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영혼결혼식이라도 신랑각시 예쁘네!"

 

 

영혼결혼식이라도 신랑각시 예쁘네!"
북한산 국사당에서 열린 영혼결혼식
텍스트만보기   한성희(maldoror11) 기자   
▲ 영혼 결혼식을 위해 서낭문을 여는 굿을 하는 이정희 만신. 왼편에 있는 강지애(28) 만신은 내림굿을 받은지 4년 됐고 올해 2월 결혼한 새색시다.
ⓒ 한성희
"이 홍씨 총각 급했구만. 빨리 결혼식 올려 달라 성화네!"

이정희(48·서대문구 홍제동) 만신은 짓궂게 웃었다. 북한산자락에 있는 굿당 국사당에서 지난 11월 22일 '영혼결혼식'을 올려주는 굿판이 벌어졌다. 19살에 자살했다는 '홍씨 총각'과 18살에 죽었다는 '영심이 언니'가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굿을 하는 도중, 이정희 만신의 이 말에 "그럼 빨리 올려줘야지.오늘 결혼식 못할까봐 걱정인가부지"하고 말을 받는 이영희(52·마포구 아현동) 만신의 얼굴에도 장난기가 돌았다.

▲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굿당에 영가를 위해 신랑신부 역할을 하는 인형과 신방을 꾸밀 이부자리, 예단이 놓였다.
ⓒ 한성희
모든 굿이 그렇듯이 이 굿도 서낭을 여는 산거리로 시작한다. 황해도 굿을 하는 이정희 만신은 꽃갓을 쓰고 경문을 외우며 부정을 씻고 신과 조상을 맞아들이는 의식을 진행했다. 도당문, 칠성문, 서낭문 등이 열려야 혼인문이 열리기 때문이란다.

오전 11시 30분부터 시작한 영혼결혼식의 굿 순서는 서낭문 열기, 영혼결혼식, 뒤풀이 굿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정희 만신의 말에 따르면 결혼식을 보러온 조상신들이 홍씨 총각 어머니 유씨(73·서울 성북구)와 사설이 길어지자 다급한 홍씨 총각이 '빨리 결혼식 올려달라' 했다는 것.

옛말에 남녀가 성인이 되면 만나서 일가를 이루는 결혼을 인륜지대사라 했다. 결혼이란 인간에게 중대한 일 중 하나기에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에게는 원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처녀로 죽으면 처녀귀신, 총각으로 죽으면 몽달귀신이 된다고 한다.

▲ 이영희 만신이 인형을 안고 신랑신부 영가를 불러들이고 있다.
ⓒ 한성희
영혼결혼식은, 미혼남녀로 죽으면 한을 품은 채 구천을 떠돈다 하여 가족이 수소문해서 주선하여 치러주고 영가를 달랬던 우리민족 고유의 영혼관에서 비롯된 의식이다. 요즘도 심심찮게 영혼결혼식을 올렸다는 뉴스도 나오고, 망자의 한을 풀어준다는 영혼결혼식을 전문으로 하는 법사도 있다.

인형이 대신하는 신랑 각시

커다란 신랑각시 인형 한 쌍이 제물이 차려진 굿당 오른쪽에 세워져 있었다. 홍씨 총각과 '영심이언니'를 대신하는 인형이다.

"그래도 요즘은 인형이 나와서 참 편해. 예전에는 짚으로 만들었다우."
"그러게. 그거 짚으로 일일이 팔다리 만드느라 힘들었지."

무당이 된 지 10년 됐다는 이정희 만신과 13년 경력의 이영희 만신이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주고받는 말이다. 이 두 만신은 물론 많은 영혼결혼식을 치렀다. 보통 망자끼리 올리지만 드물게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결혼식을 하기도 한다. 죽은 사람과 결혼식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들이 있단다.

"귀신도 신랑감 신붓감이 맘에 안 들면 아무리 결혼식 해줘야 소용없어요. 귀신들도 자기들끼리 맘에 들어야 한다니까요."

'귀신'이라고 거침없이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이정희 만신은 어제 소주 9병을 먹고 오늘 굿을 한다고 해서 내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홍씨 총각 누나가 재수굿을 하는데 갑자기 홍씨 총각 귀신이 들어온 거야. 어머니가 재가해서 낳은 이복동생이 죽었다는 것만 알았지 살아 만난 적이 없기에 누나는 홍씨 총각을 잊어버리고 살았지. 그런데 홍씨 총각이 누나에게 나타나 장가보내 달라고 했다는 거야. 그것도 우리 집(이정희 만신 법당)에 처녀가 있다면서."

▲ 꽃갓과 부채, 방울을 들고 서낭문을 여는 굿거리 중인 이정희 만신.
ⓒ 한성희
2년 전에 '영심'이란 26세 처녀가 굿을 했단다. 그때 갑자기 죽은 언니가 나타나서 하소연하기에 이정희 만신이 달래어 자신의 법당에 앉혔다. 그러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홍씨 총각이 자신의 집에 처녀가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정희 만신은 영심이 언니의 존재를 잊었기에 자신의 집에는 처녀가 없다면서 속으로 '어디 가서 처녀 귀신을 구해 와야 하나'하고 걱정했단다.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두 영가가 결혼식을 올리는데 둘 다 마음에 들어 했단다. 굿을 시작하기 전에 만신들은 '총각이 키가 작고 예쁘장하게 생겼다'는 말을 했다. 오래 전에 죽은 아들의 결혼식을 보러온 어머니 유씨가 내민 누렇게 변한 주민등록증에는 홍00라는 이름과 주소, 그리고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의 흑백사진이 붙어있었다. 지금까지 주민등록증을 간직한 유씨는 가슴에 죽은 아들을 묻었으리라.

"귀신은 나이 안 먹어요. 우리 집안 내 조카가 13살에 죽었는데 너무 어려서 그런지 장가보내달라고 안 하더라구. 해도 큰 일이지. 13살 먹은 신랑의 색싯감을 어디 가서 구해와?"
"그러게 말야. 장가보내 달래도 골 아프지."

두 만신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눈에 보이는 인간과 영의 세계를 넘나드는 대화가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이 영혼결혼식은 홍씨 총각 누나 이씨(48)가 올려주는 것이고 신랑집에서는 누나와 어머니가 참석했지만 신부집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친척도 없는 영심이라는 처녀는 형편이 어려워서 언니결혼식 굿 비용을 보태지도 못했는데 '미안해서 못 오겠다' 하여 괜찮다 했단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굿당에 앉은 누나의 표정은 굳어있었고, 어머니 유씨의 얼굴도 어두웠다. 유씨는 굿이 진행되는 도중, 주름진 얼굴에 흐른 눈물을 가끔 훔쳐냈다. 아들의 영혼결혼식이라도 19세 나이로 죽은 아들 생각에 기쁘기보다는 아픔이 더 큰 듯싶다.

▲ 청실홍실, 기러기, 국수와 예물이 놓인 초례청.
ⓒ 한성희
예물도 신랑신부 맘에 들어야

오후 2시를 훌쩍 넘은 시각, 홍씨 총각의 재촉(?)으로 초례청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한지를 깐 상 위에 소나무를 꽂은 소주병 둘, 기러기, 밤, 대추, 국수 두 그릇이 놓였다. 청실홍실을 나무 사이에 걸치고, 신랑 신부 자리 앞에 금박 입힌 시계와, 목걸이, 팔찌 등 결혼예물을 올려놨다. 산 사람 결혼식과 다를 바가 없다.

"이거 사러 갈 때 자기 맘에 안 들면 사지 말라 해요."

▲ "서방님 제가 입혀드릴께요." "아, 빨리 입혀!" 결혼식장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 한성희
상을 다 차린 후, 신랑(이영희)과 신부(이정희)는 신부활옷과 두루마기를 입기 시작했다. 보통 영혼결혼식에는 만신이 결혼예복을 입지 않고 인형을 안고 진행하지만 이정희 만신은 반드시 (예복을) 입어준다고 말했다.

"내가 서방님 옷 입혀 줄게."
"옷 단추 너무 채우지 마. 이따가 신방에서 벗을 때 힘들어!"

두 만신은 여전히 웃으며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는다. 영혼결혼식은 점점 유쾌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옷을 다 입고 어머니에게 미리 신혼여행비 2만원을 받아 조끼주머니에 단단히 챙긴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초례청에 인형을 안고 서서 절을 하면서 결혼식은 시작됐다.

▲ 신랑 입에 술잔을 대주고 있다.
ⓒ 한성희
절을 마치고 신랑 인형 입에 술잔을 대주고 나자 잔을 널름 받아든 신랑, 한 입에 털어 넣는다.

"좋다! 울 색시 참 예뻐요! 나 장가가니 참 좋아."

결혼식장은 와그르르 웃음이 일었다. 국수를 건져 신랑 신부 입에 대준 뒤에 예물교환이 있었다. 신랑신부에게 목걸이와 귀걸이, 반지, 시계를 걸어준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인형이 예물을 걸친 모습이지만 예뻐 보인다.

▲ 신부에게 반지와 시계, 목걸이 등 예물을 걸어준다. 이 예물들은 굿에 필요한 물품을 파는 곳에서 구입하며 도금한 것이다.
ⓒ 한성희
부부가 된 신랑각시는 어머니께 절을 올리고 누나와는 맞절을 했다. 결혼식은 30여 분 만에 끝났다. 결혼식을 했으니 이제 신방을 차릴 차례다.

신방 엿보기

신방으로 미리 정해놨던 굿당 하나가 다른 팀이 들어온다는 바람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다급하게 신방을 구하던 차에 주방 뒷방이 비어 있다고 해서 급하게 그리로 정한다. 그 동안에도 신랑은 '빨리 구하라' 성화를 부려 모인 사람들에게 한바탕 웃음을 선사했다.

▲ 결혼식을 마치고 어머니 유씨(73)에게 큰 절을 올리는 신랑신부.
ⓒ 한성희
신랑 신부와 새 이불과 예단, 속옷 등을 챙겨 이정희, 이영희, 강지애(28·서대문구 북아현2동), 세 만신이 가슴에 안고 신방으로 향했다. 요를 펴고 신랑신부를 눕힌 후 양옆에 속옷과 예단 한복을 차곡차곡 접어놓는다. 신혼부부를 마주 보게 다시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신방준비는 끝났다. 신방은 절대 아무도 들어오거나 엿보면 안 된단다.

신방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단단히 단속한 후 굿당에 돌아온 시간이 3시. 그제야 늦은 점심을 먹었다. 결혼식이니 물론 국수가 나온다. 국수를 먹을 때서야 내내 굳어 있던 어머니와 누나의 얼굴은 펴지기 시작했고 간간이 웃음도 보여준다.

▲ 신방이 없어서 주방 뒤편에 있는 이곳을 급히 구했다. 신랑신부 인형과 이부자리, 예단, 속옷을 안고 신방을 꾸미러 들어가고 있다.
ⓒ 한성희
"경사 맞으셨으니 축하드립니다. 좋은 구경 잘하고 갑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내 인사에 와줘서 고맙다고 답례하는 그들의 얼굴은 밝았다. 국사당을 나오면서 오늘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가 잘 살기를 기원해본다. 결혼식은 어쨌든 경사가 아닌가.
지난 11월 22일 국사당에서 5시간 동안 '영혼결혼식'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취재를 허락해주신 이정희 만신과 이영희·강지애·염정자 만신에게 감사 드립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