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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날리기

연구실에서 집회 간다고 해서 회의실에 가보니
사람들이 알록달록한 글씨로 구호를 적어놓은 종이박스들을 들고 있었다.
난 뭘 들까 하다가, 하루 종일 회의실에 놓여있던 연에 눈이 갔다.
누구꺼?
**형꺼.
이거 시위용?
응, 시위용.
그러나 **형은 안 보이고, 그래서 사람들을 모아 연에 촛불을 그려서 갖고 나갔다.

시청,
연을 어캐든 날려보고 싶은데, 이것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고
좀 나는 듯 하다가 콱 꼬꾸라지고 그랬다.
연을 몬날리고 있으니, 지나가던 아저씨 연을 손봐주신다며
줄을 묶고 끊고 꼬리를 만지고 날려보시고...
사람 없고 바람이 일정한 곳을 찾아
연구실 친구 한 분과 프라자 호텔 구석 쪽으로 갔다. 뒤에선 칼라티비 토론이 있고.
수선이 필요하다해서 쭈구리고 앉아 실을 끊고 묶고 붙이고 생쑈를 하다.
사방에 높은 건물들이 있어 바람의 방향도 바람의 양도 일정치 않아 난항을 겪다가
광화문으로 이동.

광화문 한 쪽에서는 민주토성을 쌓고 있고
나는 종로쪽 큰 길가, 사람 드문 곳에서 다시 연날리기 시도.
역시, 지나던 사람들 한 마디씩 하신다.
높이 높이..
순간 도로표지판 위까지 쭉 연이 솟아올랐다. ㅎㅎ
그러나 1분이 채 안되어 꼬꾸라지는(이건 추락이라기 보단, 바닥에 콱 박히는 수준이다)
이 촛불연...

말랴도 날려보고, 지나던 아저씨도 날려보고
비가 와서 조금 젖었다가 금방 마른 연은 꾸굴꾸굴해졌다.
그러고도 몇 번을 시도하다 포기.

결국 손에 들고 민주토성 쪽으로 갔다.
민주토성 앞에서 연을 대량으로 띄워놓고 놀다가
북풍이 불어올 때 연줄을 끊어 청와대로 날려보내는 상상을 해봤다.
아-- 원래 연은 전쟁 때 쓰는 거였지.......
바닥엔 길다란 줄이 깔려있고
버스는 아주 난장판이 지대로... 메모들도 날로 진화.
쿡쿡 웃고 있다가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그리고 버스를 끌어내고
서대문에서 경찰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연은 그대로 끊어서
전경버스 유리문 안쪽에 걸어두었다.

어젯밤엔, 정말이지
연행되고 다치신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왕 재밌었다... 긴장과 투쟁과 그 속에서 다양한 토론과 매 순간 사람들이 정말이지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광화문 시위대 뒷쪽에서 오마이티비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좀  이상해보였지만.
시청 앞 도로에서 레게 등을 큰 엠프로 틀어놓은 몇몇 사람들도 좀 낯설어보이긴 했지만
문화연대에서 한 콘서트도 난 크게 나빠보이지 않더라.
무대 옆쪽에 전광판에서 소화기를 뿌리고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이 생방되는데
무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상황은 좀 웃겼지만
있을 사람들은 있고, 갈 사람들은 또 광화문으로 가고.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줄다리기로 끌려나온 버스 안에 전경들의 모습을 봤을 때 긴장감과
대책위 차로 가서, 전경들 잘 보내주도록 방송 해달라고 말하고
한참후 예비군들에 둘러싸여 전경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던 것.
한쪽에는 물통과 모래를 던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말리다 싸우는 사람들
이래 저래 끼어들어 싸우고 말리고 하다보니
잘 이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욕이든, 폭력 선동이든, 그걸 말리는 것이든
말하고 싶은 사람이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덕분에 밀린 일들에 짓불려 오늘은 나갈 수 없고,
연을 좀더 잘 만들어서 꼭 청와대로 날려보내고 싶다.
촛불이 그려진 연,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연이 청와대 잔디밭에 사뿐이 내려앉는 상상을 해보며.



시청 앞에서 날렸을 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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