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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무환경 디자인쇼, 그 환상

미래 사무환경 디자인쇼, 그 환상 [한겨레]2001-05-19 05판 12면 131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의 '노동환경전'이 얼마전 막을 내렸다. 4개국에서 구성된 디자인팀이 신경제시대의 사무환경을 주제로 삼아 200점 이상의 전시작을 선보였다. 전시회는 이미 시장에서 유통되는 작품까지 포함하고 있어 마치 상품 선전장 같았다. 디자인 전시의 대상은 신경제의 전문직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 환경에 한정됐다. 디자이너들에게 블루칼라의 작업장은 미래 노동환경을 채색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 모양이다.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신경제 노동의 유목화와 일상화다. 어떤 장소를 막론하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기업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는 노동의 편재성과 노동.여가 시간의 경계를 흐리는 노동의 일상성을 첨단기술과 결합된 작품들로 표현하고 있다. 항공 화물 컨테이너의 외양을 빌린 유무선 첨단장치를 갖춘 날아다니는 사무실은 한 장소에 붙박힌 근무지에 대한 일반적 상식을 무너뜨린다. 위성통신과 컴퓨터 장비가 부착된 자동차는 사막을 횡단하건 절벽을 오르건 항시 대기 중인 또 다른 이동식 사무실이다. 입고 차는 컴퓨터는 물론이고, 스피커가 달린 베개와 컴퓨터 화면이 달린 간이침대는 잠시 누워있는 동안에도 수시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일에 쫓기는 사람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제공하는 첨단 디지털 식판의 화면을 통해 인터넷을 하면서 간편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창문 하나 없는 사무실 천장에 계절.날씨에 따라 입맛에 맞게 각각 50개의 다른 하늘을 만들어낼 수 있는 디자인은 미래 근무환경의 새로운 운치로 선전된다. 그러나 이렇게 현란한 기술로 치장한 디자인의 매끄러움이 사물을 지배하면 그 내용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시공간 극복의 첨단 사무실이 강조되면 작업장내 노동통제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의문은 사라진다. 신경제의 노동관리 방식이 디자인을 통해 과장되어 투영됨으로써, 관객은 그저 우스꽝스런 첨단 장난감들에 호기심을 가질 뿐 노동의 질에 대한 고민은 불가능하다. 단지 전시회 이면에 제록스재단과 같이 통제중심의 사무환경 디자인 설계에 심혈을 쏟아왔던 후원업체들이 버티고 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속내를 엿보게 해줄 뿐이다. 노동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기획 의도는 노동자의 현실적인 요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의 미래 사무실이 디자이너의 장밋빛 상상 안에서만 움치고 있다. 기획 자체도 사무직 노동자들의 일상적 통제를 위한 시험 무대이자 상품판촉의 시장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크다. 신경제 작업 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첨단 디자인을 구매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시종일관 전시 분위기를 이끄는 것이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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