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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한겨레 '이광석의 @디지털사회'에 연재했던 100개의 시사성 글들

9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1/03
    민주적 가치 ‘와이파이’
    두더지-1
  2. 2006/01/03
    “권리, 게임으로 배워봐”
    두더지-1
  3. 2006/01/03
    엠에스의 들통난 속임수
    두더지-1
  4. 2006/01/03
    영화 ‘X파일’의 힘
    두더지-1
  5. 2006/01/03
    지식 공유의 새로운 구상
    두더지-1
  6. 2006/01/03
    저작권 진영의 분열
    두더지-1

민주적 가치 ‘와이파이’

민주적 가치 ‘와이파이’ [한겨레]2002-07-11 04판 10면 1323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기술 발전이 한 사회의 영향권 아래 있다 하더라도 일면 기술이 지닌 상대적 자율성도 인정해야 할 듯싶다. 기술 발전의 방향이 힘의 논리에 좌우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종종 기술은 규정된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운동 반경을 그리기도 한다. 기술의 형성 과정에 가끔은 진보적 가능성이 유보된 채 눈에 띄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런 기술은 일반적으로 여럿의 접근을 보장하는 민주적 가치를 지녀서인지 권력의 따가운 시선과 잇단 통제욕에 노출돼 있다.미국내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무선랜(근거리통신망) 기술 ‘와이파이’(Wi-Fi)도 이런 가능성의 기술 중 하나다. 와이파이는 하이파이 오디오처럼 편하고 쉽게 쓸 수 있는 무선 기술의 대중성을 겨냥하고 있다. 그 말뜻만큼이나 와이파이 기술은 대역폭이 미치는 지역에 컴퓨터와 랜카드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빠르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하고 개인 간의 일대일 상호 연결을 가능하게 해준다. 기동성의 장점말고도 이 기술이 초고속인터넷 접속 서비스업체들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 데는 인터넷 접속을 공유하는 탁월한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 관련 업체들이 두려워하는 접속 공유의 방식은 이렇다. 한 사람이 돈을 내고 유선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해 가입한다. 그는 다시 여기에다 무선의 와이파이 송출기를 구축한다. 부근의 이웃들은 이를 경유해 ‘공짜’로 인터넷에 접속한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와이파이 네트워크는 주거지가 밀집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초보적으로 상업서비스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웃과 함께 공유하거나 좀더 의식적으로는 이를 마을이나 지역 사회로 확대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 경제적 차이로 발생하는 정보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한 방식으로, 관련 시민단체가 적극 나서서 와이파이 네트워크의 공유를 권장하기도 한다. 와이파이가 점차 시장 위협 요인이 되면서 타임워너케이블 등 서비스업자들은 사태를 관망하던 태도를 고쳐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얼마전 뉴욕의 케이블모뎀 가입자에게 보낸 경고문에서도 업체들의 위기감이 잘 드러나고 있다. 편지는 회사의 회선에 ‘공짜’로 올라타는 자는 ‘도둑’과 다름없다는 위협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업체는 집중 단속을 통해 무임 접속하는 사용자 숫자대로 이용료를 징수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유선 서비스와 달리 ‘허공’에 숨은 도둑 색출이 쉽지 않으리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기왕에 정보격차를 해소해 인터넷의 공공적 접근을 보장하는 와이파이 기술의 민주적 속성이 드러났다면, 인터넷 서비스업체들도 이용자 하나하나의 머릿수로만 접속 조건을 판정하는 낡은 사고를 과감히 버려야할 때가 아닐까.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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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게임으로 배워봐”

“권리, 게임으로 배워봐” [한겨레]2002-06-28 01판 13면 127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기술 발전이 힘센 사욕에 흔들리고, 정보 정책이 소수의 독단에 좌우되고, 변화하는 현실의 주체인 시민이 재갈물린 구경꾼으로 뒷전에 밀려나는 경우들은 디지털사회의 화려한 치장에 가려진 어두운 면면에 해당한다. 특히 새로운 정책·법률·기술 등의 형성 과정에 일반인의 접근과 이해를 어렵게 하고 참여 기회 자체를 전문가주의로 막는 행태가 줄곧 우리 현실을 지배해왔다.얼마전 미국의 온라인 인권 시민단체 두곳이 이런 독단의 디지털 논리에 반발해 인터넷 이용자가 즐기면서 스스로의 권리를 파악하고 배우게끔 도와주는 인터넷 게임을 개발했다. 이들 단체는 게임이란 대중적 매체 형식을 이용해 전문과 추상에 갇힌 논의를 끌어내려 이를 공개하거나 여론을 모으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간파했다. 이른바 신세대용 정치 학습 프로그램을 고안한 셈이다. 작가·법학자·프로그래머·그래픽디자이너 등이 자원해 만든 이 게임의 이름은 ‘캐러벨라(Carabella) 1탄’이다. 캐러벨라라는 이름의 여성이 자신이 좋아하는 록밴드의 음악을 얻기 위해 벌이는 여러 선택 과정이 전체 줄거리를 이룬다. 음반가게에서 구매할 것인지, 온라인 음악 서비스 가입 뒤 파일을 내려받을 것인지, 일대일(P2P) 파일교환을 할 것인지의 선택, 서비스 이용 때 익명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 등 여러 경우의 수가 얽혀 있다. 게임 마지막의 득점은 이용자가 프라이버시와 저작권의 ‘정당한 이용’을 얼마나 잘 알고 이해했나에 따라 달라진다. 음악 시장의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잘못된 선택은 감점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어떻게 이용자 자신이 감시받고, 잠금 기술에 의해 이용이 제한되고, 정당한 이용이 위협받는가를 체험한다. 지루하지 않은 친절한 해설과 지침, 재미난 게임 화면은 이용자의 이해를 돕는 안내 구실을 한다. 시민단체들이 사회의 중요 안건을 대중화하기 위해 온라인 게임의 형식을 활용한 것은 꽤 신선해 보인다. 이들은 게임의 오락 기능을 빌려 딱딱함을 버리고 즐기며 배우는 정치적 학습 도구의 개발 능력을 보여줬다. 지난 몇 년간 인터넷 활동가들이 정당의 선거 전술이나 악덕 기업의 부도덕성을 고발하기 위해 동화상 제작 프로그램인 플래시를 이용해 컴퓨터 화면보호기 등을 표현 매체로 이용했던 것도 비슷한 학습 효과를 얻으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이 모두는 소수에 의해 전유되고 아래로 소통이 막힌 독점의 논의에 맞서 대중의 판단과 이해를 넓히는 디지털 매체 형식에서 실천적 구실을 찾으려는 한발 앞선 시도로 읽힌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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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에스의 들통난 속임수

엠에스의 들통난 속임수 [한겨레]2002-06-14 06판 15면 1272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평론가·기자·연구원·의사 등 각 방면 전문가의 권위를 돈으로 매수하거나 고용해 여론을 호도하는 것을 ‘제3자 기법’이라 한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까지 이런 전술을 즐겨 쓴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자연스레 기업의 돈맛에 쉽게 흔들리는 지식 장사치들이 주로 이 거대기업의 주구로 유입된다.물론 기업과 이들은 서로 무관하다는 인상을 풍겨야 하며 서로의 관계를 의심하는 어떤 물음에도 절대 함구하는 것이 철칙이다. 일단 거래가 성사되면 치밀하고 집요하게, 의뢰인이 부탁한 거짓말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것이 요령이다. 이번에 거짓말하려다 들통난 곳은 ‘알렉시스 드 토크빌 연구소’라는 보수 우익의 비영리 연구단체다. 비방 상대로 리눅스 운영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며 성장한 ‘오픈소스’ 진영을 골랐다. 토크빌 연구소는 연구 백서를 통해 오픈소스 프로그램이 상업 프로그램에 비해 테러에 대비한 보안에 허점투성이라는 주장을 폈다. 흥미롭게도 백서를 작성한 이 연구소의 부소장은 지난해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분할 결정을 반대하며 노골적으로 기업 독점 옹호론을 폈던 인물로 알려졌다. 연구소의 이런 입발린 거짓말을 이용한 데는 오픈소스 진영에 대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불편한 심기가 크게 작용한 듯하다. 최근 공식석상에서 그가 걸핏하면 연방 정부 부처 곳곳에서 점점 늘고 있는 리눅스 프로그램 이용을 비난한 것도 이와 관련돼 있다. 프로그램 코드의 개방과 협업 과정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프트웨어가 일반 상업 소프트웨어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상업용 소프트웨어에서 흔히 관찰되는 “보기만 하고 만지지 마라” 식의 소스코드(프로그램 원본)에 대한 제한적 접근에 비해, 오픈소스 프로그램의 개방성은 의도한 대로 쉽게 변형 가능하고 여럿의 공유와 검증을 거쳐 더 안정적 환경을 제공한다. 토크빌 연구소조차 자신의 홈페이지가 오픈소스 서버인 ‘아파치’에 개설된 것조차 감잡지 못하고 언론을 통해 오픈소스 프로그램에 대해 사실무근의 험담을 늘어놓는 해프닝을 벌였을 때 오픈소스의 진가가 자연스레 드러난 셈이다. 지금까지 기업과 연구소 모두 백서 제작용 자금 지원 여부에 관해 아예 잡아떼고 있지만, 이번 일로 거대 사기업의 여론 공세를 등에 업은 기술·기업 죽이기의 더러운 실체가 조금은 확인됐다. 이 정도 도덕 수준의 기업이라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선전해온 후진국 정보화 지원, 문화사업 출자, 청소년 정보 시설 지원 등의 사업도 선의의 동기와는 먼 꿍꿍이속에서 비롯됐다고 믿는 편이 옳을 듯하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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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X파일’의 힘

영화 ‘X파일’의 힘 [한겨레]2002-05-31 02판 16면 1312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희뿌연 담배연기에 가린 얼굴없는 권력자들의 귓속말, 아몬드 모양의 기분 나쁘게 생긴 외계인들의 인간 생체 실험과 지구 정복 음모, ‘저 너머의 진실’에 편집증적으로 매달리는 한 연방수사국 수사관. 이쯤 하면 쉽게 떠오르는 방송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크리스 카터가 제작한 〈엑스파일〉이다.1993년 첫 방영된 엑스파일은 얼마 전 9번째 시리즈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9·11 동시다발 테러 이후 미국 정부에 대한 냉소적 표현물의 급격한 퇴조 경향과 더불어 시청률 하락, 주연 배우의 중도 하차 등의 악재로 인해 폭스방송사의 경영진들이 종영 시기를 서둘러 앞당긴 듯하다. 엑스파일이 공상과학 드라마의 전형이자 대중문화의 중요한 아이콘으로 자리잡기까지에는 제작자인 카터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세련된 영상 표현 능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 세상은 제 궤도를 이탈해 점점 통제가 불가능해져간다. 더이상 윤리나 도덕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현실을 영상에 담으려 했다.” 언젠가 카터가 〈뉴욕타임스〉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추문와 존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등을 목격한 그에게 현실은 더러운 음모의 소굴이자 거짓 정치가 판치는 세상이다. 자연스레 그의 상상 속에서 현실의 모든 권위에 대한 믿음의 상실과 거기서 생기는 불안은 외계인의 무서운 음모, 악마와 결탁한 정부, 부도덕한 거대 기업이 만들어낸 기형의 괴물 등으로 쉽게 전이됐다. 외계인이건 초국적기업이건 강력한 소수의 음모가 역사를 배후에서 조정한다고 보는 엑스파일의 시각은 ‘음모론’ 맹신의 독을 퍼뜨리기도 했다. 음모론은 이 사회를 선·악의 이분법적 대결 구도로 축소하고 ‘저 너머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무관한 사실까지도 줄줄이 연결해 관련성을 따져든다. 현실 불안의 탈출구로 고안된 음모론이 이렇듯 인간에게 대체 종교인 양 군림하면 사회 현실을 보는 시야는 흐리멍텅해지기 마련이다. 과도한 병리성과 편집증이 현실 세계에 대한 비과학적 분석을 남발하게 부추기는 것이다. 계급·환경·성·기술 등의 정치경제학을 좀처럼 음모론에서 발견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엑스파일은 자신만의 특색 있고 파격적인 영상 언어를 통해 일상적인 삶을 관통하고 초월하는 권력의 가공할 힘을 잘 묘사했고, 다국적기업과 미국 정부의 정책·활동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적극성을 보여줬다. 비록 지나친 상상과 편집증이 개입됐지만, 요즘 한 프랑스인이 제기한 ‘미국 군산복합체에 의한 9·11 테러 배후설’과 같은 그럴듯한 음모론이 먹히는 데는 엑스파일이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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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공유의 새로운 구상

지식 공유의 새로운 구상 [한겨레]2002-05-17 02판 10면 1285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그레이트풀 데드'라는 전설적인 미국의 록밴드가 있다. 전설이 된 것은 음악성을 근간으로 한 기막힌 라이브 공연에 힘입은 바 컸지만, 그 근저엔 음악 팬에게 자신의 곡을 자유롭게 복제하고 공유할 수 있게 독려한 자유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음반 판매량에 얽매이지 않는 그룹 맴버의 적극적인 팬 서비스가 오히려 수요층을 넓히고 라이브 등 가외 수익을 늘리는 활력소로 작용했다. 여럿이 함께 나눌수록 커진다는 공유의 정신을 자생적으로 체득한 경우다.최근 이 록밴드의 경영 방식과 비슷한 철학을 갖고 인터넷 공간에 개업 예정인 비영리 기업이 있다. 저작권의 기술적 통제를 지칭하는 '코드'란 개념으로 유명한 미국 스탠퍼드대학 법대 교수 로렌스 레식이 직접 사업에 나섰다. 그가 뜻있는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이 벤처기업의 명칭은 '창작공유터'(Creative Commons)다. 이제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회사는 사업 철학을 "좀더 건강한 첨단기술 경제"의 건설에 두고 있다. 시장과 맞선 정보의 완전한 해방이 비현실적 해법이라면, 저작권의 남용 또한 시장을 경직시켜 이를 좀먹는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는 견해에 서 있다. 둘을 절충한, 시장에 친화적이고 공유의 가치를 도모할 수 있는 지적 재산의 좀더 유연하고 새로운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고 본다. 창작공유터는 창작자와 사용자의 권리 회복을 강조한다. 우선 이들은 기업과의 강제 계약관계에 의해 송두리째 빼앗긴 저작물 통제권을 원창작자에게 되돌려주려는 사업을 구상 중이다. 예를 들어 기존 저작권을 대신해, 저자들이 창작물의 사용 방식을 자신과 이용자의 권리에 맞춰 폭넓게 정의하는 라이선스 개발도 그 일환이다. 방법은 원저자가 자신의 권리와 사용자의 창작물 이용 범위를 직접 콘텐츠에 명시하는 것이다. 이 라이선스로 보호받는 저작은 상업적 목적을 제외하곤 누구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더욱 흥미를 끄는 이들의 사업 기획으로 '공유자원보호회'라는 것도 있다. 기업으로부터 오래되고 사라질 프로그램의 소스코드(원본)를 기부받아 공유재로 바꾸는 사업을 담당할 모양이다. 기업의 프로그램 기부를 유도하려면 당연히 세금 감면 등 정부의 보조가 필요하다. 이들의 구상은 정보공유에 기초해 저작권의 폭력에 현실적인 방안을 갖고 대응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이제까지 산발적으로만 움직였던 인터넷의 공유 정신을 조직화한 사업으로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아무쪼록 이 신생 기업이 시장에 불어대는 '저작권의 외풍'에도 흔들림없이 지식 공유의 터를 개척하는 실험 집단이 되길 기대해본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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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진영의 분열

저작권 진영의 분열 [한겨레]2002-05-03 02판 11면 1355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할리우드와 음반업계로 대표되는 저작권자들의 공세에 진저리치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60여년 동안 열배 이상 강력해진 저작권법의 횡포에 응수하려는 전선이 폭넓게 형성되고 있음을 뜻한다. 저작물의 정당한 사용을 주장하는 이용자뿐만 아니라 컴퓨터.가전 등 실리콘밸리 업계와 콘텐츠 독점 소유자들 간에도 깊은 골이 패고 있다. 저작물 보호 요구에 지친 실리콘밸리는 이제부터라도 기술 혁신의 순수한 원칙을 충실히 따르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한 디지털 전문잡지는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의 대결 양상을 거구의 미키마우스 인형이 칩 업체 인텔의 마스코트를 무참히 짓밟는 모습으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이제까지 음성.영상을 막론하고 복제를 가능하게 한 실리콘밸리의 새 기술들은 무조건 할리우드와 음반업계의 검열 대상이었다. 당연 실리콘밸리의 기술에 저작권의 강제력이 매번 개입하면서, 18개월마다 마이크로칩의 집적도가 갑절로 늘어난다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 또한 온전할 리가 없었다. 미키마우스의 발에 치인 실리콘밸리의 기술들은 죄다 찌그러지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실리콘밸리가 이제까지 동거를 청산하고 저작권 지상론자들과 당분간 별거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당연해보인다. 더이상 저작권에 밀렸다간 기술 발전은 고사하고 시장 확보의 폭넓은 기회도 막힐 수 있다는 판단이 섰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4년 전 디지털 음악의 보안코드 개발을 목표로 음반업계와 사이좋게 만들었던 한 유력한 기술 표준화 단체에서도 실리콘밸리는 최근 손을 뗐다. 인터넷을 통해 음악 파일들을 자유롭게 내려받아 이용하고 공유하는 것을 무조건 힘으로 막으려는 무리수는 별 승산이 없다는 점을 배웠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각종 기술에 저작권 코드를 도입할수록 이용자들의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되며, 오히려 이들의 정당한 사용을 어느 정도 보장할수록 소비의 기폭제로 작용한다는 점을 쉽게 깨우쳤다. 물론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음반업계 진영이 영원히 갈라설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서로의 의존적 관계가 확인되면 언제든 저작권을 보호하는 변형된 기술 장치들이 슬며시 새 상품에 숨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실리콘밸리마저 저작권 지상론자들에 반기를 드는 것은 위험한 수위에 이른 저작권 남용에 제동이 걸리고 있음을 방증한다. 달리 보면 저작권에 의해 강압된 기술보다는 오히려 능동적 이용을 보장하는 기술적 대안을 고무할수록 상품 시장이 더욱 활성화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얼핏보면 저작물의 해적질을 방조하는 듯한 "뽑아내서 뒤섞어 구워봐"(Rip. Mix. Burn.)란 엠피3플레이어의 광고 문구가 실리콘밸리의 한 유력 기업으로부터 나온 것도 같은 맥락에 근거한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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