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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G8]일본에 다녀왔습니다 3

3. 다시 말하기- 대추리와 오키나와

"어... 대추리는... 마음에 상처가 남은 것 같아요."

오랜만에 만난 나카이에게 대추리 다큐멘터리는 언제 만들거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나카이와 기쿠꼬를 만나기 전에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는데 울컥하고 말았다.

얼마만에 상처라는 말을 들은 것일까.
얼떨결에 동경 포럼에서 반전/반기지 세션에 참가해 대추리 투쟁을 발표하게 되긴 했지만
내 스스로는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던, 아마 앞으로도 그랬을 이야기.
사실 나는 소주와 평택 사투리와 눈물 콧물로 범벅된 그냥 그런 것에서 단 한 마디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하도 낑낑거려서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고 따끔하게 많은 도움들을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내가 싸울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하여튼, 신주쿠 역에서 나카이와 기쿠꼬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음 속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만나고 싶었던 것이 확실했다.
나카이는 자신이 10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온 것을 알아달라고 농담처럼 건냈지만
그렇게 만났으니 할 말은 많았다.
만나서 적당한 밥집을 찾는데만 40분을 보낸 것이 너무 아까웠을 정도로.
도토루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면서
서로의 안부와 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리  메일을 주고받은 덕에, 나카이가 필리핀의 정치적 살해에 관한 tv 다큐물을 제작중이라는 것,
기쿠꼬가 결혼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나카이는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하나는 그 tv 프로그램 dvd, 하나는 기쿠꼬 결혼식 촬영 편집한 dvd.
참으로 나카이다운 선물이라 할 밖에.
나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요 며칠간 급하게 편집하고 만들었다고 했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었다.
그리고 함께 오신 일본 사진작가분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오키나와를 비롯한 현장의 사진들을 찍고 전시를 하시는 분이었는데
대추리에도 몇 번 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때 찍었던 사진들을 실었던 잡지를 보여주셨다.

현재 오키나와는 신기지 건설 때문에 상황이 급박하다고 했다.
헤노코 투쟁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주민들이 반대하니까 다른 곳으로 기지부지를 다시 선정했다고 들었었다.
그런데, 그곳은 사람들이 몰려가서 직접행동으로 기지건설을 막기 어려운 곳이라고 했다.
바다와 기지의 배치에 대해 손으로 요리조리 막아가면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지 안쪽에 신기지를 짓는 거라서 어떻게 막아볼 도리가 없다는 것을
나중에 한국에 와서 자료를 뒤지다 알게 되었다.
아휴- 씨*$&(%^@# 미군기지.

대추리 투쟁이 끝났다고 말한 적이 있던 입이 미웠다.
한 친구는 당신의 투쟁이 끝난 것이라고 수정해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뭔가가 끝난다는 것을 경험하기엔 내 삶의 이력이 너무 짧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키나와 상황으로부터 대추리가 다시 내 안에서 달구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내가 사는 이야기도 했다.
연구실에서 공부를 한다고.
나카이는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잠시 입을 다물다가, 잘 모르겠다... 당분간은 이렇게 공부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고,  나도 상처가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자꾸 공부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카이와 기쿠꼬가 그런 나를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살짝 울고나서 두려움이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포럼 발표문을 좀더 수정하고 통역하는 친구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 친구들은 함께 있어주었다. 그리고 내 발표문과 그것의 일본어 번역에 대해 몇 가지 코멘트를 해주었다.
모두들 진지하게 발표 준비를 함께 해 주었다.
단어 하나, 문맥 하나까지 꼼꼼히 짚어주고 코멘트 해주고.
밤새 사진편집을 도와준(거의 도맡아 해준) 낙타는 적확한 표현들을 배우려 녹음기를 꺼내놓기도 했다.
정말 발표 하나에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달라붙어주는 것이 고마웠다.
나카이는 내가 발표할 때 질문할 거라면서 특유의 장난스런 웃음을 지었다.
내게 이런 동지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발표장에 도착하자 좀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오키나와 현장에서 오기로 했던 발표자는 끝내 오지 못했다.
발표자는 나와 또 한 분.
peace depot에서 현장조사 등 연구활동을 하는, 반기지운동 30년을 하셨다는 노장 학자.

어쨌거나,
발표를 마치고 연구실 사람들과 함께
나카이, 기쿠꼬, 사진작가분 모두 술집에 갔다.
거기서도 우리는 긴 긴 이야기를 했다.
나카이에게 왜 발표 때 질문하지 않았느냐고 또 장난스럽게 묻자
쑥스러웠다고... 그리고는 디온다운 발표였다고 코멘트해주었다.
기쿠꼬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우리는 웃고 울고 떠들면서 얼굴이 벌개지도록 술을 먹었다.

일본에서 돌아와서 지킴이들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그리고 그저께 서울에서 몇몇 지킴이를 만나 또 술을 푸면서 얘기했다.
진관장은 이랜드 노동자 인터뷰 책을 냈고
두시간은 인근 청소년 수련장에서 논술 선생을 하고 있고
일자는 아직 대추리 필름을 편집중이고
준호는 방효태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길'이라는 다큐를 냈다.
준호에게 다큐 dvd를 강탈해와서
어젯밤 나카이가 준 2개의 dvd와 준호의 영화를 보았다.

어제는 김 뭐시기와 대추리와 인권활동가들의 운동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었다.
대추리는 감당할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묻고 있어서 가끔은 홱 돌아서는 것으로 모자라
땅 속으로 꺼져버리고 싶게끔 만드는 게 있다.
역시나, 사는 게 단순하지 않다.

다음 주에는 네모 군대 환송식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평화바람도 궁금하고 또 누구도 궁금하고 또 누구도 궁금하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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