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비판

칼럼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도 참신해보이는 진부한 해법을 고집한다. 자본주의 욕을 실컷 하다가 슬그머니 자본주의 안에서 해결하자고 한다. "남편이 때리고 술마시고 바람피고 도박한다"고 투덜대던 여성이 "그래도 남편밖에 없다"며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다. 자본주의를 바꿀 것도 아니면서 왜 바가지를 긁나?

장하준 교수가 이 책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다음과 같다
"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가 필요.
인간의 합리성은 한계가 있으므로 파생상품 따위는 만들지 말 것.
인간의 좋은 면을 발휘하게 만드는 경제시스템이 필요.
항상 받아 마땅한 보수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물건 만들기(제조업)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금융부문과 실물부분이 더 적정하게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 크고 적극적인 정부가 필요하다.
개발도상국들을 불공평하게 우대해야 한다."

그러니까 장하성 교수와 크게 보아 같은 얘기다. 자본주의는 그대로 하되 정치로 자본주의를 견제하자는 얘기다. 앞서 장하성의 <한국 자본주의> 비판에서 말했듯이 그것은 불가능하다. 실업, 경제위기, 부의 불평등은 그런 식으로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자체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장하준 교수의 방법대로 하면 그 결과는 파시즘과 부패다. 경제질서의 결함이 만들어낸 똥찌꺼기들을 치우는 과정에서 정치는 비대해질 것이고 공적 개입은 과도해질 것이다. 그 끝은 파시즘과 부패, 관료주의다. 따라서 정치는 토지제도 화폐제도를 개혁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여야 하고 나머지에 정신이 팔려서는 안된다.

왜 규제해야 하나? 왜 더 큰 정부가 필요한가? 자본주의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왜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니라 파생상품 따위를 만드나? 사람의 좋은 면이 왜 발휘가 안되나? 자본주의 안에서는 본래 단기적 이윤을 추구하도록 유도되기 때문이다.
보수가 왜 충분하지 못한가? 지대와 이자로 털렸기 때문이다.
금융부문과 실물부분이 왜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가? 돈순환이 임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융부문이 실물경제에 비해 부풀었다가 쪼그라들었다가 하는 것 아닌가?
개발도상국들을 왜 불공평하게 우대해야 하나? 자본주의는 모두를 노예로 만드는데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노예 중의 상노예이기 때문이다.

장하준 교수의 책이 금서의 목록에 오른 까닭을 난 도무지 알지 못한다. 장하준 교수와 장하성 교수가 내놓은 대안은 모두 '자본주의 고쳐쓰기'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고쳐 쓰든 그냥 쓰든 경기변동과 실업을 유발한다.

장하준 교수는 경제질서에 대하여 무지한 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골라서 해주었다. 이상향을 아름답게 그리되, 그곳으로 가는 수단은 몽상적으로 그려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의 글은 프롤레타리아 뿐 아니라 자본가들한테도 사랑받는다. 실제로 자본가들을 위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다른 경제질서로 전환해야 한다. 토지제도와 화폐제도를 뜯어고칠 수 밖에 없다는 것. 사민주의자들은 실비오 게젤로 오는 길 위에서 여러 유혹을 받을 것이다. 오직 명철한 이성만이 나침판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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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7 23:57 2016/05/27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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