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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구를 다시 알려주랴?

음 얼추 정리... 지금 니들은 난닝구랑 뭐가 다른데?

 

 

 

난닝구를 다시 알려주랴?
     등록 :   조회 : 2555  점수 : 590  날짜 : 2005년5월9일 17시50분 

열린우리당에서 자주 논란이 되고 사용되는 난닝구라는 말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어서 그것의 유래와 의미를 정리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상당한 비하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라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간단히 정리를 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정치적 의미의 난닝구에 대한 유래


2003년 하반기경으로 기억됩니다만, 민주당은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로 민주당의 리모델링이냐 해체 후 신당의 창당이냐를 놓고 세 겨루기는 물론이고 극심한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에 비로소 태동된 갈등은 아니지만 극심하게 외부로 표출된 시기가 그때였던 것입니다.


2002년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국민경선에서 단기필마로 출마한 노무현이 광주경선에서 1위를 하면서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경선주자들이 줄줄이 사퇴를 하면서 경선의 판을 깨고자 하였습니다.


바로 노무현을 후보로 대선을 치르고 싶지 않다는 심정을 표출한 것이지요. 정동영이 끝까지 완주하면서 경선지킴이를 자처한 것이 그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되어있는 것을 보면, 당시에 얼마나 반노무현정서가 민주당을 지배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김근태도 당시에 경선사퇴를 한 것은 반성해야할 일입니다. 아마도 민주당의 갈등이 태동되던 시기로 생각됩니다.


경선에서 노무현이 후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승복하고 후보를 중심으로 대선을 위한 대오를 형성하자는 사람은 불과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단협의 위력과 세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후보의 캠프와 후단협 및 당권파들의 반칙이 충돌하고 부딪치면서 대선준비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고, 후보의 지지율은 지속적인 하락을 하여 집권이 불가능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후단협의 활약이 상당히 위력을 발휘한 셈입니다. 당의 재정권도 후보 측에서 넘겨받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던 시기입니다.


결국은 후보단일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면돌파로 명분을 얻었기에 이길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단일화 여론조사를 간신히 승리하였습니다.


그러고도 후단협은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탈당해서 한나라당으로 자민련으로 가거나 남아서 계속 후보를 흔들거나 겉으로는 승복을 하는 척 하면서 뒤통수를 치는 방식으로 당에 해악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후보에게 굴복하는 의원들도 늘어나고 있었고 엉성하지만 대선을 치루기 위한 대오도 형성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12.19의 감격적인 승리로 모두 정리가 되는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내부의 심각한 갈등들은 용암처럼 끓고 있었습니다. 인수위가 꾸려지고 당선자가 되었지만 당내의 분열은 좀처럼 해소되지를 못하였습니다. 대선을 이기고도 당이 분열한 예는 좀처럼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지만, 구당파들에게 노무현은 여전히 정치권 변방의 후배취급을 받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당을 자신들이 쥐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에 대통령이 동의해주기를 바란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쯤 조순형이 당의 발전적인 해체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천신정과 추미애 등이 그것을 지지하였습니다. 그러나,구당파들의 기득권수호 의지는 강력하였습니다. 거기에 정통야당의 계보를 잇는다는 명분을 대면서 상당히 강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조각과 취임 등을 거치면서 해체론을 주장하던 사람들도 일부가 이탈하고 추미애도 오히려 어정쩡한 포지션을 취한 것입니다. 아마도 입각이 좌절된 반감이 작용하였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천신정과 조순형을 중심으로 개혁신당에 대한 추진의지가 비춰지고 정대철이 대표가 되어 나름대로 그들에게 힘이 실리는듯 하지만, 그들 구당파의 저항은 갈수록 강해지기만 합니다. 오히려 추미애에 이어서 조순형까지 그들에게 투항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조순형은 신당의 추진이 김원기를 중심에 세우고 시작하려는 것에서 반감이 생긴 것으로 추측이 가능할 것입니다.


전당대회를 통한 민주당의 발전적인 해체와 신당의 창당을 당무회의에 상정하려고 하다가 여러 번 좌절되고 다시 추진을 하는 과정에서, 당무회의장에 이미경 의원의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머리채 사건도 있었고 난닝구 입은 구당파 측 당원의 당무회의 깽판도 등장을 합니다. 상정과 논의 자체를 못하게 막는 물리적인 행위가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과정에서 난닝구 등의 활약으로 결국은 해체 및 신당창당의 안건은 당무회의에서 표결을 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활약한 난닝구가 바로 탈당 후 신당창당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후 정동영이 앞장서서 탈당을 하고 몇 명이 후에 합류하고 하면서 열린우리당의 창당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물론 개혁당세력과 시민사회의 신당추진세력과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독수리 오형제 등이 함께하는 신당이 오늘의 열린우리당이 된 것입니다.


당시의 정동영등에 의한 탈당은 호남의 철옹성을 버리고 전국정당을 지향한다는 명분과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을 만든다는 명분도 좋았지만 지지기반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상당부분 포기하는 결단이라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할만한 일입니다.


그렇게 난닝구라는 단어는 구당파에 의하여 동원되면서 정치에 빈번히 회자되는 전설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민주당의 신당추진을 위한 당무회의를 완력으로 저지한 사람 중에 난닝구 차림으로 멱살잡이를 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탄생한 용어입니다.


▲ 난닝구의 추억(?) ⓒ 엠파스 검색


2. 난닝구의 의미.


난닝구라는 단어를 언어적 측면에서 먼저 짚고 넘어갑니다. 아마도 RUNNING이라는 영단어를 일본인들이 잘못 발언하면서 그것이 널리 전파된 것으로 보입니다. 상체에 걸치는 under wear를 일컫는 말이지요. 언더웨어만을 걸치고 뛰는 모습에서 유래되어 런닝이라고 부르고 그것이 일본식 발음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적인 의미의 난닝구는 어떤 의미인지 바로 이 부분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거나 혼동을 일으키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부분이니 하나씩 의미를 나열해 보는 방식이 좋을 듯합니다.


첫째, 특정 기득권 정치인들에게 동원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정치인의 지지자이면서 유력 정치인이 원하면 몸을 던져서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하지 아니하고 그저 정치인에게 휘둘리는 동원패거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당파에 의하여 감성적으로 동원된 행동파 당원이라는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폭력이나 완력으로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상적인 당무회의를 완력으로 무력화시킨 사람들을 표현하면서 그중 난닝구 차림의 구당파 측 사람이 상징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머리채 사건보다 아마도 그 선정성이 뛰어나서 주로 사용된다고 보여집니다.


세째, 지역적인 이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당시의 민주당이 호남을 대변하는 정치집단으로 이미지가 고착화된 탓에, 구당파가 당연히 호남의 지역주의를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으로 연결지으려는 의도를 가졌고 그들의 뜻에 동조행동을 하면서 널리 알려진 것이라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신당의 추진에는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추진한다는 명분도 포함되어 있어서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네째, 극단적 패거리 주의를 말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그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동원되었기 때문에 일종의 강력한 연대의식이 깔린 행위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패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합리성이 극도로 떨어진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이성과 순리에 의존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반발을 보이는 행위로 합리성과는 엄청난 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당무회의가 토론을 하고 나름의 과정을 거쳐서 의결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고 정상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물리력으로 저지하는 것은 불합리의 극치를 보여주는 행위였기 때문에 불합리성을 그들의 특징으로 들 수 있습니다.


여섯째, 국물에 대한 기대를 가지는 특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무회의를 완력으로 무산시킨 사람들이 구당파에 의하여 동원이 되는 과정에서 순수한 자신의 반발심리와 감성적인 흥분 때문에 그렇게 과격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과거의 동원당원들은 모두가 뭔가를 기대하고 정치인들을 지원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돈을 줄 수도 있고, 정치인이 이권을 줄 수도 있고, 일자리를 청탁해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이 호가호위하는 것을 묵인해줄 수도 있고, 그런 국물과 관련이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상을 요약하면, 동원, 폭력, 지역집착, 패거리주의, 불합리성, 국물기대 등으로 간추려집니다. 정치가 이루어지는 무대의 주변에서 이런 특징들을 모두 가지거나 상당부분 가지고 있는 당원, 지지자, 선거운동원, 이익집단 등을 난닝구라는 비하의 의미를 담아서 칭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과거 우리는 민주화의 기나긴 여정을 거치면서, 호남인들의 소외와 핍박과 고통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표하면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진전시켜 왔습니다. 이제는 민주주의가 형식적인 측면에서 비교적 완성되어 갑니다.


호남민중이 이 땅의 민주주의에 기여한 그 소중한 기록들을 과소평가하거나 그분들을 구태라고 함부로 폄훼하여서는 안됩니다. 그분들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발휘한 옳은 선택들이 이 땅의 오늘이 있게 한 요소입니다. 그것을 높이 평가하고 인정하는 바탕 위에 잘못된 부분만을 이성적으로 비판하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회구성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몰이해와 감성적 충돌 등은 아직도 질적인 민주주의로 가는 험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이 있는 민주주의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들의 이성적인 판단력을 증진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무조건적인 비판도, 무조건적인 감싸기도 모두가 지양되어야할 비이성이라는 점에서 비판은 하되 대상도 행위도 명확히 구분하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난닝구라고 비판하는 그분들도 과거 독재시절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며, 한나라당의 지지자들에 비하여 정치적으로 훨씬 소중한 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적으로 난닝구적 특성을 지닌 그룹을 비판하는 것도 몰이성의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더 많은 대중성과 우중의 이성을 발전시키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비하의 뜻을 담은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도 부적절한 경우가 없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비토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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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 비토세력  IP :211.47.228.x    작성일 : 2005년5월9일 17시53분    
유종필이 지껄인 지역우월주의란 무엇인가?이글을 쓴 비토세력은 호남산이며 김대중의 수십년 지지자이고 오로지 호남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여를 최고로 평가하는 사람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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