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의 동력

칼럼

맑스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가 뚜렷한 계급의식을 가지고 그 계급의식이 유지되어야만 개혁이나 혁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데 기존 경제질서에서 각자의 이해관계는 분열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프롤레타리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이해관계도 그렇다. 따라서 모두가 파업이나 시위에 참여하여 경찰들의 곤봉을 맞아가며 같은 고통을 겪고 서로 하나가 되는 경험, 즉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이야기한 "열정의 순간"을 맛보면서 개혁이나 혁명을 지속하기는 어렵다.

사회운동은 실제 경제활동과 떨어져서는 안된다. 우리 대부분이 일해야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사회운동 따로 경제활동 따로 할 때 사람들은 참여를 기피할 수 있다. 한 사람은 파업에 참여하고 다른 사람은 그동안 경쟁자보다 앞서나간다면 파업에 참여한 사람은 자기가 어리석은 결정을 하였다고 여길 것이다. 그가 자기 경제활동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기가 점유한 몫을 동료라고 믿었던 경쟁자한테 빼앗겼다는 걸 알고 후회할 것이다.

게젤은 맑스와 완전히 다른 해법을 내놓는다. 사람의 이기심을 개혁의 원동력으로 삼고, 그 개혁으로 모두가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도입하면 그 때 사람의 본성과 그 경제질서의 상호작용으로 개혁은 저절로 진행된다. http://blog.jinbo.net/silviogesell/97  계속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거나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주입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의 이기심이 스스로 개혁을 향하여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끝없는 원천이 된다. 이것은 기존의 사회운동과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사회운동이 된다. 우리가 이익을 쫓으면 그 움직임이 그대로 사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따로 사회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 기부를 할 필요가 없다. 봉사활동도 할 필요가 없다. 모두의 평범한 일상이 사회운동이 되어버릴 테니까.

그런 방법은 가장 작은 공동체에 도입하더라도 전체 사회에 결국 퍼지게 된다. 이익이 되는 방법은 그 자체로 선전이 되고 다시 모방행위를 불러온다. 자연스럽게 확산되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난 내 돈 액면가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길 원하지 않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내 돈을 쌓아두고 싶으니까. 모두가 나처럼 생각한다면 그런 경제질서를 도입할 수 없을 것 아닌가?"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다른 사람도 당신처럼 돈을 쌓아두면 그 미래를 대비할 돈은 애초에 당신한테 흘러들어오지 않을 것 아닌가? 게다가 돈을 쌓아두는 것을 그런 식으로 정당화하면 결국 대부분의 이익을 보는 사람은 대부분의 돈을 가진 자본가 뿐이다. 당신은, 당신이 모은 돈 몇 푼을 쌓아두려고 하다가 당신한테 흘러들게 될 아주 거대한 돈의 흐름을 막게 되는 것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 돈이 아니라 돈순환이 당신을 구할 것이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계급의식이 아니라 돈이다. 게젤의 제안에 따라 돈을 개혁하면 돈은 사회연결망social network이 되어 모두를 묶을 것이다. 연대는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연대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사람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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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7 23:09 2015/06/27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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