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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소아가씨와 웬 2차?”…앞선 여성가족부의 진부한 ‘오버’

이렇게 깊은 뜻이...

 

업소아가씨와 웬 2차?”…앞선 여성가족부의 진부한 ‘오버’
여성가족부 ‘화이트 타이’ 티저광고 논란
“성매매를 여성폭력에서 가족배신으로 치환”
이유진 기자
▲ 여성가족부 ‘화이트 타이’ 티저광고의 다양한 퍼포먼스.

첫 시도는 언제나 어려운 법이다. 세심하고 꼼꼼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실수하거나 ‘오버’하기 십상이다.

여성가족부가 9월23일 성매매방지법 시행 1주년을 맞아 성문화개선운동을 하려고 티저 광고(바람잡이 광고)를 했다가 일부 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 티저광고가 남성들의 관심을 끌기는커녕, 성매매를 하지 않는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도리어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다.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티저 광고의 컨셉은 이른바 ‘화이트 타이’였다. 여성가족부는 이 화이트 타이가 인간존중과 성매매 근절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19일부터 29일까지 11일간 서울 명동, 강남역, 신촌 등지에서 ‘앞선 남자의 근사한 생각’이란 문구를 넣은 사탕과 라이타를 나눠주고, 늑대 탈을 뒤집어쓴 도우미가 지하철 여성 승객을 도와주거나 하얀 넥타이를 맨 ‘광녀’가 차에 뛰어드는 등의 흥미로운 거리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 부처로서는 최초의 티저 광고 집행이었다.

‘성매매 방지 위한 남자 10대 행동수칙’ 재밌긴 한데…




논란은 엽서와 사탕에 적힌 문구 때문에 불거졌다. 여성가족부는 이 엽서에 성매매 방지를 위한 남자들의 10대 행동 수칙을 인쇄해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수칙 내용은 ‘사랑과 성을 돈으로 사지 않습니다’, ‘부장님의 룸살롱행 권유에 부드럽게 거절할 줄 압니다’, ‘김마담과 2차 나갈 돈을 모아 부모님 비상금을 챙겨드립니다’, ‘업소 아가씨와 2차를 나가는 대신, 그 돈으로 자기 관리에 투자합니다’ 등의 문구들이었다. 이 문구를 만들어낸 여성가족부 관계자들은 “친근하게 접근하려 했다”며 ‘새로운 시도’임을 강조했다.

그동안 누리꾼들은 이 티저 광고의 주인공이 “새로운 의류 브랜드다”, “새 여성 포털사이트다”는 등 다양한 상상을 하며 재미나다는 반응을 보여왔지만, 여성가족부가 ‘전모’를 공개하자마자 반응은 급반전했다. 일부 언론은 여성가족부의 이번 홍보에 대해 여성단체들까지 못마땅해한다, 남성들의 반감을 부른다는 등 대놓고 비판했다. “성매매의 본질적인 문제를 짚지 못한 채 문제를 가볍게 다뤄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누리꾼들 역시 이를 비판하는 댓글을 달기 시작해, 관련기사에 수천개씩 주렁주렁 매달아놓았다. 여성가족부에 대한 반감이자 동시에 성매매방지법 자체를 불만스러워 하는 목소리가 다수였다. 반발 여론을 의식한 듯 여성가족부는 이 행동 수칙에 대해 “앞으로 수정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적영역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 드러나

▲ 여성가족부 ‘화이트 타이’ 티저광고의 다양한 퍼포먼스.
하지만 이 티저 광고를 바라보는 다른 의견들도 있었다. 일부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성매매방지의 뜻을 알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눈길을 끄는 퍼포먼스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여성가족부의 티저 광고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또 “행동수칙이 법령이나 규칙이 아닌 바에야 수칙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는 다소 무심한 의견을 내놓은 이들도 있었다. 성매매를 방지하려는 노력의 하나인 티저 광고 자체에 벌점을 주기는 힘들다는 뜻이었다.

비판 여론에 대해 여성가족부가 스스로 털어놓고 있다시피, 여성가족부가 티저 광고의 문구 자체를 세심하게 손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큰 문제는 사랑과 성에 대한 여성가족부의 태도다. 이번 티저광고 문구에서는 ‘사적 영역’에 대한 여성가족부의 보수적인 관점이 드러났다.

시민에게 배포된 막대사탕과 엽서에는 ‘모든 여인을 품을 수 있는 자유, 그러나 한 여인을 사랑할 수 있는 나의 선택’, ‘금요일 저녁은 아내와 함께 영화감상 하는 날’, ‘사랑은 오직 한 사람과’, ‘사랑도 의리다’, ‘몸과 마음 모두를 아내에게 올인합시다’는 등의 문구가 포함돼있다. 한 여성학 전공자는 “결혼을 통해 사회적으로 용인된 관계, 혹은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관계만을 인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꼬집기도 했다.


▲ 여성가족부 ‘화이트 타이’ 티저광고의 다양한 퍼포먼스.

동성애가족, 동거가족, 한부모가족도 가족이다

이번 티저 광고 담당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이런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30일 여성가족부 브리핑에서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티저 광고의 문구에 대해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상대와 최선을 다해 관계를 하자는 것”이라며 “성매매에는 배우자에 대한 배신이라는 뜻이 포함돼있다”고 밝혔다. 홍보를 맡은 업체 관계자 역시 성매매를 ‘연인과 아내에 대한 배신 행위’와 연결시키는 논리를 펼쳤다. 늑대탈을 쓴 퍼포먼스에 대해서 그는 “늑대는 흔히 남자를 나타내는 동물인데, 실은 늑대가 1부1처제인 데다, 의리도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은 성매매방지법을 시행하고난 뒤 한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프리 섹스는 오케이, 성매매는 노”라는 말을 했다. 장관의 다소 파격적인 이 발언은 기실 성매매에 대한 여성부의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구호였다. 개인의 사랑과 섹스에 대해서는 정부 권력이 간섭할 까닭과 권리가 없지만, 여성의 성에 대한 폭력에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티저광고 배포 제작물에 적힌 구호를 만들면서 여성가족부는 균형감각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한 여인과의 사랑’과 ‘배신 행위’를 강조하면서 성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아내에게 올인하자’는 구호는 동성애 가족이나 동거 가족, 한부모 가족 등 다양한 가족을 부정하는 관점일 뿐만 아니라 이성애적 사랑과 결혼만을 ‘정상’으로 인정하는 데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 여성가족부 ‘화이트 타이’ 티저광고의 다양한 퍼포먼스.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바뀌면서 나타난 우려스런 변화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바뀌고 건강가정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정부는 끊임없이 혼인과 혈연으로 아빠, 엄마, 자식이 된 ‘정상 가족’에 대한 관념을 유포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성가족부와 달리 일부 여성·동성애단체는 동거가족, 동성애 가족, 그룹홈 등 다양한 공동체까지 가족정책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해오고 있다. 혼인과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만 ‘정상’으로 인정하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른 형태의 가족에게 박탈감과 차별을 강조해 상처와 불평등을 불러일으켜왔기 때문이다.

이번 ‘작은’ 사건을 기회로 삼아 여성가족부는 성보수적인 관점에서 사랑과 성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본연의 임무인 차별과 폭력의 문제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떨까. 또한 젠더의 관점에서 사랑과 성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합의를 통해 가족정책과 성폭력를 담당하는 주무 부처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중의 지지를 높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사랑과 성은 가족의 기본 구성조건이고 억압과 차별을 낳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기에 정책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 안에서 이에 대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새로운 것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언제나 권력을 쥔 이가 일방적인 시각으로 소수의 대상을 ‘본의 아니게’ 억압하고 그 억압을 ‘실수’로 치부하면서 다시 합리화할 때 발생한다. 이래저래 이번 티저 광고는 신선함 이면에 다양한 논란 거리를 남긴 셈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기사등록 : 2005-09-02 오전 10:27:22기사수정 : 2005-09-02 오전 11: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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