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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Digital] 러디즘(Luddism), 사이버공간, 그리고 희망

러디즘(Luddism), 사이버공간, 그리고 희망 이광석: AD편집인·뉴미디어평론가 Kevin Robins, Into the Image: Culture and politics in the field of vision (London: Routledge, 1996) Kevin Robins and Frank Webster, Times of the Technoculture: From the information society to the virtual life (London: Routledge, 1999) 속칭 좌파 사이에서 정보기술이 자본주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중심적으로 논했던 인 물은 드물다. 기껏해야 인터넷과 정보혁명의 위력이 가시화되고 나서야 그 가치에 주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케빈 로빈스는 이미 80년대초부터 프랭크 웹스터와 함께 이 방면에서 공동 작업을 수행했던 몇 안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이 둘은 공동 집필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정도로, 20년이상 같이 작업을 꾸준히 수행해오고 있다. 버밍엄 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있는 웹스터는 이미 국내에 {정보사회이론Theories of the Information Society(Routledge, 1995)}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사회학의 전통에서 정보사회 이론가들을 재해석했고, 최근에는 정보 시대의 교육에 관심을 두는 학자다. 웹스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로빈스는 문화지리학 교수로 있다가, 몇 년 전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커뮤니케이션학과로 옮긴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 족적에서도 묻어 나지만 문화론적 전통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 현대 정보사회 해석과 관련하여 상당히 재치있 는 입담을 구사하고 있기도 하다. 로빈스가 지금까지 낸 수서너 권들의 저술에 비해 여기 소개할 두 권의 책은 현실 사이버 문화의 논의를 포괄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테크노문화의 시대: 정보 사회에서 가상 삶으로}는 책이 발행되기 이전까지 대중화된 주류 사이버문화론에 대한 광범 위한 비판을 수행하고 있다. 이 책은 비록 웹스터와의 공동 저작이긴 하지만, 3부의 일부 교 육과 관련한 장들을 제외하곤 이제까지 작업과는 달리 거의 로빈스가 주축이 되어 책을 집 필한 것으로 보인다. 책은 기존에 이들이 가졌던 러다이트에 대한 역사적 재해석과 이를 바탕으로 현재 논의되 는 사이버문화의 낙관적 견해에 대한 비판을 폭넓게 벌이고 있다. 이들은 산업혁명 초기 영 국의 기계파괴운동이었던 러디즘(Luddism)이, 일자리에 위협을 느낀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 괴했던 무식하고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자본주의의 기술 변화와 재편에 대응한 폭넓은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파악한다. 산업 자본주의 시대의 기술 저항의 중요한 사건으로 러디즘을 평가하고 있다. 사이버문화의 새로운 현실에 이르면, 러디즘은 웹 을 이용한 네트워크 게릴라와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녔다고 본다. 러디즘의 역사적 전통을 통해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사이버정치의 기획을 짜자는 의도다. 러디즘에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읽는다. 로빈스는 정보사회를 주도하는 자본주의 기획이 전방위에 걸쳐 인간을 관리하는 통제 시 스템으로 본다. 일상의 '동원'(mobilization) 체계는 이를 지칭한다. 저자는 동원의 기제를 통해 여가와 노동 시간의 경계가 사라진 새로운 사회화된 노동자와 공장의 비관적 미래를 진 단한다. 또한 이런 현실을 정당화하는 기술 유토피아의 논의들이 갖고있는 신화의 논리를 조목조목 짚고 있다. 그의 단독 저술인 {이미지 속으로: 이미지 영역의 문화와 정치}는 사이 버문화의 신비화된 논리와 폭넓게는 현대 영상문화 전반이 갖고있는 주술적인 면모를 뒤집 는 작업이다. 기술 진보의 신화가 반영된 무의식이 '보이는 것'(the visual)에 삼투되어 현실을 어떻게 왜곡시키는가를 관찰한다. 두 권의 책은 현실에 숨어드는 사이버문화의 우파적 비전에 대한 구체적 비판의 증거물이 다. 물론 로빈스의 시각에는 권력으로부터 움치고 뛸 수도 없는 왜소한 일상 인간의 모습이 철저히 반영되어 있다. 혹자는 이렇게 완벽히 통제된 현실에서 과연 정치적 혹은 대안적 가 능성을 내올 수 있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로빈스의 장점은 정보 현실에 대한 철저한 비관론에서 나온다. 현실에 대한 참담한 해석이 새로운 가능성을 말살 하지 않는다는 역설을 주목하자. 오히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 턱 없는 기대감보다는 생산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로빈스의 논의는 끝없는 절망이나 패배로 회 귀하지 않는다. 러디즘의 유산을 통해 새로운 사이버 문화정치의 가능성을 내다본 것처럼, 그에게 희망의 근거는 존재한다. 새로운 기술의 변화가 올 때 이와 결합된 권력의 실체를 이해하는 것, 대응하는 것, 그리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재전유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 의 희망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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