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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링 떠난다…그래서 질수 없다”

대입 축하한다. 잘 자라라

 

지면 링 떠난다…그래서 질수 없다”
만나봅시다 - 다음달 통합챔프 도전 김주희
이길우 기자
▲ 다음달 통합타이틀전을 앞둔 최연소 세계챔프 김주희가 26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거인체육관에서 펀치볼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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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간 적이 없다. 돈이 없어서였다.

그 시절 10일간 라면 2개만 먹고 버틴 적도 있다. 동네 수퍼마켓의 진열대에 있는 버터빵이 먹고 싶어 딱 한번 훔쳐 먹었다. 아직도 그 가게를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저려온다.

그가 권투를 시작한 것도 가난이 이유였다. 어머니가 가출한 뒤 그를 돌봐야 했던 당시 고등학생 언니(김미나·24)는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번 5만원으로 권투도장 한달 회비를 내줬다. 권투도장은 밤 11시까지 운동할 수 있어 자신이 동생을 돌봐야 하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독하게 운동했다. 어떤 날은 혼자 밤을 세워 샌드백을 치기도 했다.

손가락 부러져도 내색않은 ‘열아홉 독종’

지난해 12월 멜리사 셰이퍼(27·미국)와의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타이틀전을 앞두고 스파링을 하다가 왼손 새끼손가락에 금이 갔다. 스파링 상대가 기부스를 해 빨리 낫게 하려면 ‘확실히’ 부러져야 한다고 말해 마구 샌드백을 두들겼다. 결국 새끼손가락은 조각 조각 부셔졌고, 더 오래 기브스를 해야 했다. 세계 타이틀전에서도 3회전을 남기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우두둑’ 골절됐다. 상대방이 눈치챌까봐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겼다.

그의 얼굴은 뽀얗다. 그리고 상처도 없다. 생글생글 잘 웃는다. 키도 작다. 길거리에서 만나면 누구도 그를 거친 사각의 링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챔피언이라고 알아채기 어렵다. 그러나 링에만 올라가면 독종이 된다. 지면 은퇴한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질 수가 없다.

합숙비 없어 육상 포기한 뒤 복싱 눈떠




다음달 24일 서울에서 여자국제복싱협회(WI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마리벨 주리타(26·미국)와 통합타이틀전을 벌이는 김주희(19·거인체육관). 최연소 세계챔피언이라는 그의 ‘명성’ 뒤엔 그 또래가 겪기 힘든 생활의 고단함이 숨어있다.

김주희는 그런 가난의 티를 안낸다. “왜 권투를 시작했냐구요? 먼저 도장을 다닌 언니의 운동복을 찾으러 도장에 들렸는데 그 겨울에 운동하는 오빠들의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더군요. 그래서 나도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때는 중장거리 달리기 선수였다. 그러나 합숙비가 없어 포기해야 했다. 우연히 마주친 권투는 그를 한없이 유혹했다. 지금도 경기를 앞두고 산악달리기로 체력을 담금질한다. 그를 처음부터 조련한 정문호(49) 관장 역시 달리기 선수 출신이다.

세계챔프가 됐으나 그는 지금도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 집에 산다. 중풍으로 몸이 불편한 아버지(김산옥·52)를 보살펴야 한다. 세계챔프가 될 때까지 그를 뒷바라지하던 언니는 지금 미국에 유학중이다.

형편이 어려운 그를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줄지어 나타났다. 한 중견회사 사장은 아무런 조건없이 2년 동안 월 100만원씩 도와준다고 했다. 그 사장에게 김주희는 전화를 걸어 “감사합니다. 그러나 전 아직 제 스스로 해낼 수 있습니다. 나중에 정 어려우면 말씀 드리겠습니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한 ‘빨래방’ 주인은 평생 고객으로 모시고 무료로 빨래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고맙다고만 했다.

요즘 인기가 있는 격투기로부터도 유혹은 계속된다. 한 일본 격투기 프로모터는 “단 3경기만 출전하면 아파트 한채를 사주겠다”고 제의했다.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케오승을 거둘 때마다 모교인 서울 영등포여고에 100만원씩의 장학금을 전달한다.

꿈은 앞으로 2~3년 통합챔피언을 지낸뒤 은퇴하고 텔레비젼 권투해설가를 하고 싶단다.

일 격투기 유혹도 거절…“해설가 되고파”

말도 정말 조리있게 잘한다. 그 앞에서 삼국지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 삼국지를 50번이상 읽을 만큼 지독한 독서광이기도 하다. 최근 대전 중부대학교 엔터테인먼트학과에 수시합격했다. 대학생의 꿈을 이룬 것이다.

한국프로복싱 사상 남녀 통털어 처음으로 두 기구 통합챔피언에 도전하는 김주희는 발렌타인데이엔 같은 도장에서 운동하는 남자 수련생의 사물함에 초코렛을 일일히 다 넣어주는 다정함을 보여주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아가씨’이기도 하다. 글 사진/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기사등록 : 2005-08-29 오후 07:03:27기사수정 : 2005-08-29 오후 07: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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