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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고수가 되는 법을 알려주마

하수 5단이니 뭔 소린지 당췌 모리겠다.

 

바둑 고수가 되는 법을 알려주마
고수가 되기 위해 꼭 봐야 하는 바둑책 세 권
텍스트만보기   이동환(ingulspapa) 기자   
잉걸아빠는 한국기원이 운영하는 바둑 사이트 '사이버오로'에서 아마추어 5단으로 바둑을 둔다. 물론 지금은 바둑 둘 짬이 나지 않아 거의 못 두지만 30년 묵은 이무기요, 한때는 내기바둑에 미쳐 나돌던 시절도 있었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는 기력이 부풀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잉걸아빠는 아마추어 3, 4단 정도 기력이다.

고 전영선 사범이나 그밖에 젊은 프로사범들에게 다섯 점을 붙이고 내기바둑을 둔 적도 있다. 프로사범에게 돈 따먹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어쨌거나 그들로부터 한결같이 "아마 3단은 너무 짜!"하는 소리를 들었으니 '바둑 좀 둬요'라는 말을 해도 어디 가서 욕먹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한국기원이 공인한 대회에서 우승을 해야 아마추어 5단을 인정받는다. 그러니 솔직히 말해 잉걸아빠는 진짜 고수가 아니다. 이무기일 밖에.

너무 많은 바둑책, 뭘 고르지?

바둑에 한참 빠져 있거나 취미로 바둑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서점에 진열된 바둑책을 보고 놀란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고, 저자만 보고, 출판사만 보고 골랐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일본 바둑책을 베낀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잉걸아빠가 바둑에 미쳐 날뛰던 30년 전에야 일본 바둑책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에이, 바둑사이트마다 클릭하면서 공부하게끔 다 돼 있는데 책은 무슨?"하기도 한다.

감히 단언하건대 바둑 공부는 컴퓨터 화면에서 클릭클릭 해서는 절대 실력이 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고민하고 바둑판에 돌을 직접 놓아봐야만 눈곱만큼이라도 실력이 는다. 놓아본 뒤 쓸어 담고 고뇌하며 한 수 한 수 그 의미를 새겨야만 한다. 21세기 화두가 아무리 디지털이라도 아날로그는 여전히 중요하다. 종이책은 더 더욱 그렇다. 종이책을 통한 지식섭취가 진짜 보양식이듯 바둑공부도 마찬가지다.

▲ 위기고전총서 전 6 권 초판본(희귀본). 1976년에 나는 이 전집을 처음 손에 넣었다. 지난 1991년, 살던 집에 불이 나 홀라당 타버렸을 때 청계천 헌책방을 샅살이 뒤져 '명진서점'이란 곳에서 다시 찾아냈다.
ⓒ2005 이동환
바둑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처음 매진해야 할 일은 '사활(死活)문제'에 빠지기다. 아예 미친 것처럼 빠져야 한다. 바둑은 흔히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인생을 논할 때 죽고 사는 문제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듯 바둑도 마찬가지다. 바둑은 흑돌과 백돌이 부딪쳐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면서 결국 서로 살아 있는 돌(인생)의 결과물, 즉 누가 더 많은 집을 남겼느냐를 따져 승패를 가름한다.

따라서 사활을 한눈에 짚어낼 수 있는 눈이 없다면 고수가 될 수 없다. 자기 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바둑을 둔다는 것은 영원한 하수로 남는 지름길이요 돌장난일 뿐이다. 위 사진 속 책들은 60년대 한국 바둑계를 평정했던 김인 9단의 감수로 1974년부터 1년여에 걸쳐 '현현각'에서 출간한 <위기고전총서 전 6권>의 초판본이다. 지금은 여러 출판사에서 포켓판부터 다양한 형태로 출간하고 있다. 아참, 맛보기 책 소개를 해야지?

첫 권인 현현기경(玄玄棋經)은 중국 원나라 시절인 1349년경에 완성된 책이다. 현현기경은 사실 하수로서는 풀어내기 힘든 문제집이다. 그러나 문제마다 숨겨진 맥(脈)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기에 풀다가 못 풀면 정답이라도 보면서 "아, 이게 맥이었구나!"를 외치더라도 꼭 바둑판 위에 돌들을 늘어놓아봐야만 한다. 난이도는 유단자급이다.

재미있는 것은 수백 개 문제 하나하나마다 인생과 자연을 돌아보게끔 하는 시(詩) 같은 제목들이 붙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세 번째 문제인 '삼선장소세(三仙長嘯勢)'를 보자. 귀퉁이에 몰아붙여진 백돌 세 개가 삶을 모색해야 하는 문제다. 제목을 풀이하면 '세 신선이 휘파람을 길게 뽑는 세'다. 위기에 처해 있지만 분명히 어딘가 활로가 있다는 믿음을 준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선 셋이 휘파람을 불며 여유작작할 리 없기 때문이다.

둘째, 셋째 권은 '관자보(官子譜)', 넷째 권은 '발양론·현람(發陽論·玄覽)', 다섯째 권은 '기경중묘(碁經衆妙)', 여섯째 권은 '사활묘기(死活妙機)'다. 사실을 말하자면 여섯 권 모두 만만치 않다. 고수라 할지라도 머뭇거리기 십상인 문제집들이다. 발양론 같은 책은 프로기사들조차도 진땀을 흘리는 고난도문제집이다. 잉걸아빠 역시 30여년 동안 이 책들을 옆에 끼고서도 끝까지 본 책은 현현기경과 기경중묘, 그리고 사활묘기뿐이다.

나머지 책들은 가끔 머리를 쓰고 싶어 들여다보다가 정답을 슬쩍 보면서 아하! 하고 감탄하는 정도다. 모든 책을 완벽하게 다 소화할 수만 있다면 아마추어 정상에 이를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제 와서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바둑 좀 두는 정도면 그럭저럭 만족하며 잊고 사는 것도 괜찮기 때문이다. 그러나 잉걸아빠만큼이라도 기력을 향상시키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반드시 봐야 할 책들이다.

▲ 한국바둑의 거목, 조남철 선생의 역작 가운데 하나. 인생살이와 너무 닮은 '속고 속이기'가 적나라하게 파헤쳐지고 있다.
ⓒ2005 이동환
어느 정도 사활을 익혔다면 다음 차례는 현대 한국바둑을 일으킨 조남철 9단이 1969년에 '법문사'를 통해 펴낸 <속임수> 묶음 두 권이다. 인생도 그렇지만 바둑 역시 한 판을 마무리하기까지 수많은 암초와 속임수, 그리고 목숨 걸린 위기를 맞게 된다. 초반 정석과정에서 벌어지는 예기치 못한 위험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침서다. 인생으로 빗대자면 '험한 인생, 현명하게 피해가며 살기' 정도가 되겠다.

▲ 충암고등학교와 '충암연구회', 그리고 '충암출신프로기사들'이 세계를 평정하기까지 흘린 피땀과 연구결과의 집대성.
ⓒ2005 이동환
마지막으로 '한국기원'에서 펴낸 <충암대연구> 묶음 세 권이다. 요즈막에는 해설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김성룡 사범이 엮은 책이다. '충암연구회'는 우리 나라 프로기사들의 상당수를 배출한 충암고등학교 출신들의 연구모임이다. 그 모임에서 연구된 것들은 국보급 비기(秘技)였다. 이창호, 유창혁을 비롯해 세계바둑계를 평정한 기사들의 연구모임인 충암연구회의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현대 바둑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

바둑 고수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뚫어야 할 책 세 가지를 소개했다. 물론, 잉걸아빠 주관이다. 따라서 선택은 자유다. 다만 이 바둑책 소개 기사를 쓰는 이유를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1989년부터 한국바둑은 세계를 평정해왔다. 바둑 발상지라는 중국은 물론, 막부시대부터 프로기사를 키워온 일본까지 따돌리고 명실상부 세계 제 1의 자리에 서 있다. 중국과 일본이 한국 앞에서 오롯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바둑뿐이다.

실제 우리 나라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게 대체 뭐가 있을까? 순 우리 힘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서 있는 것? 바둑 외에 떠올리기 힘들다. 그런데 이즈막 청소년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컴퓨터게임 때문이다. 바둑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생각을 깊게 해야 하는 게임이다. 그러다 보니 몇 분 안에 승부가 나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 입맛에 안 맞나보다. 유럽에서는 바둑 열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다는데 정작 우리네 사정은 이렇다.

그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둑책 소개 기사를 써보았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바둑에 관심조차 없었던 그 어느 청소년이 이 기사를 보고 관심을 갖는다면, 그래서 제 2의 이창호, 유창혁이 나올 수만 있다면, 먼지 쌓인 책꽂이를 뒤져 케케묵은 옛날 바둑책이나마 소개한 보람이 있겠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서는, 아마추어 5급 이상의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지침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노파심에 미리 말씀 올리지만, 아마추어 5급 이하인 분들은 초보를 위한 책들을 따로 보신 다음에 여기 소개하는 책들을 섭렵하셔야 고수로 가는 길 들머리에 서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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