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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옳은데 노조 옹호? 도대체 정체가 뭐지?

나도 그리 믿는다. 자유민주주의의 자유와 민주는 긴장관계이다.

현 단계에서 단지 현상적으로 불안정한 동거일 뿐이다.

 

박정희 옳은데 노조 옹호? 도대체 정체가 뭐지?
[서평] 장하준 정승일 교수의 대담집 <쾌도난마 한국경제>
텍스트만보기   김대홍(bugulbugul) 기자   
언젠가부터 한국사회에서 '박정희'는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핵심 코드가 돼 버렸다. 진보 측에서는 박정희의 인권탄압과 친일 행적을 비판하고, 보수 측에서는 뜨거운 애국심과 뛰어난 경제성장을 찬양한다. 진보 측에서는 경제성장을 '노동자의 땀과 피'를 판 대가, 미국의 원조 탓이라고 평가한다.

ⓒ2005 부키
재벌 또한 마찬가지다. '선단식 경영' '문어발 확장' '족벌 경영' '부당 내부 거래'처럼 부정적인 수식어가 덕지덕지 붙은 재벌을 비판하는 것은 진보진영의 당연한 몫으로 여겨진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의 경제정책을 적극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 '보수'라는 딱지를 붙일 만하다. 게다가 재벌까지 두둔한다면 '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영국 수상 대처의 노조 억압주의를 비판하고, 노조에 대한 사회와 회사의 책임을 강조하는 점에서는 '진보'의 냄새가 난다. 게다가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를 적극 반대하는 점에서는 보수와 거리가 멀다.

더 나아가 자본 시장 자유화를 반대하는 점에서는 '민족주의자'의 냄새까지 난다. 여기까지만 해도 헷갈리는데, '관치 경영'과 '재벌 경영'을 옹호한단다. 도대체 이 사람 정체가 뭐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와 정승일 국민대 교수가 두 주인공이다. 도대체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두 사람이 이종태 전 <말>지 편집장의 사회로 경제 대담을 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책으로 나왔다. 장하준 정승일의 격정대화 <쾌도난마 한국경제(부키)>가 그 책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허구 '자유'와 '민주' 분리해야

두 사람은 주위에서 헷갈려하는 시선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책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두 교수의 경제관은 '자유민주주의는 허구'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자유'와 '민주'는 전혀 다른 성격일 뿐만 아니라 대립 관계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자유주의의 핵심이 '시장의 자유와 사유재산권 수호'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눌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게 형성된 '있는 자'들은 더 많은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게 되고, '없는 자'들을 옹호하는 '민주주의'와 충돌한다는 내용이다.

그런 도식에 비춰보면 그들이 박정희를 비판하는 지점과 옹호하는 부분이 나눠진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을 통제한 부분은 긍정, 정치적 민주주의를 억압한 부분은 부정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박정희가 이룬 경제성장을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

박정희 경제정책의 재평가와 운동권의 오류

책에는 운동권 진영이 제기한 문제들을 두 사람이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그 바탕에는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자리잡고 있다.

박정희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은 여러 가지다. 그중 한국의 경우 1960년대 이전에 이미 토지 개혁, 양질의 노동력 등 경제 발전의 하부 구조가 마련되어 있었던 만큼 차라리 당시부터 '시장 주도의 경제 원칙'을 받아들여야 했다는 비판에 대해 정승일 교수는 "농지 개혁 성과가 곧바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1950년대 후반기에는 경제 상황이 굉장히 악화되면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될 정도였다는 것. 즉 농지개혁 성과가 곧바로 경제성장을 유도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진보진영 한편에서 제기한 "70년대 경제성장은 노동자의 피와 땀 때문"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장하준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아랍 등 수많은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희생당하고 착취당했지만 경제가 발전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당시 한국의 지배층이 민중을 착취했지만, 착취한 부를 효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70, 80년대 국내에서 맹위를 떨친 종속이론 중 "공산주의 블록 확대를 우려한 미국의 원조 때문"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도 장 교수는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칠레 또한 한국만큼 많이 받았고, 아프리카에도 한국보다 더 많이 받은 나라들이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장 교수는 "박정희는 절대 시장주의자가 아니었다"고 단언했다. 1972년 사채 동결화 조치처럼 사유재산권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사례를 보라고 말한다.

더불어 1980년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과거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부분을 털어놓았다. 그는 "종속이론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 1980년대 중반 외채 순위 1~3위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가 연이어 금융 위기를 맞이했을 때 다음 순위는 한국"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외채 순위 4위가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말 오히려 3저 호황으로 외채가 엄청나게 줄어버려 몹시 헷갈렸다"고 부연했다. 종속이론이 실제와 차이가 났다는 그의 경험담이다.

정규직화가 국가 경쟁력 지름길

박정희 경제정책에 대한 내용이 책의 절반이라면 노동자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책임감을 묻는 내용이 반이다. 그들은 '자유롭게 해고하고 취업할 수 있는 문화'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노동자를 함부로 자를 수 없는 시스템을 가진 일본이 국제 경쟁력 상위를 차지하는 이유를 보라고 되묻는다. 그들이 거론한 핵심 사항은 '기능적 유연성'이다. 그 말은 노동자가 여러 가지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다기능화 혹은 숙련화시킨 정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자본이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자유롭게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수량적 유연성과는 다른 뜻이다.

장 교수는 내부 교육 시스템을 통해 '기능적 유연성'을 높인 게 일본 기업의 힘이라고 설명한다. 즉 더욱 개량된 제품을 생산해야 할 때 기존의 노동자들을 생산 라인만 바꿔서 그대로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세계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해 왔다는 의미다.

그런 일본의 저력이 잘 발휘된 게 1985년 위기. 당시 플라자 합의에서 엔화가 달러에 대해 3배나 절상돼, 일본의 수출기업들은 초비상이 걸렸다. 평소 100달러 하던 물건이 단숨에 300달러로 오른 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일본은 그 위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냈다.

또한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를 도입한 소니와 종신고용제를 유지하는 도요타와 캐논을 비교하며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자르는 게 절대 대안이 아니다'고 극구 강조했다.

두 사람은 한국 노동조합의 힘이 지금보다 더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책임감이 더 높아지고 사회적 교섭이 좀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들은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항상 최상위권에 놓이는 스웨덴을 예로 들었다. 스웨덴의 경우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고 노동조합의 힘이 대단히 강하다. 게다가 행정부는 사회민주당에 장악돼 누진세로 따지면 소득의 60%까지 긁어갈 정도로 가진 자에 엄격하다. 보수층 논리를 빌면 일명 '빨갱이 나라'인 셈.

그런데 정승일 교수는 그런 나라에 외국 기업들이 '악착같이' 들어간다며 "이유가 뭐냐"고 화두를 던졌다. 그에 따르면 외국기업들은 스웨덴의 우수한 사회보장 제도와 무료로 제공되는 기술 훈련 시스템, 그에 따라 숙련된 현장 노동자들과 대학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들을 탐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고숙련 노동자들만이 만들 수 있는 고수익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웨덴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두 교수는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고 비숙련 노동자만 잔뜩 만들어낸 '대처리즘'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질타했다.

또한 우리나라 언론이나 재계가 '영국이 강성 노조 때문에 망했다'고 퍼뜨린 것은 원인을 잘못 짚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기업들이 주주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주주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에 계속 단기 이익만 추구해 왔다는 지적이다. 즉 그 과정에서 장기 투자나 기업 운영이 포기해 왔다는 설명.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시장에 맡기는 것은 위험 "시장은 선 아냐"

"저로서는 정말 기묘하게 느끼는 현상이 '관치 금융'이라는 용어가 '욕' 비슷하게 통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얼마 전에 신문을 읽다가 정부가 우리은행에 어떤 지시를 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걸 두고 그 신문은 '관치 금융'이라고 비판하더군요.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우리은행 그룹은 78.5%의 지분이 정부 소유예요. 주주 자본주의 논리로 따져 봐도 우리은행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주주 자본주의'를 적극 비판하는 두 사람이 반대 논리로 내세운 것은 '예금주 민주주의'다. 정승일 교수는 "소유권이라는 측면에서 은행이 주주의 것이기도 하지만 예금자의 것이기도 하다"고 반론했다. 또한 "국민 경제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은행에 대해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논리만 들이대면서 억지를 쓰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대담이지만 책의 전체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두 사람이 어려운 용어를 많이 쓰지 않고 풍부한 예를 통해 현실감 있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사회자인 이종태씨가 적절하게 부연설명을 하고 중간 중간 각주가 달린 점도 책이 쉽게 익히는 한 이유다.

'박정희'와 '재벌'이 찬반으로 확연히 갈린 한국사회에서 두 교수의 주장은 우리편 내편을 가르기 힘든 주장이다. 또한 '주주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비판 내용으로 일관돼 있어 반론에 대해서는 취약한 부분이 있다. 즉 '주주 자본주의'가 끼친 긍정성이나 필요성이라는 점이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흑백의 시선을 거두고 두 사람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다면 엄청난 기업이윤을 남기는 한국 경제가 왜 내수 침체에 빠져 있는지 단서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2005-08-28 10:56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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