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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영화속 외계인, 오늘 디지털 폐인과 조우하다!

빛바랜 SF영화로 현실 읽기 5

 

50년대 영화속 외계인, 오늘 디지털 폐인과 조우하다!

 

이광석 

 

지난 호에선 50년대 영화 속에서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외계인의 모습이, 그에 대한 인식 정도에 따라 여러모로 다양했음을 보았다. 당시 인간에게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같이 생긴 것에서부터 흉측한 괴물에다 아예 무정형의 것들까지 이러저러한 상상의 생명체들을 만들어낼 정도로 다채로웠다. 낯선 이방인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 대한 다양한 추측과 상상을 불러왔던 것이다. 세월의 겹을 지나 오늘에 이르면 사람들이 바라보는 그 외계인의 모습도 변한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외계인은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당시 외계인과 흡사하게 오늘을 사는 외계종으로 디지털 폐인廢人 꼽으련다. 몇 년 전부터 사회의 새로운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들은, 누에고치cocoon족들처럼 한 곳에 칩거하길 즐기고, 야행성에,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인터넷 선에 매달려 온라인 게임과 야동에 중독증을 보이는 종족을 지칭하고 있다. 이들은 현실의 공간보단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는 밀폐된 곳에서 하루 시간 중 거의 대부분을 보내는 신종 칩거형 인간형인데, 50년대 영화속 외계인들의 행태만큼이나 독특하고 비슷한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다.                 

 

동굴과 게임방

50년대 외계인화들은 대부분 정체모를 유성의 추락으로 시작한다. 평온을 깨는 (주로 차 안에서 벌어지는 연인의 로맨스를 방해하는) 이 낯선 비행접시들은 거의 모두가 인간의 마을로부터 떨어져있는 야산, 둔덕 등에 땅굴을 파고 들어가거나, 기존에 있는 동굴 등에 자리를 튼다. <화성에서 온 침입자들 Invaders from Mars (1953)>에선 녹색 화성 외계인들이 마을 외곽에 사람들을 땅속으로 끌어들이는 '개미지옥'마냥 지하 동굴을 만들어 자신들의 활동 근거지로 삼는다. <그것이 세계를 정복했다 It Conquered the World (1956)>에서 금성 출신의 아이스크림 콘 괴물은 본거지로 삼던 동굴을 군인들에게 들키면서 최후를 맞는다. <그것은 외계에서 왔다 It Came from Outer Space (1953)>의 흉측한 외눈박이 괴물은 벌집형 타원의 비행접시를 몰고 와, 이를 수리하기 위해 깊은 땅 속에 터를 마련한다. <혹성 애로스에서 온 뇌 The Brain from Planet Arous (1957)>에서 외계인 범죄자 '고르'Gor '신비의 산'이라 불리는 곳에 자리를 잡고, 핵물리학자 스티브Steve를 이곳으로 유인해 그의 몸속에 은신한 채, 인간의 마을로 내려온다. <외계의 9호 계획 Plan 9 from Outer Space (1959)>에서 외계인들이 착륙해 음모를 꾸미는 주 영화무대는 헐리웃 묘지였고, <우주로부터 온 킬러들 Killers from Space (1954)>의 애스트론 델타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의 최초 은신처는 또한 동굴이었다. 이렇듯 외계인들의 최초 은신처는 동굴, 지하철역, 땅굴, 묘지 등이다

외계인이 은둔과 칩거를 하며 음모를 꾸미는 장소의 특징을 디지털 폐인들도 대체로 답습한다. 사회적 고립에다 대인관계의 기피, 저녁부터 동이 터오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행성 활동, 앉은 자리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생활방식 등이 닮았다. 이 모든 것은 공부방, 게임방, 서재 등에서 이뤄진다. 디지털 폐인들은 붙박힌 곳의 반경 안에서 꼼짝도 않고 사물과의 실제 접촉없이 온라인에 상주하길 바라며, 타인으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아 한다. 자신이 거하는 공간이나 컴퓨터를 잃으면, 비행접시 잃은 외계인마냥 삶의 희망을 잃은 듯 혹은 수족이 잘린 듯한 기분으로 살아간다.    

 

에로티시즘과 야동

외계인이 인간의 몸에 들어가거나 최면을 걸면, 그 조종을 받아 난폭해진다. 외계인의 난폭성이 인간에게 전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폭성 외에도 몇몇 외계인은 과도하게 에로틱한 모습을 보여준다. 몇몇 영화들은 특징적으로 인간과 외계인을 구분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예를 들어 상당히 분별력있던 사람이 어느날 과도하게 그리고 비이성적으로 에로틱해지는 모습을 보이면 틀림없이 외계인에 의해 몸이 탈취당한 상태로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외계의 괴물과 결혼했다 I Married a Monster from Outer Space (1958)>에서 안드로메다 행성의 외계인이 허니문 중에 있는 빌Bill의 몸 안에 들어가 부인인 마지Marge를 평소와는 다른 거친 모습으로 대한다. 강한 키스신 등 평소와 다른 빌의 이상한 행동이 이어진다. <혹성 애로스에서 온 뇌>에서 과학자 스티브의 몸 속에 들어간 외계 생물 고르는, 스티브의 부인 샐리Sally에게 성적으로 강한 애정 표현을 하려 한다. 이는 인간끼리의 정상적인 부부 생활까지도 훼방하며 끼어드는 외계인의 남성적 폭력성을 그리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조금 맥락은 다르지만, 영화 <기어다니는 눈알 The Crawling Eye (1958)>에서 유럽의 트롤렌버그 산에 기거하는 문어 모양의 외계 괴물은 인간 조정의 텔레파시를 뿜어내며, 여주인공 앤Anne의 초능력과 부딪히거나 그녀를 신들린 듯 쓰러지게 만든다. 괴물 공포영화들에서 흔히 보이듯 여성이 괴물의 희생양인 점을 고려하면, 에로틱한 모습을 보여줬던 대개의 외계인들은 반대로 '수컷'들이다.

동굴에 칩거하면서 여자 인간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외계인들의 모습은 여태 디지털 폐인에서도 잘 보인다. '야동'이란 신조어가 국민들이 즐겨보는 오락프로그램에서 평범한 언어가 되고, 대중에게 회자될 정도로 '야동'은 디지털 폐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들이 대놓고 얘기하며 즐기는 문화가 됐다. 오죽하면 중국에 이어 전세계 '야동소비 2위국'의 대열에 끼었을꼬. 이의 유행에는 일차적으로 디지털 폐인들의 공헌도가 무지하게 크다. 마치 외계인들이 인간들을 줄줄이 최면걸어 자신의 지배아래 두듯, 온라인을 통해 여성 몸을 훔쳐보는 소수 디지털 폐인들의 시선이 뭇 남성들의 지배적 시선으로 전염된다. 슬슬 대중은 외계 폐인들의 최면에 하나둘 넘어가는 것이다.           

   

천적들, 개와 영파라치

마지막으로 필자가 발견한 재밌는 사실은, 외계 생물은 대체로 개를 싫어한다. 아마도 인간의 충복으로서의 개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엄밀히 말하면 개가 외계인을 싫어한다. 개는 제 주인의 몸이 외계 생물에 의해 강탈당했는지를 쉽게 판별하는 눈을 가졌다. 이는 외계인을 무척 당혹하게 한다. 당연 외모만 주인을 보고 개가 짖기 때문이다. <혹성 애로스에서 온 뇌>에서 스티브의 개 조지George, 변한 제 집주인을 보자마자 물어뜯고 짖고 난리를 피운다. 스티브 몸속에 들어간 외계 범죄자 고르를 잡기 위해 뒤쫓아 온 외계경찰 볼Vol, 조지의 몸 안에 들어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외계의 괴물과 결혼했다>에서 빌의 거죽을 빌린 외계인은 개가 그를 보고 짖자, 부인인 마지 몰래  지하실에서 그 개를 목졸라 죽인다. 외계인에게 개는 인간보다 무서운 천적이다.         

법을 위반하는 자를 찾아내어 포상금을 타내는 전문 신고자를 우리는 '파라치'라 부른다. 또 불법으로 디지털 영상이나 음반을 공유하는 웹사이트 등을 신고하여 포상금을 받으면 이를 '파라치'라 구체화하여 부른다. 디지털 폐인들은 디지털 동영상에 익숙하며, 이의 가장 바쁜 잠재적 소비자들이자 공유자들이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신경이 곤두선 영화업계 등의 저작권자들은 이들 영파라치를 고용하거나 포고문을 내걸고, 법을 어기는 폐인들을 잡아들이길 명하고 있다. 저작권자와 영파라치들의 힘이 거세지면서 잡음도 심해지고 있다. 저작권자들이 요구하는 악성 폐인들 신상명세 공개를 꺼린 미국의 정보서비스업체들은 스스로 자신들은 '저작권자의 사냥개'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일도 생겼다. 이를 보면 경위야 어떻든 잘 따져보면, 폐인들과 '영파라치'의 관계는 외계인들과 인간이 기르는 개의 관계만큼이나 상극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또 하나의 진실은, 영파라치의 사냥 능력이 외계인을 식별하는 개만큼이나 탁월하다는데 있다.

 

오늘을 사는 외계인들

동굴 서식, 에로틱한 면모, 그리고 개를 두려워하는 것 모두는 사실 외계인의 정신병리적 특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SF 영화의 주요 기제들이다. 영화에서 외계 이방인에 대한 인간의 공포감을 조절하는 장치들인 셈이다. 한편 오늘에 이르면, 밀폐된 방, 야동, 천적인 파라치 등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남성군, 특히 디지털 폐인들의 골병든 자화상으로 봐야할 것이다. 유비쿼터스 사회가 온다고 하나, 끝없이 늘어가는 청년들의 만성 실업 상태는 이들을 어두운 골방 속의 폐인들로 쉽게 바꾸었다. 하루 일과를 스크린 앞에서 시작해 그 앞에서 취식하는 골방의 폐인들은 야동과 게임에 미치고 동영상을 힘껏 내려받고 올리는데 그 젊은 혈기를 쓴다. 폐인이 폐인인 까닭은 자신의 바깥과 소통하지 않는데 있다. 온라인으로 누구엔가 소통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허구인 이유는 살아있는 소통을 배제하는데 있다.

'빨갱이' 적성국의 이방인들에게 향했던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상상의 괴물들을, 오늘 지금을 사는 우리가 다시 그렇게 또 열심히 또 다른 이방인의 얼굴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젠 단순히 공포의 상상물이 아니다. 바로 우리 곁에서 꿈과 희망을 갖고 열심히 일해야 할 청춘들을 디지털 폐인들로, 우리 밖의 기괴스런 외계인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200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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