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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08 와이파이, 와이맥스, 그리고 와이브로 - 사라져가는 공유 정신

2008년 8월호 이광석


한 국에 종종 들르면 인터넷을 쓸 데가 마땅치 않아 전에 다니던 대학의 캠퍼스를 찾곤 한다. 한국이라는 인터넷 초강국에서 학생들은 10년 전 내가 미국 유학을 가기 전과 다름없이 아직도 랜선을 연결해 컴퓨터를 쓰는 모습이 더 흔하다. 무선인터넷을 쓸라치면 어김없이 KT의 네스팟 유료 서비스 화면이 뜨기 일쑤다. 한국의 초고속망을 부러워하는 미국에서도 캠퍼스 어디서든 무선인터넷에 연결된다. 물론 이 경우 학생 신분일 경우만 가능하다. 드넓은 잔디 위나 어느 후미진 벤치에 앉아서도 인터넷에 접속된다. 캠퍼스 길바닥에서 인터넷으로 피자를 주문한 적도 있다. 카페, 음식점, 커피숍, 술집, 공원에서 누구든 무료 인터넷이 가능하다. 그리고 보면 어디서든 차별없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가능성은 기술 능력이기보단 사회적 포용성의 차이인 듯하다. 

작년 에 싱가포르를 다녀왔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는 방문객 자격으로 그럭저럭 인터넷을 쓸 수 있었지만, 호텔에선 비싼 요금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커피숍 어디라도 가면 무료로 인터넷을 쓰겠다싶어 돌아다녔지만 어디나 유료 서비스만 즐비했다. 한국보다 상황이 나아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국내 몇몇 커피숍에서는 자체 와이파이(Wi-Fi)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하는 곳이 눈에 띄었다.
미 국 호텔방에서 인터넷을 하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체크인 로비 공간에선 무료로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도 일종의 서비스 차원에서 이뤄진다. 필자가 사는 집에도 와이파이 라우터가 있다. 일반 케이블회사로부터 인터넷 서비스를 받으면서 자체 무선 라우터를 사서 장착해 무선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가정들은 이런 식으로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어떤 사람들은 옆집과 자신의 와이파이 대역을 함께 나눠 쓰기도 한다.

와이파이는 철저히 공유의 철학에 기반한다. 무선랜 카드와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차별없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주파수만 잡히면 서로들 나눠쓴다. 하지만 기업들이 이 틈을 그냥 놔두질 않는다. 좀더 고품질로 기업들이 이 분야에 진출하고, 최근에는 와이맥스(WiMAX)라는 기술이 와이파이를 보완해 나옴으로써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와이파이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인다. 와이파이의 전파가 고작해야 50m에서 200m 정도 미치는 데 반해 와이맥스는 도심에서 1, 2km, 장애물이 없는 경우에는 45km까지 미친다 한다. 게다가 한 번 전송량도 와이맥스가 두 배 정도 빠르다. 국내에선 모바일 와이맥스, 즉 노트북, 휴대폰, PDA 등 이동형 단말기를 통해 달리는 중에도 인터넷에 접속하는 ‘와이브로’ 기술까지 개발했다.    

미국에선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오스틴 등이 와이파이의 천국으로 꼽힌다. 이 도시들이 천국인 이유는 시민단체들과 시당국이 무료로 시민들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핫스팟(와이파이 안테나 반경이 미치는 구역)을 계속해서 구축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도 그렇지만 국내에서도 좀더 확대된 반경과 품질로 무선인터넷 시장이 언제든 통신기업들에 의해 평정될 날이 올 것이다. 와이맥스나 와이브로가 그리 반겨지지 않는 까닭이다. 와이브로가 한국의 정보통신업계에 새로운 ‘먹거리’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시민들을 위한 와이파이의 자유정신이 사라질까 두려운 것도 같은 이유다. 세련되고 쉽게 연결되고 쾌속의 상업서비스에 몰표를 던질 것인가, 아니면 느리지만 누구나 무임승차할 수 있는 무선 서비스를 살리면서 갈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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