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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방인에 대한 공포와 다양한 외계생물 종種의 탄생

빛바랜 SF영화로 현실 읽기 4

 

이방인에 대한 공포와 다양한 외계생물 종種의 탄생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지난 호에서 필자는 50년대 수많은 미국 영화들이 좌우 이념 대립의 적대적 표본으로 상상의 외계인들을 만들어냈다고 보았다. 내친 김에 이번 호에서는 당시 영화 속에 묘사되었던 각기 다른 외계인들의 유형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50년대 영화 속 외계인들의 모습을 잘 들여다보면, 그 당시 시민들이 어떻게 체제 밖 '이방인'을 상상하고 이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는지에 대한 감이 올 것이다. 영화 속 외계인들의 유형은, 인간 스스로를 투영한 이미지에서부터 인정사정없는 무정형 외계 생물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외계인 유형 1: 인간같은 외계인

50년대 영화속 외계인들의 모습은 다종다양하다. 우선 거의 완벽하게 인간에 가까운 외모를 보여주는 외계인들이다. 이들은 마치 약속이나 하듯 지구 구원의 명분을 내세우며, 인간처럼 만국공용어인양 영어로 대사를 친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 우드Edward D. Wood 감독의 B급 영화, <외계의 제9호 계획 Plan 9 from Outer Space (1959)>의 갤럭시 행성의 외계인들은 인간과 똑같은 얼굴에 중세 때 비슷한 복장을 하고 지구 정복의 대의명분을 지속적으로 부르짖는다. 이들은 무덤으로부터 죽은 시체들을 일으켜 세워 인간을 공격하는 지구 정복의 '9호 계획'을 완수하러 온다. 미 헐리웃 동네 안 공동묘지에 터를 잡은 우주선 안에서, 외계인들은 이 무덤의 좀비들을 무선 장치로 조정한다. 영화에선 시종일관 그저 특징적인 세 명의 좀비들이 이 외계인들의 명을 받아 무덤가를 서성인다. 첫 번째, 육감어린 여자 좀비인 뱀피라Vampira. 그녀는 길게 자란 손톱을 내어밀고 사람을 찾아 무섭게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다음, 실제 레슬러 출신 배우가 역할을 맡은 구울Ghoul. 이 덩치좋은 좀비는 원래 아랍 설화에 서 갓 죽은 시체를 파내어 뜯어먹는 식시귀食屍鬼를 일컫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드라큘라. 공포 영화의 대명사 벨라 루고시 Bela Lugosi의 죽기 전 모습을 영화에 덧대고, 영화내내 얼굴가린 대역이 흡혈귀 좀비로 등장한. 

<지구가 멈춰선 날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1951)>에 외계 행성의 평화사절단으로 온 '클라투' Klaatu는 잘생긴 인간 외모를 가진 천재형 외계인으로 등장한다. 그의 충복 로봇 고르트Gort '로보캅'과 비슷한 외양에 모든 인간의 철제 무기를 흔적도 없이 녹여버리는 레이저빔을 눈에서 내뿜는다. <화성에서 온 침입자들 Invaders from Mars (1953)>에선 등 뒤에 지퍼가 보일 정도로 어설프게 분장을 한 키 큰 녹색 화성 외계인들이 땅속 동굴에 인간을 납치해 와 이들을 들고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그들의 대장인 듯 보이는 자는 유리병 속에서 얼굴을 분칠을 하고 머리만 보인다. 여전히 사람 모양새다. <또 다른 세계에서 온 물체 The Thing from Another World (1951)>에서는 녹색 '야채괴물'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의 짙은 푸른색으로 칠갑을 한 덩치 좋은 인간이 군인들의 공격을 피해 동분서주한다. <우주로부터 온 킬러들 Killers from Space (1954)>에선 눈에 탁구공을 끼었는지 금붕어 눈깔 모양을 하고 땀복 비슷한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려쓴, 애스트론 델타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영어를 모국어인양 지껄이며 지구정복의 야욕을 들어낸다. 이들 모두는 침략자들이긴 하나 공포스럽지도 않을뿐더러, 가끔은 매우 인간적이다.

 

외계인 유형 2: 괴물 외계인


당시 SF장르와 호러간의 돈독한 유대를 고려하면, 무서운 괴물 모양의 외계 생물도 필수불가결하다. 게다가 체제 밖 적색 공포의 묘사에 괴물같이 확실한 캐릭터도 없었다. 이 외계 괴물들은 주로 홀로 으스스하게 등장해 텔레파시나 무선 전파 장치로 인간 의식을 조정하거나 혹은 자신의 종족을 번식시킨다. B급 영화의 또 다른 기수였던, 로저 콜만Roger Corman 감독의 <그것이 세계를 정복했다 It Conquered the World (1956)>에선 아이스크림 콘을 뒤집어놓은 듯한 이빨달린 금성 출신의 괴물이 바다가재 팔을 하고선 자신의 몸 밑에서 박쥐 모양의 마인드콘트롤 장치를 토해내며 움직인다. 요 박쥐가 인간에게 날아가 인간의 목 뒤꼭지를 물어 무선 조정장치를 이식한 후 그 자리에서 즉사하면, 바로 이에 반응하여 아이스크림 콘 괴물의 명령을 받아 꼭두각시로 변신한다. <그것은 외계에서 왔다 It Came from Outer Space (1953)>에선 흉측한 외눈박이 괴물 외계인이 인간 신체를 복제해 탈취한다. 신체 탈취의 장면에서 카메라는 항상 그 괴물의 시선과 관객의 것을 일치시킨다. 이는 마치 살인자의 렌즈로 관객의 시선을 밀어넣듯 공포스럽다. <그것! 우주 밖 테러 It! the Terror from beyond Space (1958)>에선 화성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우주선에 외계 괴물이 잠입한다. 이 괴물은 '아가미인간'the Gill Man과 비슷한 외양이나, 총을 쏴도 소용없고 전기쇼크도 끄떡없는 점에서 대단히 난감한 종이다. 우주선 안에서 시작해서 끝나는 이 지루한 영화에서, 결국 화성 괴물은 지구인과 대치하며 사투를 벌이다 죽는다. (이 극본은 나중에 영화 <에이리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다.)
조금은 다른 경우로
, <나는 외계의 괴물과 결혼했다 I married a Monster from Outer Space (1958)>의 안드로메다 행성의 외계인들은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흔히 볼 수 있는 외계인의 외양을 갖는다. 이들은 여성들의 몰살로 그 종족 번식을 위해 지구에 침입해 들어온 경우다. 이들은 인간과 똑같은 몸을 만들어 숙주삼아 그 신체 안에 기거하면서, 인간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인간 신체의 탈취 과정에서 보여주는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와 신체 탈취 후에 번개칠 때 보여주는, 아수라백작같이 반쪽은 외계인의 형상이, 다른 반쪽은 인간의 얼굴이 나란히 포개지는 모습은 상당히 극적 긴장감을 준다. <지구 대對 비행접시 the Earth vs the Flying Saucers (1956)>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상당히 인간에게 우호적이었으나 군인들의 선제 공격으로 난폭해진 경우다. 이들은 인간들을 잡아 그 뇌로부터 모든 기억을 사출해 저장하는 일명, '무한분류기억은행' Infinitely Indexed Memory Bank을 선보인다. 앞도 보이지않을 것 같은 갑옷모양의 헬멧을 머리에 뒤집어 쓴 이 외계인들의 실물은 흔히 알려진 쭈글쭈글한 달걀형 외양의 것이다. 

 

외계인 유형 3: 무정형 혹은 상상에 맡기기


인간과 비슷하거나 괴물의 외양이라기보다는 무정형의 외계 생물체들도 존재한다. <블롭 The Blob (1958)>에선 외계에서 떨어진 벌건 물풍선 모양의 굴러다니는 외계 생물체가 인간을 삼키며 부피를 키운다. <혹성 애로스에서 온 뇌 The Brain from Planet Arous (1957)>에선 정말 날아다니는 뇌가 외계 생물로 등장해 인간의 신체를 숙주삼아 몸 안으로 들어간다. 영국판 텔레비전 시리즈물 <트롤렌버그 테러 The Trollenberg Terror>에서 착상을 얻어 만든 영화 <기어다니는 눈알 The Crawling Eye (1958)>에는 문어처럼 기다란 촉수를 지니고 커다란 외눈박이 눈알을 지닌 외계 생물이 유럽의 트롤렌버그 산에 서식하며 인간을 공격하거나, 인간에 최면을 걸어 서로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다.   

    아예 외계인의 모습을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영화들도 당시 있었다. <지구를 조준하라 Target Earth (1954)>는 저예산 영화의 고전 중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외계인은 아예 출현하지도 않을뿐더러, 외계인이 지구를 정복하기위해 보낸 로봇이 출현한다. 제작비가 너무 적어서인지, 단 하나의 깡통 로봇만이 뒤뚱거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돌아다닌다. 이 로봇을 무력화하는 초음파를 찾아낸 과학자들이 지구를 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결말난다. H. G. 웰즈Wells의 소설을 영화화한 <우주전쟁 The War of the Worlds (1953)>에서도 화성인들의 실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스필버그의 최근 <우주전쟁 (2005)>에선 외계인 모습이 등장하나, 이 올드 버전에는 그 실체가 없다. 마지막에 지구의 박테리아에 의해 죽으며 외계인의 손인 듯 보이는 것이 툭하며 떨어지는 모습이 단서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호적 표시를 위해 백기를 들고 서있는 마을 주민들을 레이저빔으로 흔적도 없이 날려보낼 정도로 이들은 적대적이다.      

 



외계인의 다양한 외양: 이방인에 대한 공포의 반영


50년대 인간들이 느꼈던 외계인의 유형들은 이처럼 다양했고 달랐다. 80년대 <이티 E.T. (1982)>에서처럼 한없이 평화만을 사랑하는 외계 생물종은 드물었다. 50년대 인간의 상상 속에서 에이리언들은 대포나 핵기술로는 도저히 절멸시킬 수 없던 공포의 종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무정형에 가까울수록 최면, 살인, 포섭, 흡수 등 더 거친 면모들을 보여준다. 적성국의 낯선 이방인들의 모습은 그렇게 주로 적대감에 기초해서, 모를수록 증가하는 공포 심리를 실어서, 그리고 자유주의 시민들이 이들에 대해 느끼는 인식 수준에 준해서, 서로 다른 계열의 상상의 생물들로 재현되었다. (200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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