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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 문화유산급의 디지털 마인드웨어를 키우자

新文化人 사랑방: 문화유산급의 디지털 마인드웨어를 키우자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민족국가 고유의, 여러 세대에 걸쳐 계승되고 발전하는 유/무형의 사회·문화적 자산을 지칭해 흔히들 ‘문화유산’이라 한다. 세상이 바뀌면 문화유산의 내용물도 변한다. 역사 유적처럼 방범용 유리를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 관찰해야 할 문화유산도 있지만, 현재와 함께 호흡하는 무형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음식 맛, 춤사위, 소리, 관습 등은 다 형체는 없지만 우리만이 가지는 고유의 자산이다. 한편, 이제는 거의 실패한 유산이 돼버렸지만 ‘아래한글’ 소프트웨어도 민족적 자존심을 드높였던 점에서 이에 준한다. 나는 이 모든 무형의 자산들을 합쳐 ‘마인드웨어’로 보고 싶다. 마인드 가치가 물질을 압도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이를 문화유산이나 국가적 자존심으로 격상해 보려는 시각은 드물다. 특히 디지털로 만들어지는 마인드웨어는 시장에서 자라지만, 이를 벗어나 성장한다. 시장의 마인드, 즉 소프트웨어는 당장의 시장 이윤과 밀접하지만, 디지털 마인드웨어는 이를 넘어 한 나라의 경제 인프라와 살림의 백년대계를 세우는데 쓰인다. 결국 마인드웨어의 가치는 국민의 자긍심을 책임질 국가의 노력이 첨가돼야 생명력을 얻는다. 지금처럼 한 나라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익스플로러, 오피스, 서버 등 하나의 다국적 소프트 ‘제국’에 목을 맨다면 그곳의 디지털 마인드웨어 구상은 부질없다. 이미 올해초 엠에스의 취약한 서버들이 국내 ‘컴퓨터대란’의 주역을 떠맡고, 지난 5월에는 ‘패스포드’인터넷 서비스 이용자 2억명의 비밀번호가 외부에 노출돼 엠에스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판이다. 그럼에도 이 부실한 제국에 한 나라의 디지털 마인드를 담보잡혀 있는 상황은 큰 불운이다. 코드의 개방과 협업 과정에 의해 만들어지는 개방형 소프트웨어가 일반 상업 소프트웨어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상업용 소프트웨어에서 흔히 관찰되는 “보기만하고 만지지마라”식의 소스 코드에 대한 제한적 접근에 비해, 개방형 프로그램은 의도한대로 쉽게 변형 가능하고 여럿의 공유와 검증을 거쳐 보다 안정적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그 대표격인 리눅스는 생산 과정에서의 경쟁과 비배제의 논리, 그리고 프로그램의 저렴한 가격과 안정성을 각국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엠에스의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일본, 중국, 대만, 필리핀, 영국, 프랑스, 독일, 핀란드, 아르헨티나 등 갈수록 여러 정부들이 보안 능력, 안전성, 경제적 비용면에서 월등한 개방형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국가 정보정책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 판단하고 이미 중앙 부처뿐만 아니라 하급 단위의 공공기관들, 자치단체들까지 개방형 소프트웨어를 독려한다고 한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과 일부 개발국의 이와 같은 독자적 디지털 마인드웨어의 구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전세계 리눅스 확산을 막기 위해 엠에스가 펼치는 고도의 마케팅 전술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프로그램 할인은 기본이고 공격적인 자본 투자, 비영리 단체 기부나 지원, 프로그램의 일부 소스코드 공개 등으로 투자대상국이 딴맘 먹을 틈을 주지 않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선 우리 정부가 독자적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비슷한 압력과 회유가 닥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하나에 대한 편애와 편중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대안의 가능성은 열어놓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도 엠에스 것과 함께 다른 대체 소프트웨어들을 균형있게 쓰려한다는 명분으로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시장의 공정한 경쟁 법칙을 정부가 나서서 지킨다는데 그 누가 말리겠는가. 이것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새로운 문화유산이 될 디지털 마인드웨어를 세우고 지키는 길이다. [월간 enter 200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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