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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언론이라구....

대전일보 2006년 2월 11일.

꼴통같은 놈들 같으니라구.

 

'양극화'라는 단어를 아무데나 같다 붙이는 발상도 웃기지만

더 황당하고 화가 나는 것은

보기 싫은 국회의원 대신 '혼혈인' 을 뽑자는 것은 정말이지

이건 아무 생각없는 행위이거나

아주 민족적(혹은 인종적) 우월주의에 빠진

극우파쇼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혼혈인을 그린 다는 것이

무슨 술 먹고 진흙탕에 열 번은 구른 듯한

모양으로 그렸다는 것은 얼마나 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림을 실은

언론사의 데스크가 보수 우익적이고 일종의 우월주의에 빠져 있나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 방송이나 해외 스포츠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몇 몇 한국계 혼혈인 혹은

입양이 된 이들의 활약에 대해 아무리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고

언론에서 그 화려한 면을 조명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보수 언론의 펜 끝에

여전히 이러한 우월의식, 차별의식이 자리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대전일보 > 오피니언 > 여백 편집 2006-01-23 오후 4:35:05
하이브리드
2006-01-24 일 23 면기사  
이종격투기 프라이드의 최강자, 에밀리아넨코 표도르. 혼혈 탤런트인 다니엘 헤니. ‘잡종적 지식인’으로 불리는 홍성욱 서울대 교수. 각기 다른 영역에서 명예와 인기를 얻고 있는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이질적이지만 서로를 하나로 묶는 공통의 분모가 있다.
최근 내한했던 표도르는 하이브드리형 스포츠인 이종격투기의 황제다. 다니엘 헤니는 한국적이면서도 서양적인 매력을 동시에 지닌 하이브리드형 남성상을 갖췄다. 홍성욱 교수는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고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 내는 고리로서의 ‘잡종학’을 발전시킨 인물로 ‘하이브리드 세상읽기’ 등의 책을 냈다.
우리사회 새로운 통합의 코드, ‘하이브리드(hybrid)’ 전성시대다. 하이브리드는 이질적인 요소를 섞어놓았다는 의미에서 잡종, 혼합, 혼성, 혼혈 등의 의미를 지닌다. 다양성과 다원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나쁘게 말하면 잡종의 의미지만 폄하적인 시각이 아닌 생산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종의 사물을 섞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도록 하는 통합의 의미를 갖는다.
내연 엔진과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엔진을 동시에 장착한 하이브리드카는 물론 카메라와 동영상 기능이 합쳐진 휴대폰, 복사기와 팩스·프린트 기능을 갖춘 복합기, MP3플레이어와 전화의 결합, 주식과 채권의 특징을 모두 갖춘 하이브리드 채권에 이르기까지 하이브리드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점령중이다.
왜 하이브리드인가. 전문가들은 기술의 발달, 고객 니즈(needs, 요구)의 다원화, 영역간 장벽허물기 경향의 증대 등을 꼽는다. 나아가 홍성욱 교수는 ‘서로 갈등하는 두 세계의 경계에 서서 양쪽 모두를 이해함으로써 대화와 타협을 만들어 내는 힘이며 미래를 위한 정치 프로그램’이라고 역설한다.
이제 보수적 한국사회에서도 순혈주의(純血主義)의 쇠퇴는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당과 정파간 연대와 통합이 균열과 대립,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사회적 지지와 성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상생과 공존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창조하고 화합에 의해 새로운 희망을 주는 대안이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판의 연대나 통합이 ‘하이브리드적 정치’라면 환영받아야 하겠지만 또 다른 분열과 반목을 예고하는 ‘정치적 하이브리드’라면 배척당할 수밖에 없다. 단순한 혼합이 아닌 진정한 통합의 하이브리드를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李龍<자치행정2부 차장>
대전일보 > 사회/교육 > 일반뉴스 편집 2006-02-08 오후 12:55:20
우리사회서 소외받는 혼혈인
2006-02-08 일 0 면기사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챔피언 결정전)에서 한국계 미국인 하인스 워드(30)가 역경을 딛고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것을 계기 삼아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혼혈인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들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혼혈인은 6ㆍ25전쟁에 참가한 주한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1세대'를 시작으로 최근 아시아인과 한국인 사이에 태어난 '코시안(Kosian)'이 증가하는 추세지만 혼혈인에 대한 차별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혼혈문제 전문가들은 순수혈통을 중시하며 혼혈인을 괄시하는 풍토가 차차 변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약하다며 한국에서 일고 있는 '워드 신드롬'이 사회적 약자인 혼혈인에 대한 인식전환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내 혼혈인 현황 = 국내 혼혈인은 1940년대 중반 주한미군과 한국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 1세대'를 시작으로 현재 3만5천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8일 혼혈인지원단체 '펄벅재단'에 따르면 국내에 살고 있는 미국계 혼혈인이 5천명 정도, 코시안이 3만명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 혼혈인은 역사적 관점에서 1, 2, 3세대로 나눌 수 있다.
혼혈 1세대는 6ㆍ25전쟁 발발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주한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으로 1947년 이후 현재까지 계속 태어나고 있다.
혼혈 2세대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우리나라를 찾은 동남아 남성과 한국 여성 사이에 태어나 1990년대부터 늘고 있으며 혼혈 3세대는 한국 남성과 주로 농촌에 시집온 동남아 여성 사이에 태어나 2000년대부터 급증하고 있다.
◇ '혼혈은 낙인' 인식변화 없어 = 순수 혈통을 중시해온 우리 사회에서 혼혈은 하나의 '낙인'처럼 인식되며 혼혈인은 고난을 겪고 멸시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국제화가 진행되는 등 시대가 변하고 혼혈인 스타가 배출되면서 국민 인식에 점진적으로 변화가 일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회의 각 분야에서 혼혈인은 아직도 '이방인'으로 취급받고 있다.
특히 혼혈 1세대 중 흑인과 한국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 아동은 인종 차별의 아픔까지 겪어야 하는 두배의 시련도 있었다.
취학아동의 경우 아직도 국내학교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형편이 되는 경우 외국인 학교에 들어갈 기회를 얻지만 대부분 가난이 되물림되는 형편이어서 교육의 기회가 많지 않다.
성장해 취업 시기가 되어도 장애인과 함께 혼혈인은 기피 대상 1순위에 오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혼혈인 사이에도 차이가 존재해 한국 남성과 동남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동은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는 등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고 있으나 주한미군과 동남아 근로자를 아버지로 둔 혼혈 아동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쉬운 형편이다.
◇ 개인성공담 치중 경계해야 = 워드의 MVP 수상 소식과 함께 혼혈인의 아픔을 담은 애틋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에는 '워드 신드롬'까지 일며 그의 이름이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쾌걸조로'라는 네티즌은 "'멋지게 성공해서 어머니와 한국에 가고싶다'고 말한 워드의 마음만은 분명 한국인"이라며 "정부는 워드에게 명예시민증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워드 신드롬'을 계기로 혼혈인에 대한 관심이 다소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관심이 한 개인의 성공담에 초점을 맞춰지다 보니까 열심히 살면서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혼혈인에게 또다른 상실감을 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펄벅재단의 이지영 간사는 "혼혈인 문제는 일부 혼혈인 연예인이 인기를 얻거나 하인스 워드 같은 사람이 주목받는다고 해서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며 "먼저 정부의 정책이 바로 서고 모든 사람이 시간을 갖고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성공회대 박경태 교수는 "혼혈인 스타에 대한 관심이야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만 '이제 혼혈인도 대접받는구나'라고 현실을 호도하고 자팃 소수 성공사례를 가지고 '저들은 저렇게 성공하는데 너희는 뭐했냐'는 식으로 사회 구조적 책임을 개인의 무능으로 전가할 위험이 있다"고 경계했다.
혼혈인 차별철폐를 촉구하는 '하이패밀리' 여한구 사무총장도 같은 지적과 함께 "워드 열기가 혼혈인과 그 부모들의 인권문제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 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연합뉴스)

대전일보 > 오피니언 > 대일칼럼 > 데스크광장 편집 2006-02-09 오후 6:33:55
'풋볼 스타'의 겸손의 미학
2006-02-10 일 22 면기사  
황우석 신화가 종언을 고할 무렵 드라마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 두명의 영웅이 한국을 열광케 하고 있다.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로 이름을 날린 백남준은 그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한번 거장의 면모를 되새기게 한다. ‘예술은 위대한 사기’라고 공공연하게 외친 그였지만 특유의 소탈함과 예술적 성취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올라 모국인들에게 한국인의 자긍심을 안겨준다.
미식축구 영웅 하인즈 워드의 출현은 보다 극적이다. 미국에서만 1억4000만명의 시청자가 지켜본 제40회 슈퍼볼에서 MVP를 거머쥔 이 의젓한 젊은이는 혼혈을 딛고 일어서 인간 승리를 연출함으로써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줬다. 특히 그는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미덕인 노력과 헌신, 배려의 정신을 일깨웠다. ‘풋볼 영웅’과 그의 어머니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하모니는 국민들의 가슴에 잊지 못할 감동을 수놓고 있다.
母子의 스토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웅변한다. “당당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싶어 정부 지원을 받지 않았다”는 어머니 김영희씨의 발언에서는 한국인 특유의 강인함과 자립심을 발견하게 된다. “부모가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가 자식에겐 큰 교육”이라는 김씨의 말은 우리의 교육 풍토에서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헌신과 배려의 삶은 더욱 감동적이다. 지난 시즌 플레이 오프에서 탈락한 뒤의 일화가 그 하나다. 피츠버그 트리뷴 리뷰는 ‘워드가 지난해 콘퍼런스 챔피언십에서 패한 뒤 주체하지 못할 만큼의 눈물을 흘린 것은 팀 동료 제롬 베티스가 우승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였다. 마침내 워드는 베티스에게 바로 그 타이틀을 안겼다’며 워드의 동료애를 부각시켰다. 이기적인 미국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한 삶의 태도가 모교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의 나눔의 삶으로 승화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수식어로도 워드 모자를 설명하기는 부족할 것이다.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그 둘의 삶을 이끈 것은 아마도 겸손이라는 키 워드가 아닐까. “어머니야말로 지금 내가 여기 있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단언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겸손을 가르쳐준 스승이었던 모양이다. 김씨는 “그렇게 혼날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부러 엄하게 했다”며 “그래야 세상 무서운줄 알고 겸손해질 것 아니냐”는 소신을 털어놓았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인사 청문회 때 어느 장관 내정자가 보여준 ‘겸손’을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저렇게 옳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이 말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을까”라는 비아냥의 주인공이다. 그런 그였지만 청문회장의 스타일은 딴판이었다. 그는 과거와는 달리 “앞으로 노력하겠다”, “명심하겠다”라는 등의 태도를 보여 여러 해석을 낳았다. 특유의 조소와 조롱하는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마음부터 달라지기로 결심했다”고도 덧붙였다.
워드의 겸손함이 빛난 것은 그의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우승 후 피츠버그에서 카퍼레이드를 마친 뒤 특설 무대에 올라 롬바르디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우승은 팬 여러분의 것이다”라고 다시 한번 공을 시민들에게 돌려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실학자 이덕무는 사람의 성품을 판단하는 세가지 기준중 하나로 바른 충고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냐를 들었다. 특히 재주가 있는 이들에게 귀를 열어 놓을 것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분수를 알아 겸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조성기著 ‘양반 가문의 쓴소리’中)
그래서 영국의 대시인 T.S 엘리엇도 “겸손은 가장 얻기 어려운 미덕이다. 자기 자신을 높이 생각하려는 욕망만큼 여간해서 가라앉지 않는 것은 없다”라고 했던가.
겸손의 미덕이 사라진 시대에 워드와 그의 어머니는 삶의 자세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겸손이야말로 소통과 화해와 상생의 원천임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宋信鏞<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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