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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서평] 이제 문제는 정보 게릴라전이다!

<주제서평> 이제 문제는 정보 게릴라전이다! *계간 [문화과학] 15권 1998 가을호 (쎄르지오 볼로냐·안또니오 네그리외 지음/ 이원영 편역, {이딸리아 자율주의 정치철학 .1}, 갈무리, 1997.) (해리 클리버지음/이원영·서창현 옮김, {사빠띠스따-신자유주의, 치아빠스 봉기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 갈무리, 1998.) 현실 자본주의가 끊임없는 불안정성에 놓이는 중심 원인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정부성에 있는가? 아니면 자본의 태생적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과 주기적 공황에서 비롯되는가? 오히려 발본적으로는 중세 이후 토지로부터 이탈하여 자본가와의 계약에 의해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된 "자유로운 노동자의 통치불가능성"의 시발이 자본에게는 더욱 큰 불안정성으로 다가온다. 자본주의의 역사 이래로 관건은 운동의 객관적 법칙이었다기 보다는 노동 주체가 지닌 자율적 힘과 자본간의 역학관계에 주어져 있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모든 '삶-시간'(life-time)을 '노동-시간'(labor-time)으로 흡수하여, "인간의 생산적 활동을 노동시간으로 전환시키는 가치화(valorization)"를 그 전략으로 삼는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순수 경제 영역을 넘어 '사회-공장', '사회적 테일러리즘'으로 확대하여 재생산 한다. 자본의 '가치화' 영역은 공장 체계를 넘어 전통적 노동자를 포함한 억압받는 모든 이들의 사회적 삶에 걸쳐 있다. 이에 대응하여 새로운 사회적 주체인 피억압자들은 '노동-시간'을 '삶-시간'으로 흡수하는 방향, 즉 네그리의 용어로 '자기-가치화'(self-valorization)의 운동을 취한다. '자기-가치화'의 운동은 '자기-활동성', '거부의 힘', '자생성', '자율성', '자발성', '다양성과 다차원성', '야성적 에너지', '주체적 구성', '과정으로서의 조직' 등등을 담지한다. 이제까지의 주장은 이탈리아 자율주의자들의 글들을 편역한 {이딸리아 자율주의 정치철학} 중, 총론격인 이원영의 [오늘날의 계급 구성과 '자율성' 개념의 발전]에서 찾아낸 주요어들이다. 반대로 자율주의자들의 적대어는 레닌주의적 기획, 주체화가 아닌 대상화, 관료화, 지도, 운동의 객관 법칙, 전위적 대리주의, 투쟁을 객관적 법칙의 효과로 보는 것 등등이 된다. 좌파 내부의 역사를 통해 이원영에게서 탐사된 이같은 적대어의 소재지는 엥겔스를 출발로, 레닌에게서 보다 강화된 형태로 드러난다. 그가 보기에 소위 정통적 좌파들의 역사는 "자기 충족적이고 자율적인 계급주체"와 "자생적이고 과정으로서의 조직관" 대신 계급 주체들의 자율성을 대상화하고 대리적 전위로 대치시키며 권위주의적 당 개념으로 흡수하는 '정박(碇泊)의 정치'였다. 그래서 그는 '정박의 정치'란 자율성의 야성적이고 변덕으로 가득찬 힘과 어울릴 수 없다고 말한다. 계급 주체들이 자기-가치화에 입각하여 "카오스 속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정치, 그 유영(遊泳)의 정치"의 가능성을 그 과제로서 던진다. 이원영과 자율주의자들이 보는 '유영의 정치'의 미래 가능태는 디지털 속성에 어울리는 짝이다. 단 계급 주체들이 네트를 변형적이고 자기-가치화에 의거해 이용한다는 조건하에서만 기술적 속성, 즉 개방성, 자율성, 즉시성, 상호소통성 등등이 가능태로써 기다린다. 이 책에 실린 프랑꼬 삐뻬르노(Franco Piperno)가 [기술 혁신과 감성 교육]에서 지적한 바처럼, 문자 문화란 이론과 해석에 의해 결정과 범주로 치달아 버리나, 컴퓨터 기술은 '수행적(operative) 문화', 끊임없는 변형이 가능한 상황을 연출한다. 객관적이고 대상화된 얼개로 규정된 문자 문화의 정치에서 자율적이고 다양하고 다차원적으로 변형하는 디지털 문화의 정치가 자율주의자들의 정치철학을 보다 분명하게 현실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다른 한편으로 추상적으로만 언급된 이같은 자율 운동의 계급 주체들을 묶는 통일, 상호 보완, 연대 등의 과정적 힘 또한 네트의 네트워킹 개념에서 그 구체적 실효를 얻는다. 자율주의자들은 자기-가치화의 가능태를 현실태로 전화하는 진정 제대로 된 실험 대상을 발견했다. 인간의 존엄성, 희망, 삶-시간을 복원키 위한 최초의 정보게릴라 운동이 남미의 한 후미진 지역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빠띠스따가 추구하는 '복수의 울림들과 목소리들의 네트워크', '어조와 수준이 다양한 여러 목소리들의 네트워크'와 '저항과 희망의 네트워크'는 그들 외부에서 객관적 전망하에, 대리적 전위에 의해 대상화하여 그려진 모델이 아니다. 이는 그들 자신의 자기-가치화를 향한 실천을 통해서 생성되는 저항의 과정 모델에 가깝다. 미국내 국가안보의 두뇌집단들이 모여있는 랜드연구소의 연구원, 데이비드 론펠트(David Ronfeldt)는 3년전 내부 보고서를 통해 멕시코의 사빠띠스따를 다루면서, 이제 사회적 네트전(netwar)이 21세기 새로운 초국적 정보전쟁의 원형이 될 것으로 가늠했다. 멕시코 남동부 치아빠스 지역의 라깡도나 정글에서 벌어지는 마야 원주민들과 사빠띠스따들의 투쟁이 미국을 위시한 글로벌 자본의 지칠줄 모르는 확장을 거역하는 국지적 위협으로 상정되고 있는 것이다. 역으로 '야만적' 자본에 대한 이름 없는 한 밀림 지역의 울림을 현실 저항의 적극적인 정치 실험대로 평가하는 일군의 불경스런 이들도 존재한다. 이미 국내에도 알려진 바 있는 북미의 대표적인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텍사스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해리 클리버(Harry Cleaver)도 이런 축에 낀다. 자신의 홈페이지가 차단될 정도로 미국내에서도 '악명'을 날리는 그는 현재 웹에서 '치아빠스 95'를 운영하며, 사빠띠스따에 관련된 자신의 디지털 논문들을 등록해 놓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갈무리 출판사가 새로운 정보자본의 논리를 피억압 계층의 현실 대안적 무기로 되돌리려는 기획의 첫번째 일환으로 그의 디지털 논문들을 정리하여 이를 번역해 내놓았다. 클리버의 {사빠띠스따}에서는, 최근 국내에서도 구조조정의 고통을 감내할 것을 요구하는 초국적 금융자본체인 국제통화기금(IMF),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멕시코 자국내 제도혁명당(PRI)의 신자유주의에 맞서 그들이 왜 총을 들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이 그 지구촌의 변방에서 사이버전(cyberwar) 혹은 "말과 이미지의 정보전"을 펼칠 수 있었는가 등의 문제를 상세히 살피고 있다. 올해 초 뉴욕의 오토노미디어(Autonomedia) 출판사에서 발행된 {사빠띠스따!}가 사빠띠스따 혁명군 자신의 인터뷰, 선언문, 성명서 등을 모은 1차 자료라면, 국내에 번역된 {사빠띠스따}는 한 북미 지식인의 활동과 눈으로 본 2차 분석글이다. 2차 문건은 아무래도 정치적 해석의 정향성이 문제의 빌미로 비쳐질 수 있으나, 다행히도 클리버가 보는 저항 단위의 자기활동성에 입각한 분석은 사빠띠스따의 정보게릴라전의 구체적인 맥락에 충실하다. 역자인 이원영의 부록 논문에서도 사빠띠스따와 관련하여 좌파내 국제주의자와 자율주의자간에 벌어지는 엇갈린 평가를 정리하면서, 이같은 좌파내 논쟁의 승화를 통해 그 자율주의적 실험 안에서 자본에 대한 저항의 "새로운 상상력과 지혜"를 수확해낼 수 있길 바란다. 이 책을 통해, 더 나아가 그들의 정치 실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실은, 최근 한창 과잉 포장되고 있는 전자공간에 대한 실천적 기대감이란 것도 현실 지형에서 행하는 저항 단위들의 권력에 반하는 거부와 실천 행위의 결합 없이는 디지털 허상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그 반대로 디지털 영역의 새로운 가능성에 제대로 주목하지 못하는 유아론적 운동 방식 또한 항간에 유행하는 담화로 표현하자면 '무대포 정신'에 집착한 소모적 몸짓일 뿐이다. 즉 네트의 혁명적 속성과 현실적 실천 내용간의 고도의 맞물림이 저항 효과의 기본 변인이라는 점에 착안해야 한다. 한편 이들을 주시하는 관찰자의 역할은 우선 새로운 투쟁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과장 없이 독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의 문제"로 투사하여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자세이다. 최근 출판 환경의 유익한 특징 중 하나를 꼽는다면, 인터넷에 업로드된 영문 논문들의 저작권을 '좌회'(copyleft)하여 번역 출간하는 경향이다. 지면에 소개된 {사빠띠스따}도 영세한 출판업계에 카피레프트 실현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인터넷의 광대한 쓰레기 바다에서 항해하다 운좋게 건질 수 있는 디지털 '월척들'(wisdoms)을 시의 적절하게 (하이퍼)텍스트로 공유하고 배포하는 노력들은 미래 출판운동의 정보 게릴라 전술로써 기대할만한 바다. (이광석 /중앙대 신문학과 석사졸, 네트 분석가, [사이버 문화정치]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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