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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화천 인제 홍천을 다녀오다

백구의 압박

 

독수리와 두루미의 낙원을 다녀오다
철원 화천 인제 홍천을 다녀오다 ③
텍스트만보기   문일식(mis71) 기자   
영하 18도까지 떨어진 지난 2월 4일, 5일에 떠난 철원ㆍ화천ㆍ인제ㆍ홍천 여행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철원여행은 나름대로 큰 기대를 가지고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지난해 파주에 갔다가 하늘에서 배회하고 있는 독수리를 보고 차를 세우고 나서 한참이나 올려다봤던 적이 있었습니다. 독수리란 녀석은 그야말로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새인데 그들을 그저 길거리 지나다가 볼 수 있었으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독수리가 철새란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겨울이 한창 무르익는 2월 초. 동장군이 엄습한 2월의 첫째 주였습니다. 겨울의 매서운 맛을 보기 위해 더불어서 독수리와 두루미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새들의 일상을 보기 위해 철원을 택했습니다. 더욱더 가까이 볼 수 있는 탐조투어가 있다고 하니 기대에 찼습니다.

▲ 철원에 도착하자마자 축하비행을 하고 있는 쇠기러기 떼
ⓒ 문일식
43번 국도를 타고 철원에 도착한 직후 작은 소리가 연이어서 들려 뒤를 돌아보니 한 무리의 쇠기러기들이 'V'를 그리며 머리 위를 지나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늦었음에 한탄을 하고 있을 즈음 또다시 작은 소리가 들리더니 이번에는 수백 마리나 되는 새들이 하늘을 감싸고 묵직한 날개짓을 그리며 머리 위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렌즈를 최대한 당겨서 연방 눌러댔습니다.

▲ 마치 비행기 편대와 같은 모습입니다.
ⓒ 문일식
가창오리의 군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맑은 창공을 고즈넉이 날아가는 쇠기러기의 군무는 철원 땅에 막 도착한 저에게 마치 축하 비행을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쇠기러기는 몸길이 75cm 정도의 겨울철새로 원래의 명칭은 '흰이마 기러기'라고 합니다.

철새 탐조투어는 버스를 타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철의삼각 전적관에서 신고를 해야 합니다. 철의삼각 전적관은 고석정 국민관광지내에 있고, 신고절차는 그리 까다롭지 않았습니다. 제2땅굴을 경유하는 안보관광의 경우에는 신분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합니다. 조그만 가방에 카드와 현금을 챙겨오는 바람에 주민등록증이고, 운전면허증이고 깜박 잊고 안 가져 왔는데, 다행히 철새탐조투어는 신분증이 필요없다는 말에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

축제 때 이외에는 하루에 3차례 민통선내 관광을 할 수 있습니다. 겨울에는 11시에 철새탐조투어를 하고, 오전 7시와 오후 2시에는 제2땅굴을 경유하는 안보관광을 합니다. 버스에 오르니 10명 남짓한 사람만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고, 철원 땅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가이드의 인사와 함께 철새탐조투어는 시작됐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서 새가 많이 나왔을지 모르겠다는데 그 소리에 괜한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 토교저수지 둑방에 삼삼오오 떼지어 모여있는 독수리떼
ⓒ 문일식
먼저 독수리를 보기 위해 토교저수지로 향했습니다. 토교저수지는 1976년에 인공으로 축조된 저수지로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고, 넓이만 100만평이 넘는다고 합니다. 민통선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검문소를 통과했고, 가까운 곳에 양지마을을 지나자 바로 토교저수지에 이르렀습니다. 독수리를 탐조하기 위해 낮은 언덕 위에 스코프 등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독수리는 천연기념물 243호로 지정되어 있는 국제보호조류입니다. 철원에 서식하는 독수리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시베리아로부터 날라온 독수리들로 그 거리만도 2000km라 하는데, 이번 추위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더구나 독수리의 습성이 매처럼 산고기를 먹지 않고, 죽은 고기만 먹기 때문에 이곳에서 살아가기는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 독수리떼 보러왔가가 먼저보고 만 까마귀떼의 비상.
ⓒ 문일식
스코프가 설치된 언덕은 그리 높지 않아 토교저수지 풍광은 볼 수 없었고, 저수지의 둑에 몰려있는 독수리들과 독수리들에게 먹이기 위해 던져놓은 소들 주위로 새까맣게 앉아있는 까마귀들만 보였습니다. 그야말로 갈색 반, 검은색 반이었습니다. 갑작스런 사람들의 방문 때문인지 생각지도 않았던 까마귀들이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올랐습니다.

▲ 까마귀 잔치만 멀뚱멀뚱 쳐다보는 독수리떼.
ⓒ 문일식
독수리의 움직임은 거의 없었습니다. 독수리들을 살리기 위해 들판에 환경단체에서 던져놓은 가축들은 까마귀들만이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독수리의 모습은 매섭고, 왕성한 활동과 카리스마가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 편견 또한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목숨 부지하기도 어려운 힘겨운 모습들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 까마귀의 차지가 되버린 젖소의 갈비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
ⓒ 문일식
한 무리의 독수리 떼들이 둑에서 들판으로 내려와 짓궂은 까마귀들과 한판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더니 한곳이 무리지어 있을 뿐 들판에 널린 고기에는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널부러진 고기들은 까마귀의 차지가 되고, 독수리의 희생양이 될 젖소의 앙상한 갈비뼈만 을씨년스럽게 들판에 뒹굴었습니다.

▲ 머리위 상공을 스치며 날아가는 독수리의 위엄어린 모습.
ⓒ 문일식
버스를 타고 내려오던 중 마침 머리 위를 지나는 독수리를 발견하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던 독수리와는 새삼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날개를 펴면 그 크기가 3m 정도나 된다고 하는데, 낮게 날고 있는 독수리의 모습에서 그 웅장하고, 기운찬 모습이 느껴지고도 남았습니다.

▲ 들판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재두루미 가족.
ⓒ 문일식
다시 버스를 타고 동송 저수지와 아이스크림 고지 쪽으로 두루미 탐조를 나섰습니다. 역시 날씨가 추운 탓에 둥지를 틀고 있는 DMZ 쪽에서 많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간간이 가이드 분이 알려주는 지역에 두루미 한 가족이 들판위에서 먹이를 먹는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도로와 가까운 곳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재두루미 가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두루미는 우리가 흔히 학이라고 부릅니다. 뚜름 뚜름 운다고 하여 뚜름이라는 의성어에 접미사 '이'가 붙어 두루미가 되었다고 합니다. 두루미는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등과 함께 십장생중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갑 때 두루미 문양을 넣어 오래 사시라는 의미를 담기도 합니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청렴결백을 대표하는 색으로서 두루미의 색이 하얗기 때문에 청렴결백의 상징으로도 쓰였으며, 선비들은 학창의라고 하여 학의 모습과 닮은 옷을 지어 입기도 했습니다.

▲ 재두루미의 아름다운 비상.
ⓒ 문일식
우리나라에 오는 두루미는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대부분입니다.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절대 섞여서 살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철원지역에 섞여 살고 있어 연구대상이라고 합니다. 대체로 4마리가 한 가족을 이루는데, 이는 한 배에 두 개의 알을 낳기 때문입니다. 간혹 3마리나 5마리인 경우가 있는데 죽었거나 부모를 잃은 새끼를 거둔 경우라고 합니다. 더구나 한번 짝을 맺은 두루미는 평생토록 짝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니 요즘처럼 부모가 아이를 버리고, 쉽게 이혼하며, 굶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은 요즘 세태에 충분한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경계심을 늦추지 않더니 차량이 가까워짐을 눈치채고 먼 하늘로 비상하는 재두루미 가족.
ⓒ 문일식
아이스크림 고지를 지나자 멀지 않은 곳에 또 한 가족의 두루미를 보았습니다. 버스가 지나가자 경계를 늦추지 않더니 갑자기 하늘을 향해 비상을 했습니다. 네 마리 한가족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은 마치 신선과도 같았습니다. 여유로운 날개짓과 유연한게 뻗은 곡선미, 조급함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하늘을 나는 모습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아한 자태에 한참 넋이 빠져 있을 즈음 민통선 검문소에 이르렀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독수리와 두루미의 모습을 많이 보지는 못해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이제 이번 달이면 철새탐조도 끝나고, 아울러 겨울이 물러가면 두루미와 독수리들은 또다시 자신들의 고향을 향해 먼 길을 떠날 겁니다. 그들을 다시 보기 위해서는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겠지요. 자연의 법칙이기에 쉽게 보지 못하고, 아사 직전에서도 힘겹게 버티고 살고,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그들입니다. 해가 갈수록 개체가 줄어드는 혹독한 삶이지만 변함없이 내년에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철새탐조 팁!!

1. 고석정 국민관광단지내 철의삼각 전적관 2층에서 신고하고 버스를 통해 탐조투어를 할 수 있습니다. (대인/7,000원, 중고생/5,000원, 어린이/4,000원)
2. 고석정 국민관광단지 입장료는 대인 1,500원, 군인,학생/1,200원,어린이/800원)
3. 소요시간은 대략 2시간정도이며, 철의삼각지대 전망대와 월정리역을 들릅니다.
4. 안보관광은 오전 7와 오후 2시 2회이며, 11시는 탐조투어를 합니다. 안보관광은 제 2땅굴을 경유하며, 이를 위해 신고시에는 신분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5. 탐조투어에서는 탐조를 위한 망원경을 일부 지급합니다.
6. 독수리는 토교저수지 둑에서 고정탐조를 하고, 두루미는 버스투어를 하면서 주로 차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7. 탐조투어를 하면 가이드가 새 이야기 뿐 아니라 옛 철원이야기와 민통선내 안보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기 때문에 매우 유익합니다.
8. 철새탐조는 오는 2월 말까지만 운영합니다.
9. 탐조투어 이외에 노동당사,도피안사,고석정 등은 별도로 차량을 이용하여야 합니다.
10. 철원군 문화관광홈페이지(http://www.cwg.go.kr/cheo_tour/tourism/html/index.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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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터 뉴스에 송고했습니다.

임꺽정, 꺽지되어 한탄강에 숨다
철원 화천 인제 홍천을 다녀오다 ②
텍스트만보기   문일식(mis71) 기자   
영하 18도까지 떨어진 지난 2월 4,5일의 철원, 화천, 인제, 홍천 여행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고석정은 국민관광단지내에 있고, 민통선을 들어가기 전까지는 통행이 자유롭기 때문에 개인차량으로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탐조투어나 안보관광은 노동당사나 도피안사를 들르지 않기 때문에 여행사나 단체여행을 하는 동호회가 아니면 천상 개인차량으로 둘러보아야 합니다. 도피안사와 노동당사를 둘러보기 앞서 국민관광단지에 있는 여러 곳을 먼저 보기로 했습니다.

▲ 철의삼각 전적관내 6.25때 사용된 폐전투기
ⓒ 문일식
철의 삼각 전시관 야외전시장에는 지난 두루미 축제 때 만들어 놓은 소원나무가 서있고, 좌우로는 6.25때 사용되던 전차, 장갑차, 포 등의 무기와 항공기 4대가 놓여져 있습니다.

▲ 고석정입구에 세워진 민초의 힘이 느껴지는 임꺽정 동상
ⓒ 문일식
고석정으로 가는 길에는 왠일인지 의적 임꺽정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 철원은 임꺽정이 활동하던 근거지로 여겨지는 곳으로 그와 관련된 여러 전설들이 있습니다. 임꺽정이 숨었다던 고석정의 뻥 뚫린 구멍이나 관군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하는 석성, 그리고, 관군을 피해 달아날 때에는 꺽지로 변해 한탄강 깊은 물속에 숨었다고도 합니다.

이렇듯 임꺽정은 백성들을 위한 의적으로서 활약을 했기에 조선왕조실록에는 도적으로 기록한 반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전설에는 백성들의 우상이며, 변화무쌍한 재주를 발휘하는 전설적인 인물로서 남아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 고석정의 풍경
ⓒ 문일식
고석정은 철원 제일의 명승지로 정자와 주변 경관을 통틀어 말합니다. 가파른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순담계곡 쪽으로 흐르는 계곡수가 수려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얼어붙은 계곡 쪽으로는 접근하지 못하게 줄을 쳐 놓았는데, 아무런 제지없이 들어갈 수 있어서 추위가 풀려 얼음이 녹으면 자칫하다가 사고로 이어질 것 같았습니다.

▲ 고석정의 얼어붙은 빙벽과 순담계곡으로 가는 물길
ⓒ 문일식
구불구불 이어진 계곡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으니 작은 목소리도 계곡을 타고 울릴만큼 적막함이 느껴졌습니다. 여기저기 얼어붙어 하얀 치아를 드러내놓 듯이 빙벽이 자리잡고, 계곡의 수면 위는 서슬 퍼렇게 얼어붙어 있었고, 멀리서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만이 고요함을 깨치고 있었습니다.

신철원과 구철원은 한탄강을 사이에 두고 갈립니다. 신철원에서 구철원으로 가기위해서는 한탄강을 건너야하고, 여러 다리가 오가는 길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고석정으로 바로 가는 한탄대교와 이제는 남북분단의 상징물이 되어버린 승일교, 이 다리를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태봉대교가, 남쪽으로는 레프팅의 종착지이기도한 군탄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 한국의 나이아가라폭포인 직탕폭포의 전경
ⓒ 문일식
삼부연 폭포와 함께 유명세를 떨치는 직탕폭포는 태봉대교의 북단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직탕폭포는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로 불리는데, 역시 추운 날씨에 폭포 전체가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 강 전체가 폭포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유일의 폭포로 물이 떨이지는 높이는 약 3m정도이고, 폭은 무려 80여m에 이릅니다. 지금처럼 얼지않고 수량이 많은 장마직후의 모습이라면 나이아가라 폭포와는 비교가 되진 않지만 그 웅장함이 충분히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 직탕폭포의 한 음식점에서 사는 낯을 안가리는 백구
ⓒ 문일식
직탕폭포 인근에는 식당만 몇 군데 있는데, 이곳에서 기르는 개 한마리가 호기심에서인지 반가워서인지 계속 쫓아다녔습니다. 마치 신기한 듯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을 달라는 듯하기도 했는데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손사래 치며 비키라고 했는데, 계속 차문 옆에서 바라보는 바람에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탐조투어를 마치고 나왔던 길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도피안사에 이릅니다. 처음 이 사찰의 이름을 접하고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도피 안사... 이렇게 하다보니 마치 '도피처'라는 생각에 웃음이 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도피안사는 피안 즉, 진리를 깨달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인 경지이자 불교에서는 해탈을 의미하는 하기 때문에 해탈에 이르는 곳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 도피안사 삼층석탑과 철조 비로자나불이 안치된 대적광전
ⓒ 문일식
도피안사는 구산선문이 개창되던 무렵인 신라말기 865년에 도선국사와 철원을 근거지로 하는 호족세력이 규합하여 세워진 사찰입니다. '왕즉불' 왕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과 반대의 개념인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하면 누가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사상이 널리 퍼지던 때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철원의 안양사에 모시려던 불상이었는데 문득 없어져서 찾아보니 지금의 도피안사 자리에 자리하고 있었다하여 이곳에 안치하고 사찰을 지었다고 합니다.

▲ 늠름한 모습을 하고 있는 철조 비로자나불의 모습
ⓒ 문일식
재밌는 것은 대웅전에 안치된 철불이 꿈에 나타나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도피안사는 한국전쟁 때 불타 소실되었는데 한국전쟁 직후 당시 인근 사단장의 꿈에 '땅속에 묻혀있어 답답하다' 철불의 꿈을 꾸었고, 지역을 순시하던 중 현재의 도피안사 자리를 뒤지다가 꿈에 나타난 철불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도피안사는 재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도피안사에는 대웅전에 안치된 국보 63호 철조 비로자나불과 보물 223호인 3층 석탑이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은 문화재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로 만든 불상인데, 근래 금분을 입혀 마치 금동불처럼 보입니다.

옛 철원이었던 곳은 현재 논으로 변해있고, 다만 그 때의 흔적만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습니다. 민통선 내에 철원역이나 건물터는 설명으로만 들을 수 있지만, 민통선 들어가기 전에 만날 수 있는 노동당사나 철원 감리교회 터는 직접 가볼 수 있습니다.

▲ 수탈과 학살의 상징인 노동당사의 을씨년스런 모습
ⓒ 문일식
노동당사는 해방직후 건립되어 한국전쟁 때까지 사용된 철원군의 조선노동당사입니다. 해방직후 38선이 그어지면서 철원은 북한땅이 되었고, 1개 리에서 200가마의 쌀을 거둬 노동당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어진 당사는 고문과 학살의 장소로 사용되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총탄과 포탄을 맞아 현재의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냥 오래된 시멘트 건물일 수도 있지만,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벌어진 수탈과 학살로 얼룩진 곳이어서 느낌이 과히 좋지는 않았습니다. 노동당사와 100여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옛 철원제일감리교회 터가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막사로도 사용되었다고 하는 이 건물은 노동당사와는 달리 아무도 찾지 않아 쓸쓸함과 적막함이 여지없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 6.25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노동당사
ⓒ 문일식
동장군이 기세를 떨친 날씨까지 한몫한 철원땅의 여행은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느끼면서도 조국의 분단된 현실과 멀지 않은 과거의 잔상들을 느껴볼 수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워낙에 들러볼 곳이 많은 곳이어서 추운 날씨를 많이 접했던 철원여행은 그야말로 동장군과 제대로 맞짱을 뜬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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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떠나는 자의 몫 블로그(http://blog.empas.com/foreverhappy4u/)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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