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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외계 생물의 공포와 이념의 세기, 또 다시 정보자유의 공포로

빛바랜 SF영화로 미래 읽기 3

 

외계 생물의 공포와 이념의 세기, 또 다시 정보자유의 공포로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독일의 한 유명한 설문기관이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독일 7천여 명을 상대로 여러 차례 외계인에 대한 국민 의식을 알아본 적이 있다. 거의 십여 년 세월이 변하면 마음도 변했을 법 하건만, 그 설문자들 중 40%는 외계인의 존재를 매우 믿거나 아니면 그리 부정할 만큼 확신도 없는 부류로 집계됐다. 놀랍지 않은가! 허다하게 인공위성을 핑핑 쏘아올리고 주기적으로 하늘로 뿜어져 올라가는 우주선에 무덤덤해 하는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면, 외계인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거나 아예 없다고도 말 못하는 사람들이 이리 많다는 사실은 조금 의아스럽기조차 하다.

   지금도 외계인에 대한 믿음이 이럴진대, 과거 흑백 시대엔 그 강도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1938년 미국 라디오 초기 역사에 해프닝으로 기록될 외계인 소동을 기억한다면, 그 당시 외계인 공포는 지금과는 격이 다르다. 그 때 당시 CBS 방송 앵커였던 오손 웰스Orson WellesSF 소설의 원조격인 H. G. 웰즈Wells의 소설 <우주전쟁 The War of the Worlds>을 각색해 읽고 있었고, 뉴저지에 외계 생명체가 습격해 온다는 그의 멘트에 온 국민이 난리법석을 피운 사건을 지칭한다. 지금으로선 역사적 개그에 해당한다.

   그런 개그가 현실이 된 곳이 무엇보다 냉전 시대 미국이었고,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시대의 문화적 반영물이 5, 60년대 숱하게 만들어졌던 외계인 영화들이다.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당시 외계인을 바라보는 사회의식의 근저가 무엇인지를 당대에 소개됐던 대표작들을 통해 살펴볼까 한다.

 

의식 세뇌와 빨갱이 공포

어릴 적 초등학교 빽빽한 교실에서 거의 연례행사인양, 자대고 도화지에 줄을 그으며 "때려잡자, 공산당!"과 같은 표어를 만들고, 표독스런 돼지 얼굴에 뿔달린 악마 형상의 '빨갱이'를 그리던 기억이 있다. 시간나면 마을 뒷동산에 올라 삐라를 주워 선생님께 드려 크게 칭찬받았던 기억도 난다. 아침잠이 그리웠던 고등학교 때는, 학교 교장이 솔선해 나서 아침마다 30분씩 이념 교육 비디오에 반공 훈시를 하고, 대학에서 데모하는 형들이 혹시나 기웃거리며 불온 '전단'이라도 뿌릴까 교장이 수위아저씨랑 함께 학교 담벼락을 둘러보며 항상 경계하던 기억도 있다. 부모와 가족도 버리면서 오직 해방전선에 몸바치는 북파 간첩들이 이곳 고정간첩과 합세해 순진한 남한 사람들을 '세뇌' 공작하는 따위의 텔레비전 드라마들을 심각하게 보면서 북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기도 했다. 이는 마치 내 마누라, 자식, 가족들, 동네 경찰관 아저씨와 마을 사람들, 심지어 군인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둘 외계인들에 의해 영혼을 탈취당해, 꼭 감정없이 움직이는 시체인 좀비가 되어 내게 덤비는 되는 SF영화속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과 비슷하다.             

   <화성에서 온 침입자들 Invaders from Mars (1953)>이란 영화의 주인공 남자아이 데이비드가, 아마도 외계인들의 인간 세뇌로 인해 가장 처절할 공포를 느꼈을 법하다. 언제나 그렇듯 갑자기, 데이비드 집 근처 흙구덩이 속으로 화성인들의 비행접시가 떨어져 박힌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바로 산속 공비들의 출현이다. 데이비드의 아빠, 엄마가 우연찮게 그 화성인들이 거처하는 땅 속 구덩이에 빠졌다 나온다. 그 모레 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온 이들은 또 다른 동네 사람들을 유인해 그 곳에 빠뜨린다. 그러곤 바로 아무 감정도 없는 외계인들의 노예들이 돼서 하나씩 나온다. '빨갱이' 의식화 과정과 흡사하다. 외계인 좀비들의 공통점은 목뒤에 칼자국 모양의 상처가 있고, 이는 화성인들이 목 뒤에 인간을 조정할 수 있는 장치를 피부 안에 이식했다는 증표다. 세뇌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즉각 이들의 특성을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감염되기 전에 즉시 신고하라, 이것이 영화속 데이비드가 생존하기 위한 철칙이었다. 이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의 단면처럼 스산하다. 결국 데이비드는 이미 외계인으로 변해버린 가족들을 포함해 늘어나는 이 좀비들의 한 가운데에 외톨이로 남는다.  

   군부 정권아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내 의식처럼, 그리고 녹색 화성인들의 공포 앞에 선 데이비드처럼, 50년대 자유주의 국가들의 적색 공포와 적대는 대단했다. 50년대 하면 미 정치권에선 그 유명한 '메카시즘'이란 마녀사냥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절이다. 메카시 상원의원이 언론의 힘을 교묘히 이용해 반공운동을 전개하면서 이를 가지고 여러 정적들을 탄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실제 공산주의를 ", 결핵, 그리고 심장병이 합해진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을 죽일 수 있는 질병"으로 묘사했다. 사태가 그렇다면, 화성인들의 모래구멍으로 빠졌다 나오는 영화 속 인간들은 그 질병에 감염되어 이미 자본주의 체제로 복귀불가능하게 된 외계인들이다이는 <신체강탈자들의 침입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1956)>에서도 극적으로 묘사됐다. 외계인들은 콩깍지 모양의 배아체를 통해 인간이 잠든 사이 인간 몸을 숙주로 삼아 서서히 하나둘 포획해 나간다. 이는 마치 무서운 전염병의 파급처럼 밀어닥친다. 애인마저 적이 되어 외계인으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구사일생으로 외계인이 점령한 마을을 빠져나온 주인공의 마지막 절규는 "그들이 너를 뒤쫓고 있다! 다음은 네 차례다!"란 경고의 메시지다. 이는 냉전 시대 내내 우리를 적색 공포로부터 보호해주었던 경고 문구와 같다.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의 주요 데뷔작이기도 했던 <블롭 The Blob (1958)>에 오면 그 외계인의 모습은 마치 젤리같이 무정형의 적색 폭군으로 등장한다. 첫째 이 외계 생물의 특징은, 틈만 있으면 어디든 스며들고 빠져나간다. 게다가 말랑말랑한 액체의 이 외계 생물은 기가 막히게도 그 색깔이 빨갛다. 다음으론 인간 몸을 제 것으로 흡수하면서 커진다. 즉 개성을 말살한다이 시뻘건 풍선같이 생긴 외계 생명체가 외계에서 날아올 때만 해도 아주 작아 힘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외딴 곳에 사는 노인의 팔에 들러붙어 있다가 급기야 그를 흔적도 없이 녹여 삼킨다. 그러곤 이곳저곳 스멀스멀 다니며 그 벌건 덩어리는 인간을 하나둘 삼키면서 점점 덩치가 커진다. 마치 공산주의 의식화 과정과 확산 과정처럼, 끊임없이 불어나고 삼킨다.

   예외도 있다. 당시 영화들이 모두가 다 외계인의 인간 신체 침입을 이념 대립의 산물로 연결짓진 않았다. 저예산 영화 중 하나인 <혹성 애로스에서 온 뇌 The Brain from Planet Arous (1957)>에선, 뇌처럼 생겨 떠다니는 외계인이 출현한다. 이 번쩍거리는 눈을 가진 떠다니는 뇌는 한 인간의 몸속에 들어가 그 의식을 지배하지만, 하루에 한번은 인간 숙주를 벗어나야 하는 약점을 갖고 있다게다가 블롭처럼 불어나거나, 확산과 전염의 위험도 없다. 이 영화에는 혹성 애로스로부터 도망쳐 온 '고르Gor'라는 범죄자와 이를 쫓는 착한 우주 경찰 'Vol'만이 외계인으로 출현한다. 고르가 지구정복의 꿈을 갖고 핵물리학자 스티브의 몸 속에 들어가 핵 방사능으로 전 도시를 쓸어버리고 지구인을 노예화할 야심을 보이지만, 이 야심만만의 외계인 고르는 그의 한가운데 약점, 뇌의 중앙 주름에 해당하는 '롤란도의 열구Fissure of Rolando'를 인간에게 가격당해 죽고 사건이 종결된다.       

 

외계인의 신체 이식 문화와 디지털 무한복제 문화 

<혹성 애로스에서 온 뇌>의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체로 50년대 외계인 영화들의 공통분모는 냉전과 메카시즘의 문화가 깊게 자리함을 보았다. 무엇보다 재미난 것은 지구 인간을 대체하는 외계인들의 번식 속도다. 이는 상징적으로 적색 의식화 과정과 급격한 확산에 대한 두려움을 지칭했다. 영화에선 이를 막기 위해 언제나 경찰과 군인들이 자유 수호의 최후 보루로 등장한다. 폭력성의 상징인 군인들이 냉전 시대 인간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부각되는 점도 지금에 오면 참 아이러니다.

    구체적으로, <또 다른 세계에서 온 물체 The Thing from Another World (1951)>는 외계인 번식의 가공할 능력을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야채 괴물' 외계인은 마치 지구 식물들처럼 무한 재생산 복제가 가능하다. 이 식물 외계인은 꽤 특징적인데, 마치 거름처럼 인간 피로 성장하고, 괴물의 혈액을 나눠 부양하면 마치 가지치기하듯 속성으로 자기복제된 수많은 외계인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녔다. 물론 영화에선 오직 하나의 외계인이 알라스카 미 군사 기지 근처에 떨어져 군인들과 소란을 피우다 전기쇼크로 사망하지만 말이다. 또 하나, <그것은 외계에서 왔다 It Came from Outer Space (1953)>에서 등장하는 흉측한 외눈박이 괴물 외계인은 인간의 신체를 대체하기보다 인간 복제를 택하는 경우다. 대개 인간의 몸을 빌어 외계인이 그 안에 들어앉는 토착과 이식의 과정을 거치지만, 이 영화에선 벌집형 타원의 비행접시가 고장나 지구에 불시착한 이 외눈박이 괴물은 그저 인간과 똑같은 복사 모형을 만든다. 즉 마을 밖에서 활동하는 것은 일종의 만들어진 인간 인형들이고, 진짜 원본은 따로 외계인들이 잡아가둔다. 결말은 주인공의 중재로 외눈박이 괴물이 우주선을 고쳐 떠나지만, 여러모로 지금 현실과 관련해 재미있는 시사거리를 준다.           

   두 영화에서 야채 괴물은 복제의 마왕이요, 외눈박이 괴물은 원본을 놔두고 복사본을 판치게 만드는 골칫덩이다. 요새 세상의 눈으로 보면,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자와 정보자유의 대당과 흡사한 그림이 그려진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복제해 돌리고 여럿이서 나누는 누리꾼들은 자본주의의 저작권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성' 마왕이요 골칫덩이에 다름 아니다. 요런 악성 누리꾼을 때려잡는 일은 저작권자의 몫이요, 이를 대행하는 일은 사법기관의 몫이다. 한번 새나간 디지털 정보는 무한 복제돼, 마치 외계인의 번식 능력만큼이나 감히 어느 누구도 이를 다 제거하기가 힘들어진다. 누리꾼들은 정보 공유의 철학에 감염되기 쉽고, 그 영향은 네트워크를 타고 무섭게 흐른다. 

   이젠 적색 공포보다 무서운 것이 '정보자유'. 자본주의가 대세인 시대에 겁날 것은 사유 재산의 도장이 찍힌 정보와 지식에 반대해 정보자유를 부르짖는 자들이다. 이들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외계인이자 저작권자들에게 제일 겁나는 족속들이다. 결국 50년대 외계인이 '빨갱이'이였다면, 지금의 새로운 외계인들은 '반저작권자'들이다. 세월이 변하면 외계인의 속성도 변하는 법이다. 흑백 시대엔 빨갱이에 과민 반응해서 역사적 냉전의 코미디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에 반저작권 운동을 "때려잡자"는 구호는 또 하나의 반복된 코미디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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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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