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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폴의 역사사회학의 전망과 역사


 

 

 

글은 테다 스카치폴(Theda Skocpol)의 「역사 사회학의 쟁점과 전략」이란 글의 분석을 일차적 목적으로 한다. 이차적 목적은 스카치폴이 제시한

 역사사회학의 연구 전략을 너머서기 위한 논의들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1. 「역사 사회학의 쟁점과 전략」의 구성(이하 ‘쟁점과 전략’)

 

 


‘쟁점과 전략’은 크게 3개의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미국 사회학계 내에서의 역사 사회학적 경향의 강화 (2) 역사 사회학의 쟁점 (3) 역사 사회학의 3가지 연구 전략이 그것이다. 이 글은 스카치폴이 고백하듯이 미국 사회학의 변화 추이를 중심으로 고찰한 ‘자의적’ 성격의 글이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에 미국이 가장 거대하고 영향력 있는 학문의 중심지로 군림해왔다”(스카치폴 : 1991, p434)는 사실과 “역사적 지향은 다른 나라의 사회학적 전통에서는 오랫동안 확고한 위치를 차지해왔다”는 사실로 인해 정당화된다.

 

쟁점과 전략’이 작성된 해는 1984년이다. 스카치폴은 “[역사 사회학]이란 말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사회학자들의 대화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스카치폴 : 1991, p434)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역사 사회학은 “경험적 연구를 중시하는 사회학의 주류로부터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활동하던, 유별나게 범세계주의적인 나이든 사람들이나 그렇게 중요한 역사적 저작을 집필할 수 있다”고 인식되었고, 동시에 “대부분의 평범한 사회학자들은 현대 사회의 특정 국면을 연구하기 위해 양적방법이나 현지조사 방법을 사용”(스카치폴 : 1991, p434)하였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으로 오면서 “역사 사회학은 특출한 대가들의 독점 영역이 아니”(스카치폴 : 1991, p435)게 되었다. “학생들과 젊은 신진 사회학자들이 역사적인 연구 분야를 통해 크든 적든 간에 사회학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스카치폴 : 1991, p435)는 지적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 사회학 내에서 역사적 지향은 뚜렷하게 강화되었는데, 스카치폴은 그 부분적 원인을 틸리와 월러스타인과 같은 뛰어난 연구소 설립자들의 노력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한다.1)

 

스카치폴에 의하면 “역사 사회학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토크빌, 맑스, 뒤르켐, 베버가 유럽의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의 사회적 기원 및 영향에 대해 중요한 의문을 제기하고 다양한 해답을 제시하던 당시에 처음으로 확립”(스카치폴 : 1991, p434)되었다. 하지만 근대 사회학의 ‘천재’들에 의해 확립된 역사 사회학의 쟁점은 현대에 들어와 더욱 발전된 전략과 연구들에 의하여 새롭게 재서술되고 있다.


(1) 유럽 산업혁명의 기원과 결과

(2) 노동자 계급의 성장

(3) 국가의 관료제화 및 정치의 민주화


에 관한 고전적 문제의식들이 여전히 탐구되고 있으며(스카치폴 : 1991, p435), 역사 사회학에서 현재 두드러진 연구쟁점들도 “사회학 창시자들의 관심이 다른 시대와 장소, 그리고 새로운 주제를 포함하도록 확대된 것”(스카치폴 : 1991, p436)에 불과하다. 물론 스카치폴은 20세기의 주요한 (1) 산업관계 (2) 복지 국가 (3) 인종별 유형 등도 역사 사회학의 주된 연구쟁점으로 부각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스카치폴은 “모든 사회과학,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사려 깊은 사회연구는 역사적 시야를 지니는 개념과 역사적 자료를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는 C.W. 밀즈(mills)의 사회학에서의 ‘역사적 상상력’이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사회학 내에서 밀즈가 살았던 시대보다는 더욱더 희망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규모 구조와 장기적 변동 과정의 본질 및 결과를 추구하는 연구 전통으로 이해되는 역사 사회학은 실제로 사회학이라는 학문 안에서 항상 하나의 중요한 구심점을 갖는 일련의 초학문적(trans-disciplinary) 시도”(스카치폴 : 1991, p439)로 자리 잡았다.


4. 역사 사회학의 연구 전략


스카치폴은 역사 사회학이 일반적으로 유용한 연구 전략을 갖고 있다는 인식에 대항하여 모든 역사적 지향의 사회학 저자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그 저자들이 선택한 연구 전략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연구 전략들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스카치폴 : 1991, p443). 물론 스카치폴은 “역사 사회학의 적절한 방법을 위한 기계적인 비결은 없다”(스카치폴 : 1991, p443)고 강조한다.


스카치폴은 래긴과 자넷이 함께 쓴 『비교 연구의 이론과 방법 : 두 가지 전략』이라는 글에 대항하여 틸리와 월러스타인을 대비시키고, 이후 틸리와 월러스타인을 포함하는 탁월한 역사적 지향의 사회학 저서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연구 전략의 3가지 지도를 보여준다.


래긴(C. Ragin)과 자넷(D. Zaret)은 분석 단위, 인과성의 개념, 적당한 설명 개념, 분석 논리와 관련하여 뒤르켐과 베버의 비교전략을 대비시킨다. 그들에게 있어 기본적으로 역사학적 방법은 베버주의적 연구 전통과 동일시된다(스카치폴 : 1991, p515). 래긴과 자넷은 “전통적인 사회학적 연구의 대부분을 본래 반(反) 역사적인 뒤르켐적 접근 방식으로 간주”한다. 뒤르켐적 접근 방식이란 주로 양적 분석을 통해 일반적인 설명 변수를 찾아내는 연구를 가리킨다. 이러한 뒤르켐적 접근 방법에 반대하는 베버주의적 접근방식이란 “역사적 사건의 특수한 양상을 이념형 개념의 도움으로 밝히려는 것”을 의미한다.


스카치폴은 ‘비교’를 사용하는 목적의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래긴과 자넷이 부당하게 “벤딕스와 앤더슨으로부터 무어와 자기 자신에 이르는 모든 역사 사회학자들을 하나의 베버주의적 진영으로 간주”(스카치폴 : 1991, p441)한다고 비판한다. 스카치폴에 의하면 역사 사회학에서 ‘비교’를 사용하는 사회학자들의 목적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이다.


(1) 대비-지향적 비교(contrast-oriented)

(2) 거시-분석적 비교(macro-analytic)


대비-지향적 비교는 “특수한 서술을 첨예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며, 거시-분석적 비교는 “인과적 일반화를 검증하거나 수립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며, 이 두 비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스카치폴의 지적이다(스카치폴 : 1991, pp441~442). 스카치폴은 이러한 래긴과 자넷의 이분법적 유형화로는 현대 미국 사회학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연구 전략들을 올바로 포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틸리와 월러스타인은 래긴과 자넷의 연구 전략과는 상이한 연구 전략을 통해 자신의 탁월한 연구업적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반증으로 제시된다(스카치폴 : 1991, p442).


스카치폴은 래긴과 자넷의 뒤르켐-베버주의적 대립구도로 역사 사회학의 연구 전략을 설명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역사 사회학에 적용되는 (1) 일반 모델(model) (2) 개념 (3)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이란 세 연구 전략에 따라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폭넓게 유형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화를 통해 자신이 ‘분석적 역사 사회학’이라고 명명한,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이 역사 사회학의 바람직한 연구 전략임을 주장한다.


5. 연구 전략1 : 역사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역사 사회학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나 그 이상의 역사적 국면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스카치폴 : 1991, p444)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사회학과 역사학의 첨예한 구별 위에서 구성된 역사 사회학의 유형이었다. 사회학은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일반 사회이론을 공식화할 수 있는 학문”으로 인식되고, 역사학은 “과거의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관한 ‘사실들’을 수집하는 학문”이라는 대립적 정의에 기반을 둔 것이다.


1960년대 중반에 출판된 에릭슨의 『변덕스런 청교도 : 일탈 사회학의 한 연구』는 역사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이라는 1950년대 이후 역사 사회학의 전형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 저서에서 “특정한 공동체가 일탈행동을 어떻게 정의하고 규제하는가에 관한 뒤르켐적 모델을 정교화 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수집된 자료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청교도 집단을 새롭게 조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일탈행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 청교도들의 경험은 세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 생활의 한 보기로서 취급되었다. 이러한 접근이 바람직한 것인지의 여부는 [···] 궁극적으로 이 연구의 특정한 주제가 아니라 다른 시대의 사람들의 행동을 해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설명 범위에 달려 있을 것이다.”

(스카치폴 : 1991, p446, 재인용)


에릭슨의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역사에 대한 일반 모델을 구성하는 학자들의 주요 관심은 “일반 이론 모델의 내적 논리를 설명하고 정교하게 다듬는”(스카치폴 : 1991, p446)것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비판에 직면한다. (1) 먼저, 일반 이론 모델을 구성하고자 하는 학자는 일반 이론 모델을 연역적으로 구성하여, 그것을 이미 주어진 모델로 독자들을 혼동시킨다. (2) 다음으로, 연역적으로 주어진 일반 이론 모델의 적합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자의적으로 경험적 사례들을 재구성한다. 즉 중요한 역사적 반증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 연구전략을 채택한 학자진영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대안전략을 구현하였다.


[대안1] 렌스키는 “알려진 모든 역사적 사건들의 세계에 일반 모델을 적용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중요한 역사적 반증을 의도적 회피하는 두 번째 비판을 넘어설 수 있지만, 연구자가 특정한 사건에 대한 본질적인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가 발생한다.

[대안2] 윌러(David Willer)는 비판(1)을 넘어서기 위하여 주어진 하나의 일반 모델로 역사적 사건을 포착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반대로 “선택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그 사건에 대한 역사적 논의들을 증명”(스카치폴 :1991, p449)한다. 하지만 이 전략 역시 ‘자의성’의 문제제기를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에 적용되는 일반적 이론 모델을 구축하려는 학자들이 렌스키와 윌러의 접근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스카치폴은 틸리와 월러스타인의 예를 통해 일반 모델의 적용과 결합되는 다른 유형의 연구 전략들을 소개하고 있다. (1) 하나는 유의미한 역사적 해석을 발전시키기 위해 개념을 사용하는 ‘해석적 역사 사회학’이며 다른 하나는 (2) 다른 하나는 역사의 인과적 규칙에 관한 대안적 가설을 탐구하는 ‘분석적 역사 사회학’이다.


6. 연구 전략2 : 역사를 해석하기 위한 개념의 사용


스카치폴이 ‘해석적 역사 사회학’이라고 이름붙인 이 두 번째 연구 전략은 “광범위한 역사적 유형에 대한 유의미한 해석을 발전시키기 위해 개념을 사용한 것”(스카치폴 : 1991, p451)을 의미한다. 이 연구전략은 “이론적 모델을 역사에 적용하거나 대규모 구조와 변동의 유형에 관한 인과적 일반화를 수립하기 위해 가설 검증의 접근 방식”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이 연구전략이 경제 결정론적 맑스주의와 구조기능주의의 결정론적 경향 및 지나친 일반화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 내지 ‘비판적 대응’의 전략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이론에 대한 회의가 ‘일반성’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 연구전략은 “자신들의 연구관심을 한정하고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사례 연구로부터 역사적 유형을 뽑아내고 제시하기 위해 항상 명백한 일반성의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다”(스카치폴 : 1991, p452). 하지만 이 연구전략이 역사적 인과성에 관한 규칙들을 발견하려는 ‘분석적 역사사회학’과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비교’를 사용하는 목적이다. 그들은 스카치폴이 말하는 ‘대비-지향적’ 비교전략을 사용한다. 이 연구전략은 “개별 사례의 독특한 특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비교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벤딕스의 비교연구에 대한 설명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다른 연구와 비교함으로써 하나의 구조가 지닌 시계를 확대시킨다. 따라서 유럽의 봉건제는 일본의 봉건제와의 비교를 통해 보다 정확하게 정의될 수 있으며, 서구 문명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성직에의 경향성이 발전하지 않은 문명과의 비교를 통해 보다 분명해질 수 있다.”

(스카치폴 : 1991, p453)


해석학적 연구 전략의 강점은 연구 주제가 과거-현재의 두 맥락(context)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에 존재한다. 해석학적 연구 전략은 (1) 과거 행위자들의 지향성과 행동을 취하는 제도적, 문화적 상황과 맥락을 선택하며 (2) 동시에 그것이 현재적 맥락에서 정치적,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일 때, 탁월한 연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들은 비교의 방법을 통해 사례의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어냄으로써 제한된 사례의 해석을 일반적인 개념을 통해 이루어낸다. 바로 이 지점이 두 번째 연구전략의 장점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한계가 공존한다. 사례 혹은 역사적 사건의 해석에 치중하는 ‘개념’의 적용은 그 개념에 해당 사례의 역사적 특수성이 결합되어 존재한다. 따라서 ‘해석학적’ 연구전략의 성과를 다른 나라에 확대하려고 시도하는 경우 그것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며, 개념에 연결되어 있는 잠재적 인과성을 확증하는 것에 약점을 갖는다. 그것은 그 사례의 ‘특수성’을 해석하는 것에 장점이 있는 반면, “왜”라는 질문에 대한 지속적이고 일반적인 관심에 있어 부족하다. 순수한 일반 이론 모델이 역사적 특수성과 다양성을 간과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출현한 이 연구전략은 해당 사례의 역사적 특수성을 잠재적 일반성을 지닌 ‘개념’으로 해석해내지만, ‘이론’으로 발전하는 것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연구 전략 또한 다른 연구 전략들과 통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7. 연구 전략3 : 역사에서의 인과론적 규칙성의 분석


마지막으로 스카치폴이 주장하는 ‘분석적 역사사회학’의 연구전략은 앞의 두 전략과는 차별화된다. 분석적 연구전략의 목표는 “명백히 정의된 역사적 결과나 유형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구축하는 것이며, 이 전략은 “역사에서도 인과론적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스카치폴  : 1991, p459). 분석적 역사 사회학의 연구 전략의 핵심은 “연구자들이 특정한 기존 이론, 또는 이론들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역사적 유형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구체적인 인과론적 구성논리의 발견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스카치폴 : 1991, p460)에 존재한다. 즉 이 연구전략은 연구주제로 설정된 ‘실재’(the real)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며, 이 실재를 해명하기 위하여 서로 경합하는 이론들을 결합하기도 하며, 새로운 이론을 잠정적으로 구성하기도 한다. 인과론적 규칙성에 대한 발견은 일반적 이론 모델의 연구전략과 같이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실재를 해명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전략이 “독자적인 중요성을 개개의 맥락 탓으로 돌리는 해석적 경향”을 피한다고 하여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일반법칙으로 진술되지 않는 이론적 가설은 결코 탐구할 가치가 없다”는 비어(Samuel Beer)의 ‘보편성의 정론’(dogma of university)을 채택하는 것은 아니다. 이 연구전략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 또는 맥락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설명적 일반화의 작업”에 만족한다(스카치폴 : 1991, p461). 즉 이 연구 전략은 자기제한적 ‘일반화’를 지향한다.


이 연구전략이 자기제한적 일반화를 지향한다는 사실은 스카치폴의 단 하나의 사례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주장에서 확인된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한 것’이지 ‘충분한 것’은 되지 못한다. 논의의 타당성을 증명하고 연구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서 스카치폴은 ‘비교’의 방법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단일사례 연구는 분석적 전략보다는 역사 사회학의 처음 두 분야에 더 전형적인 보기이다.”(스카치폴 :1991, p462)


분석 전략의 비교는 대조-지향적 비교와는 구별된다. 분석 전략의 비교는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을 목표로 한다.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이 비교 전략은 “타당하지 않은 원인들로부터 타당한 원인을 구별하기 위한 변차 통제의 확립을 목표로 하는 사회과학의 다른 방법론적 접근”(스카치폴 : 1991, p464)과 유사하다. 이러한 비교전략으로 스카치폴은 J. S. 밀이 제시한 일치법과 차이법을 유용한 전략으로 제시한다. 스카치폴은 밀의 일치법과 차이법을 통해 인과적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8. 소결 : 연구 전략의 통합전략


2004년에 처음 이 논문을 접했을 때는 스카치폴이 분류한 3가지 유형의 연구 전략이 서로 대립되는 연구전략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3가지 연구 전략이 보다 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스카치폴은 역사의 인과론적 규칙성을 발견하려는 분석 전략이 이론적 모델이나 해석적 전략을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가 생각하는 분석적 연구 전략은 ‘특수성’-‘보편성’의 양 극단에 위치하는 해석적 연구 전략과 일반적 모델의 연구 전략을 분석적 연구 전략이 매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분석적 역사 사회학의 실행은 역사 사회학이나 역사적 사례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에 비해 역사적 증거와의 보다 친밀한 대화를 촉구한다”(스카치폴 : 1991, p473).


특수성 <----------------------------------------------------> 보편성

해석적 연구 전략 ------------ 분석적 연구 전략 ------------- 일반 모델 전략


9. Rethinking Theda Skocpol's Strategy


스카치폴의 연구 전략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우리 세미나의 주된 목표인 ‘민주주의’ 연구의 주된 접근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역사 사회학의 주된 전통으로 제시되는 스카치폴의 ‘자기제한적 일반화’=‘인과론적 규칙성의 발견’이라는 연구 전략에 대항하여 공개적인 ‘이의’를 제기해볼 필요성이 존재한다.


1) 비교의 독자적 단위는 실재하는가?


스카치폴이 스스로 고백하듯이, 분석적 연구 전략은 “인과론적 규칙에 대한 비교 평가용의 독자적 단위가 발견될 수 있다는 가정”(스카치폴 : 1991, p471)에 근거한다. 월러스타인의 접근인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단 하나의 체제로서 자본주의 근대체제를 설정한다면, 우리는 비교의 독자적인 단위를 설정할 수 없다. 비교가 아닌 다른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2) 밀의 ‘인과관계’에 대한 규정은 실재하는 인과성을 반영하는가?


비교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비교의 방법으로 제시된 밀의 논리관계 증명법은 ‘분석’을 위한 올바른 인과관계를 보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밀의 인과관계에 대한 개념은 흄적 인과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흄적 인과개념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인과관계를 구성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사건들의 규칙적 결합 속에서 인과관계를 파악하려는 흄-밀적 인과개념은 기본적으로 사회와 자연관계 모두에서 그러한 규칙적 결합이 아주 드물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한다.

 


3. 역사 사회학의 쟁점

 


2. 미국 사회학에서의 역사적 지향의 강화

 

 

 
본문스크랩 [발제문] 스카치폴의 [역사 사회학의 전망과 전략] 낙서장

2008/01/07 20:01

 

http://blog.naver.com/sickduck/20045738846

첨부파일Rethinking_Theda_Skocpol-ganndalf.hwp
출처 블로그 > Bleistifte des Ganndalf
원본 http://blog.naver.com/ganndalf/150002467680

 

Rethinking Theda Skocpol's

Vision and Method in Historical Sociology


 

장 훈 교

* 2006년 3월 9일 역사사회학


이 글은 테다 스카치폴(Theda Skocpol)의 「역사 사회학의 쟁점과 전략」이란 글의 분석을 일차적 목적으로 한다. 이차적 목적은 스카치폴이 제시한 역사사회학의 연구 전략을 너머서기 위한 논의들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1. 「역사 사회학의 쟁점과 전략」의 구성(이하 ‘쟁점과 전략’)


‘쟁점과 전략’은 크게 3개의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미국 사회학계 내에서의 역사 사회학적 경향의 강화 (2) 역사 사회학의 쟁점 (3) 역사 사회학의 3가지 연구 전략이 그것이다. 이 글은 스카치폴이 고백하듯이 미국 사회학의 변화 추이를 중심으로 고찰한 ‘자의적’ 성격의 글이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에 미국이 가장 거대하고 영향력 있는 학문의 중심지로 군림해왔다”(스카치폴 : 1991, p434)는 사실과 “역사적 지향은 다른 나라의 사회학적 전통에서는 오랫동안 확고한 위치를 차지해왔다”는 사실로 인해 정당화된다.


2. 미국 사회학에서의 역사적 지향의 강화


‘쟁점과 전략’이 작성된 해는 1984년이다. 스카치폴은 “[역사 사회학]이란 말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사회학자들의 대화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스카치폴 : 1991, p434)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역사 사회학은 “경험적 연구를 중시하는 사회학의 주류로부터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활동하던, 유별나게 범세계주의적인 나이든 사람들이나 그렇게 중요한 역사적 저작을 집필할 수 있다”고 인식되었고, 동시에 “대부분의 평범한 사회학자들은 현대 사회의 특정 국면을 연구하기 위해 양적방법이나 현지조사 방법을 사용”(스카치폴 : 1991, p434)하였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으로 오면서 “역사 사회학은 특출한 대가들의 독점 영역이 아니”(스카치폴 : 1991, p435)게 되었다. “학생들과 젊은 신진 사회학자들이 역사적인 연구 분야를 통해 크든 적든 간에 사회학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스카치폴 : 1991, p435)는 지적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 사회학 내에서 역사적 지향은 뚜렷하게 강화되었는데, 스카치폴은 그 부분적 원인을 틸리와 월러스타인과 같은 뛰어난 연구소 설립자들의 노력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한다.1)


3. 역사 사회학의 쟁점


스카치폴에 의하면 “역사 사회학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토크빌, 맑스, 뒤르켐, 베버가 유럽의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의 사회적 기원 및 영향에 대해 중요한 의문을 제기하고 다양한 해답을 제시하던 당시에 처음으로 확립”(스카치폴 : 1991, p434)되었다. 하지만 근대 사회학의 ‘천재’들에 의해 확립된 역사 사회학의 쟁점은 현대에 들어와 더욱 발전된 전략과 연구들에 의하여 새롭게 재서술되고 있다.


(1) 유럽 산업혁명의 기원과 결과

(2) 노동자 계급의 성장

(3) 국가의 관료제화 및 정치의 민주화


에 관한 고전적 문제의식들이 여전히 탐구되고 있으며(스카치폴 : 1991, p435), 역사 사회학에서 현재 두드러진 연구쟁점들도 “사회학 창시자들의 관심이 다른 시대와 장소, 그리고 새로운 주제를 포함하도록 확대된 것”(스카치폴 : 1991, p436)에 불과하다. 물론 스카치폴은 20세기의 주요한 (1) 산업관계 (2) 복지 국가 (3) 인종별 유형 등도 역사 사회학의 주된 연구쟁점으로 부각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스카치폴은 “모든 사회과학,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사려 깊은 사회연구는 역사적 시야를 지니는 개념과 역사적 자료를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는 C.W. 밀즈(mills)의 사회학에서의 ‘역사적 상상력’이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사회학 내에서 밀즈가 살았던 시대보다는 더욱더 희망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규모 구조와 장기적 변동 과정의 본질 및 결과를 추구하는 연구 전통으로 이해되는 역사 사회학은 실제로 사회학이라는 학문 안에서 항상 하나의 중요한 구심점을 갖는 일련의 초학문적(trans-disciplinary) 시도”(스카치폴 : 1991, p439)로 자리 잡았다.


4. 역사 사회학의 연구 전략


스카치폴은 역사 사회학이 일반적으로 유용한 연구 전략을 갖고 있다는 인식에 대항하여 모든 역사적 지향의 사회학 저자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그 저자들이 선택한 연구 전략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연구 전략들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스카치폴 : 1991, p443). 물론 스카치폴은 “역사 사회학의 적절한 방법을 위한 기계적인 비결은 없다”(스카치폴 : 1991, p443)고 강조한다.


스카치폴은 래긴과 자넷이 함께 쓴 『비교 연구의 이론과 방법 : 두 가지 전략』이라는 글에 대항하여 틸리와 월러스타인을 대비시키고, 이후 틸리와 월러스타인을 포함하는 탁월한 역사적 지향의 사회학 저서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연구 전략의 3가지 지도를 보여준다.


래긴(C. Ragin)과 자넷(D. Zaret)은 분석 단위, 인과성의 개념, 적당한 설명 개념, 분석 논리와 관련하여 뒤르켐과 베버의 비교전략을 대비시킨다. 그들에게 있어 기본적으로 역사학적 방법은 베버주의적 연구 전통과 동일시된다(스카치폴 : 1991, p515). 래긴과 자넷은 “전통적인 사회학적 연구의 대부분을 본래 반(反) 역사적인 뒤르켐적 접근 방식으로 간주”한다. 뒤르켐적 접근 방식이란 주로 양적 분석을 통해 일반적인 설명 변수를 찾아내는 연구를 가리킨다. 이러한 뒤르켐적 접근 방법에 반대하는 베버주의적 접근방식이란 “역사적 사건의 특수한 양상을 이념형 개념의 도움으로 밝히려는 것”을 의미한다.


스카치폴은 ‘비교’를 사용하는 목적의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래긴과 자넷이 부당하게 “벤딕스와 앤더슨으로부터 무어와 자기 자신에 이르는 모든 역사 사회학자들을 하나의 베버주의적 진영으로 간주”(스카치폴 : 1991, p441)한다고 비판한다. 스카치폴에 의하면 역사 사회학에서 ‘비교’를 사용하는 사회학자들의 목적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이다.


(1) 대비-지향적 비교(contrast-oriented)

(2) 거시-분석적 비교(macro-analytic)


대비-지향적 비교는 “특수한 서술을 첨예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며, 거시-분석적 비교는 “인과적 일반화를 검증하거나 수립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며, 이 두 비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스카치폴의 지적이다(스카치폴 : 1991, pp441~442). 스카치폴은 이러한 래긴과 자넷의 이분법적 유형화로는 현대 미국 사회학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연구 전략들을 올바로 포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틸리와 월러스타인은 래긴과 자넷의 연구 전략과는 상이한 연구 전략을 통해 자신의 탁월한 연구업적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반증으로 제시된다(스카치폴 : 1991, p442).


스카치폴은 래긴과 자넷의 뒤르켐-베버주의적 대립구도로 역사 사회학의 연구 전략을 설명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역사 사회학에 적용되는 (1) 일반 모델(model) (2) 개념 (3)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이란 세 연구 전략에 따라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폭넓게 유형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화를 통해 자신이 ‘분석적 역사 사회학’이라고 명명한,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이 역사 사회학의 바람직한 연구 전략임을 주장한다.


5. 연구 전략1 : 역사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역사 사회학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나 그 이상의 역사적 국면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스카치폴 : 1991, p444)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사회학과 역사학의 첨예한 구별 위에서 구성된 역사 사회학의 유형이었다. 사회학은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일반 사회이론을 공식화할 수 있는 학문”으로 인식되고, 역사학은 “과거의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관한 ‘사실들’을 수집하는 학문”이라는 대립적 정의에 기반을 둔 것이다.


1960년대 중반에 출판된 에릭슨의 『변덕스런 청교도 : 일탈 사회학의 한 연구』는 역사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이라는 1950년대 이후 역사 사회학의 전형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 저서에서 “특정한 공동체가 일탈행동을 어떻게 정의하고 규제하는가에 관한 뒤르켐적 모델을 정교화 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수집된 자료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청교도 집단을 새롭게 조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일탈행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 청교도들의 경험은 세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 생활의 한 보기로서 취급되었다. 이러한 접근이 바람직한 것인지의 여부는 [···] 궁극적으로 이 연구의 특정한 주제가 아니라 다른 시대의 사람들의 행동을 해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설명 범위에 달려 있을 것이다.”

(스카치폴 : 1991, p446, 재인용)


에릭슨의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역사에 대한 일반 모델을 구성하는 학자들의 주요 관심은 “일반 이론 모델의 내적 논리를 설명하고 정교하게 다듬는”(스카치폴 : 1991, p446)것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비판에 직면한다. (1) 먼저, 일반 이론 모델을 구성하고자 하는 학자는 일반 이론 모델을 연역적으로 구성하여, 그것을 이미 주어진 모델로 독자들을 혼동시킨다. (2) 다음으로, 연역적으로 주어진 일반 이론 모델의 적합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자의적으로 경험적 사례들을 재구성한다. 즉 중요한 역사적 반증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 연구전략을 채택한 학자진영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대안전략을 구현하였다.


[대안1] 렌스키는 “알려진 모든 역사적 사건들의 세계에 일반 모델을 적용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중요한 역사적 반증을 의도적 회피하는 두 번째 비판을 넘어설 수 있지만, 연구자가 특정한 사건에 대한 본질적인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가 발생한다.

[대안2] 윌러(David Willer)는 비판(1)을 넘어서기 위하여 주어진 하나의 일반 모델로 역사적 사건을 포착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반대로 “선택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그 사건에 대한 역사적 논의들을 증명”(스카치폴 :1991, p449)한다. 하지만 이 전략 역시 ‘자의성’의 문제제기를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에 적용되는 일반적 이론 모델을 구축하려는 학자들이 렌스키와 윌러의 접근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스카치폴은 틸리와 월러스타인의 예를 통해 일반 모델의 적용과 결합되는 다른 유형의 연구 전략들을 소개하고 있다. (1) 하나는 유의미한 역사적 해석을 발전시키기 위해 개념을 사용하는 ‘해석적 역사 사회학’이며 다른 하나는 (2) 다른 하나는 역사의 인과적 규칙에 관한 대안적 가설을 탐구하는 ‘분석적 역사 사회학’이다.


6. 연구 전략2 : 역사를 해석하기 위한 개념의 사용


스카치폴이 ‘해석적 역사 사회학’이라고 이름붙인 이 두 번째 연구 전략은 “광범위한 역사적 유형에 대한 유의미한 해석을 발전시키기 위해 개념을 사용한 것”(스카치폴 : 1991, p451)을 의미한다. 이 연구전략은 “이론적 모델을 역사에 적용하거나 대규모 구조와 변동의 유형에 관한 인과적 일반화를 수립하기 위해 가설 검증의 접근 방식”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이 연구전략이 경제 결정론적 맑스주의와 구조기능주의의 결정론적 경향 및 지나친 일반화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 내지 ‘비판적 대응’의 전략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이론에 대한 회의가 ‘일반성’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 연구전략은 “자신들의 연구관심을 한정하고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사례 연구로부터 역사적 유형을 뽑아내고 제시하기 위해 항상 명백한 일반성의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다”(스카치폴 : 1991, p452). 하지만 이 연구전략이 역사적 인과성에 관한 규칙들을 발견하려는 ‘분석적 역사사회학’과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비교’를 사용하는 목적이다. 그들은 스카치폴이 말하는 ‘대비-지향적’ 비교전략을 사용한다. 이 연구전략은 “개별 사례의 독특한 특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비교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벤딕스의 비교연구에 대한 설명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다른 연구와 비교함으로써 하나의 구조가 지닌 시계를 확대시킨다. 따라서 유럽의 봉건제는 일본의 봉건제와의 비교를 통해 보다 정확하게 정의될 수 있으며, 서구 문명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성직에의 경향성이 발전하지 않은 문명과의 비교를 통해 보다 분명해질 수 있다.”

(스카치폴 : 1991, p453)


해석학적 연구 전략의 강점은 연구 주제가 과거-현재의 두 맥락(context)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에 존재한다. 해석학적 연구 전략은 (1) 과거 행위자들의 지향성과 행동을 취하는 제도적, 문화적 상황과 맥락을 선택하며 (2) 동시에 그것이 현재적 맥락에서 정치적,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일 때, 탁월한 연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들은 비교의 방법을 통해 사례의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어냄으로써 제한된 사례의 해석을 일반적인 개념을 통해 이루어낸다. 바로 이 지점이 두 번째 연구전략의 장점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한계가 공존한다. 사례 혹은 역사적 사건의 해석에 치중하는 ‘개념’의 적용은 그 개념에 해당 사례의 역사적 특수성이 결합되어 존재한다. 따라서 ‘해석학적’ 연구전략의 성과를 다른 나라에 확대하려고 시도하는 경우 그것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며, 개념에 연결되어 있는 잠재적 인과성을 확증하는 것에 약점을 갖는다. 그것은 그 사례의 ‘특수성’을 해석하는 것에 장점이 있는 반면, “왜”라는 질문에 대한 지속적이고 일반적인 관심에 있어 부족하다. 순수한 일반 이론 모델이 역사적 특수성과 다양성을 간과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출현한 이 연구전략은 해당 사례의 역사적 특수성을 잠재적 일반성을 지닌 ‘개념’으로 해석해내지만, ‘이론’으로 발전하는 것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연구 전략 또한 다른 연구 전략들과 통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7. 연구 전략3 : 역사에서의 인과론적 규칙성의 분석


마지막으로 스카치폴이 주장하는 ‘분석적 역사사회학’의 연구전략은 앞의 두 전략과는 차별화된다. 분석적 연구전략의 목표는 “명백히 정의된 역사적 결과나 유형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구축하는 것이며, 이 전략은 “역사에서도 인과론적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스카치폴  : 1991, p459). 분석적 역사 사회학의 연구 전략의 핵심은 “연구자들이 특정한 기존 이론, 또는 이론들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역사적 유형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구체적인 인과론적 구성논리의 발견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스카치폴 : 1991, p460)에 존재한다. 즉 이 연구전략은 연구주제로 설정된 ‘실재’(the real)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며, 이 실재를 해명하기 위하여 서로 경합하는 이론들을 결합하기도 하며, 새로운 이론을 잠정적으로 구성하기도 한다. 인과론적 규칙성에 대한 발견은 일반적 이론 모델의 연구전략과 같이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실재를 해명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전략이 “독자적인 중요성을 개개의 맥락 탓으로 돌리는 해석적 경향”을 피한다고 하여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일반법칙으로 진술되지 않는 이론적 가설은 결코 탐구할 가치가 없다”는 비어(Samuel Beer)의 ‘보편성의 정론’(dogma of university)을 채택하는 것은 아니다. 이 연구전략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 또는 맥락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설명적 일반화의 작업”에 만족한다(스카치폴 : 1991, p461). 즉 이 연구 전략은 자기제한적 ‘일반화’를 지향한다.


이 연구전략이 자기제한적 일반화를 지향한다는 사실은 스카치폴의 단 하나의 사례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주장에서 확인된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한 것’이지 ‘충분한 것’은 되지 못한다. 논의의 타당성을 증명하고 연구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서 스카치폴은 ‘비교’의 방법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단일사례 연구는 분석적 전략보다는 역사 사회학의 처음 두 분야에 더 전형적인 보기이다.”(스카치폴 :1991, p462)


분석 전략의 비교는 대조-지향적 비교와는 구별된다. 분석 전략의 비교는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을 목표로 한다.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이 비교 전략은 “타당하지 않은 원인들로부터 타당한 원인을 구별하기 위한 변차 통제의 확립을 목표로 하는 사회과학의 다른 방법론적 접근”(스카치폴 : 1991, p464)과 유사하다. 이러한 비교전략으로 스카치폴은 J. S. 밀이 제시한 일치법과 차이법을 유용한 전략으로 제시한다. 스카치폴은 밀의 일치법과 차이법을 통해 인과적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8. 소결 : 연구 전략의 통합전략


2004년에 처음 이 논문을 접했을 때는 스카치폴이 분류한 3가지 유형의 연구 전략이 서로 대립되는 연구전략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3가지 연구 전략이 보다 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스카치폴은 역사의 인과론적 규칙성을 발견하려는 분석 전략이 이론적 모델이나 해석적 전략을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가 생각하는 분석적 연구 전략은 ‘특수성’-‘보편성’의 양 극단에 위치하는 해석적 연구 전략과 일반적 모델의 연구 전략을 분석적 연구 전략이 매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분석적 역사 사회학의 실행은 역사 사회학이나 역사적 사례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에 비해 역사적 증거와의 보다 친밀한 대화를 촉구한다”(스카치폴 : 1991, p473).


특수성 <----------------------------------------------------> 보편성

해석적 연구 전략 ------------ 분석적 연구 전략 ------------- 일반 모델 전략


9. Rethinking Theda Skocpol's Strategy


스카치폴의 연구 전략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우리 세미나의 주된 목표인 ‘민주주의’ 연구의 주된 접근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역사 사회학의 주된 전통으로 제시되는 스카치폴의 ‘자기제한적 일반화’=‘인과론적 규칙성의 발견’이라는 연구 전략에 대항하여 공개적인 ‘이의’를 제기해볼 필요성이 존재한다.


1) 비교의 독자적 단위는 실재하는가?


스카치폴이 스스로 고백하듯이, 분석적 연구 전략은 “인과론적 규칙에 대한 비교 평가용의 독자적 단위가 발견될 수 있다는 가정”(스카치폴 : 1991, p471)에 근거한다. 월러스타인의 접근인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단 하나의 체제로서 자본주의 근대체제를 설정한다면, 우리는 비교의 독자적인 단위를 설정할 수 없다. 비교가 아닌 다른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2) 밀의 ‘인과관계’에 대한 규정은 실재하는 인과성을 반영하는가?


비교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비교의 방법으로 제시된 밀의 논리관계 증명법은 ‘분석’을 위한 올바른 인과관계를 보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밀의 인과관계에 대한 개념은 흄적 인과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흄적 인과개념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인과관계를 구성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사건들의 규칙적 결합 속에서 인과관계를 파악하려는 흄-밀적 인과개념은 기본적으로 사회와 자연관계 모두에서 그러한 규칙적 결합이 아주 드물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한다.


3) 모델(model)이 ‘인과성’과 결합될 수 있다.


스카치폴은 역사에서 규칙적인 인과성을 발견하는 전략을 연구가설의 검토 및 수정과정과 동일한 과정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인과성을 발견하려는 전략이 가설과 연결될 필요는 없다. 반대로 인과성을 발견하려는 전략은 모델과 결합되어야만 한다. 즉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모델(model)의 구축이 가능하고, 실제로 역사 사회학은 경험에 열려 있는 모델의 구축이 보다 일반적인 전략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10. 민주주의 이행 모델(model) :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J. A. 슘페터(Schumpeter)는 『경제발전의 이론』(1912)에서 모순적인 연구전략을 통해 자본주의의 성장과 동학에 대한 혁신적 규명을 해낸다. 그는 “자본주의의 성장과 동학에 관련한 책이지만 전혀 성장이 없는 자본주의 경제를 설명하는 데서 시작한다. 슘페터는 책의 앞부분에서 애덤 스미스와 밀 그리고 마르크스와 케인스 등의 세계에 성장을 가져오는 요인 즉 자본축적을 결여한 자본주의를 설명한다. 이들과는 달리 슘페터는 축적 없는 자본주의 즉 생산의 흐름이 완전히 정태적이고 변화가 없으며 결코 부의 창조를 바꾸거나 확장하지 않는 ‘순환적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자본주의를 묘사한다”(하일브로너 : 2006, p389). 이것은 일종의 ‘정상상태’에 대한 모델이다.


슘페터의 연구 전략을 모방하여 우리가 아주 정태적인 순환적인 흐름을 가진 ‘민주주의’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면, 우리는 순환적 흐름의 연관고리를 해체하면서 민주주의 이행의 동력과 동학을 구성하는 동태적 민주주의 모델로 이동하는 어떤 흐름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맑스가 추상화되고 단순화된 물물교환의 과정으로부터 보다 복잡하고 세부적인 근대 자본주의의 구조와 동학을 해명하듯이, 우리 또한 아주 정태적이고 단순한 모델로부터 근대 민주주의의 구조와 동학을 설명하는 모델로 이행할 수는 없을까? 그런데, 이것이 베버의 이념형(Ideal type)적 접근과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요?


^_________^ I don't know.


· 참고문헌


1. 테다 스카치폴, 「역사사회학의 방법과 전망」, 『역사 사회학의 방법과 전망』, 한국 사회학연구소, 1991.

2. 마가렛 아처 외, 『초월적 실재론과 과학』, 한울아카데미, 2004

3. 한국비교사회연구회, 『비교사회학 : 방법과 실제1』, 열음사, 1990

4. 김용학·임현진, 『비교사회학』, 나남출판, 1998.

5. L. 하일브로너, 『세속의 철학자들』, 이마고, 2005.

 

 
본문스크랩 [스카치폴] 사회구조적 설명의 필요성 낙서장

2008/01/0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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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사회구조적_설명의_필요성.hwp
출처 블로그 > Bleistifte des Ganndalf
원본 http://blog.naver.com/ganndalf/140009361796

사회구조적 설명의 필요성

테다 스카치폴

 

* 원제 : “Explaining Revolutions : In Quest of a Social-Structural Approach”(1976)
* 출처 : 혁명의 사회이론, 김진균 편, p14~p40, 부분발췌

 


이 글을 통해 스카치폴이 주장하려고 하는 핵심은 기존의 사회과학적 혁명이론이 혁명을 해명하거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카치폴은 혁명을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분류한다.

 

(1) 집합심리학적 이론
정치적 폭력이나 저항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동기라는 관점에서 혁명을 설명하는 것

 

(2) 체계/가치합의 이론
혁명을 사회체계상의 극심한 불균형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운동의 폭력적 반응으로 설명하는 것

 

(3) 정치적 갈등 이론
정치권력을 목표로 하여 경쟁하고 있는 조직화된 집단과 정부 사이의 갈등으로 설명하는 것

 

스카치폴은 이러한 이론들이 ‘주어진 구체적 역사적 상황에 처해 있는 특정한 복합 사회 속에서의 제도적 발달의 유형에 관한 가설이 아니라 반란을 일으키는 대중들의 정신상태나 의식적인 혁명적 전위들의 출현에 대한 가설을 통해서 혁명의 발생을 설명’하려고 하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고 비판하며, 방법론적으로는 ‘혁명이 실패하였거나 일어나지 않았던 부정적 경우들과 혁명이 발생하였던 몇 개의 긍정적 경우들을 체계적으로 비교함으로써, 가설들을 귀납적으로 정립하고 검증하기 위한 비교사적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행동이나 사회과정 일반에 관한 추상적이고 연역적인 가설들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혁명을 설명하고 수많은 분석단위들을 토대로 하여 그 가설들을 통계적으로 검증하려 한다는 데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즉, 스카치폴의 이 글은 사회심리학적 설명방식과 보편주의적 연역적 설명방식에 대한 이론과 방법론적 비판을 포함하며, 이러한 설명방식의 대안으로 구조적이고 비교사적인 접근방식을 지향하는 이론적 방향의 재조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1. 집합심리학적 혁명이론

 

집합심리학적 이론은 “모든 정치현상들과 마찬가지로, 혁명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시작된다”고 가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의 심리적 동기의 역할을 다룬 여러 이론들로부터 설명력을 찾아내려고 한다. 혁명에 대한 가장 유력하고 발전된 형태의 집합심리학적 설명은 “불만이 폭력적 갈등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표면상 자명한 전제로부터” 출발하며, 좌절을 그것의 인지된 동인(動因)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행동과 연결시키는 심리학적 이론의 도움을 빌어서 이 전제를 해명하려고 한다.

 

데이비스(James Davies), 파이어아벤트 부부, 네스볼트 그리고 거어(Gurr)가 중심학자이며, 거어의 저작 『인간은 왜 반란하는가(Why Men Rebel)』는 좌절-공격이론(frustration-aggression theory)에 기초한 모델 중에서 대표적으로 가장 정교하고 매우 세련된 것이다.

 

좌절-공격이론가들은 혁명을, 기본적으로 어떤 정신의 구조에 의해서 야기된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정치적 행동의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다. Gurr는 ‘정치적 폭력’을 “한 정치적 공동체 내부에서 정치체제 및 그 체제의 집권자들뿐 아니라 경쟁하는 정치적 집단을 포함하는 행위자들, 혹은 그 체제의 정책에 대한 모든 집합적인 공격”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폭력은 “ 두 가지 의미에서 정치체제를 위협한다. ··· 국가에 귀속된 폭력의 독점 ··· 정상적인 정치적 과정의 방해”가 그것이다. 거어는 혁명이 가져오는 광범위한 변동의 크기나 종류에는 관심이 없고 혁명의 파괴성에만 관심을 갖는다. 즉 이러한 집합적 사건들을 다른 사건들로부터 구별시켜주는 결정적 속성으로서 한 유형의 행동, 즉 ‘불법적 폭력에의 의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 - “인간의 가치기대(사람들이 스스로가 정당하게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재화와 삶의 조건)와 인간의 가치능력(사람들이 스스로가 도달하거나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재화와 삶의 조건) 사이의 인지된 불일치” - 은 정치적 폭력의 잠재력을 산출하는 좌절적 조건으로 기술된다.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가 변동을 경험할 때마다 사람들 속에서 어느 정도 생성된다고 상정되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에 기인하는 불만이 일단 생성되면, 그것 때문에 발생하는 집합적 정치적 폭력의 크기와 형태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사회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범위와 그 강도 및 정치적 폭력의 일반화된 잠재력의 구체적 표현을 조정하고 규제하는 여러 가지 매개변수들의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거어의 전체적 모델에서는, 특히 혁명은 ‘대중’과 사회의 주변적 ‘엘리트’에게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그리하여 폭력에의 광범위한 참여와 폭력의 신중한 조직화를 가져오는 넓고 강력한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단순한 반응일 뿐이라고 설명된다. 거어에 의하면, 대중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상대적 박탈감은 소란만을 일으킬 뿐이다.

 

모든 집합심리학적 이론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 이론이 개인들의 집합에 귀속된 주관적 지향들에 관한 가설에 다소간 직접적으로 의존하여 사회과정을 설명하려 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론적 전략은 설명되어야할 사건들이 개인적 행동의 직접적 표현으로 인식되고, 그리하여 ‘정치적 폭력’에 초점이 두어지는 한에 있어서만 겨우 표면적으로라도 그럴 듯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 쿠데타, 반란 심지어는 폭동까지도 무정형의 집합이 아니라 집합적으로 동원되고 조직화된 집단들이, 그들을 다른 동원된 집단들과 갈등관계에 빠뜨리는 목표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폭력에 참여하게 되는 사건들이다. 게다가 여러 유형의 정치적 폭력을 분류하고 명칭을 붙이는 일반적 기준은 행위자들의 사회구조적 위치와 정치적 갈등과정에서 의해서 야기된 사회정치적 결과들이다. 무엇보다도 혁명은 개인 행동의 어떤 동질적인 유형이 단순하게 극단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혁명은 서로 다른 사황에 처해 있고, 동기화도 다른 집단을 포함하는 갈등이 전개되는 복합적 상황이며, 한 정체의 폭력적 파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정치적 질서를 출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좌절-공격이론가들이 설사 개인적인 정치적 폭력의 성향이나 모든 유형들이 합쳐진 순수한 집합적 결과를 설명할 수 있을지라도, 그들은 혁명의 원인이나 정치적 갈등의 어떤 다른 독특한 형태를 우리에게 새롭게 밝혀줄 수는 없는 것이다.

 

2. 체계/가치 합의 이론

 

대중의 불만이 좌절-공격이론가들에게는 혁명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요인이지만, 체계의 위기, 그리고 특히 혁명적 이데올로기가 체계/가치합의 이론가들에게는 핵심적 요인들이다. 이 시각을 정치적 혁명의 설명에 가장 완벽하고 적절하게 사용했던 것은, 1966년에 발행한 존슨(Chalmeers Johnson)의 『혁명적 변동』이다.

 

존손에게 있어서, 혁명이란, 보통 폭력을 제한하는 기능을 하는 “시민적 사회관계 속에 폭력을 개입시키는 특별한 종류의 사회변동”이다. 존슨은 폭력을, 파괴를 향한 감정적 충동으로서가 아니라, 파괴와 함께 전체 사회의 재구성을 포함하는 변동을 성취하기 위한 합리적인 전략으로서 간주한다. 따라서 그는 혁명의 분석과 설명이 일정한 사회구조이론에 준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존슨이 준거점으로 삼고 있는 사회학이론이 파슨즈의 체계이론이라는 사실은 치명적인 것이며, 사회통합과 변동에 관한 이 이론의 시각 때문에, 존슨은 혁명적 변동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설명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파슨즈류의 학자들과 같이, 존슨도 정상적인 사회 혹은 위기가 없는 사회는 사회의 핵심적 가치지향들을 규범과 역할 속에서 표현하고 명시하는, 내적으로 일관된 일련의 제도들로서 인식되어야 한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치지향은 사회화과정을 통해 내면화되어 그 사회의 대부분의 정상적인 성인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도덕적 기준과 현실규정의 기준이 되어버린 가치지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지배적인 세계관과 개인들의 개별적 지향은 서로 아주 유사하며, 모든 객관적인 사회구조적 위기는 지배적인 세계관의 붕괴와 대안적인 사회적 가치지향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이데올로기의 대중적 수용 속에서 자동적으로 반영된다는 결론이, 사회적 통합의 기초에 관한 위와 같은 개념으로부터 도출된다. 존슨은 이러한 파슨즈의 사회통합이론의 논리적 결과들을 주저없이 받아들인다.

 

따라서 존슨에 따르면, 한 사회의 위기는 그 사회의 가치나 환경이 중대할 정도로 시간적으로 불일치할 때마다 나타난다. 위기의 원인은 내적혁신이든 외부적 영향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이든 위기는 항상 사회구성원들이 지향의 상실을 경험하면서 촉진된다. 그 결과 ‘개인적 불균형’이 광범하게 경험되고, 과거의 가치합의의 관점에서 이제까지 ‘일탈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개인적 집단적 행동이 증가한다. 바로 이 순간에 혁신적인 대안적 가치지향을 중심으로 한 이데올로기적 운동들이 결합하고 수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할 때 비로소 혁명적 상황은 도래한다.

 

그러나 혁명적 상황이 완전히 성숙하더라도, 존슨에 따르면 혁명이 실제로 성공할 것인가의 여부는 무엇보다도 합법적 권력당국이 가치와 환경의 “재조화를 향하여 움직일 수 있는 체계의 능력과 그 체계 자체에 대한 비일탈적 행위자들의 신뢰를 유지시켜줄”정책들을 발전시킬 자발적 의사가 있고, 또 그렇게 할 능력이 있는가에 달려있다. 권력당국이 "재조화“의 정책을 시행하려고 하지만, 성공적 혁명을 방해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강압에 의존할 수도 있다.

 

요약하면, 존슨은 집합심리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혁명을 회피하려면 그 시민들을 만족시켜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존슨에게 있어서 특이한 점은,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 단지 시민들의 관습적인 혹은 획득된 욕구가 아니라 그들의 내면화된 가치기준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좌절-공격이론가들의 경우 혁명운동이 불만층들의 분노를 표현하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체계/가치합의 이론가들에게 있어 혁명운동은 지향상실자들을 새로운 사회적 가치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3. 정치갈등론적 시각

 

집합적 폭력과 혁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집합심리학적 이론가와 체계/가치합의 이론가 모두, 불만이나 지향 상실에 초점을 맞추고 제도적 요인과 조직적 요인을 매개변수의 역할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하지만, 정치갈등론적 시각은 오히려 정치적 목표를 위한 조직화된 집단갈등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시각의 대변자가 틸리이다.

 

정치갈등론적 시각은 정치적 폭력을 불만이나 사회적 해체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접근방식에 대한 비판속에서 발전하였다. 틸리에 따르면, 거어, 데이비스, 존슨 같은 이론가들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폭력이 동원된-즉, 자원을 통제하며 조직화된-집단과 통치권력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라는 과정의 부산물이라는 점을 보지 못하였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틸리는 ‘정치적 갈등’을 관심의 중심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는 정부(강압의 주요 수단들을 통제하는 조직체)와 정치적 조직체 구성원과 도전자 들을 포함하는 권력 경쟁자들을 그 주요 구성요소로 하는 일반적 모델의 도움을 받아 정치적 갈등을 분석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틸 리가 정치적 폭력을 설명하려는 경쟁적인 접근방식들을 비판, 반박하고 나서 혁명들을 특징지우고 상세히 설명하려는 자신의 시도로 되돌아오면, 그는 상대적 박탈감과 이데올로기적 전향에 관한 낡은 가설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틸리가 혁명은 복합적 사건이며 혁명의 발생은 몇 가지의 상대적으로 독립된 과정들이 수렴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그는 계급갈등과 사회변동의 측면을 무시하고 있으며, 정치적 주권을 둘러싼 투쟁이라는 한 측면만을 분석적 설명의 관심사로 삼고 있다. 틸리는 내란, 국제적 정복, 민족적 분리주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혁명도 단순히 복수의 주권이 존재하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혁명적 상황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경쟁하는 집단들의 투쟁대상인 목표의 특별한 성격이라면, 혁명에 관해서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러한 특별한 목표를 성취하려고 의도하는 경쟁자들의 출현과 그들의 호소이다. 하지만 틸리는 혁명의 원인을 제시해야할 지점에 이르면 사회심리학적 가설에 의존한다. 존슨을 그대로 모방하여 틸리는 잠재적 경쟁자들은 항상 존재하고 있으며 진정한 문제는 그러한 경쟁자들이 언제 증가하고 동원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불만은 중심적 설명요인으로 다시 나타나며, 종속변수는 이제 폭력적 행동이 아니며 혁명적 엘리트나 연합 혹은 조직을 옹호하는 묵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치갈등론적 시각은 조직화된 정치적 활동이 강조되기 때문에 국가가 중심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복수주권의 존재에 대한 틸리의 강조는 국가의 역할을 평범하게 만들어 버린다. 국가는 하나 이상의 완성된 혁명적 조직체 또는 세력과 어느 정도 대등한 입장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조직체로 묘사된다. 사회의 구성원들은 정부를 지지할 것인가 또는 혁명적 조직체를 지지할 것인가를 자유롭고 신중하게 선택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그들의 선택은 혁명적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요컨대, 정치갈등이론가들은 체계 또는 사회체계를 파괴하거나 전복시키는 혁명적 행동에 직접적으로 몰입하는 불만에 찬, 지향을 상실한 혹은 도덕적으로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개념을 명백히 거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혁명의 원인에 관하여 대체로 사회심리학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만에 찬 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전향한 사람들로부터 사회적 지지를 얻으려는 호소를 통해서 정부조직에 도전하는 조직화된 의식적 혁명가들이라는 이미지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4. 구조적 비교사적 접근법의 모색

 

혁명에 대한 기존의 세 가지 접근방식은 동일한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다.

 

(1) 사회체계나 주민들 속의 변화 또는 그것들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는 불만, 사회적 지향상실 혹은 집합적 동원을 위한 새로운 집단과 잠재력을 낳는다.

(2) 그 이후 현존하는 정부, 더 나아가 전체 사회질서를 위식적으로 전복시키려 하는 광범위한 기반을 가진 의도적인 운동이 등장한다.

(3) 마지막으로 혁명운동은 ‘권력당국’이나 ‘정부’와 끝까지 싸우며, 만일 승리할 경우, 자기 자신의 통제권, 권위 혹은 사회적 변혁의 계획을 수립하는 데 착수한다.

 

즉, 혁명 발생의 기본적 조건이 현존하는 정치질서나 사회질서를 전복시킬 것을 목표로 하는 지도자와 추종자가 결합된, 신중한 노력이 사회나 국민으로부터 출현한다는 주장이 공통적이다. 이러한 이미지에 집착하면 사회구조적 설명을 지향하는 이론들조차도 사회심리학적 설명으로 변화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혁명의 설명에 있어서 핵심적인 쟁점으로서 사람들의 감정과 의식에 분석자의 주의를 필연적으로 집중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운동은 국가, 계급 그리고 지배의 정상적 유형의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야 비로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위기의 발생은, 혁명을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설명되어야 할 중요한 사실의 하나이다. 게다가 모든 혁명적 위기에 있어서,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있고 서로 다른 동기를 가진 여러 관련 집단들은, 그들이 처음에는 예측하지 못했거나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들을 궁극적으로 발생시키는 다양한 갈등의 복합적 전개과정 속에 참여하게 된다. 따라서 혁명이론의 타당성은 분석가가 혁명 참여자들의 관점을 초월하여 주어진 역사적 보기들을 넘어서서, 혁명이 일어났던 상황과 혁명이 진행되었던 과정 속에서 비슷한 제도적 역사적 상황적 유형들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필요성에 의존한다.

 

혁명의 설명은, 총체적으로 인식된 혁명적 상황의 출현과 혁명에 참여하는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집단들의 다양하게 동기화된 행위의 복합적이고 비의도적인 결합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결합은 ‘한 주어진 집단이 아무리 핵심적인 집단일지라도 그 집단의 원래 의도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전체적 변동을 낳는 결합’을 의미한다. 우리는 특정한 사회적 제도적 관계 속에서의 집단의 상호 관련 상황과 역동적인 국제적 영역 속에서의 사회의 상호관계에 초점을 동시에 맞추어야만, 그러한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비개인적이고 비주관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은 일반적 의미에서 사회역사적 현실에 대한 구조적 시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점을 취하는 것이다. 비개인적이고 비주관적인 관점이란 ‘개인, 지위, 집단 사이의 제도화된 관계의 유형을 강조하는 관점’을 의미한다.

 

혁명이론에 대한 연역적 일반화, 즉 모든 시대와 장소 그리고 모든 종류의 사회정치적 질서에서 가능하고 비슷하다고 인식된 어떤 일반적 혁명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명제를 연역하려는 시도, 이러한 연역적 일반화의 이론구성 전략은 세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1) 너무 일반적인 이론적 명제들은, 간단하게 일차원적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현상들을 설명하는데만 적합하며, 혁명과 같이 그 성격상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것에는 부적합하다.

(2) 사회구조적 접근방식을 택한다면, 우리는 다양한 특정 형태의 사회들의 관점에서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까지 알려진 모든 종류의 사회들을 총괄하여 그 사회들의 정치적 제도나 사회경제적 제도에 관해서 말한다는 것은 거의 혹은 전혀 의미가 없다.

(3) 근본적으로 연역적으로 일반화하는 이론구성의 방법은 혁명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전혀 현실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엄밀한 정의에 따르면 혁명이 일어났던 경우는 매우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이 모든 경우도 ‘근대화’의 시기에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혁명과정 자체는 부분적으로는 보편적이 아닌 특별한 사회정치적 구조에 독특한 것으로, 그 나머지 부분에 있어서는 특정한 종류의 세계사적 구조에 특수한 것으로 가정되어야 한다.

 

혁명은 ‘이론적 주제’로 취급될 수 있다. 혁명에 관하여 귀납적으로 일반화하고 혁명의 원인과 결과에 관한 가설들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몇몇 국가의 역사적 궤적을 비교의 단위로서 선택하는 <비교사적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변수들은 너무나 많고 구체적 경우들이 충분하게 존재하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다변수분석 방법으로서의 비교분석은 국가적 정치적 갈등과 발전에 관심이 있고 세계적 맥락의 변수들의 국가적 발전에 대한 엄청난 영향력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는 거시사회학자가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과학적 도구이다.

 

5.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평가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은 많은 점에서 모범적이다.

 

(1)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고수하는, 혁명과정의 일반적 이미지는 혁명적 위기를 발생시키는 데 있어서 사회구조적 모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 이론적 목적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든 혁명들이 똑 같은 것은 아니라고 가정한다. 즉, 혁명이 일어났던 여러 특정 사회들의 생산력 및 생산관계와 계급구조의 구체적 분석을 통해 각 유형의 혁명의 특별한 변형들을 구별한다.

(3)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혁명이 대규모적인 사회변동의 보다 광범한 과정과 내재적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도출된 혁명과정의 이론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솔직히 다음과 같다. 생산양식을 변화시키고 서로 다른 생산양식들을 구분시켜주는 계급투쟁을 발생시키는 사회경제적인 발전에 의해서 혁명이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기본적 설명도식은, 실제 역사적 혁명들의 전체적 논리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혁명들에 있어서 핵심적으로 중요하였던 정치적 갈등은 계급적 관점만 가지고는 이해될 수 없다. 혁명적 상황에는 경제적 ‘모순’뿐만 아니라 정치적·군사적 모순도 포함된다.

 

또한 혁명에 있어서의 국가의 중심적 역할을 과소평가하였다. 마르크스주의적 학자들은 국가의 강력함과 그 구조 및 국가조직과 계급구조의 관계를 지칭하는 인과적 변수들이, 계급구조와 경제발전의 유형만을 지칭하는 변수들보다, 성공한 혁명의 경우와 실패한 혁명의 경우 혹은 혁명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경우를 훨씬 잘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그들은 군대와 행정조직 같은 국가조직의 구조와 기능 및 국가와 사회계급의 관계가 보다 더 직접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이것은 국가발전의 비혁명적 유형으로부터 혁명을 구분시켜주는 독특한 제도적 변동을 밝혀내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논평의 여러 주장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새로운 이론적 전략을 통해서만 혁명의 설명에 있어서 실질적인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다.

(2) 새로운 이론적 전략이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사회구조적 설명방법과 가설검증의 비교사적 방법을 종합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거시이론적 전통의 특징인 이론적 이해와 역사적 유관성을 융합하고, 엄밀한 가설검증의 관심을 결합시킴으로써 추상적이고 현실 유관성이 없는 ‘이론화’와 ‘경험적 부적절성’이라는 두 가지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본문스크랩 [스카치폴] 혁명적 이데올로기의 역할 낙서장

2008/01/07 20:02

 

http://blog.naver.com/sickduck/20045738860

출처 블로그 > Bleistifte des Ganndalf
원본 http://blog.naver.com/ganndalf/140018034104
 

혁명적 이데올로기의 역할


* 출처 : 테다 스카치폴, 『국가와 사회혁명 : 혁명의 비교연구』, pp183~188

* 부분발췌 + 내 언어로 정리(약간)


혁명지도층을 정치가들로 생각하는 연구자들은 대개 혁명지도층이 취하는 이데올로기들, 예를 들면 <자코뱅주의> 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등이 혁명의 결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고 믿거나 주장한다. 또 그러한 이념들은 혁명지도자들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할 때 추구하는 실천적 전략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혁명과정과 결과에서 혁명적 전위집단의 이념적 방침이 주요하다고 보는 분석태도는 어떤 한 가지 가정에 입각해 있는 것이 통례다. 이 견해에 따르면, 구체제에 원래부터 내재해 있던 투쟁과 모순이 사회적 위기를 가져오고 이로 인해 혁명적 변혁이 가능해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변화의 실제적 성취는, 특히 어떤 종류의 특수한 변화가 성취되는가는 확고하고 조직적 혁명 전위집단의 의도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혁명의 결과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층의 이데올로기적 비전을 살펴야 하는 논리가 성립하는 듯 하다. 그밖에 달리 개방된 사회적 위기 속에서의 여러 가지 가능성들 중에서 특정 가능성들만이 실현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는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혁명 이데올로기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한번 따져 보기로 하자.


<자코뱅주의>나 <마르크스-레닌주의> 등과 같은 혁명이데올로기들은 확실히 사회혁명적 상황하에서 국가권력의 기초를 세워 정착시키려는 정치지도층들을 결속시키는 기능을 하는 듯하다. 또한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들을 따름으로써 혁명정치가들은 적절한 방식으로 투쟁할 수 있게 되었다. [···] <자코뱅주의>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같은 혁명 이데올로기가, 그것을 취한 정치엘리트들이 사회혁명 상황 속에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도록 도울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이 이데올로기들은 출신배경이 아주 다른 사람들을 <동료적 시민>이나 <동지>로서 함께 뭉치고 고무할 수 있었던 (그들의 역사적이고 민족적 맥락 속에서는) 보편적 교리였다. [···] 따라서 혁명 이데올로기들은 국가권력을 재건하고 이를 행사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전면에 내세워졌다.


둘째로, 이 이데올로기들로 혁명엘리트는 대중을 정치적 투쟁과 행동에 가담시키고 전향시켰다. 이러한 방침은 비록 많은 사람들을 정말 전향시키지는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자코뱅당과 볼세비키당, 중국공산당이 반혁명분자들에 대한 정치군사투쟁을 벌이는 데 중요한 보조역할을 했다. 그런데 반혁명분자들은 이념적, 물질적 이해타산을 함으로써 대중의 자발성을 기대할 수도 도움을 얻을 수도 없었다.


세 번째는, <자코뱅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둘 다 세속화된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이를 믿는 사람들에게 지상에서의 궁극적인 정치적 목표-‘일반의사’의 구현이나 ‘계급없는 사회’로의 진보 등과 같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을 써도 좋다는 것을 정당화해주었다. 그리고 비트너(Egon Bittner)의 견해처럼 만일 전체주의적 이념들이 집단 내에서 유일한 신앙으로 떠받들리게 되면, 특정한 성격의 조직장치를 세우는 일이 절실히 요구되기 십상이다. 특정한 상징이나 지도자들을 정점으로 한 집단적 위계적 권위질서에 맞춰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을 꾀하는 통제장치가 이에 속할 것이다. 혁명으로 인한 ‘내란’의 특징인 끝없는 정치투쟁 과정에서는 그런 장치가 소수의 무장세력에게 큰 이점을 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혁명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는 민중은, 이 세 나라의 대규모 사회혁명에서 의심할 나위 없이 필수적인 요소들이었다. 그렇지만 이에 더하여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 이데올로기의 구체적 내용이 혁명의 결과나 혹은 혁명을 정착시킨 국가조직을 건설했던 혁명가들의행위와 꼭 맞아 떨어진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혁명 이데올로기를 혁명가들의 행위와 혁명의 결과에 대한 청사진으로 보는 어떠한 논리도,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서 전개된 사회혁명적 상황 속에서 <자코뱅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실제로 어떻게 발전했고 작용해나갔는가에 대해서 역사적 증거에 입각한 정확한 진상을 밝혀주지 못했다.


자코뱅 이데올로기는 단지 1년가량만 혁명 프랑스를 장악할 수 있었고, “덕의 통치”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그 대신 자코뱅당은 자신들을 사로 잡았던 혁명의 성공에 필수적이었던, 보다 세속적인 과업-국가건설과 혁명의 수호-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러시아의 볼세비키당은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지리멸렬된 농촌지역에서 마르크스사회주의의 명목하에 국가권력을 장악해야할 긴박성에 쫓겼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직접적으로 모순이 되는 과업과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자각했다. 결국 스탈린주의의 승리는 사실상 마르크스주의의 모든 이상을 왜곡시켰고 전복시켰으며 관료주의와 상비군제도를 일소하려던 1917년의 레닌의 구상과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었다.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고유한 방식대로 도시프롤레타리아의 봉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 시도했다. 이것이 실패로 돌아간 뒤, 일이 여의치 않게 되자, 농촌의 군대 주둔지역에 기반을 둔 새롭고도 실천가능한 농민지향운동이 이미 일어난 일을 정당화하고 명문화하기위해 <毛>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뒤로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실천적 과정에서 기본적인 이론에서 벗어났을 경우 정당화가 필요하다면 언제나 이것에 보조이론이 덧붙여졌다.


간단히 말해, 혁명상황에서의 이념지향적 지도층은 기존의 구조적 상황에 의해 크제 제약을 받으며 신속히 변화하는 혁명의 흐름으로 흑심한 곤란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아주 다른 과업을 성취하거나 그들이 원래부터 (아마 그때 이래로 계속된) 이데올로기적으로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새로운 체제의 강화를 촉진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였었다. 일단 우리가 하나의 분명한 사실을 깨닫고 이를 검토해 봤다면, 이런 일은 별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사실이란, 만일 의지가 강한 혁명가가 마음먹기만 한다면 일시에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역사의 극한적인 상황이 혁명적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한지 이유로서, 혁명적 상황은 원래 어떤 환경하에서, 어떤 구체제하에서 그것이 발생했는가에 따라 특수한 형태를 가지며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의 특수한 연쇄를 창조한다. 더 나아가 혁명적 상황이 주어진 사회 내에서 무엇인가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변수들을 신속히 변화시키는 계급투쟁과 제도의 붕괴를 가져오기는 하지만 항시 많은 조건들-특히 사회경제적 조건들-이 구체제로부터 이월된다. 이런 조건들 역시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특수한 연쇄를 창조하며 혁명가들은 새로운 체제를 정착시키려고 할 때, 그 한계 내에서 움직여야만 한다. 그리고 모든 혁명적 변혁이 발생하는 주어진 세계사적, 국제적 배경 역시 같은 작용을 한다. [···] 따라서 나는 이데올로기적 세계관이나 강령의 시각에서 혁명의 진전을 설명하고 해석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혁명적 위기의 형태와 구체제의 유산들이 국가를 건설하려는 혁명지도층의 노력과 성취를 어떻게 구체화시켰고, 또 어떻게 제약했는가에 중점을 둘 작정이다.

 

스카치폴의 국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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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 ⓕ | 2007/06/24 (일)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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