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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06 지도 위에 펼쳐지는 인간의 생활상

<2008년 6월호>       이광석


 



필 자는 몇 년 간 지리정보시스템(GIS)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일반 통계 분석 소프트웨어가 이미 많이  개발돼 쓰이고 있지만, 평소 지도를 통해 사람들의 생활상을 실감나게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던 터였다. 단순히 숫자를 나열하는 것보단, 정확한 지리정보를 그래픽을 통해 보여준다면 그 이상 설득력이 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필자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기획은, 텍사스 오스틴 도시에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던 공공 ‘무선인터넷’ (Wi-Fi)의 위치와 도시 내 인구통계학적 변수 간의 관계를 지도 위에 포개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그때 사용했던 것이 ‘아크뷰’(ArcView)라는 프로그램이다. 디지털사회에서 지리정보는 각종 정보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인터넷 지도검색, 도로상황 실시간 시스템, 휴대폰의 친구찾기 서비스, 지리위치정보시스템(GPS) 등 현대인이 살면서 원하는 곳을 살피는 데 그 유용성이 탁월하다.

단순한 물리적 지형도를 넘어서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과 인간이 맺는 정보의 흐름을 보여주고자 했던 최초 시도는 19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19년 프랑스의 삐에르 듀팽은 문맹률의 지리적 분포와 집중을 보여주기 위해 그 지역 격차를 흑백 농도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시한 적이 있다. 일종의 ‘카르토그램’(Cartogram)을 도입한 셈이다. 1855년 존 스노우가, 영국 내 콜레라 위치와 그 확산 경로를 지도 위에 점으로 표기해 그 돌림병의 근원지를 막는 데 공헌했다. 

이후 지리정보의 컴퓨터화는 1960년대 중반까지 하버드 컴퓨터 그래픽 시험실 등 지리정보 연구의 산실인 교육기관이나 공공기관의 몫이었다. 허나 1969년을 기점으로 중대한 전환이 일어났다. 잭과 로라 덴저몬트가 단돈 천백 달러로 환경과학연구소(ESRI)를 세워 지리정보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이름 없던 회사가 이젠 전 세계 지리정보 프로그램 매출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독점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필자가 썼던 아크뷰도 바로 ESRI가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ESRI는 1992년에 그래픽 사용환경의 아크뷰 1.0 데스크톱 버전을 출시하면서 국내와 전 세계 지리정보 소프트웨어 시장을 석권한다. 아크뷰는 현재 9.X버전까지 출시됐는데, 각종 지리 분석도구들까지 연동되는 그래픽 토털 지리정보 시스템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의 그 지배력은 물론이고, 지리학도들이 공간지리 분석 프로그램을 쓴다하면 대부분 이 ESRI 제품군의 아크뷰를 익힌다고 보면 된다. 

지리정보가 인구통계 수치와 연동이 되면, 지리적 불평등의 문제, 지역 간 상호 연관 관계의 관찰, 질병과 물류, 교통, 네트워크 정보의 흐름 등을 파악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지리정보의 세밀화와 보다 복잡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허나 ESRI가 독점력을 이용해 보급판 아크뷰의 가격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올려놓아 일반인의 접근성을 막고 있는 현실이라, 당장 질 좋은 공개소스용 프로그램들의 개발이 아쉬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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