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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이 전용차량 BMW로 바꾼 이유

노통이 차 바꾼데 관심있어서 붙이는게 아니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에 관한 약력이 잘 나와 있어서 붙인다. 대표적인 68혁명 세대 슈뢰더...

 

솔직히 노통 차껀도 그렇지

새로 차 바꾸면 이거 퇴임할 때 다 가져가냐? 다음 대통령이 타는거지... 다 나라 재산이다. 이런거 트집 잡는 인간들 할일 드럽게 없다는 생각이다.

 

 

노 대통령이 전용차량 BMW로 바꾼 이유
[取중眞담]
  김당(dangk) 기자
▲ 독일을 국빈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일행을 태운 방탄 의전차량이 베를린 시내의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전승기념탑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김당
게어하트 슈뢰더 독일연방 총리는 여러 모로 노무현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은 정치인이다.

슈뢰더 총리는 불우한 가정 형편으로 14살 때에 정규교육 중단하고 도자기 도매상의 견습점원으로 일했으며 17살 때부터 야간고교에 진학해 괴팅엔 대학 법학과를 졸업해 변호사 자격을 획득했다.

그는 야간학교 재학중인 19살(63년)에 사민당 입당해 정열적인 활동력과 탁월한 언변을 바탕으로 사민당 청년조직인 '젊은 사회주의자' 의장에 선출되고, 80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그러다가 86년 하원의원직을 사퇴하고 고향인 나더작센주 총리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인 슈뢰더는 돌출 행동을 자주하고 중앙 정가에 친구가 별로 없어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독일 총리는 벤츠를 탄다"는 51년간의 관례를 깨고 아우디를 선택한 슈뢰더 총리

슈뢰더가 자신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지적한 세 번의 이혼경력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의 사생활에 관대한 독일 국민들의 정서 덕분에 정치생명에는 영향이 별무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첫 번째 부인은 대학 시절에 만난 도서관 사서 에바 슈바흐로 결혼 3년만에 이혼했다. 슈뢰더는 그후 76년 변호사 생활 시작하면서 교사 출신 안네 티센마허와 재혼(71-83년)했다. 그후 하원의원이 된 뒤에는 자신의 정치적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골수 사민당원 힐트루드와 세 번째 결혼(84-97)을 했다. 그러나 또 다시 이혼하고, 97년에 지 기자 출신으로 취재차 비행기에서 만난 20세 연하의 도리스 쾨프와 네 번째 결혼을 했다.

네 번 결혼을 한 슈뢰더는 "독일 총리는 벤츠를 탄다"는 51년간의 관례를 깨고 자신의 전용차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아우디(Audi)를 선택했다. 그뒤로 독일에서는 이런 농담이 생겨났다.

"속도를 즐기는 사람은 BMW를 타고, 보수적인 사람은 벤츠를 타고, 결혼을 여러 번 한 사람은 아우디를 탄다."

노무현 대통령의 독일 방문(4월 10-14일) 때 현지 대사관에 근무하는 한 공보담당자는 "독일인들은 차를 타는 취향에 따라 성격을 구분 짓는다"면서 이런 우스갯소리를 했다.

아우디(Audi) 자동차의 4개의 '링' 마크는 결혼식 반지를 상징하는데 슈뢰더 총리가 "독일 총리는 벤츠를 탄다"는 51년간의 관례를 깨고 자신의 전용차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아우디를 선택했기에 생긴 독일인들의 농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슈뢰더 정부의 철저한 환경보호주의자인 요시카 피셔 외무장관도 네 번째 결혼을 했는데 아우디를 타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농담치고는 그럴싸하게 정교한 우스갯소리다.

우리나라는 방탄차 생산능력이 없어 부득이 외제 차량을 이용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가 올해 국가원수용 승용차로 기존의 노후차량을 교체해 BMW 5대를 도입하기로 발표해 화제다. 청와대가 도입하는 BMW는 6000cc급인 760Li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당초에 차량도 일종의 경호장비이기 때문에 교체 사실을 밝힐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부산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참가하는 각국 정상들 부인과 장관들에게 제공되는 차량으로 BMW가 선정된 것과 관련, 청와대에서도 5대를 계약했다는 일부 보도가 나오자 보도자료를 내고 경위를 밝힌 것이다. '외국 정상들에게는 에쿠스를 제공하고, 노 대통령은 BMW를 탄다'는 식의 보도가 오해를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통령 경호실은 우선 일반적으로 세계 각국은 국가원수용 승용차로 경호안전상 방탄차량을 사용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방탄차 생산능력이 없어 부득이 외제 차량을 이용하고 있는데 그 선택의 폭은 벤츠, BMW 등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 경호실은 또 이 방탄차량은 정해진 내구연한에 따라 교체해오고 있으며 청와대는 당초 올해에 노후차량 교체용으로 BMW 5대를 도입할 예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국가원수용 방탄차량의 브랜드를 기존의 벤츠에서 BMW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노후차량을 교체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BMW 수입업체의 입장에서는 일부 언론 보도로 인해 마치 노 대통령이 방탄승용차를 기존의 벤츠에서 BMW로 교체한 것으로 비쳐져 광고효과는 톡톡히 봤을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온다. 특히 최근 반일정서에 힘입어 일본차 판매가 줄고 독일차가 증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경호실의 한 관계자는 또 "대통령이 참석하는 다양한 행사의 성격에 따라 차량의 용도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내구연한에 따라 내년에는 다른 기종을 보충할 수도 있다"면서 차량 교체에 큰 의미를 두지 말 것을 당부했다.

자동차 선진국 국가원수들은 대개 자국산 자동차를 의전용 전용차량으로 이용

외국의 경우 자동차 선진국 국가원수들은 대개 자국산 자동차를 의전용 전용차량으로 이용한다. 이에 따라 미국의 캐딜락, 러시아의 질 리무진, 독일의 벤츠나 BMW, 프랑스의 시트로엥, 이탈리아의 피아트, 일본의 닛산 로얄 등 자국산 방탄차가 국가원수 의전차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타는 '공식 의전차'는 링컨 컨티넨탈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선 현대와 기아가 차문과 유리에만 간단한 방탄시설을 장착한 다이너스티와 체어맨을 각각 제작하긴 하지만, 수십억원에 이르는 제작비용과 기술 부족으로 아직 외국처럼 높은 수준의 방탄차를 생산하진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APEC 기획단에서는 APEC 정상회의에 참가하는 각국 정상들에게는 4500cc급 에쿠스를 제공하고, 영부인과 장관 등에게는 3500cc급 BMW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2004년도 칠레 APEC에서는 각국 정상들에게 미국 시보레사의 트레일블레이저(4200cc급 5인승 지프차형)를 제공했다.

그러고 보면 '외국 정상들에게는 에쿠스를 제공하고, 대통령은 BMW를 탄다'는 식의 보도가 '괜한 오해'만은 아닌 듯싶다. "우리나라는 방탄차 생산능력이 없어 부득이 외제차량을 이용하고 있다"고 하면서 외국 정상들에게는 국산 차량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BMW를 택한 것과 관련, 노 대통령의 취향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경호실에서 차량을 바꿀 때는 대통령에게 취향을 묻지 않느냐"는 질문에 경호실 관계자는 "그런 부분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독일 방문 때에 노 대통령에게 제공된 의전차량은 벤츠였다. 그래서 BMW를 택한 것과 관련 "대통령과 가까운 요인이 BMW를 좋아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호실 관계자는 "차량 용도 등을 고려한 것이지 큰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 권 여사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속도'를 즐기는 쪽으로 바뀌었다?

▲ 지난 3월 27일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 옆에 대기중인 대통령 전용 BMW 차량.
ⓒ2005 오마이뉴스 김당
노 대통령이 이미 BMW를 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지난 3월 27일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을 할 때도 하산후 귀가길에 BMW 승용차를 이용했다.

차는 흔히 '어른들의 장난감'이라고 이야기한다. 독일식으로 차를 타는 취향에 따라 성격을 구분 짓는다면, 노 대통령과 권 여사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속도'를 즐기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차로만 보면 노 대통령은 '보수'에서 '속도' 쪽으로 '진보'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노 대통령은 29일 개장한 한국국제전시장(KINTEX)에서 열린 서울모터쇼에 참석해 권양숙 여사와 함께 이곳에 전시된 BMW '미니쿠퍼즈'를 보면서도 "차가 아주 장난감처럼 예쁘게 생겼네요"라고 관심을 표시하며 "한국 전시를 계기로 많이 팔렸으면 좋겠습니다"고 격려했다.
2005/04/29 오후 2:04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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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일본국의 남경대학살

http://blog.daum.net/haguyha 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저는 그 사진들이 책으로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사하다가 잃어버렸나 봅니다.

 

전에도 밝혔지만 저는 일본 제국주의 만행을 일본의 국민성으로 환원하지 않습니다. 독일, 이딸리아는 안그랬겠습니까? 자본의 광기의 한 단면일 뿐이죠. 그게 본질입니다. 일본놈들 국민성은 비굴하고 잔인해 이 말과 우리 조선놈들 국민성은 단결이 안돼 이 말을 동전의 양면이라 생각합니다. 둘다 지양/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계속 외부 시장을 찾고 끊임없이 대외 팽창을 지향합니다. 그냥 놔두면 일본 정부처럼 독도 껀 교과서 껀 등으로 온갖 지랄을 해댈 것은 어느 정부나 같습니다. 이를 내부 시민사회가 긴장 관계 속에서 통제하는데 아쉬운 것은 일본은 그 힘이 모자란 것입니다. 명목 상이나마 일본 공산당, 사회당, 노조는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에 또 일본 국민성은 노조도 어용노조 황국신민이야! 하는 식으로 몰아갈지 모르겠는데 이는 특수한 일본 현대사 역사적 상황 맥락 학습이 선행되어야 겠습니다.

 

이런 기본 방법론도 없이 그냥 매도하고 짖어대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백날 정안수 떠놓고 빌어도 일본 열도 절대로 지진으로 침몰하지 않습니다.

 

ps 도올 김용옥의 해석은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즉 일본은 모든 문화의 최종 집결지 도서이기에 이 나라에는 혁명이 있을 수 없다.

 

 

 

일본군의 "남경대학살" 정말 끔찍했군요. | 역사와 사명
2005.04.21


 

아래 사진들..잔인한 장면이 많으니까..비위약하신 분들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남경대학살 증거 사진들 - http://polymer.cnu.ac.kr/~nanking/photo.htm

 

일본군의 731부대 생체실험 마루타 사건도 절대 잊을수 없는 끔찍한 사건인데..
남경대학살 사건도 인간이 할짓이 아니었군요.

그런데도..은폐하고 왜곡하며 사실이 아니라고 거짓을 일삼는 일본정부..

정말...저들에겐..반성과 사죄란 없는 걸까요?

남경대학살 요약

1937년 여름 노구교(루거우차오:盧溝橋)사건으로 중일전쟁의 단추를 연 일본 군은 파죽의 기세로 텐진(天津), 베이징(北京) 등을 거쳐 11월 상하이(上海)를 점령했다. 그들의 다음목표는 장제스(裝介石)국민당정부가 수도로 삼고 있던 난징(南京)이었다. 9만명의 일본군이 양쯔(陽子)강 남한의 이 도시를 3면으로 포위해 들어가자 총통 장제스는 성 함락 5일전 정부 를 이끌고 충칭(重慶)으로 퇴각했다. 잔류해 있던 약 70만명의 난징 시민과 군인들은 12월 13일 새벽 성벽을 타고 넘어온 일본군들을 앉아서 맞았다.

난징 점령 초기 6주일간 일본군은 무기력속에 빠진 중국군과 민간인들을 상대로 잔혹을 극한 살육행위를 저질렀다. 백기를 든 군 포로들은 물론이고 수천, 수만명의 젊은이들을 총검술훈련 혹은 '목베기 시합'의 대상물 로 삼아 무자비하게 희생시켰다. 어린 소녀, 노파 할 것 없이 여자들은 무차별로 강간한 뒤 살해해 버렸다. 사람을 산채로 파묻고 배를 가르거나 사지를 자르는가 하면 연료를 쏟아부은 뒤 불태워 죽이기도 했다. 한 생존 자는 훗날 "마치 하늘에서 비 아닌 피가 쏟아져 내린 듯했다"고 끔찍했던 참살현장을 되새기고 있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이 당시 난징 잔류인구의 절반 가까운 약 30만명에 이르렀다. 미국 새너제이머큐리지는 "사망자들이 손을 잡으면 난징~항저우 (抗州)의 3백 22㎞를 이을 수 있고 흘린 피의 양은 1천 2백톤, 시체는 기차 2천 5백량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치를 싣기도 했다.

전쟁의 한 가운데서 야만과 잔혹성의 극치를 보였던 일본은 그러나 전후 그런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뿐만 아니라 난징 대학살 자체를 부인하고자 했다. 지금 도쿄 도지사로 있는 작가 이시하라(右原愼太郞)가 "일본이 난징에서 대학살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중국인들이 꾸며낸 거짓 말"이라고 한 건 그런 태도를 대표하는 예이다.

최근 일본의 우익단체들이 오사카에서 대대적인 집회를 열고 "난징 대학살은 20세기 최대의 거짓말" 이라며 사실 자체를 아예 부인하고 나서 내외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그들은 "증거가 없지 않느냐" 고 큰소리로 되묻고 있지만 이건 과거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이시하라의 신념과 인식을 다시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우익들의 이러 강변은 향후 일본이 나라를 들고 디뎌갈 위험한 행보를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요즈음은 군사대국화를 겨냥한 일본 우익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판이다. 중국과 일본 당사국끼리 따질 일이라고 해서 우리가 손을 놓은 채 바라만 보고 있을 계제는 아닌 듯 하다.

[자료인용: 중앙일보(2000.1.28)]

아래 사진들..잔인한 장면이 많으니까..비위약하신 분들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남경대학살 증거 사진들 - http://polymer.cnu.ac.kr/~nanking/photo.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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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로당 [진상조사] 짝퉁 명작을 찾아서

요즘 세상에 누가 국산 에로 비디오 보냐? 제목만 보고 마는거지

아래를 보라. 거의 예술이다. 근데 하나 빠졌다. 혀준

 

 

 

[진상조사] 짝퉁 명작을 찾아서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가요나 영화 등 대중문화예술 작품들은 그 타이틀이 무엇이냐에 따라 흥행을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작품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보거나 들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작품의 타이틀은 대중이 그것을 선택하는 데 제1 기준이 된다.

에로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의 제목이 얼마나 시선을 끄는가가 일단 중요하다. 물론 배우의 몸매나 얼굴도 중요하지만, 제일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은 타이틀이기에 제목선정에 고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초기 에로업계는 필름영화와 마찬가지로 나름대로 독자적인 타이틀을 가졌다. 뭐 <정사수표>나 <야시장> 등은 시리즈로 제작되었던 꽤나 성공적인 작품이었는데, <젖소부인>시리즈 이후던가 기존의 필름영화의 제목을 교묘히 바꾼 제목을 패로디한(혹은 설정도 차용한) 작품들이 물밀 듯이 나와 대중에게 그 제목만으로도 또 하나의 재미를 주었는데, 몇가지 들어보자.

 

 

우선 기존 필름영화의 타이틀을 바꾼 것으로 <하는 여자(아는 여자)>, <살흰애추억(살인의 추억)>, <접촉(접속)>, <입으로..(집으로..)>, <번지점프중에 하다(번지점프를 하다)>, <털밑썸씽(텔미썸씽)>, <주재소 습격사건(주유소 습격사건)>, <여간첩 리철순(간첩 리철진)>, <공동섹스구역 JSA(공동경비구역 JSA)>, <박하사탕(박하사랑)>, <반칙여왕(반칙왕)>, <인정상 사정할 수 없다(인정사정볼 것 없다)>, <나도 처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달숙아 하자(달마야 놀자)><뿅가리(용가리)>, <여관괴담(여고괴담)>, <뚫어야 싼다(뚫어야 산다)>, <귀신이 싼다(귀신이 산다)>, <그놈은 맛있었다(그놈은 멋있었다)>, <성범죄의 재구성(범죄의 재구성)> 등이 있다.

그리고 TV 드라마의 타이틀 역시 손을 댔는데, <왕의 국물(왕의 눈물)>, <우리가 정말 사정했을까(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발기해서 생긴 일(발리에서 생긴 일)>, <발 위의 연인(빠리의 연인)>, <미안하다 사정했다(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이 있다.

외국영화의 타이틀까지 그 영역을 확장했는데, <황홀해서 새벽까지(황혼에서 새벽까지)>, <라이언일병과 하기(라이언일병 구하기)>, <대딩유두(댓싱유두)>, <글래머에이터(글래디에이터)>, <80일간 쎄게 해줘(80일간 세계일주)>, <반지하 제왕(반지의 제왕)>, <해리포터와 아주 까만 여죄수(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털민 널(터미널)>, <첫경험만 50번째(첫키스만 50번째)> 등이 있다.

그밖에 CF를 패로디한 <선영아 나랑해(선영아 사랑해)>, <여보 보일러댁에 아버님 놔드려야겠어요>, 사회문제였던 <탈옥녀 신창순(탈옥수 신창원)> 등이 있다는데 직접 확인한 독자가 있다면 손을 들어 화답해주기 바란다.

이렇게 보니 그 작품의 내용은 모르겠지만 제목만 가지고도 포복절도할 만한 타이틀이 꽤나 보인다. 특히 <대딩유두>와 <해리포터와 아주 까만 여죄수>, <털민 널>, <살흰애 추억> 등은 대단한 언어적 유희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좀 웃어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얘기고... 그렇다면 우리 <진상조사팀>이 늘상 다루고 있는 외국의 성인업계엔 이러한 것들이 없을까?

왜없더어~! 여깄지!

해서 몇 가지 유명한 타이틀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BAYWATCH VS. BABEWATCH

<전격Z작전(Knight Rider)>의 느끼한 히어로 데이빗 핫셀호프의 출세작 티비 씨리즈인 (BAYWATCH)는 그 자체만으로 꽤나 눈요기 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이었다. 여기에는 많은 쭉방걸이 출연하여 만인의 시선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Pamela Anderson, Krista Allen, Brande Roderick, Yasmine Bleeth, Donna D'Errico, Carmen Electra, Erika Eleniak 등 플레이보이와도 연관이 있는 모델들도 출연을 해왔다.

이에 도전한 우리 업계의 작품은 벌써 제목에서 팍 필이 오는 (BABEWATCH)다. 물론 무대는 같은 해변의 수상구조대이다. 하지만 규모는 좀더 작은 듯 하고 등장인물도 몇 안된다. (BAYWATCH)가 몇 년에 걸쳐 여러 편의 시리즈 물로 제작되었듯이 (BABEWATCH) 또한 10여 편이 넘게 이어진다.

이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들은 지난 진상조사의 주인공이었던 Asia Carrera를 비롯하여 Holly Body, Kylie Ireland, Melissa Hill, Sindee Coxx, Amber Lynn, J.R. Carrington, Stephanie Swift, Jill Kelly 등 에 못지 않은 진용이다.

2. SHANE VS. SHAME

첨에 이 작품을 보고 본인은 혀를 찼다. 전설의 정통 서부극인 (SHANE)에까지 손을 대다니... 지금은 잘 기억이 가물가물한 50년대 서부영화 . 어린시절 꽤나 지루하게 본 서부영화였다. <황야의 무법자>같은 마카로니 웨스턴이나 <황야의 7인>같은 영화같은 액션보다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많았던 이유가 아닐까 하는데, 아무튼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이 떠나는 셰인을 부르는 장면이 인상깊숙한 영화이다.

나름대로 '부끄러움, 수치심'이란 의미가 있으니 다른 영화가 아니냐 할지 모르는데, 서부를 무대로 했으니 의 제목과 이미지를 본따지 않았다 얘기할 수 없겠다. 스토리는 '그까이꺼 대충' 하는 장면만 봐서 잘 모르겠다.

(SHAME)은 단편으로 Asia Carrera, Dyanna Lauren, Kaitlyn Ashley 등 국내 팬들에게도 친근한 배우들이 여럿 나온다.

3. A CLOCKWORK ORANGE VS. A CLOCKWORK ORGY

지금은 P2P나 DVD 등이 보급되어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은 못볼 수가 없는데, 예전엔 이작품 구할려면 비디오점 아저씨를 잘 살쿼놓거나 하지 않으면 보기 힘든 영화였다. 물론 매니아 친구를 두면 쉽게 볼 수도 있지만 화질은 보장 못했다. 충격 영상의 대명사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하면 늘 손꼽히는 (A Clockwork Orange)다. 젊은 시절의 말콤 맥도웰의 광기어린 연기가 아주 인상적인 영화였는데, 사실 어린 시절 호기심에 엉터리 자막으로 본거라 이해하기 좀 어려웠다. 앞으로도 몇회는 더 봐야 할 것 같은데... 암튼지 이 작품 역시 보기 좋게 성인 업계에도 출시가 되었는데, 제목부터 제대로 만들었다.

원작인 (A Clockwork Orange)를 두고도 제목 해석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 난리 브루스였는데 이것은 대충 뚜드려보자니 (시계장치 난교) 정도나 될까? 암튼지 이 작품은 영화의 제목 뿐만아니라 의상과 스토리라인마저 가져와 성인판 (A Clockwork Orange)라고도 할 수 있겠다. 분명히 스탠리큐브릭이 살아있을 적에 나온 작품인데, 그가 과연 이것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궁금하다.

이 작품에는 Kaitlyn Ashley, Alex Sanders, Rebecca Lord, Shelby Stevens 등의 여배우가 나오고 감독활동도 겸하고 있는 Jonathan Morgan이 주인공 Kaitlyn Ashley을 교화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원작의 힘을 빌어 알게 모르게 명작으로 꼽히고 있는 몇 안되는 패러디 포르노이다.

4. TERMINATER 2:JUDGEMENT DAY VS. PENETRATOR 2: GRUDGE DAY

기계가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 세계. 그곳에는 기계에 대항하는 저항군이 있었으니 그 우두머리는 존 코너. 이에 기계측은 인간 저항군의 지도자 존코너의 탄생자체를 없애기 위해 암살로봇(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낸다. 존코너 역시그것을 막기 위해 저항군을 보내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엮어보니 그게 아버지가 된다는 황당한 스토리를 가진, 오늘의 제임스카메론과 아놀드슈왈제네거를 있게 만든 SF명작 <터미네이터>. 제작과 발표 당시 B급영화로 치부되었지만 이후 많은 매니아를 낳게 해 2탄과 최근 3탄에 이르기까지 나이든 슈왈제네거를 출연시킨 장수한 시리즈 명작.

업계는 같은 구성으로 미래에서온 섹스머쉰으로 하여금 현재의 여성들을 섹스노예로 만들게 했으니 이름하여 '뚫는 자' (Penetrator). 이 작품 역시 후편까지 제작되어 패로디 포르노 명작 반열에 오른다. 국내에는 전편과 후편의 하드코어 장면만을 편집해서 합본으로 (터보레이터)라는 제목의 에로비디오로 출시되어 많은 에로매니아들을 열광하게 했던 설명이 필요없는 명작이다. 근데 도대체 '터보레이터'란 말은 뭐란 말인가?

앞서 말한 에 출연한 Kaitlyn Ashley가 페너트레이터의 목표인 Dorn Conner로 그의 엄마 Farrah Donner 역에 Melissa Hill, Penetrator 역에 Alberto Rey가 열연한다. 원작의 주인공의 이름이 존 코너(John Conner)와 사라 코너(Sarah Connor)인 점와 비교 이름까지 패로디한 점에서 여러 모로 신경 쓴 작품이다.

5. BACKDRFT VS. FLASHPOINT

수년전부터 잦은 화재와 안전사고의 발생 등으로 소방관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많이 높아졌다. 우리 나라에서도 <리베라 메>나 <싸이렌> 등의 화재 영화가 한 해(2000년)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재난 영화로 따지면 <포세이돈 어드벤쳐>, <타워링> 등 70년대 영화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화재를 다룬 영화로 우리들의 인식에 깊숙히 박힌 영화라면 커트러셀과 윌리엄볼드윈, 스콧글렌 등이 열연했던 <분노의 역류 Backdraft)>를 들 수 있을 거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봤던 윌리엄볼드윈과 제니퍼제이슨리의 소방차 위에서의 러브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제목은 달리하지만 소방관들의 애환과 사랑을 그린 포르노 무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업계의 여왕 제나 제이미슨이 나오는 <발화점 Flashpoint>다. 화재사고로 사람하는 사람을 잃은 제나제이미슨, 이 가련한 여인에 대한 위로를 빙자한 섹스, 그리고 소방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난교... 아무튼지 결국 사건의 범인이 내부에 있었다는 소방관을 다룬 소재와 그 대충적인 구성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짝퉁 명작으로 집어 넣었다.

Jenna Jameson, Jill Kelly, Sindee Coxx, Sydnee Steele, Brittany Andrews, Asia Carrera 등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고, 감독을 겸한 Brad Armstrong도 직접 출연하고 있다.

6. Lethal Weapon VS. Lethal Affairs

멜깁슨의 데뷔작은 물론 <매드맥스> 시리즈일 것이나 실제 그의 출세작이라 한수 있는 것이라면 <리썰웨폰> 씨리즈라고 할 수 있다. 형사 버디 무비는 그 전통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는데, <리썰웨폰>씨리즈는 그 중 성공작으로 주류 패로디 영화인 <원초적무기 Loaded Weapon 1>의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96년 작인 (Lethal Affairs)는 재닌린더멀더(Janine Lindemulder)와 체이시레인(Chasey Lain)이 미모의 CIA요원으로 나온다. 암시장에서 팔린 플루토늄이 우크라이나에서 분실된다. 헌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성인업계에까지 파편이 튀기게 되는 다소 이해가 안가지는 상황이 연출되어 두 미모의 중앙정보부 요원이 급파되어 사건을 해결한다는 성인영화적인 스토리라인을 갖는다.

두 배우 외에 Kobe Tai, Monique DeMoan, Felecia, Missy, Sahara Sands 등이 출연한다.

이외에도 여럿 짝퉁 작품들이 있을 것이나 이쯤에서 접어두고 나머지는 좀더 깊숙히 알고 있는 독자 여러분의 리플에 맞기고 마지막으로 우리 나라 제목짓기에 버금갈 만한 타이틀이 하나 있어 소개 한다. <Azz Good Azz It Getz>란 제목의 포르노 물인데 잭니콜슨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의 제목을 차용한 듯 하다. 물론 제목의 'z'를 's'로 바꾸어야 맞다. 그 의미는 무엇이 되는지 여러분의 상상에 맞긴다.

남로당 진상조사위원 원미동(wonmidong@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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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혁 선생님의 Beatles 미국 발매 음반 해설

http://www.youtube.com/watch?v=bB_SyQUVKzg&search=beatles

 

[MV] Beatles - It Won't Be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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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혁의 비틀즈 미국 발매 음반 해설 - 1 (오류 수정 포함) | 비틀매니아 연구방

2005.07.17 04:37
서강석(lennon71) http://cafe.naver.com/thebeatlemania/598 이 게시물의 주소를 복사합니다

신화속에 살아있는 록큰롤의 가장 위대한 이름

The Beatles

 

'퀘리멘'에서 '조니와 문독스', 그리고 '실버 비틀즈'로 이어졌던 틴에이지 시절

 

 존 레논(40.10.9-리버풀 울튼 태생), 폴 매카트니(42.6.18-리버풀의 알러튼태생), 조지 해리슨(43.2.24-리버풀의 웨이버트리 태생), 링고 스타(40.7.7-리버풀의 딩글 태생).

 

 언제 들어도 신비로운 전설속의 인물들이 되어 버린 비틀즈는 틴에이지시절에 퀘리멘(Quarry Men)이라는 트리오로(존-폴-조지) 출발하였다. 50년대말에는 피트 베스트(드럼)과 스튜 서트클리프(리듬기타)를 맞아들이면서 그룹이름을 조니와 문독스로 바꾸어 5인조의 진용을 갖추었다. (옮긴이주 : 비틀즈의 출발을 퀘리멘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만, 트리오로 출발했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존 레논이 결성한 퀘리멘에 폴과 조지가 가입하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함. 또한 Johnny And Moon Dogs로 활동할 시기에 피트와 스튜는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The Silver Beatles로 바꾼 후 가입하였다.)

 

 이들이 비틀즈의 전신인 실버 비틀즈로 다시 이름을 개명한 것은 1960년이었다. 당시 영국 그룹들의 전진기지였던 함부르크에서 명성을 날리던 토니 셰리던의 백업 그룹으로 실버 비틀즈는 출범하기시작했다. 비록 보잘 것없는 백코러스나 반주로 참여했지만 이렇게 해서 실버 비틀즈는 토니 셰리던과 함께 공식적인 첫 싱글 'My Bonnie'를 1960년대에 취입,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진귀한 트랙들은 비틀즈가 스타덤에 오른 후인 1965년에 독일의 폴리돌 레코드사에서 'The Beatles With Tony Sheridan'이란 타이틀로 공개한 편집음반에서 노출되었으며 이 음반은 국내에서도 라이센스로 출반되었다. 대부분 토니 쉐리던의 리드보컬에 가리워져 비틀즈의 진면목을 찾아낼 수 없지만, 비틀즈의 역사를 더듬어보는데엔 진귀한 음반이 아닐 수 없다. 특히 'Ain't She Sweet'에서는 존 레논의 리드 보컬을, 'Cry For A Shadow'에서는 조지 해리슨(당시 17세)의 탁월한 리드기타를 들을 수 있다.

 

 

 

Side A

Side B

1. Ain't She Sweet

1. Sweet Georgia Brown

2. Cry For A Shadow

2. The Saints

3. When The Saints Go Marchin In

3. Ruby Baby

4. Why

4. My Bonnie

5. If You Love Me, Baby

5. Nobody's Child

6. What'd I Say

6. Ya Ya Part 1

 

 1961년으로 접어들며 토니 셰리던의 백업그룹에 염증을 느낀 열정적 성격의 스튜 서트클리프가 실버 비틀즈를 떠났다. 그는 이듬해인 62년 4월 10일에 뇌출혈로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고 만다. 61년 2월에 리버풀로 돌아온 실버 비틀즈는 캐번 클럽에 일자리를 얻어 고정출연하던 중, 레코드가게를 운영하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는 곧 비틀즈의 매니저가 되었다.

 

 브라이언의 노력으로 실버 비틀즈는 EMI 그룹의 오디션에 통과하게 되는데, 당시 오디션을 담당했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은 드럼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한가지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래서 피트 베스트는 눈물을 머금고 그룹을 떠나야했으며, 그의 빈 자리를 링고 스타(본명 리차드 스타키)가 메꾸게 되었다. 링고는 로리스톰과 허리케인즈라는 그룹의 일원으로 함부르크에서 활동할 때 실버 비틀즈와 가깝게 지내던 사이었다. (옮긴이주 : 피트 베스트를 축출당한 것은 조지 마틴의 드럼 연주비판보다는 나머지 세 명의 멤버(특히 폴과 조지)의 반대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존 레논(리듬기타-하모니카-피아노-리드보컬), 폴 매카트니(베이스-피아노-밴조-트럼펫-리드보컬), 조지 해리슨(리드기타-시타-피아노-하모니-보컬), 링고 스타(드럼-하모니-보컬)로 짜여진 최종 라인업은 그제야 'The Beatles'로 그룹이름을 확정짓고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지휘아래 만 1년여의 피나는 연습에 들어가게된다.

 

 1962년 10월에 탄생된 상큼하기이를데없는 데뷔 싱글 'Love Me Do'와 63년 1월에 공개한 두 번째 싱글 'Please Please Me', 그리고 동년 4월에 등장한 영국 시장 데뷔 앨범등으로 비틀즈는 단숨에 유럽을 점령하고 만다.

 

타임-뉴스위크-뉴욕타임즈등을 오르내리며 등장한 'Meet The Beatles'

 

 'Please Please Me'와 데뷔 앨범이 싱글과 앨범 차트를 석권(영국 차트에서 동시에 1위)하면서 비틀즈의 열기는 미국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미국땅에 가장 먼저 상륙한 비틀즈의 작품은 세 번째 싱글은 'I Want To Hold Your Hand'였다. 이 곡은 64년 1월 18일자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섰으며, 뒤이에 이 곡이 담긴 세계 시장 데뷔 앨범 'Meet The Beatles'는 2월 12일자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는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옮긴이주 : 미국에서 최초로 발매된 비틀즈 앨범은 Vee-Jay社의 Introducing The Beatles이며, 당시 반응은 전혀 없었다.)

 

 

 

발매일 : 63.7.22.

Side A

Side B

1. I Saw Her Standing There

1. P.S. I Love You

2. Misery

2. Baby It's You

3. Anna (Go To Him)

3.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4. Chains

4. A Taste Of Honey

5. Boys

5. There's A Place

6. Love Me Do

6. Twist And Shout

 

 

 

발매일: 64.1.20.

Side A

Side B

1. I Want To Hold Your Hand

1. Don't Bother Me

2. I Saw Her Standing There

2. Little Child

3. This Boy

3. Till There Was You

4. It Won't Be Long

4. Hold Me Tight

 

5. I Wanna Be Your Man

 

6. Not A Second Time

 

 비틀즈 최초의 전미 순회 공연은 64년 2월에 개시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문전성시를 이뤘음은 물론이고 주요 매스컴의 헤드라인을 독점하고 있었다. 'Meet The Beatles'의 폭발적 인기로 이들은 채 3개월이 못되어 2집 'The Beatles' Second Album'을 공개하는 놀라운 창작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담겨있는 'She Loves You'와 앨범 자체가 역시 동시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옮긴이주 : 비틀즈의 첫 미국 방문이 2월이며, 최초의 전미 순회 공연은 64년 8월 19일부터였다.)

 

 

발매일 : 64.4.10.

Side A

Side B

1. Roll Over Beethoven

1. Long Tall Sally

2. Thank You Girl

2. I Call Your Name

3. You Really Got A Hold On Me

3. Please Mr.Postman

4. Devil In Her Heart

4. I'll Get You

5. Money

5. She Loves You

 

  뿐만 아니라 전미 순회 공연의 벅찬 스케줄속에서도 틈틈이 영화 'A Hard Day's Night'을 촬영했으며, 사운드트랙은 64년 6월에 영화와 함께 3집으로 공개되었다. 그 사이에 이미 영국에서 싱글로 발표되어 정상에 올랐던 'Can't Buy Me Love'와 데뷔곡 'Love Me Do'가 지각수입되어 각각 No.1에 올랐다. 이어서 'A Hard Day's Night'이 다섯 번재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것은 64년 7월 18일이었다. (옮긴이주 : 영화 A Hard Day's Night의 촬영은 64년 3월 2일부터였으며, 이 기간은 첫 미국 순회 공연(8월 19일~9월 20일)기간과 전혀 겹치지 않는다. 또한 촬영장소는 영국이었다.)

 

 

 

발매일 : 64.6.26

Side A

Side B

1. A Hard Day's Night

1. I Should Have Known Better

2. Tell Me Why

2. If I Fell

3. I'll Cry Instead

3. And I Love Her

4. I Should Have Known Better    (instrumental)

4. Ringo's Theme(This Boy)

    (instrumental)

5. I'm Just Happy To Dance With You

5. Can't Buy Me Love

6. And I Love Her

   (instrumental)

6. A Hard Day's Night

     (instrumental)

 

4집 'Something New'를 포함해 무려 6장의 앨범이 쏟아져나온 1964년

 

 

 1~3집을 불과 반년만에 공개하여 석장 모두 앨범 차트 1위(싱글은 다섯 곡이 1위)에 랭크시키는 불가사의를 이뤄낸 비틀즈는 64년 7월에 4집 'Something New'를 공개(앨범 2위)했는데, 여기엔 'I Want To Hold Your Hand'를 독일어로 부른 'Komm, Gib Mir Deine Hand' 트랙을 비롯하여, 'And I Love Her'와 'If I Fell'등의 주옥같은 발라드가 듬뿍 담겨있다.

 

 

발매일 : 64.7.20.

Side A

Side B

1. I'll Cry Instead

1. Tell Me Why

2. Things We Said Today

2. And I Love Her

3. Any Time At All

3. I'm Happy Just To Dance With You

4. When I'm Get Home

4. If I Fell

5. Slow Down

5. Komm, Gib Mir Deine Hand

6. Matchbox

 

 

 64년 11월에는 'The Beatles Story'라는 타이틀의 5집이 등장했는데 이 앨범은 극성팬들을 위해 히트곡들은 물론 인터뷰,사진등을 엮은 더블 앨범으로 선보였다. (앨범 7위). 그로부터 불과 한달후에 6집 'Beatles '65'가 여섯 번째 No.1 싱글 'I Feel Fine'을 담고 (앨범은 네 번째 No.1 획득) 등장했다. 여기엔 그밖에도 'I'll Follow The Sun', 'Mr.Moonlight', 'Rock And Roll Music', 'She's A Woman'등 우리귀에 친숙한 작품으로 그득하다. 이로써 비틀즈는 세계 시장에 데뷔한 64년 한 해에 무려 여섯 장의 앨범을 공개하여, 6곡의 No.1 싱글과 4장의 No.1 앨범, 6연속 골드 앨범과 4곡의 골드 싱글(I Want To Hold Your Hand-Can't Buy Me Love-A Hard Day's Night-I Feel Fine)을 기록하는 불가사의를 이뤄낸 바 있었다.

 

 

 

발매일 64.11.23.

Side A

Side B

1. On Stage With The Beatles

1. A Hard Day's Night - Their First Movie

2. How Beatlemania Began

2. Paul McCartney

3. Beatlemania In Action

3. Sneaky Haircuts And More About Paul

4. Man Behind The Beatles - Brian Epstein

4. The Beatles Look At Life

5. John Lennon

5. "Victims" Of Beatlemania

6. Who's A Millionaire?

6. Beatle Medley

7. Beatles Will Be Beatles

7. Ringo Starr

8. Man Behind The Music - George Martin

8. Liverpool And All The World!

9. George Harrison

 

 

 

2. I'm A Loser

2. I'll Be Back

3. Baby's In Black

3. She's A Woman

4. Rock And Roll Music

4. I Feel Fine

5. I'll Follow The Sun

5. Everybody's Trying To Be My Baby

 

'Eight Days A Week'를 담고 65년 6월에 조용히 등장한 'Beatles VI'

 

 64년말에 선보였던 'Beatles '65'는 이듬해를 겨냥한 앨범 타이틀이었으며, 65년 3월엔 초기 작품들을 모은 'The Early Beatles-앨범 43위'가 7집으로 등장했고, 동년 6월엔 8집 'Beatles VI'가 'Eight Days A Week'를 담고 선보였다. 앨범 타이틀이 통산 여덞번째로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VI'라는 순서를 매긴 이유는 'A Hard Day's Night'과 'The Early Beatles'를 이레큘러(irregular)앨범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매일 : 65.3.22.

Side A

Side B

1. Love Me Do

1. Please Please Me

2. Twist And Shout

2. P.S. I Love You

3. Anna (Go To Him)

3. Baby It's You

4. Chains

4. Taste Of Honey

5. Boys

5.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6. Ask Me Why

 

 

 'Beatles VI'에는 이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록큰롤의 천재 버디 홀리의 고전 'Words Of Love'가 곱게 채색되어 있으며, 마이크 스톨러가 작품을 쓴 로커빌리의 고전 'Kansas City'라든가, 역시 비틀즈에게 영향을 준 50년대의 스타 래리 윌리엄즈의 대표작 두 곡 (Bad Boy와 Dizzy Miss Lizzy)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리바이벌과 오리지널이 절반씩 섞여있는 'Beatles VI'에서, 존과 폴이 주도해 오던 작곡 솜씨를 거들기 시작한 조지의 'You Like Me Too Much'가 향후 그의 번뜩이는 재능의 포문을 열어주었다. ('Beatles VI'는 다섯 번째 No. 1앨범)  'Bealtes VI'는 바로 이전 앨범인 'Beatles '65'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실험의 연장선 위에 있는 앨범이다.

 

 

발매일 : 65.6.14.

Side A

Side B

1. Kansas City

1. What You're Doing

2. Eight Days A Week

2. Yes It Is

3. You Like Me Too Much

3. Dizzy Miss Lizzy

4. Bad Boy

4. Tell Me What You See

5. I Don't Want To Spoil The Party

5. Every Little Thing

6. Words Of Love

 

 

'Help' 그리고 새로운 도약을 증명해보인 위대한 앨범 'Rubber Soul'

 

 

 65년 4월엔 바하마군도의 휴양지 내소에서 두 번째 앨범 'Help!'의 활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 통산 9집으로 영화와 함께 공개된 것은 65년 8월이다. 'Help!'가 여섯 번째 No.1 앨범이 된 것은 말할 나위없지만 여기에서 두 곡의 No.1 (Ticket To Ride와 Help!)까지 배출해냈다. 이것으로 비틀즈가 인도음악에 심취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사운드 트랙이다.

 

 

발매일 : 65.8.13.

Side A

Side B

1. James Bond Theme [instrumental] / Help

1. Another Girl

2. The Night Before

2. Another Hard Day's Night [instrumental]

3. From Me To You Fantasy [instrumental]

3. Ticket To Ride

4.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4. The Bitter End [instrumental]

  / You Can't Do That [instrumental]

5. I Need You

5. You're Gonna Lose That Girl

6. In The Tyrol [instrumental]

6. The Chase [instrumental]

 

 앨범의 마지막에 실려있는 'The Chase'에서 인도 음악을 완전히 도입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영화 음악을 담당했던 켄 돈의 연주곡과 비틀즈이 노래가 반반씩 섞여있는 사운드 트랙이며, 영화의 감독은 'A Hard Day's Night'에 이어 리처드 레스터가 담당했다. (옮긴이주 : The Chase는 비틀즈와 전혀 상관없는 곡으로, 인도음악을 완전히 도입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인도 음악의 영향이 최초로 드러난 것은 Norwegian Wood에서 조지 해리슨이 시타를 연주하였을 때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세계 시장 데뷔 첫 해인 64년에 무려 6매의 앨범을 공개했던 비틀즈는 이듬해인 65년에도 4매의 앨범을 선보여, 불과 2년만에 열 장의 앨범을 탄생시키는 믿기지 않는 기록을 수립해냈다. 사운드 트랙 'Help!'가 공개된 지 4개월인 65년 12월에 열 번째 앨범 'Rubber Soul'이 등장했는데,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초기 비틀즈의 가장 완벽했던 앨범으로 평가하고 싶은 명반이다.

 

 'Rubber Soul'은 단 한 곡의 싱글 커트도 없이 일곱 번째 No.1의 자리에 앉았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Michelle'을 비롯하여 조지의 시타 솜씨가 무르익어감을 감지할 수 있는 'Norwegian Wood', 폴의 퍼즈 베이스가 인상적인 'You Won't See Me', 링고의 또 다른 재주인 해먼드 오르간 솜씨를 들을 수 있는 'I'm Looking Through You',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피아노 어시스트가 결들여진 'In My Life'등등 어느 곡하나 나무랄데 없는 주옥같은 작품들로 채색되어 있다. 또한 지금도 턴테이블위에 올려 놓으면 가슴깊이 파고드는 존 레논의 마력적인 음성이 콧날을 시큰하게 해주는 'Girl'을 빼놓을 수 없으리라......

 

 

발매일 : 65.12.6.

Side A

Side B

1. I've Just Seen A Face

1. It's Only Love

2. Norwegian Wood

2. Girl

3. You Won't See Me

3. I'm Looking Through You

4. Think For Yourself

4. In My Life

5. The Words

5. Wait

6. Michelle

6. Run For Your Life

 

'페퍼상사...'의 폭풍 전야를 암시한 도발적인 사운드 'Revolver'

 

 

 흔히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비틀즈는 '3박자(예술성-음악성-상업성)을 갖췄던 불후의 그룹이었다'라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데, 앞서 다각도로 분석한 기록만 보더라도 도저히 다시 이루어낼 수 없는 불가사의가 많았다. 2년동안 열매의 앨범을 공개한 후 66년으로 접어든 비틀즈는 통산 11집으로 기록되는 'Yesterday & Today'를 6월에 선보였는데 여기에선 세 곡이 (Yesterday-We Can Work It Out-Nowhere Man) 골드싱글을, 두 곡이 No.1 (Yesterday-We Can Work It Out)을, 네 곡이 Top5 (Yesterday 1위-We Can Work It Out 1위 -Nowhere Man 3위-Day Tripper 5위)에 각각 랭크되는 해프닝을 연출한 바 있었다.

 

 

발매일 : 66.6.20.

Side A

Side B

1. Drive My Car

1. And Your Bird Can Sing

2. I'm Only Sleeping

2. If I Needed Someone

3. Nowhere Man

3. We Can Work It Out

4. Dr. Robert

4. What Goes On

5. Yesterday

5. Day Tripper

6. Act Naturally

 

 

 아마도 'Rubber Soul'과 함께 전반기 비틀즈의 대표 앨범이자 불후의 명반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할 12집 'Revolver'가 선보인 것은 66년 8월이었다. 'Rubber Soul'과 'Revolver'가 안고 있는 공통점은 단 한 곡의 싱글 커트도 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상업성보다는 예술성과 음악성을 중시했다는 결론을 얻어 낼 수 있다. 차이점은 'Rubber Soul'이 초기 비틀즈를 대변하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면 'Revolver'는 후기 비틀즈로의 환상적인 변신을 시도했다는 점일게다. (옮긴이주 : 영국에서는 66년 5월 8일 앨범 Revolver와 싱글 Eleanor Rigby를 동시에 발매했다. 미국에서도 늦게나마 66년 8월 8일 Yellow Submarine/Eleanor Rigby 싱글을 발매하였다.)

 

 또 한 가지 존과 폴이 거의 모든 곡을 소화해냈던 초기의 형태에서 벗어나 4인이 고루 역량을 발휘하여 더욱 원숙해진 화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Revolver'는 크게 평가받고 있다. 그 예로 조지의 리드 보컬이 무려 세 곡 (Taxman-Love You To-I Want To Tell You)이나 실려 있는데 물론 세 곡 모두 조지의 자작곡이다. 게다가 링고의 해학이 번뜩이는 'Yellow Submarine'까지 곁들여있는데 이 곡은 2년후 비틀즈의 세 번째 영화이자 동명 타이틀의 만화영화의 원동력이 되어지기에 이른다.

 

 그밖에도 비발디를 연상시키는 완벽한 소품 'Eleanor Rigby'라든가 조지 마틴의 보컬 더빙 솜씨가 듣는 이를 사로잡는 'Good Day Sunshine' 그리고 바늘같이 예민하게 삽입된 브래스 섹션이 일품인 'Got To Get You Into My Life'등등 모두가 개성있는 작품 세계를 표출시켜 주었다. 또한 존 레논의 두 개의 넘버 'She Said She Said'와 'Tomorrow Never Knows'는 레논이 시작한 '약물 실험'의 결과로 탄생된 곡이며 위대한 앨범인 '페퍼상사...'에서 꽃핀 사이키델릭의 승리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전율의 작품은 'Here There And Everywhere'이리라.....

 

 

 

 발매일 : 66.8.8.

Side A

Side B

1. Taxman

1. Good Day Sunshine

2. Eleanor Rigby

2. For No One

3. Love You To

3. I Want To Tell You

4. Here There And Everywhere

4. Got To Get You Into My Life

5. Yellow Submarine

5. Tomorrow Never Knows

6. She Said She Said

 

 

(이 글은 팝컬럼리스트 전영혁님이 음악잡지에 기고한 글을 옮긴것이며, 오류 부분은 옮긴이주에서 수정하였으니 참고하시기바랍니다.)

 

재킷, 사운드가 사이키델릭의 교과서였던 '페퍼상사의 고독씨 클럽'

 

 

발매일 : 67.6.2.

Side A

Side B

1.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 Within You Without You

2.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2. When I'm Sixty-Four

3.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3. Lovely Rita

4. Getting Better

4. Good Morning Good Morning

5. Fixing A Hole

5.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 Reprise

6. She's Leaving Home

6. A Day In The Life

7. Being For The Benefit Of Mr.Kite

                                                               .

 

 이미 지난호에 소개한 바 있는 1~12집에 이어 비틀즈의 농축된 재능이 하나의 불가사의를 이루어낸 13집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등장한 것은 67년 6월이었다. 이 화제의 명반은 비틀즈로서는 10번째로 (4,5,7집을 제외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앨범 차트(1~200위)에 무려 113주간이나 랭크되어 이들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마릴린 몬로를 비롯하여 밥 딜런, 말론 브랜도등 전설적인 스타들의 수많은 몽타주를 배경으로,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로 분한 4인의 라인업이 튜바와 트럼펫등을 들고 있는 이 앨범은 더욱 화제가 되었다. 전위 예술의 1인자로 평가받고 있는 앤디 워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A Day In The Life'와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등에서 우리는 사이키 아트의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레너드 번스타인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비틀즈의 명작이라고 토로한 완벽한 실내악 'She's Leaving Home'이 듣는 이를 전율의 도가니로 안내해주고 있다.

 

24페이지짜리 팜플렛이 내장된 사운드 트랙 'Magical Mystery Tour'

 

 

발매일 : 67.11.27.

Side A

Side B

1. Magical Mystery Tour

1. Hello Goodbye

2. The Fool On The Hill

2. Strawberry Fields Forever

3. Flying

3. Penny Lane

4. Blue Jay Way

4. Baby You're Rich Man

5. Your Mother Should Know

5. All You Need Is Love

6. I Am The Warlus

.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충격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엔 비틀즈의 유일한 TV영화 사운드트랙인 'Magical Mystery Tour'가 통산 14집으로 67년 11월에 공개되었다. 이 앨범속에는 극중의 주요 장면과 봅 깁슨의 재치있는 만화로 엮은 스토리가 무려 24페이지에 걸쳐 삽입되어 있어 그동안 비틀즈를 아껴준 팬들에 대한 서비스를 겸했던 딜러스 음반이었다.

 이 앨범은 'Hello Goodbye', 'Penny Lane', 'All You Need Is Love'등 세 곡의 No.1 싱글을 배출해냈으며, 앨범 역시 11번째 No.1을 기록했다. 뿐만아니라 타이틀트랙 'Magical Mystery Tour'의 자유분방함, 'The Fool On The Hill'이 전달해주는 환상적 분위기, 'Your Mother Should Know'의 상큼함, 'Strawberry Fields Forever'에 내재해있는 찬란한 슬픔등이 앨범을 마력적으로 감싸고 있다.

 

비틀즈의 내면세계가 심화되어 표출된 'White Album'

 

 

발매일 : 68.11.25.

Side A

Side B

1. Back In The U.S.S.R.

1. Martha My Dear

2. Dear Prudence

2. I'm So Tired

3. Glass Onion

3. Blackbird

4. Ob-La-Di, Ob-La-Da

4. Piggies

5. Wild Honey Pie

5. Rocky Raccoon

6. The Continuing Story Of Bungalow Bill

6. Don't Pass Me By

7.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7. Why Don't We Do It In The Road

7. Happiness Is A Warm Gun

8. I Will

.

9. Julia

Side C

Side D

1. Birthday

1. Revolution # 1

2. Yer Blues

2. Honey Pie

3. Mother Nature's Son

3. Savoy Truffle

4. Everybody's Got Something To Hide Except Me And Mr.Monkey

4. Cry Baby Cry

5. Sexy Sadie

5. Revolution # 9

6. Helter Skelter

6. Good Night

7. Long Long Long

.

 

 하얀 더블 재킷에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전위적인 시도로 선보인 15집은 셀프 타이틀(The Beatles)로 68년 11월에 선보였다. 대체로 비틀즈의 발랄했던 초기의 패턴이 다소 달라진 것은 10집 (Rubber Soul)부터였으며, 심화되기 시작한 것은 12집 (Revolver)이었고, 완전히 내면세계를 파고들었던 시기는 13집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와 14집 (Magical Mystery Tour)이었다. 그리고 비틀즈의 섬광이 극치에 달한 명반 중의 명반이라면 '화이트 앨범'이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앨범의 이름은 'The Beatles'였으나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재킷 때문에 'White Album'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한때 캐피틀 레코드사에서는 알맹이까지 흰색으로 찍어냈던 해프닝도 있었다. 이 앨범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Ob-La-Di, Ob-La-Da'이지만 오히려 이 곡은 그중 가장 처지는 곡으로 느껴진다. 레논과  매카트니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던 조지 해리슨의 나무랄데없는 리드 보컬이 에릭 클랩톤의 처절한 기타 어시스트와 함께 완벽한 트랙을 누비고 있는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의 화려함이 특히 눈에 띈다.

 연전에 머틀리 크루가 리바이벌했던 'Helter Skelter'에서는 80년대의 헤비메틀을 제시하기도했다. 두 장의 앨범에 가득 담긴 모든 작품이 듣는 이를 전대미문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특히 지난 12월 8일자로 타계 5주기를 맞았던 불후의 천재 존 레논의 자전적 독백 'Julia'와 'Happiness Is A Warm Gun' (마치 자신의 최후를 예견한 듯한)이 지금도 콧날을 시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운드트랙 'Yellow Submarine'과 최후의 스튜디오앨범 'Abbey Road'

 

발매일 : 69.1.13.

Side A

Side B

1. Yellow Submarine

1. Pepperland [instrumental]

2. Only A Northern Song

2. Sea Of Time & Sea Of Holes [instrumental]

3. All Together Now

3. Sea Of Monsters [instrumental]

4. Hey Bulldog

4. March Of The Meanies [instrumental]

5. It's All Too Much

5. Pepperland Laid Waste [instrumental]

6. All You Need Is Love

6. Yellow Submarine In Pepperland [instrumental]

 

 'White Album'이 12번째 No.1에 오른지 불과 한 달만인 69년 1월에 비틀즈는 만화영화 'Yellow Submarine'의 사운드 트랙을 16집으로 공개했다. (앨범 차트 2위) 이 영화는 러브 스토리의 작가로 너무나 유명한 에릭 시걸이 각본을 쓰고, 'Ai No Korida(퀸시 존스가 발표해 유명해졌다)의 작곡자인 찰스 젠킨스가 특수효과를, 그리고 조지 더닝이 그림을 그린 만화영화였다.

 

발매일 : 69.10.1.

Side A

Side B

1. Come Together

1. Here Comes The Sun

2. Something

2. Because

3. Maxwell's Silver Hammer

3. You Never Give Me Your Money

4. Oh! Darling

4. Sun King

5. Octopus's Garden

5. Mean Mr. Mustard

6. I Want You (She's So Heay)

6. Polythene Pam

.

7. She Came In Through The Bathroom Window

.

8. Golden Slumbers

.

9. Carry That Weight

.

10. The End

.

11. Her Majesty

 

 그로부터 9개월후인 69년 10월에 비틀즈 최후의 스튜디오 앨범이자 그들의 3대 명반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17집 'Abbey Road'가 공개되었다. 당시 비틀즈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숱한 루머를 동반하며 과장 보도되기 일쑤였다. 그중의 하나가 폴 매카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헛소문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도 AFKN을 통해서 폴이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토픽 뉴스가 보도되었고, 국내의 팬들이 큰 충격을 받았던 해프닝도 있었다.

 이러한 소문의 발단은 'Abbey Road'재킷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앞에서 세 번째로 길을 건너고 있는 폴만 신발을 신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어느 상상력 풍부한 (?) 기자의 착상에서 나온 해프닝이었다. 어쨌든 숱한 화제를 남겼던 'Abbey Road'에는 조지 해리슨의 애절한 보컬 테크닉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Something'이라든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았던 'Come Together'와 'Oh! Darling'등이 수록되어있다.

 그러나 역시 'Here Comes The Sun'과 투명한 시냇물처럼 아름다운 'Because'로 오프닝을 연후, 'You Never Give Me Your Money'로 시작하여 'The End - Her Majesty'로 마무리짓는 8부작 메들리가 'Abbey Road'의 백미이다.

 

히트싱글 모음집 'Hey Jude'와 최후의 앨범 'Let It Be'

 

 

발매일 : 70.2.26.

Side A

Side B

1. Can't Buy Me Love

1. Hey Jude

2. I Should Have Known Better

2. Old Brown Shoe

3. Paperback Writer

3. Don't Let Me Down

4. Rain

4. Ballad Of John And Yoko

5. Lady Madonna

.

6. Revolution

.

 폴이 존의 아들 줄리안 레논을 위해 만든 'Hey Jude'를 타이틀 트랙으로 열 곡의 히트 싱글을 모은 18집이 90년 2월에 선보이며 비틀즈는 70년대를 열었다. 언제부터인가 기르기 시작했던 이들의 머리와 수염은 이제 도인을 방불케하는 덥수룩함으로 변모했음을 재킷에서 발견해낼 수 있다. 특히 존에게서 그러한 인상을 더욱 짙게 받게되는데, 아직도 폴은 유일하게 수염을 기르지 않은 말쑥함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다. ('Hey Jude'는 앨범 차트 2위)

 

  'A Hard Day's Night'과 'Help!'그리고 'Yellow Submarine'에 이은 네 번째 비틀즈 영화이자 최후의 앨범이 되어 버린 19집 'Let It Be'는 70년 5월에 출반되었다. 세미도큐멘타리식으로 만들어진 'Let It Be'는 본래 TV용으로 제작되었으며 69년 1월 2일에 크랭크인되었다.

 이때부터 이미 비틀즈는 'Abbey Road'가 발표되기전부터 끈질기게 나돌던 해산설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먼저 존이 오노 요코와 함께 앨범 'Two Virgins'를 낸 것을 필두로, 조지가 솔로 앨범 'Wonderwall Music'을 발표했다. 한편 폴은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출반할 무렵부터 의뢰받았던 영화음악 'Family Way'를 발표했고, 링고는 'Candy'라든가 배드핑거가 음악을 맡았던 'Magic Christian'에 영화배우로 데뷔한 것등이다.

 

 

발매일 : 70.5.18.

Side A

Side B

1. Two Of Us

1. I've Got A Feeling

2. Dig A Pony

2. One After 909

3. Across The Universe

3. The Long And Winding Road

4. I Me Mine

4. For You Blue

5. Dig It

5. Get Back

6. Let It Be

.

7. Maggie Mae

.

 

 이러한 와중에서도 애플 레코드의 경영 책임자였던 닐 애스피널이 제작을, 마이클 린지호그가 감독을, 토니 레니가 편집을 각각 맡아 영화 'Let It Be'를 완성해냈으며 1970년 5월에 앨범도 공개되었다. 필 스펙터가 앨범 제작을 담당했으며 조지 마틴이 크게 어시스트해 준 이 음반에는 건반악기의 모든 것을 아는 빌리 프레스톤이 찬조출연하여 종횡무진으로 화려한 반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는 'Get Back'과 'The Long And Winding Road', 그리고 타이틀 트랙 'Let It Be'등 무려 세 곡이 No.1에 올랐으며 앨범 역시 14번째 No.1을 기록했다.

 

 이로써 비틀즈는 1964년 1월의 데뷔 앨범 'Meet The Beatles'로부터 1970년 5월의 마지막 앨범 'Let It Be'에 이르기까지 불과 7년동안에 19장의 앨범을 남겼으며 그 중 5장의 앨범을 제외한 14장을 모두 앨범 차트 1위에 올려놓는 불후의 기록을 수립해냈다. 뿐만 아니라 64년 1월 18일자로 No.1에 오른 'I Want To Hold Your Hand'로부터 70년 6월 23일자로 No.1에 오른 'The Long And Winding Road'에 이르기까지 모두 20곡의 싱글이 No.1에 오른 믿기 어려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서강석(lennon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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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민노당- 중원, 우리당-영천 이기면 국회 변한다”

다른거 다 때려치우고 권의원 말씀대로만 돼도 대한민국 업그레이드인데...

이번에는 반드시 제 가치대로 표받아야 할 것이며 향후 정당명부 비례대표 비율 50:50으로 늘려야 할 것

 

 

 

 

권영길 “민노당- 중원, 우리당-영천 이기면 국회 변한다”
“민노당 수도권 진출-우리당 지역주의 타파로 지각변동 가능”
2005-04-28 22:15 김달중 (daru76@dailyseop.com)기자
97년에 이어 2002년 대선에 출마했던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당선이 무위로 돌아갔다는 것을 안위삼아 쓰린 속을 몇 잔의 소주로 달랬다면서 경기도 성남 중원지역에 출마한 정형주 후보가 같은 전처를 밟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4·30 재보선 돌입과 함께 매일 오전 7시 출근길에서 정형주 후보 유세를 지원했던 권 의원은 28일 “정형주를 당선시켜 권영길에게 졌던 마음의 빚을 털어달라”고 당부했다.

권 의원은 “97년에 이어 진행된 2002년 대선은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주었다”고 털어놓았다.

권 의원은 “누가 노동자 서민에게 아픔을 주는지 유권자가 잘 판단하실 것이라는 생각했고 비록 당선은 아니라도 우리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는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러나 권영길에게 표를 주면 이회창씨가 당선된다며 사표론이 제기되었고 민주노동당을 괴롭혔다”고 밝혔다.

‘꼭 찍어야 하는데, 이번만은 밀어주려고 했는데, 다음에는 정말 다음에는...’

권 의원은 이같은 유권자들의 지지철회가 이어지자 “나를 비롯해 모두가 할 말을 읽었다”면서 “반개혁적인 이회창 씨의 당선이 무위로 돌아갔다는 것을 안위 삼아 쓰린 속을 몇 잔의 소주로 달래며 또 다시 미래를 기약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이후 이어진 2004년 4·15 총선. 그러나 탄핵이라는 바람은 ‘수구세력청산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열린우리당에게 과반을 몰아주어야 한다며 또다시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을 어렵게 했다고 권 의원은 주장했다.

때문에 당시 박빙의 승부처인 성남중원도 탄핵의 열풍에 여지없이 승리의 기대가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4·30 재보선에 대해 권 의원은 민주노동당이 성남에 승리를 거둬 첫발을 디디고, 경북 영천에서는 한나라당이 패배해 열린우리당 후보가 당선이 될 경우 17대 국회에서 큰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권 의원은 이어 “수도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은 국회 내 영향력이 한 증 강화될 것이며 한나라당의 아성이 무너진 영천을 시작으로 지역주의가 무너져 그 파급력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비록 두 번의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한 상황에 막혀 꿈을 접어야 했지만 이번만큼은 여러분께서 대의를 선택해 주기 바란다”며 “두 번의 대선동안 나를 지지하지 못해 부채의식을 가지셨다면 이제는 정형주를 당선시켜 마음의 빚을 털어 달라”고 당부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 김달중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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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사정, 독일에서 이것만은 제대로 배우자

독일 노사정협의회에 관한 좋은 글! 별도의 개인적 학습이 요구됨. 진보누리에서 퍼옴 www.jinbonuri.com

 

 

 

 

한국노사정, 독일에서 이것만은 제대로 배우자
조회수 70
한국의 노사정, 독일에서 이것만은 제대로 배우자
사용자는 사회적 책임, 노동자는 연대, 정부는 교섭 여건 마련
 
매일노동뉴스 4월 16일자 기사
 
 
 
▲ 이상호 진보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대통령의 순방을 계기로 독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주요일간지 기사들이 ‘위축되고 있는 독일노조’와 ‘잘 나가는 한국기업’에 대한 내용들을 뚜렷하게 대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독일경제의 어려움에 상당부분이 독일노조의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한편, 한국기업의 국제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소위 ‘강성노조’가 투쟁기조를 자제해야 한다는 보수언론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수언론들은 기사들은 그들의 말대로 ‘저가경쟁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한국기업들이 독일기업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일노조가 노동자의 연대성 강화를 위해서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독일 사민당 정부에 의해서 추진된 ‘고용을 위한 동맹’이라는 노사정협의체가 왜 파탄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동조합운동의 위기’, ‘노사정위원회 참가’와 같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 현재 국면에서 바라볼 때, 독일의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세 가지 사례소개를 통해 독일의 경험이 현 시기 교착상태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노사정 관계에 어떤 함의를 주는지 유추해보고자 한다.

아우토비젼 프로젝트 :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배우자

지역사회의 중심기업이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책임(CSR)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독일 중북부에 위치한 볼프스부르크시(Stadt Wolfsburg)에서 폭스바겐사가 지방정부와 함께 97년부터 추진한 ‘아우토비젼(AutoVision)’ 프로젝트다.

지역산업의 구조개혁과 재생을 목표로 한 이 프로젝트는 부품기업의 입지기반 확충을 위한 ‘부품단지조성’, 자동차관련 중소기업의 창업지원을 위한 ‘혁신캠퍼스사업’, 주거환경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기능문화시설’, 지역 내 실업자의 취업알선을 위한 ‘인력지원기구’ 등의 핵심사업을 추진했다. 그 성과는 97년 17.2%에 이르던 실업률이 2003년 8.4%로 줄어들고, 이 기간 동안 약 150개 이상의 부품기업들 외에, 100개 이상의 산업서비스 관련기업들이 창업한 것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이 프로젝트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러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볼프스부르크 지역산업 및 경제의 중추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폭스바겐이 경영악화와 경기불황이라는 악조건 하에서도 지역사회의 다른 중소기업, 영세사업장 노동자, 그리고 지역주민을 위해서 자신의 재원을 출연하는 한편, 지역실업자들의 직업교육 및 재훈련을 위해서 자신의 시설을 이용하도록 배려했다. 즉 아우토비젼 프로젝트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떻게 지역사회의 발전과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사례는 중심기업이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공헌하고 지역주민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낼 때 자신의 질적 경쟁력이 실질적으로 확보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아우토비젼의 성공에 의해 볼프스부르크시의 산업입지역량이 강화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이곳으로 이주했으며, 창업활동 또한 활성화됐다.

이러한 긍정적인 선순환과정을 통해 실업축소와 고용창출이라는 결과뿐만 아니라, 폭스바겐사의 기업경쟁력도 향상된 것으로 평가된다.

바로 이러한 사례는 아직도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윤리경영’이나 ‘사회공헌활동’ 정도로 생각하고 그 광고효과만을 계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독일대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기업이미지 개선이라는 단기적 이익에 매몰되지 말고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 연관업체들과의 공존과 협력,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폭스바겐 5000 X 5000 모델 : 노동자의 연대성을 배우자

한편 독일노동조합이 지역사회의 현안인 실업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능동적으로 대응한 사례가 존재한다. 지난 2001년 8월 28일 폭스바겐 노사는 새로운 차종인 미니밴 ‘투란’을 제조하는 공장에 적용되는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5000 X 5000 모델’이라고 불리는 이 협약은 이 공장에서 일할 사람 5천명을 지역 내 실업자 중에서 채용하고, 이들의 총 월급수준을 5천마르크로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이들이 생산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일정기간의 직업교육(6개월)을 폭스바겐 노사공동위원회 주관 하에 진행하는 한편, 그 기간 동안 단계적으로 월급총액을 상승시킨다는 것을 합의했다.

필자가 이 모델에 주목하는 것은 폭스바겐이 채산성 문제로 인해 동유럽에 미니밴공장을 세우려 할 때, 노조가 적극 나서 국내유치로 방향을 선회하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 신공장에 반장급 이하의 전 직원을 기존 실직자들 중에서 선발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동유럽의 임금수준을 고려할 때, 비용경쟁력 측면에서 국내공장의 신설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어려운 선택이었다. 이때 노조는 인건비위주의 비용산정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미숙련실직자의 신규채용을 위해서 자신들이 지금까지 지켜왔던 단협체계를 일정하게 양보한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가 현직 폭스바겐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피해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노동시간과 임금체계의 유연화협상이 종업원평의회의 동의 하에서 추진된다는 노사교섭의 기본원칙이 무너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연평균 28.8시간으로 협약화된 주간노동시간을 42시간으로 연장하고 이들 신규채용자의 고용관계를 비정규직으로 할 것을 주장한 사용자의 요구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독일노동조합은 지금까지 정부의 책임으로만 치부해 왔던 실업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노동시장의 ‘내부자’라는 사회여론의 비판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외부자’로서 실직상태에 있는 동료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을 연 ‘아우토 5000 모델’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한편 3년이 지난 지금 이 모델이 성공적이라는 독일 언론과 노사의 평가를 접하면서 한국 대기업 노동조합운동을 되돌아본다. 비정규직의 축소와 해결을 위해서는 분명 사회적 차원의 법제도적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현 정부가 비정규직 양산법을 이 시점에도 추진하고 있고 조직노동자들조차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남는 아쉬움은 어려운 조건 하에서도 노동자의 연대성 강화라는 노조운동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대기업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에 있다. 대자본, 대정부와의 교섭과 투쟁도 중요하지만, 동료노동자인 비정규직문제에 대해 실리주의적 경향으로 치닫고 있는 조직노동자들의 혁신을 위한 민주노동운동진영의 내부투쟁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고용을 위한 동맹 : 정부는 사회적 교섭의 여건을 조성하라

지난 98년 12월 7일 독일의 노사정대표자들은 ‘일자리, 직업훈련 및 경쟁력을 위한 연대’라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한다. 16년간의 보수당 집권을 종식시키고 출범한 독일 적녹연정의 슈뢰더 총리는 고실업과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길을 노사정의 공동노력에 기초한 일자리창출, 직업훈련체계의 고도화, 산업경쟁력의 질적 향상에서 찾고자 했다. 하지만 청년예비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직훈생들의 일자리 확대, 단체교섭의 분권화, 해고규정의 완화 등과 관련된 노사정간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다 마침내 2003년 3월14일 고용을 위한 동맹은 결렬된다.

약 4년4개월간 지속된 고용을 위한 동맹의 경험은 사회적 정책협의제도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초기에 저숙련 노동자 및 장기실업자의 직업재교육과 고용기회 확대방안, 고용촉진을 위한 소득정책과 조세정책, 혁신적인 노동시간정책 등과 같은 내용에 대해 노사정이 합의를 도출하는 성과를 보였음에도, 결국 노사정협의체가 깨지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독일정부다.

독일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용자의 책임사항으로 노사정간에 합의된 직훈생 일자리의 확대를 사용자단체가 계속적으로 회피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해 슈뢰더 정부는 합의를 법제도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들을 취하지 않았다.

주요 경력
95년 9월 독일로 유학. 경제학 전공
2002년 독일노총(DGB) 박사논문지원 장학생.
현재 '수직적 노동분업과 노동조합의 정책'이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음.
저서 ‘독일공동결정제도의 사회경제적 효과’(석사학위논문, 1995), ‘독일노동운동의 자기정체성 모색과 현실적 딜레마’(한국노동연구원, 2005년 5월 출간 예정) 등
연구성과  ‘독일노동시장의 변화와 노동조합의 고용정책’
반면, 당시에 노사정간에 합의되지 않고 있던 해고규정의 완화조치, 사회부조와 실업부조의 통합안을 정부가 ‘노동시장의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독자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노동조합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무책임한 친자본적인 정부의 태도는 결국 사회적 교섭에 대한 노동조합의 기대와 신뢰를 상실하도록 만들었고, 그들을 대화의 자리로부터 떠나도록 만들었다.

즉 노사정협의체의 기본원칙을 스스로 부정한 독일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사회보장의 축소, 법인세의 감축과 같은 친사용자적 요구들은 수용한 반면, 청년실업해소의 관건이 되는 직훈생의 일자리, 중소기업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조정하는 해고규정의 완화 등을 밀어붙임으로써 노조를 자극했던 것이다.

이러한 독일의 실패 경험은 현재 재가동 상태에 있는 노사정대표자회의라는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정부가 최소한 지켜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기왕에 성사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단순한 대화의 자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는 이를 사회적 교섭기구로 발전시키기 위한 여건을 우선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산업별 교섭구조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제도적 정비에 힘을 쏟아야 한다. 또한 독일정부의 실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동운동진영이 반대하고 있는 현재의 비정규직법안,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 옆구리를 쑤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역사적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노사정관계의 보편적 발전경향이 존재한다고 하면, 현 시기 대기업의 사용자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실천에 옮겨야 하고 조직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동료들과의 연대를 위한 조직체계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노사의 노력을 법제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하고 엄호하는 정부의 발상전환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이상호 진보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 
기사입력시간 : 2005년 04월23일 [03:56] ⓒ 진보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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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라의혹세무민] 일본 민주화 위해 간첩을 파견하자!

썩 적절한 글!

일본은 민주주의의 역사가 없다. 여적찌기 자민당 치하이다. 코리아는 민자당을 극복 중이다.

밥먹는 것만 알지 철학이 없는 돼지들! 그러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일본은 소비왕국 경제대국이지 결코 선진국이 아니다.

 

 

 

일본 민주화 위해 간첩을 파견하자!
일본의 우익기조를 흔들 간첩 육성이 시급하다
2005-04-28 17:44 김구라 방송인 
KBS라디오에서 발언했던 ‘엽기 독도 해법’이 <헤럴드경제>에 소개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낳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말한 내용은 이렇다. 강원도 강릉과 경상북도 울진, 그리고 경상북도 울릉군 소속 독도를 3각으로 엮어서 간척을 하자는 제안이다.

자, 이렇게 되면 우리 한반도의 지도가 볼록 돌출된 ‘봉’을 갖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본 열도는 발기한 생식기 밑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한 것이 문제가 돼 KBS 자체 심의의 도마 위에 올랐다. 사실 지상파에서 ‘발기’라는 말조차도 품위가 없다고 지적을 받고 있는 형국이니 이 말 역시 그냥 넘어갈리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이라서 더 하지 못했던 말이 있다. “자, 발기된 토끼의 ‘X'밑에 있는 일본은 그럼 뭘까요? 뿌려진 뭐 모양 아닌가요?”라는 부분이었다. 물론 전체 일본 국민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X물’같은 일부 잡것들에 대한 경고였다. 그들은 일본의 나라밖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일본은 왜 이럴까? 구체적으로 말해, 왜 지구상에서 종적도 찾기 힘든 극우 꼴통들이 일본 사회에서만 안방마님처럼 행세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3.1, 4.19, 5.18, 6.10, 그리고 탄핵 반대 집회 같은 민주혁명의 역사를 저들은 갖지 못하고 있다.

사실 지금의 일본의 정치 체제도 맥아더 장군께서 친히 만들어주신 것이 아니던가. 허수아비 왕정에, 친미 전범 세력들로 가득한 내각을 보라. 우리 국가 체제가 미국에 종속됐다고 개탄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일본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처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미국의 속국이다. 그렇다고 이 자들이 미국을 절대선으로 생각하느냐면 그렇지도 않는다. 겉으로는 미국에게 굽실대는 척 하면서도, 진주만 폭격의 짜릿한 추억을 언제든 재연하겠다는 통빡을 여전히 굴리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제국주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음지에서 흘러서 양지를 향해 솟구치고 있는 중이라고 본다.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개한 왜구들에게 선진문물을 전수하신 왕인 박사님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그 사명감으로 일본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이 시대 최고의 애국 민주 인사들을 파견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우익들만 판치는 일본이 민주화가 된다면 좌파든 우파든 다양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올 것이고, 꼴통들의 헛소리는 자연스럽게 한 구석탱이로 소외될 것이 뻔하다. 이렇게 된다면 일본 사회는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또 망언의 수위도 횟수도, 잦아들고 줄어들게 될 것이다. 또 이렇게 되면 우리가 피곤하지 않다.

그렇다. 동북아시아 평화, 거저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사회에서 친일매국노 취급받는 사람들을 일거에 소환해 '전향서'를 받고, 이들을 일파간첩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일본으로 암약시켜 그 사회의 우익적 근간을 뿌리채 흔드는 것이다.

행동하는 우익, 애국세력의 정신적 지주 조XX 선생을 파견해, ‘일본왕궁 앞으로 탱크를 몰고 가 박살내자’라는 격문을 써서 선동케 한다.

그 다음 청년 애국 세력의 상징 신XX 군을 내세워, <돈립신문 일본판>을 창간하도록 도와준다. ‘한 번만 더 원수 같은 일본 제국주의적 망발을 퍼부을 경우 네 머리를 아작 내겠다’며 고이즈미를 상대로 한 스나이퍼 패러디를 만들도록 부추긴다. 넷심을 잡는 사전 포석이라 하겠다.

그 다음 다른 애국인사 지XX 선생도 파견해 ‘히로히토는 빈 라덴과 같은 존재이다’, ‘히로시마 피해자들은 야부리를 까고 있다. 생긴 것 봐라. 얼마나 건강한가.’ 이런 폭탄발언을 남기도록 하는 것이다.

학자들도 ‘성전(聖戰)’에 동참해야 한다. 한XX 교수님을 보내 ‘우리에게 원폭은 축복이었다’라는 논문을 발표케 하고, 이영훈 교수님을 통해서도 ‘일본 교과서는 신화적 요소가 많으며 따라서 과장이 많다’라는 말을 쏟아내도록 만든다.

연예인들이라고 숨어 지낼 수 없다. 요즘 KBS MC사퇴로 일본 네티즌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과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조XX 선생이 ‘국민의 힘으로 민주헌정질서를 만들어 낸 한국이 일본의 한 수 위’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엮어준다. 그리고 <산케이신문> 구로다 기자와 함께 독립기념관을 참배토록 주선한다. 송XX 씨도 이제 음지에서 나와야 한다. <왜놈들 왜 이래?>라는 노래도 발표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이즈미 부인을 가리켜 ‘씨발년’이라고 한 마디 함으로써 양심적 세력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야 한다.

또한 깃발 태우기의 일가견이 있으신 박XX 목사님으로 하여금 반일반고(반 일본 반 고이즈미)국민연대를 조직해, 일본 도쿄에 있는 대형 광장에 모여 일장기를 불태우고, 급조한 고이즈미 동상도 소각하고, ‘이순신 장군 만세!’를 외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뭔가 몸 풀지 않고서는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 분’들에게 일감을 주는 것은 물론, 성취감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수구꼴통’이라는 오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될 거싱다.

일본은 우리의 손길이 필요하다. 밥 먹는 것만 알지 철학이 없는 돼지들. 이 돼지들에게 약을 줘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왕인 박사의 후예인 대한민국 국민들이 해야할 일이다.


외부 필자의 컬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 사이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패러디 컬럼은 문자 그대로 패러디로서, 현실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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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전)대표님, 감축드립니다.

진짜 왜 그런 방향으로 생각 몬했을까? 이해찬 이 양반은 역시... 와...

 

 

 

권영길, 의원직 유지 ‘파란불’


사문화된 `제3자 개입금지' 위반 혐의로 기소돼 10년 넘게 재판을 받아온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관련법 개정으로 혐의를벗고 의원직 상실 위기를 모면할 가능성이 높아져 눈길을 끌고 있다.

제3자 개입금지는 지난 1997년 이미 없어진 조항이지만 과거 위반 행위까지 소급적용하는 부칙이 관련법에 남아있어 권 의원을 옭아매왔던 것. 이에 민노당 단병호 의원은 이 같은 부칙을 폐지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제출했고, 국회 환경노동위는 26일 전체회의에서 이를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이번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무리없이 처리될 전망이어서 권 의원은 재판에서 실형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으며, 따라서 의원직을 유지하게 될전망이다.

집시법 위반 등 혐의가 남아있긴 하나 법원이 이 정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하기는 무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권 의원 측은 27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독소 조항이 폐지돼 재판에 좋은 영향이 있을 것 같다"면서도 "이번 개정안은 악법에 의해 피해를 본 모든 분들에게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단 의원이 이 같은 개정안을 제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이해찬 국무총리의 조언 덕분이었다는 후문이다.

이 총리는 지난 2월초 민노당 의원들을 총리 공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가진 자리에서 권 의원의 재판 상황이 화제에 오르자 단 의원에게 "부칙을 폐지하는 개정안을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총리는 과거 13대 국회 때 노무현 대통령, 이상수 전 의원과 함께 `노동위 삼총사'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만큼 과거 경험을 십분 활용해 결정적인 힌트를 준 셈이다.

이에 단 의원 등 민노당 관계자들은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라며 이 총리의아이디어에 감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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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국사교과서 일제 수탈 과장&quot;, 퍽크유다

이제 더이상 일제가 조선을 근대화 시켰다는 둥 아니라는 둥 이따위 소모적인 논쟁 그만하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즉답을 회피하자는게 아니라...

 

예를 들어 조선 철도... 세계 3대 철도에 들어갈 만큼 잘 만들었단다. 지금도 보수 안하고 계속 쓰는 정도다.

 

결론은...

이 철도는 일본 대자본과 그에 종속된 소수 조선 자본을 위해 일본 자본주의 국가가 그냥 만든 것이다. 제국주의는 오로지 자본 재생산을 위한 최후의 발현 형태이며 그에 기대어 조선 자본도 궁물 좀 받아먹은거 있을꺼다.

 

반면 피착취 수탈자는 조선 민중 외에 일본 민중도 포함된다. UN산하 국제노동기구ILO의 설립는 2차대전 당시 일본내 장시간 저임금 문제의 대두로부터 비롯되었단다. 즉 침략하는 입장에서도 그 내부적으로는 자본주의 계급에 따라 처지가 나뉜다. 유린당하고 동원당하는 쪽 또한 마찬가지다.

 

아래 영훈이 같은 인간은 오로지 통계 숫자만 뚜드리고 있을테니 질적인 차이에 대해 모를 것이다. 고로... 영훈이 들어가! 나오지마!

 

 

 

 

이영훈 “국사교과서 일제 수탈 과장, 신화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문제로 한·일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가운데 한 국내 학자가 거꾸로 우리 국사 교과서가 일제의 수탈상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사학자이자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자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23일 웹진 ‘뉴라이트’(www.new-right.com)에 기고한 글 ‘북한 외교관과 남한의 교과서가 빠져 있는 허수의 덫’을 통해 “일제시대 경제적 수탈뿐 아니라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우리 교과서의 서술도 ‘사실’이 아닌 ‘신화’”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글에서 최근 북한 유엔대표부 김영호 서기관이 제네바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위안부의 수가 20만명, 강제 연행된 인구가 8백40만명이라고 말한 사실과 남한의 고등학교 교과서가 위안부의 수를 ‘수십만’으로, 강제로 끌려간 사람을 6백50만명으로 기술하고 있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 숫자들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강제 연행자의 숫자에 대해 “1940년 국세조사에 의하면 당시 20~40세의 조선인 남자의 총수는 3백21만명이었는데 그 나이의 남자들을 모조리 다 끌고가도 반을 채울 수 없는 숫자가 교과서에서 가르쳐지고 있다”며 “당시 16~21세의 조선 여자는 1백25만명으로 그 중 ‘수십만’이 위안부로 동원됐다는 교과서 기술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징용·징병으로 강제 동원된 남자가 ‘6백50만명’ 혹은 ‘8백40만명’이었다는 것에 대해 부풀려졌다고 주장했다.

〈김동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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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쉰문과 청와대는 들으라

패러디 왕국의 적절한 지적! 사실 지난 번 딴나라 전재희 우원 누드 패러디는 엄청난 모독과 명예훼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딴나라에 대한 모욕이 아니었다. '낙원 상실'이라는 르네상스 명화 원판 그 자체에 대한 모독이었다. 진주 목거리를 돼지 목에 거는 것도 죄이다. 그 패러디를 보고 꼴린다면 정말 대단한 짐승들이다.

 

 

 

[성명] 독립쉰문과 청와대는 들으라

2005.4.25. 월요일
딴지 편집국

 

패러디가 뭔지 그 개념조차 생소하던 암울한 20세기말.. 혜성처럼 출현해 국내 패러디계의 배아줄기세포가 되어 버린 본지.. 청와대의 독립쉰문 수사의뢰에 즈음하여 원로로서 한마디 하고자 한다.

먼저 독립쉰문에게.

독립쉰문, 얘야, 그게 뭐니. 자고로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법. 니가 딱 그짝이다. 얘야, 패러디가 뭐라 생각하니. 패러디라는 게 성립되려면 말이다, 몇 가지 기본 전제가 충족돼야 해요. 우선 오리지널이 존재해야 한단다. 모사할 원본 말이다. 그것도 해당 패러디를 접할 구경꾼들 대다수가 그 주요한 속성을 사전 인지하고 있을만큼 알려진 원전이 존재해야 하거든. 패러디라는 게 이미 알려진 원전의 주요한 속성 몇 가지를 빌어와 - 이미 사람들이 그 속성을 알고 있으니까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 - 그 속성을 살짝 비틈으로써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우회적,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간접화법이거든.

게다가 패러디는 본질적으로 방백이야. 상대에게 말하는 거 같지만 사실은 구경꾼들에게 말하는 거라구. 왜 직접 말하지 않고 구경꾼들에게, 그것도 돌려 말하느냐. 그게 훨씬 세련되고 재밌거든. 더구나 직접 공격하면 반발할 상대도, 그렇게 구경꾼들이 웃어 버리면, 거기다 대고 화냈다간 속 좁고 좀스런 놈 되어버리니까 뭐라 할 수 없게 되는 거지. 바로 거기에 패러디 미학의 정수가 있는 거야.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도 구경꾼들의 웃음으로 열 받은 상대를 주저앉혀 버린단말이지.

그래서 패러디는 애초부터 불균형한 권력역학 구조 속에서만 탄생하는 표현양식이야. 생각해 봐. 힘쎈 놈이 약한 놈 패는 데 구경꾼들 응원이 왜 필요하겠어. 그냥 줘 패면 되지. 그러니까 패러디는, 권력 없는 이들이 권력 가진 자를 야유하고 조롱하는 데 더할 나위없이 효과적인 문화적 표현양식인 게야. 패러디라는 양식은 존재 그 자체에 그렇게 정치성을 이미 내재하고 있는 거라고.

자 그럼 한 번 살펴보자, 니가 뭘 잘못했는지.

우선 넌 한 가지 기본은 만족시켰어. 힘 없는 놈이 힘 쎈 놈에게 덤빈 거. 너도 비장하게 씨불였잖아. <패러디는 권력과 힘을 가진 자에 대해 과감하게 할수록 정당하다>고. 맞는 말이야. 말 잘했어. 쫌 멋지기까지 해. 그런데 얘야, 그 만든 사진의 오리지널이 도대체 뭐니. 이미지의 원전을 도저히 모르겠단 말은 그 원전으로부터 빌어와 우회적으로 활용한 속성이 없다는 말이거든. 그러니까 그 원전에 애초 담겨 있는 속성을 살짝 비튼 우화적 간접화법이 아니라, 그냥 니가 하고 싶은 말 직접 씨불여 버린 직설화법이 되어버린 거란 말야. 말하자면 패러디를 하고 싶긴 했는데 그게 니 뜻과는 다르게, 되다가 만 거지.

멋들어진 소설 한 편 쓰고 싶었는데, 제대로 기본 내러티브도 못 갖춘 3류 통속 소설이 돼 버린 거라구. 그러니까, 니가 수사를 받는 건 니가 패러디를 해서가 아니라, 그게 전혀 패러디가 아니란 오해를 줘서인 게야. 당한 사람들은 대놓고 욕했다고 본 거지. 적어도 이 사태 원인의 1/3은 거기 있어.

두 번째, 패러디의 가장 큰 응원군은 박장대소하는 구경꾼이란 말야. 근데 그걸 보고 아무도 웃질 않았던 게야. 노무현을 지지하든 않든 말야. 니가 사람들을 못 웃긴 거지. 누굴 탓하겠어. 니가 안 웃긴 걸. 그게 1/3. 그래서 합이 2/3.

그러니까 지금 넌 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반체제 인물이나 정치적 인사가 아니라, 원하는 걸 제대로 된 양식으로 표현하는 데 실패한 후진 예술가라구. 스스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든 말야. 그러니까 2/3는 남탓을 할 게 아니라 니 머리를 탓해. 하지만 말야, 아무리 그래도 머리 나쁜게 죄는 아니거든. 죄는 아니라구.

바로 이 대목서부터 본지, 청와대에 할 말이 있어.

자, 여기 기본 골격도 제대로 못 갖추고 맞춤법도 틀린 데다 비문 투성이인 3류 통속 소설이 시장에 나왔어. 이 소설가 잡아갈까, 죽일까. 소설이 수준 미달이라고 말야. 당연히 아니지. 그 소설은 독자에게 외면 당하는 것으로 처벌받는 거잖아. 그게 문화의 논리 아냐. 예술적 재능이 대중으로부터 외면 당하는 건 창작자에게 사형과도 같은 거니까. 창작 그만 하라는 거니까. 예술가로선 죽으라는 거니까.

그런데 말야, 왜 자꾸 패러디만 문제가 되는 거야. 왜냐. 패러디 당한 사람이 기분 나쁘거든. 그리고 그 대상들은 거의 언제나 상대를 벌할 충분한 크기의 권력을 가지고 있거든. 패러디의 양식적 특성상 애초 그렇게 권력 있는 자들만 주인공이 되니까. 물론 구체적 인물이 아니라 주류적 감성이나 지배적 질서 같은 관념적 권력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구체적인 인물, 권력 있는 자들이지.

이번엔 그 주인공이 대통령이야. 대통령더러 대가리 총맞고 싶냐고. 이 씨발. 기분 나쁘지. 그치? 그래 기분 나빠. 지지자는 뒤집어질 노릇이고 지지자가 아니어도 불편하지. 근데 말야, 패러디의 속성 자체가 원래 그래. 권력을 가진 상대가 기분 나쁘라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상대가 기분 나쁘면 나쁠 수록 1차 목적은 달성한 거라고. 그래도 정도가 심했다고 말하고 싶지? 맞아.

왜냐. 양식을 제대로 못 갖춰서 세련미도 없고 우회적 조롱이나 골계미도 없어서. 그래서 그저 듣는 사람 기분 나쁘고 구경하는 사람 불편한 직접적 시비가 되고 만거야. 수준미달의 패러디지. 그러니까 실패한 패러디야. 원전의 속성을 빌어오는 데도 실패했고 구경꾼들을 박장대소하게 하는 데도 실패했으니까.

하지만 말야, 패러디라는 문화적 표현 양식은 왜 유독 법이 그 실패를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니. 실패한 소설이 독자의 외면으로 심판 받는 것처럼, 실패한 패러디도 구경꾼의 외면으로 심판받아야 하는 거라구. 성공한 패러디가 구경꾼들의 환호를 받으며 엄청난 파급력과 메시지 전달력을 가지는 반면, 실패한 패러디는 이게 뭐야.. 하는 반응으로 오히려 스스로 조롱거리가 되는 걸로 대가를 치르는 거라구. 그게 패러디라는 양식에 걸맞는 처벌이라구.

법원으로 들고 가서 어떤 표현까지는 괜챦고 어떤 표현부턴 봐줄 수 없다고 선을 그으려거든, 아예 패러디라는 장르 자체를 인정하지 마. 그게 솔직한 거야.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화 나는 거, 니들이 참아. 문화라는 게 원래 그렇게 자의적인 기준밖에 없는 거야. 좋은 작품, 나쁜 작품. 다 자의적이야.

이 장르 자체를 문화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표현 양식의 하나로 제대로 인정하려거든, 그럼 심판은 구경꾼들에게 맡겨. 소설하고 다르다고 생각하지마. 문화적 의미, 똑같아. 실패한 패러디도 법이 처벌할 일은 아니라구. 절대.

해서 패러디의 단군, 본지는 이번 수사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바야. 독립쉰문의 되다 만 패러디의 내용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정치적 의사표현의 하나로서 풍성한 문화적 표현 양식의 하나로서, 패러디 자체를 위해 수사를 반대해. 패러디라는 형식 그 자체와 그걸 즐기고 만들 권리는, 대통령 혹은 그 측근들의 기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라구. 본지는 그렇게 생각해.

마지막으로 독립쉰문, 넌 앞으로 패러디 하려거든 엉아들한테 물어보고 해. 이렇게 하면 패러디 맞냐고. 머리가 나쁘면 지가 머리가 나쁘다는 것 정도는 인정하고 살아야 남들한테 큰 피해는 안 준다구. 엉아들이 너땜에 동종 업계에 있는 게 제발 쪽팔리진 않게 해줘. 이상이야.

 

딴지편집국(chongsu@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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