설했다”며 “하지만 큰 성과는 기대하지도, 평가하지도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달 초 임금피크제가 시행된 한 시중은행의 모 지점장은 아예 출근하지 않고 있다.

이 지점장은 “지역본부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주어진 업무가 없어 그냥 집에 있다”며 “배치가 돼도 지점에서 고객을 안내하거나 지역본부에서 책상 하나 두고 영업을 하게 될 거라 솔직히 별 의욕이 없다”고 말했다.

○ 기능직 성과 높아

‘관리직 잉여 인력 처리’ 제도로 활용되는 금융 분야와 달리 임금피크제 이후에도 같은 일을 하게 되는 제조업 기능직 쪽에서는 제도가 근로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03년 말 제조업체 중 최초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대한전선은 관리직과 연구개발(R&D) 분야를 제외한 기능직(생산직)에만 만 50세부터 적용하고 있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회사로서는 숙련 근로자들을 적은 부담으로 계속 보유할 수 있고 나이 든 근로자들도 더 오랜 기간 일할 수 있어 반응이 좋다”면서 “임금피크제의 성과가 높게 나타나 재작년에 정년을 만 59세로 연장했다”고 말했다.

2004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대우조선해양의 관계자는 “임금상승률이 낮아지는 대신 임금은 떨어지지 않아 근로의욕 하락을 방지할 수 있어 효과가 좋다”며 “적용 후에도 성과 평가는 엄격하게 해 급여에 차등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LG전자, LG마이크론, LS전선 등도 지난해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김기태 대한상공회의소 노사인력팀장은 “우리보다 먼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일본에서는 고령화사회의 진전과 맞물려 기능직에 도입된 임금피크제가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면서 “금융권 등 다른 분야에서 임금피크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년에 가까운 인력이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직무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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