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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돼가는 디지털 일상문화

변질돼가는 디지털 일상문화 [한겨레]2001-01-12 04판 25면 1278자 컬럼,논단 패러디로 가득찬 (오스틴 파워)란 코미디 영화를 보면, 권력욕에 눈먼 이블 박사가 스타벅스의 기업본부에서 지구를 정복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타벅스의 배경은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심각한 의미를 담고 있다. 알게 모르게 일부 미국인들에게는 스타벅스란 거대 커피 독점사에 대한 적대적 정서가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미국 시애틀에 본부를 두고 있는 스타벅스는 1971년 개점한 이래로 현재 20여개국에 4천여 점포를 갖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 전문 체인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의 80%가 커피를 마시는 미국에서 3할 이상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전국적인 체인의 자본력으로 지역의 영세한 커피 전문점을 무너뜨리며 성장한 스타벅스는 지역 재개발이 이뤄지는 곳에는 어김없이 들어섰다. 환경 운동가인 레베카 솔니트와 사진 작가인 수전 슈와첸버그가 최근 공동으로 펴낸 (텅빈 도시)란 책을 보면, 샌프란시스코의 영세한 구건물들이 어떻게 스타벅스에 의해 사라졌는지 그 역사적 비운의 과정을 잘 그리고 있다. 닷컴 사무실들이 들어서는 곳에 어김없이 스타벅스의 간판이 내걸리는 사정을 고려하면, 닷컴 분위기와 스타벅스의 커피는 돈독한 우애를 자랑한다. 스타벅스에 들어서면 말쑥한 닷커머들과 노트북컴퓨터를 두드리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지난주에 스타벅스는 닷컴 최대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미국내 스타벅스 커피점 안에서 고속의 무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자는 합의에 이르렀다. 스타벅스의 슐츠 회장이 언급한대로 자사 커피점을 찾는 소비자의 90%가 인터넷 사용자라면 그리 앞질러 나가는 사업 계획은 아니다.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 계약을 통해 스타벅스는 자신의 소비층을 두텁게 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쪽은 인터넷을 통한 서비스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들여다보면 길들여진 미각을 이용해 인터넷 서비스를 상업적으로 적절히 결합해보자는 동기가 깔려 있다. 이미 구경제 기업과 닷컴기업 간의 만남이 일상이 된 지 오래지만, 이 거대기업들 간의 제휴 움직임은 향후 대중의 디지털 일상문화를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새삼 되짚어보게 만든다. 이들은 도시 개발의 향방을 정하고, 입맛을 길들이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대중의 문화를 선도한다. 아쉽게도 이들 기업은 상업적 서비스의 확대라는 명목으로, 대중에게 문화적 선택의 다양한 기회들을 박탈하는 우를 범한다. 닷컴제국과 카페인제국이 합작으로 선보이는 새로운 커피맛이 쓰디쓴 것은 이 때문일까?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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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개발론에 밀린 공동체 삶

닷컴개발론에 밀린 공동체 삶 [한겨레]2000-12-22 05판 25면 1287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며칠전 진보적인 독립 출판업자들의 배급을 도맡아 해오고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아나키스트 출판사 편집인으로부터 전자우편이 날아왔다. 같은 주의 오클랜드로 이사를 가는데 일손도 필요하고 자금도 필요하다는 구원 요청이었다. 도서창고의 임대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 떠난다는 착잡한 편지였다.한 영세 출판사의 이런 반강제적인 퇴거는 이미 1997년부터 시작된 샌프란시스코의 닷컴 지역개발의 작은 피해 사례에 불과하다. 자유분방한 보헤미안들의 고향답게 이 지역은 많은 예술가.문인과 지역 문화운동가들이 상주하고, 지역공동체의 다양한 가치를 잘 유지해온 독특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제 미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닷컴 경제에 맞춰 지역적으로 재구조화를 겪고 있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물밀듯이 밀려드는 닷컴기업들로 인한 교통체증, 집값상승, 재개발붐 등은 대다수 지역주민들을 외지로 내몰았다. 아나키스트가 있었던 미션 지역은 예전에 노동자들과 중남미 이주민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었으나, 이제는 400개 이상의 닷컴기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 지역의 닷컴기업 유치와 개발은 예술인.비영리단체.지역인사들의 '저성장' 지지론으로 한때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올여름 지역단체들은 3만명이 넘는 시민의 청원을 받아 윌리 브라운 시장이 추진하는 닷컴개발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른바 'L안'을 내놓았다. 이 안은 지난달초 시의 장단기 발전계획을 묻는 시민투표에 상정됐으나 아쉽게도 브라운 시장이 내논 닷컴개발안을 거부하는 데 실패했다. 개발 억제의 마지막 수단이었던 이 안은 닷컴 경제의 확대를 일부 지역에 묶어두고, 그외 지역은 비상업지구와 예술공간으로 보호하려는 심각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했다.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등 지역신문들은 닷컴개발론의 승리를 브라운 시장의 집요한 선거 전술의 결과로 보고 있다. 그는 L안을 반대하는 지역 텔레비전과 전단 등의 광고비로만 250만달러를 지출했다. 또한 제 삼자를 통해 이 안에 대한 무효 소송을 집요하게 이끌고, 자신의 개발정책에 반대한 한 공무원을 해고하는 등 저강도의 더러운 전술을 다양하게 구사했다. 이제 샌프란시스코에는 개발론자와 지역운동가 간에, 닷컴성장론과 전통적 가치 간에 가로지르기 힘든 선이 놓여 있다. 언제까지 여러 단체들이 치솟는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도시에 계속 상주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 도시가 지녔던 정치.사회.문화적인 미덕은 신종 닷커머들이 향유하는 여피 문화의 가치로 채워져가고 있다. 매서운 한겨울에 떠나야 하는 출판사의 뒷모습이 영 개운하지 않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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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내장 칩, 희망인가 구속인가

신체내장 칩, 희망인가 구속인가 [한겨레]2000-12-15 01판 25면 1315자 컬럼,논단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행위 예술가이자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의 교수인 스텔락은 기계팔.로봇 등을 이용해 인간 신체의 확장 실험을 해온 독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달 오스틴 지역의 텍사스 대학 강연 뒤에 또 다른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팔 근육에 실리콘 칩을 이식한 뒤 원격으로 무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팔을 움직이도록 만드는 실험이다. 칩 이식에 의한 신체 실험은 그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2년 전에 런던 리딩대학의 인공지능학 교수인 케빈 워익은 외부 신호에 대한 뇌 신경망의 반응을 보기 위해 자신의 팔에 칩을 이식했다. 올초 디지털문화 잡지인 (와이어드)의 표지 모델로도 나와 화제가 된 적이 있는 그의 특이한 실험은 이제 기업들의 앞다툰 개발 경쟁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인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공상과학에서나 나옴직한 인간 피부 아래 삽입되는 실리콘 칩의 첫 정식 상품명은 '디지털 엔젤'이다. 이 콩알 만한 칩은 위성을 통한 위치확인시스템(GPS)의 위치추적뿐만 아니라, 신체 내부의 심장 박동이나 체온 측정을 가능하게 한다. 지난 5월1일부터 빌 클린턴 미 행정부가 군사적 목적으로 제한해온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의 상업적 이용을 전면 허가함으로써, 현재 칩을 장착한 팔찌.시계.목걸이.호출기 등 다양한 형태의 전자 추적장치들의 제품화가 제법 진척된 상태다. 디지털 엔젤은 컴퓨터로 매개된 위성통신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칩의 신체 이식을 통해 고난이도의 바이오센서 기술을 통합시킨 새로운 단계의 제품이다. 플로리다의 한 인터넷 통신 회사의 계열사가 만들고 있는 이 신체 추적기술의 난제는 신체에 이식된 칩의 동력원이다. 이 회사는 이미 몸에서 나오는 열을 전력으로 전환해 칩을 가동하는 기법을 특허 출원한 상태다. 엔젤은 제품의 명칭만큼이나 선의의 용도로 이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뇨 환자의 혈당 수준의 측정, 심장병 환자의 심장 박동 관찰 등 수시로 검사를 요하는 환자들에게 엔젤은 천상의 목소리와 같다. 그러나 감호 대상의 죄수, 불법체류자, 성 범죄자, 상습 음주운전자 등에게 엔젤의 숨결을 넣어주고 싶은 충동도 존재한다. 문제는 타의에 의해 원하지 않는 엔젤이 자신의 몸 속으로 기어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최악의 상황은 엔젤이 '빅브라더'로 행세하는 경우다. 완벽한 감시사회는 공상이라 치더라도, 엔젤의 지나친 남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는 스텔락이 실험하는 전자적 신체 확장과 달리 정반대로 신체 깊숙이 감시의 확장을 이루는 신체 구속의 흐름이다. 엔젤은 기술적 성과와 더불어 관리될 수 있는 인간 신체의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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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시장 과점, e북이 깰수 있나

출판시장 과점, e북이 깰수 있나 [한겨레]2000-12-08 01판 25면 122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미국내 5대 기업이 출판시장의 80% 이상을 지배한다. 상위 20대 기업까지 확대하면 93%에 이른다. 이 가운데 10개 기업이 전체 출판 수입의 75%를 가져간다. 최근 앙드레 슈프랭의 (출판사업)이란 책에 실린 내용이다. 그는 진보적 색채의 책들을 기획해 반향을 일으킨 뉴프레스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40년 이상 출판계에 몸담으면서 느낀 생각을 자전적 글쓰기를 통해 표현한 그는 현재 진행되는 사상의 독점화에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그는 심각한 출판시장 독점에 대한 한가지 대안으로 인터넷 기술의 가능성을 꼽는다. 특히 지난 7월부터 작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매달 연재된 공포소설을 독자들이 직접 내려받게 한 스티븐 킹의 시도는 슈프랭도 주목한다. 출판에서부터 배포까지의 중간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 독자와 직접 대화를 시도한 킹의 인터넷 출판은 업계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기막히게도 그의 인터넷 연재소설 (식물)의 내용이 영세 독립출판사를 잔인하게 공격하는 넝쿨식물의 이야기인지라 더욱 업계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킹은 매달 연재되는 각 장마다 독자가 자발적으로 1달러를 내도록 하고, 적어도 독자의 75% 이를 지키면 연재가 계속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소설은 첫주 만에 12만명 이상이 내려받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으나, 지난주 킹은 연재를 잠정 중단했다. 갈수록 무임승차자의 수가 늘어나 연말까지 6장을 끝으로 마무리짓겠다는 것이다. 이번 일로 킹의 출판 실험이 실패했다는 언론의 평가가 줄을 잇고 있지만, 실제 그는 광고비를 빼더라도 약 37만6천달러(4억5천만원)를 벌어들였다. 그리 실패한 실험은 아닌 셈이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는 다른 작가에게도 개인 출판을 독려하면서, 앞으로 인터넷 출판을 본격화할 생각임을 내비쳤다. 그의 계속되는 실험은 출판시장의 독점에 아랑곳없이 누구나 직접 인터넷을 통해 책을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물론 섣부른 희망은 금물이다. 거대 출판사가 지닌 광고.배급망.브랜드가치 등의 자본능력을 고려하면, 킹의 실험은 극히 주변적일 수 있다. 게다가 그에게는 대단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유명세가 존재했다. 인터넷 기술이 거저 출판시장의 민주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기 쉽다. 기존의 시장지배력을 인터넷으로 확장하는 거대 출판업자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대안적 출판을 꿈꾸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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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 노조의 깃발

닷컴 노조의 깃발 [한겨레]2000-12-01 05판 26면 1298자 컬럼,논단 미국 노동자의 3할 이상이 임시직.계약직 등 불안정한 지위에 놓여 있다. 특히 정보산업 분야에서 늘어난 불완전 고용 인구가 노동조건을 한층 악화시키고 있다. 논리적으로 보면 임시직이 증가할수록 전체 노동자들의 결속과 노조 설립의 동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미국의 노동운동계는 수세적 처지에서 임시직의 증가를 반대해왔다.노동계의 생각이 바뀐 것은 올들어서다. 임시직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이다. 닷컴기업들의 대량 해고 경향 등 점차 심해지는 고용 불안으로 인해 이들의 문제를 묵인할 수 없다는 상황 판단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서점인 아마존의 임시직 노동자 중심의 노조 설립 움직임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아마존은 지난해 가을을 시작으로 올 1월에는 150명의 정규직 노동자를 1시간의 해고 통보 이후 잔인하게 내쫓는 해고 조처를 단행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임시직이나 계약직으로 대체하려는 구조조정의 서곡이었다. 9월에는 저임금 노동력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인도의 한 벤처기업과 계약을 맺고, 앞으로 고객 서비스 부문의 약 80% 정도를 이곳에서 조달하기로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이렇게 올초에만 260여명을 해고했고, 사전통보 없이 바로 전출시키거나 상근직을 임시직으로 하향 이동시켜 고용 불안감을 높였다. 설상가상으로 고객 서비스 부문에 종사하는 임시직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저임금 구조, 장시간 노동, 해고 위협, 그리고 닷컴의 최대 특전으로 여겨졌던 스톡옵션의 가치하락도 노동조건 문제를 악화시켰다. 임시직 노동자들 중심의 강한 노조 설립 의지는 이제 아마존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이 됐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유했던 임시직 노동자들의 비밀 '노비문서'를 직원들에게 공개해 유명해진 워싱턴주 기술노동자연대(WashTech)가 이들 노동자의 협력단체로 버티고 있다. 10월 중순께 고작 4명의 아마존 노동자들이 피자가게에 앉아 시작한 모임이 급성장해 노조를 인정받기 위한 집단 서명으로 발전했다. '첨단' '닷컴' 등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노조 설립을 무산시키려는 아마존의 공작도 거세졌다. 경영진의 노조반대 문건 배포와 사이트 개설, 경고성 전자우편 전송, 집중교육 등 노동법 위반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아마존의 노조 결성 움직임은 열세에 놓인 닷컴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세력화와 관련한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아마존이 닷컴의 상징처럼 구가되던 무노조 신화를 깨고 있다는 점에서, 화려한 신경제의 거죽이 색바랜 구경제에 비해 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음을 정확히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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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경제를 향한 냉소

디지털 신경제를 향한 냉소 [한겨레]2000-11-24 01판 25면 1305자 컬럼,논단 과거 산업경제와 달리 정보를 가지고 가치를 생산해 수익을 만드는 경제 구조를 통칭해 '신경제'라 한다. 현재 디지털 미래의 대세는 무엇보다 경제 논리에 입각해 있다. 신경제의 과도한 열광 덕분에 다른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논의들은 자연히 부차적인 것들로 취급돼왔다. 수년간 미국의 서점 가판대는 닷컴기업들의 성공 신화와 신경제의 새로운 법칙을 다루는 책들로 장식됐다. 이를 통해 가치 생산의 신종 경제 법칙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그런데 미래 경제의 환상에 도취되기도 전에 벌써 닷컴 사망의 조짐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미 닷컴 기업들의 마케팅 예산 삭감, 노동자 실업률 증가, 자본투자 감소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지난 한 달간 방출된 닷컴 노동자만 5700여명에 이른다. 신경제의 거품이 걷히고 있는 것이다. 신경제에 먹구름이 낄수록 오히려 그 명성을 얻어가는 사이트가 있다. 새타이어와이어(SatireWire.com)란 신경제의 풍자소식지다. 비록 실천 방식에서 패러디와 풍자라는 권력에 대한 초보적 반응의 수단을 구사하지만, 신경제를 표적삼아 이를 뒤틀고 조롱하는 대표적인 사이트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닷컴기업의 코미디쇼를 확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이트 부제가 익살스럽게도 닷컴코미디(dot.com.edy)다. 이들의 풍자는 일반적인 패러디 사이트들의 경향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점잖은 편이다. 선정적 내용이나 말초적 말장난보다는 권위있는 일반 기사체의 형식적 틀을 빌리지만, 내용은 모두 허구의 코미디다. 기사 형식이 풍기는 사실성과 신뢰성의 형식이 코미디같은 내용과 대비되면서 읽는 이의 폭소를 자아낸다. 현재 닷컴 기업들의 사업 전략이 기업간(B2B)이나 기업-소비자간(B2C)에서 실업에 기반한 기업-실업자간(B2U) 모델로 가고 있다는 기사, 닷컴 고용주들이 근로의욕 신장을 위해 도입한 노동자들의 뺨때리기 정책에 관한 기사, 무능력한 검색 결과를 조롱한 검색엔진과의 인터뷰, 닷컴기업의 최근 줄초상을 비웃는 닷컴살리기 기사 등의 진짜같은 가짜 기사를 통해, 신경제의 모든 부분에서 거침없는 풍자를 수행하고 있다. 사이트의 운영자는 기술관련 기자로도 일했던 앤드루 말랫이란 사람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인터넷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가 문제삼는 것은 신경제의 패러다임이 현실의 모든 논리를 지배하면서 낳는 부정적 현실이다. 그는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풍자의 정치적 역할로 본다. 물론 신경제 논의들에 대한 풍자가 단지 냉소적 헛웃음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보다 정교한 비판적 논의들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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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피3-유니버설 타결이 남긴 것

엠피3-유니버설 타결이 남긴 것 [한겨레]2000-11-17 02판 26면 128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전세계 거대 음반사들이 인터넷에 충만했던 정보 공유의 흐름을 새로운 사업 모델로 바꾸기 시작했다.미국의 음악파일 공유서비스업체인 냅스터는 네티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베르텔스만과 유료 온라인 음악 서비스를 하기로 제휴했다. 이번주에는 엠피3이 세계 최대 음반사인 유니버설에 승복해 음반 판매 소실분에 대한 저작권료로 거액을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유니버설은 이번 타결로 5% 정도의 지분을 얻어 최소한 엠피3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창작자의 의욕을 고려해 창작물 이용에 대한 최소한의 사용료를 지급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윤리에 비춰볼 때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냅스터와 달리 엠피3이 재판에서 불리했던 이유는 저작권과 충돌하는 음악파일을 등록해 가입자들에게 무료로 내려받게 만든 데 있다. 엠피3이 법정밖 해결로 간 것도 유니버설에 승소할 명분이 희박한데다 갈수록 법정 비용 부담이 압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엠피3의 이번 타결은 그 효과면에서 음악파일 사용료 인상의 선례를 남겨 소규모 음악서비스 닷컴기업의 시장 퇴출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 게다가 최근 전세계 음반 재벌이 음악파일을 서비스했던 소규모 닷컴기업들을 인수합병해 자사 계열화하는 경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실 음반시장의 독점적 폐해가 고스란히 거대 음반사의 온라인 이윤 모델로 옮겨갈 수 있다. 특히 이번 엠피3 저작권 타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미국의 저작권법에는 저작권 양도 뒤 35년이 지나야 창작물은 원창작자에게 귀속되게 돼 있다. 지난해 음반업자들은 저작물을 영구히 소유하기 위해 저작권 관련 법안의 임금고용 조항에 '음반 녹음과 같은'이란 단서 문구를 슬쩍 끼워넣었다. 임금고용 조항은 고용주가 임금을 대가로 고용계약을 맺고 수행한 작업에 대한 모든 권리를 영구적으로 갖는다는 것인데, 이 조항에 음악가의 음반 창작물까지 들어감으로써 음반사와 음악가 사이에 첨예한 대립을 낳았다. 유니버설은 이번 재판에서 자사의 음반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음악가의 심기를 건드리는 바로 이 조항에 의지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타결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분노한 음악가들이 엠피3의 법정 참고인으로 합세할 것으로 예상돼,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유니버설을 난처하게 만들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음악 소유권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결국 법정밖 타결로 흐지부지됐다. 유니버설이 이번 타결로 엠피3으로부터 받은 배상금 중 절반을 음악가의 몫으로 돌리겠다는 발표가 그저 정당한 나눠먹기로 비치지 않는 씁쓸한 대목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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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노동' 노동자결속 해칠수도.

`원격노동' 노동자결속 해칠수도. [한겨레]2000-11-10 02판 26면 1282자 컬럼,논단 원격노동(telework)은 흔히 디지털 미래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항상 거론되는 주제다. 원격노동은 보통 재택근무와 원격 사무실 근무 모두를 지칭한다. 이 '유연한 노동'의 흐름은 컴퓨터간 네트워킹 기술의 발전과 자유 계약직의 성장이 근간이 됐다. 무엇보다도 원격노동은 작업장을 벗어나 노동자 자신이 근무 시간을 관리하는 자유로운 노동 형태로 각광받았다. 반면 일부에서는 원격노동이 사무실과 일상의 경계를 흐려 궁극적으로 노동을 공장에서 사회로 연장하는 새로운 도구라고 비판하기도 한다.때마침 국제원격노동협회(ITAC)가 원격노동의 추세를 담은 연례 보고서를 발표해 주의를 끌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 미국내 정규 원격노동자가 1650만명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며, 2004년에는 3천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원격노동시간은 주당 평균 20시간이고 노동자들은 주로 도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주목할 점은 원격노동센터로 불리는 원격 사무실 근무의 증가다. 센터는 교통 정체로 인한 근무의욕 감퇴와 부동산 가격의 상승에 대응해 고용자들이 새롭게 고안한 자구책이다. 사원들의 집을 중심으로 원격 근무지를 마련해놓고, 관리자들을 파견해 통제력을 유지하고 그 안에서 노동 자율성을 보장하는 근무 방식이다. 재택근무에 비해 센터가 곱절의 노동 생산성 향상을 기록한 것을 보면, 작업장의 재배치를 통해 노동 통제와 자율의 묘를 잘 살렸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한편 계약직 노동자나 자영업자의 원격노동 비율이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불안정한 원격 노동의 구성비 증가는 잠재적으로 노동자들의 고용 조건을 흔드는 악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체적으로 보고서는 원격노동이 고용자에게 생산성 증가를 가져다주고 노동자에게는 삶의 질을 보장한다는 견해다. 보고서는 협회의 성격에 어울리게 미국 기업들의 원격노동 확대를 위해 기획됐다. 원격노동이 노동자와 사용자 양쪽에 가져다주는 상호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프랜시스 후쿠야마라면, 보고서 말미에 그의 책제목이기도 한 노사간 '신뢰'의 윤리를 덧붙였을 것이다. 그에게 원격노동은 바로 노사간 신뢰로 나아가는 노동 윤리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후쿠야마나 보고서가 볼 수 없는 부분은 원격노동이 만들어내는 노동자간 신뢰의 고리다. 원격노동이 장차 노동자를 작업장으로부터 해방시켜 노사 간의 신뢰를 쌓을 수는 있어도, 노동자 간의 신뢰와 결속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불신의 윤리를 낳는다는 사실을 이들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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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적 정보 뒤트는 패러디사이트

권위적 정보 뒤트는 패러디사이트 [한겨레]2000-11-03 04판 26면 1326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인터넷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정보 소통의 수평적 관계다. 정보 흐름의 수평성은 권력에 의해 유포된 정보들을 아래로부터 위협한다. 한 예로 프랑스의 신좌파이자 미디어 운동가였던 펠릭스 가타리는 이미 1970년대초 권력의 정보에 대항한 '반정보'의 긍정적이고 민주적인 가치를 내다봤다. 인터넷이 보편화한 오늘날에는 패러디 웹사이트들이 권위적인 정보를 뒤틀고 조롱함으로써 반정보를 생산하는 데 한몫한다.다국적기업 몬샌토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패러디 사이트 몬샌토스(monsantos.com)도 그 가운데 하나다. 세인트루이스 소재의 몬샌토는 1902년 사카린 제조로 출발해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큰 농화학 기업이자 유전자조작(GM) 씨앗 생산업자로 자리잡았다. 이 기업은 베트남 전역에 살포됐던 고엽제, 맹독성 살충제 디디티, 소에 주입되는 성장호르몬, 열매는 맺어도 씨앗이 말라버리는 '터미네이터 씨앗' 등을 개발해 악명이 드높다. 96년부터는 엄청난 자본력을 동원해 동종 기업들을 흡수하고, 이를 토대로 유전자조작 씨앗들을 개발해 전세계 식량 공급의 미래를 좌우하려 하고 있다. 이미 이런 씨앗으로 재배된 농산물이 인간이나 동물, 생태계 전반에 치명적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게다가 유럽 등 각국 환경관련 시민단체들은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프랑켄슈타인 식품'이라고 부를 정도로 경계하는 실정이다. 몬샌토는 광고 등을 통해 유전자조작 씨앗이 전세계 기아를 물리칠 수 있는 농업 생산성의 기적이라고 추켜세운다. 이에 대한 몬샌토스의 반정보 전략은 이렇다. 몬샌토스는 몬샌토의 공식 홈페이지 틀거리를 그대로 빌려온다. 처음 방문하는 네티즌이라면 누구나 착각할 정도로 전체 틀이 동일하다. 내용에 들어가면 완전히 상황이 달라진다. 각 페이지 안에는 곤충과 과일이 합쳐진 흉측하고 기괴한 돌연변이들이 등장한다. 또 몬샌토의 가려진 행적들을 상세히 공개하고 파헤치며, 유전자조작 돌연변이들이 전세계 먹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이들은 여론 환기를 위해 돌연변이 그림들을 담은 스티커나 배너를 내려받거나 상점에 붙이도록 만들어 놓았다. 몬샌토스의 운영자가 누군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저 재능있는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모임이라고만 언급된다. 분명한 사실은 소비자들에게 유전자조작 식품들에 경각심을 갖게 하고, 몬샌토의 불순한 기도를 막는 데 그들의 목표가 있다는 점이다. 일개 패러디 사이트가 지닌 힘이 미미할 수 있지만, 이들은 최소한 몬샌토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진실'을 가장한 거대 권력을 향해 그들만의 재치있는 디지털 반정보를 되먹이고 있는 것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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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세계화에 감춰진 칼

정보 세계화에 감춰진 칼 [한겨레]2000-10-20 02판 26면 1282자 컬럼,논단 올 상반기 미국에서 비소설 분야 히트작은 단연 (넥서스와 올리브나무)였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이 책은, 최근 미 상원의원들의 필독서 중 하나로 꼽힌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글로벌화(범지구화)가 민주주의를 가져온다며, 이를 선도.지휘하는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팡파르를 울려대고 있다. 프리드먼의 오류는 저개발국들이 글로벌 시장의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을 민주화로 착각한 데 있다.프리드먼의 이런 오류는,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세계 정보격차 해법을 일종의 '글로벌 민주화'로 선전하는 방식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정보격차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는 지난 7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주요8개국(G8)의 정상 모임에서 이뤄졌다. 당시 중요한 논제 중 하나는 전세계 정보격차의 해소였다. 이를 이어받아, 이번주 미국 시애틀에서는 세계자원기구(WRI) 주최로 전세계 300여명의 닷컴기업 경영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 디지털격차 해소를 위한 대규모 행사가 치러졌다. 이 대회의 백미는 5분 정도 되는 주최 쪽의 선전광고였다. 주최 쪽은 전세계 정보 격차의 심각성을 알리는 문안을 준비했다. 세계 인구의 80%가 전화를 전혀 접하지 못했으며, 인터넷에 접속하는 인구는 전체의 2%도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 문안은 세계 디지털 현실의 암울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회의 이런 민주주의적 덧칠은 자원기구 의장인 윌리엄 러컬스하우스의 논평을 통해 쉽게 벗겨졌다. 그는 이 대회가 글로벌 닷컴기업들이 무시했던 정보 빈국들을 신경제의 잠재적 시장으로 부각시키고 새로운 사업 기회로 삼는 모임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더불어 그는 거대 닷컴기업들이 능동적으로 디지털 경제의 혜택을 정보 빈국들에 나눠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과거 선진국에 의한 제3세계의 경제 종속과 환경 파괴를 불렀던 개혁 확산론을 수정해, 제3세계 신발전론을 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정황을 곰곰이 따져보면, 오히려 현재 정보격차 해결을 위한 선진국들의 논의는 전자상거래 시대에 걸맞은 제3세계의 종속적 발전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거대 닷컴기업들이 정보격차의 해소라는 대외적 명분을 가지고 새로운 디지털 시장 논리를 범지구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다는 추측이 나올 법하다. 특히 이번 대회의 성격이 정보격차의 해소를 글로벌 단일 시장에 동참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증이 간다. 이는 프리드먼과 러컬스하우스 모두 외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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