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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결혼식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거나 희미해 지기 전에 간단하게라도 그날의 일을 정리해 보아야겠다.

 

남들은 결혼식날 무지하게 떨렸다는데 나는 무슨 집회나 그냥 행사정도하는 느낌이었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긴 했지만 늦지 않게 예식장에 도착해서 분장하고 옷갈아 입고 친척들, 지인들과 인사 나누고 사전행사에서 신부와 같이 종치고 올라와서 식장 입장. 신부를 위한 세레나데를 포기하는 대신 시 낭송으로 대체해도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결혼식 다시 하자고 할 수 없으니 그냥 그렇게 남겨 둘 수 밖에.

 

여기서부터 예식마칠 때까지는 여느 결혼식과 다를 바 없었고.

다만 사회자의 마지막 테클에 팔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고 그 덕에 신혼여행 내내 팔 근육이 욱신거리고 아팠지만 그 정도야 뭐~. 사회자는 청주방송에서 아나운서를 하고 있는 대학동기였고 주례를 보신 분은 석사논문 지도교수님이었는데 주례를 하시는 내내 결혼하는 당사자들 보다 더 많이 떨고 계셨다. 강의실에서와는 다른 모습!

 

재미있었던 건 어머니의 이종사촌되시는 분들 중 한 분이 참터 운영위원장의 외삼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예식장에서 마주친 두 분의 반가움과 놀라움이 교차되는 표정에서 세상 좁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나와 운영위원장과 관계가 그야말로 '사돈의 팔촌'이 되는 건가?

 

마지막 폐백을 마치니 공항가는 버스 출발시간 20분 전. 그러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신부가 예식장 비용을 정산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발생해서 오신 분들께 인사도 못드리고 신부 친구의 차를 타고 부랴부랴 떠나서 겨우 공항버스를 탈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폐백으로 받은 돈과 지인들이 따로 챙겨준 돈을 들고 호주로 갈 수 없어 입금을 하려고 공항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찾지를 못하고 대략 난감해 있다가 겨우 탑승 시간 10분을 남겨두고 연장근무를 하고 있는 은행창구를 발견하고 입금에 성공. 그날 공항에서 우리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인천공항이 그렇게 넓을 줄 몰랐다. 무지하게 크더 구만.

 

이렇게 해서 결혼식의 하루가 저물고 비행기 타고 야경을 내려다 보며 씨~웅 날아갔다.

 

당일날 얘기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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