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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대선출마전 차기주자로 김근태를 생각했다?

 

 

노대통령, 대선출마전 차기주자로 김근태를 생각했다?
[전 참모 비망록] 탄핵 당시 김근태 장관 절규엔 ‘코끝이 찡’
입력 :2005-12-13 17:10   이기호 (actsky@dailyseop.com)기자
“TV만 보고 있으려니 답답해요. 촛불시위를 한다는데 혹시 보이나 싶어서 뒤뜰에 올라가 봤는데 잘 안 보여요.” “난 촛불시위하는 사람들 보면 한숨이 팍팍 나옵니다. 야, 저 사람들 나중에 용산기지 이전반대시위도 할 사람들인데 저걸 어떻게 말리나.”

참여정부 출범 이래 2년간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이진 전 행정관의 책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도서출판 개마고원, 이하 비망록)’이 독자들의 높은 관심 속에서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초판으로 2000부를 찍은 ‘비망록’은 지난 12일 모습을 드러낸 동시에 교보·영풍·을지서적 등에서 품절됐으며 출판사인 개마고원측은 “재판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장 반응에 대해 출판사 관계자는 “최근 분위기를 고려할 때 조금 움직이는 편”이라며 “여론에 회자되다보니 아무래도 초반에 많이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책과 관련된 내용을 제외한 다른 언급은 부적절하다”며 신중한 모습을 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2년 대선 직전부터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기각된 지난해 5월까지 노 대통령의 행적과 주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노무현, 왜 그러는 걸까’라는 다소 도전적인 부제로 더욱 관심을 모은다. 이중 몇 가지 사건을 추려본다.

정치지향 같은 김근태, 약한 대중인기가 걸림돌

2002년 대통령선거를 2년 앞둔 시점에서 노 대통령이 생각한 ‘포스트3김’은 자신이 아닌 김근태 현 보건복지부장관이었다. 이 책은 19페이지와 20페이지에 걸쳐 대선이 막바지로 치닫는 시점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처음 노 후보는 ‘포스트 3김 시대’의 대안으로 자신이 아닌, 김근태를 생각하고 있었다. 민주당 내에서 ‘이인제 대세론’이 지배적이었지만 그와는 철학과 지향하는 가치가 달랐다. 김근태는 정치적 지향점이 같으나 대중적 지지가 높지 않다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노 후보는 6개월의 고심 끝에 당내 경선출마를 결심하고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돈과 인적자원을 채우기 시작했다. 경선후보등록 하루 전까지 공탁금 2억50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결국 경선 전까지 당내 지지율 5%에도 미치지 못했던 노 후보는 새로운 제도를 통해 ‘노풍(盧風)’을 일으키는데 성공한다.

노 대통령이 김 장관을 ‘포스트 3김’의 대안으로 생각했던 당시의 정황을 본보와의 통화를 통해 집요하게 물었지만 이 전 행정관은 “부적절하다”며 끝내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김 장관은 책의 막판인 376페이지에 다시 등장한다. 탄핵 당시 “국민 여러분, 저희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외치던 김 장관의 절규를 볼 때마다 노 대통령의 코끝도 찡해졌다는 대목이다.

촛불시위 보며 “나중에 반대 시위할 사람들”…한숨 속에 담긴 고마움

고건 전 국무총리의 대통령권한대행체제가 이어지던 지난해 봄, 노 대통령은 관저에서 책과 자연에 파묻혔다. 그간 일어났던 사회현상 하나하나에 대해 개념을 정리하던 생활 속에서도 노 대통령은 밤이면 관저 뒤뜰 언덕에 올라 광화문 쪽을 바라봤다. 촛불의 끝자락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혹시 보이나 싶어 뒤뜰에 올라가 봤는데 잘 안 보이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참모들과의 담소에서 “나중에 용산기지 이전반대시위도 할 사람들인데 저걸 어떻게 말리냐”고 말하기도 했다. 용산기지 이전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이라 시위대에 대한 염려가 있었지만 “표정 속엔 절반의 걱정 못지않은 절반의 고마움이 섞여 있는 듯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시 시청률 50%를 넘나들며 전 국민의 관심을 모은 드라마 ‘대장금’도 거론됐다. 저자는 “국민드라마 대장금의 위력은 선이 결국 악을 이기는데 있었다”며 “또 선이 악을 이기고 난 뒤에도 복수하지 않고 용서하는데 있었다”고 말했다. 국가적 혼란에 지친 국민들이 대장금의 이런 메시지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것이다.

이 시기, 탄핵에 대한 위로마저 “내 생각의 자유를 구속한다”며 “혼자 생각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던 노 대통령은 주로 역사서적들을 탐독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도올 김용옥 선생을 만나 조광조의 개혁정치를 논했고, 수석보좌관들과는 유럽혁명사를 이야기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총선을 앞두고 비스마르크의 예를 들어 열린우리당에 ‘승자의 절제’를 강조하기도 했다.

“DJ는 철학이 있는 유일한 지도자”

2002년 대선기간 중 참모들 사이에 당시 한나라당으로부터 ‘부패정권’으로 몰린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이 제기됐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단번에 “내가 김대중 대통령만큼만 정치를 할 수 있으면 성공한 것”이라며 차별화론을 일축했다. 그는 “철학이 있는 유일한 지도자”라며 김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취임 후 노 대통령 내외와 김 전 대통령 내외가 첫 만찬을 가진 자리에서는 남북관계와 한미동맹 관련된 이야기가 오갔다. 대북송금에 관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알지 못했다고 밝힌 김 전 대통령은 “대출과정에서 불법을 지시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처벌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저도 이 문제의 핵심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공감을 표했다.

노 대통령은 “이 일을 실무적으로 집행했던 사람들이 좀 당당하게 초장부터 밀고 나왔더라면, 하는 생각이 있다”며 “앞으로도 그 문제에 관해서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고 소신껏 처리했다는 점을 임동원 특보나 박지원 실장이 당당하게 밀고 나와 줬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책은 전한다. 물론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도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현대사의 상징이었던 김 전 대통령도 당시 대북송금수사의 한 가운데 휩쓸려 있었고 노 대통령은 이날 저녁 “어떻게 하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건가”하는 문제로 생각에 잠긴다. 인사편중과 불안한 개혁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던 시점에서 그는 “지금 내가 국민의 정부가 걸었던 길을 똑같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썰렁한 노 대통령의 꿋꿋한 ‘농담릴레이’

이 책에는 노 대통령이 꾸준히 시도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실패한 농담’이 간간히 ‘성공한 농담’들과 함께 구석구석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노 대통령은 회의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미리 준비까지 해와 농담을 하곤 했지만 성공한 적이 거의 없었다”며 ‘썰렁한’ 노 대통령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1년 내내 티타임 10분을 제외하고는 3시간을 꼬박 채워 국무회의가 진행된 점이 미안했던 노 대통령은 “앞으로 국무회의가 3시간으로 모자라면 토요일에 하는 것으로…”라고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진담으로 받아들였는지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나는 여러분이 열렬하게 지지할 줄 알았다”며 “그럼 토요일은 고려해보자”고 유쾌하게 회의를 끝냈다.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등 전직대통령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시도한 농담도 썰렁했다. 청와대 본관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노 대통령은 “손님이 오시면 편안하게 잘 웃어야 한다”며 “그래서 얼굴 근육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손님을 기다리러 현관 밖으로 나가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 문희상 비서실장의 반응으로 ‘실패한 농담’을 하나 추가해야 했다.

성공한 농담으로는 한나라당의 ‘등신외교’ 공세가 이어지던 2003년 6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의 발언이 꼽힌다. 유인태 수석이 “망언 때문에 국회가 파행 중인데 어제 김문수 의원 집에 폭발물이 있다는 신고가 있어서 가봤는데 아니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대뜸 “저는 안 했습니다”라며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라고 말해 회의장에 폭소를 유발했다.

직설적 반대를 굽히지 않던 ‘꼬장꼬장한 군인’ 김희상 국방보좌관에게 “이미 결론을 내고 끝낸 이야기인데 왜 자꾸 재론하십니까”라고 역정을 내기도 했던 노 대통령은 조영택 국방부장관에게 할 말을 가로막던 김 보좌관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리자 “부시 대통령은 회의 중에 휴대폰을 켜놓는 사람은 잘라버린다지요”라는 협박으로 한바탕 웃음을 유도했다.

이외에도 지난 총선에서 당선된 문희상 의원을 헹가래치는 모습을 보며 “어휴, 저 무거운 사람을 들어도 되느냐”고 말한 노 대통령은 이어진 광고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은 이효리의 현란한 춤을 보고 “저 사람은 누구냐”고 물어 왁자한 웃음이 터지게 했다. 전 국민이 다 아는 톱가수를 대통령만 몰라본 셈이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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