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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감옥에 있는 건설충북지부장님께

지부장님! 저 ***입니다.

 

면목도 없는 제가 이제서야 편지글 올립니다.

 

예전에 제가 징역살이 할 때였죠. 조그만 앞마당 같은 청주교도소 미결사동 운동장. 운동 나가면 그 조그만 담벼락 주변 햇살 잘 드는 곳에 민들레 노란 꽃망울 터진 것 보고 아구 ‘징한 놈’이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어요.

 

 하필 좋은 땅 두고 마른 땅 찾아서 씨를 뿌리나.  마른 땅 한가운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사람 발길, 동물 발길 피하다 겨우 찾은 곳이 하필이면 교도소 담벼락 밑이냐 하고 에둘러 애기 했었죠. 민들레 신세나 내 신세나 교도소 담벼락 밑에서 햇살 쫒기는 매 한가지구 하고 말이죠.

 

그 민들레가 이곳 복지관 건물 벽, 혹은 계단 따라 또 꽃망울을 터뜨렸어요. 이 잡것 같은 민들레가 또 한다는 짓이 말이에요. 겨우 계단과 보도블록 그 3-5mm 틈바구니를 찾아서 꽃을 틔우는 거죠. 참 징한 놈들이에요.

 

좋은 땅 놔두고, 험한 곳, 남들 잘 찾아오지 않는 곳 꼭 그런곳만 찾아요.

 

지부장님하고 이놈 민들레란 넘 같은 족보에요. 아마도 유전자가  같은 모양이죠.

 

예전에 지부장님 계신 바로 그 미결사동에 있을 때 앞 사동에 있는 후배랑 통방을 할려고 꽤 곤욕을 치뤘죠. 사동과 사동을 가로막는 사람 두키정도 되는 그 담벼락에 운동나온 후배가 다른 미결수 어깨를 타고 간신히 담벼락 타고 올라와 ‘**이형’하고 한마디 하고 뚝 털어지고, 잠시후 또 올아와 한마디 하고 뚝 떨어지고...

 

청주지회장님하고 조직부장하고 안부는 잘 주고받는지요. 지부장님도 그때 후배처럼 그러고 있는지요.

작년 플랜트 모임 동지들하고 삼겹살 먹고 헤어지던 날, 같이 둑방길을 걸었어요. 그때 지부장님이 그랬죠.

 

건설기계 말고 우리 힘들게 사는 건설노동자 천명모을때까지 하고 싶다고... 열심히 하자고 그랬죠. 플랜트 모임은 그래선지 매달 꼬박 꼬박 하고 있어요. 다음주에는 우리 덤프, 사무국장님 호죽인권센터하고 수동 인력센터에 새벽 선전전도 나갈 거에요.

 

구속영장이 재 청구되었던 날, 그날 밤 늦게 만났었죠. 지부장님도 취했고 저도 취했고, 취한사람끼리 술먹으로 들어간 호프집, 그 앞에서 술에 취해 또 티격거리는 또 다른 노동운동 후배들도 있었고... 그날밤 그런 날이었죠. 지부장님이 마음을 비웠다 했어요. 그 날 밤에 말이죠.

 

마음이란게 사실상 쉽게 비워지는 것도 아닌 데, 지부장님 그 말에 오십줄 살아오신 연륜이 깊게 느껴졌었어요.

 

건강하세요. 앞으로 편지 자주 할께요. 아마, 작년 청주교도소 담벼락 및 민들레가 흩뿌린 홀씨가 교도소 담벼락을 타 넘어, 이곳 복지관에 다시 꽃망울을 터드렸나봐요.

 

2008. 4. 4.

 

민주노총충북지역본부 비정규사업부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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