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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독점 노리는 '닷넷'

무자비한 독점 노리는 '닷넷' [한겨레]2001-05-26 05판 12면 1302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인터넷 역사의 1단계가 월드와이드웹의 발전이었고 2단계가 닷컴 사업모델의 등장과 형성이었다면, 3단계는 따로 존재했던 모든 디지털 장치들을 하나로 엮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닷넷(.NET) 시대로 요악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부회장 크레이그 먼디가 얼마 전 뉴욕 대학의 경영대학원에 연사로 초청돼 이른바 '닷넷' 구상으로 제시한 밑그림의 대강이다.닷컴 종사자들이라면 필독서로 읽었을 케빈 켈리의 (신경제의 신법칙) 10개항 중에는 '멍청한 것들을 서로 연결하라'는 내용이 있다. 보잘 것 없는 디지털 장치들도 서로 연결시키면 똑똑해지고 그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다는 신경제 특유의 네트워킹 효과다. 닷넷 구상은 바로 이 법칙에 충실하다. 컴퓨터에 휴대전화.개인정보단말기(PDA).가전제품 등이 유무선으로 상호 연결된다. 소비자는 어디서든 필요한 정보를 접속.관리하는 통합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기업도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여기까진 그럴 듯하다. 그러나 멍청한 기계들을 똑똑하게 묶으려면 표준의 통합된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닷넷 구상은 그 중심 구실을 마이크로소프트가 맡겠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누릴 수 있는 독점적 이윤확보의 한계, 저작권 체계를 위협하는 국제적인 정보공유 모델의 흐름 등은 마이크로소프트쪽이 닷넷 구상에 더욱 집착하게 하는 요인이다.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이 정보자유의 정신에 입각해 만든 프로그램 저작권 '그누공공라이선스'를 먼디 부회장이 강연에서 표적삼아 공격한 것도 이런 위기감에서 나왔다. 닷넷이 완성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 이윤원은 프로그램 상품 생산에서 정보 서비스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인터넷을 자신의 운영체제들에 기반한 상업적 서비스의 거대 영역으로 통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영구적 시장 독점을 위한 완벽한 청사진이다. 누구나 마이크로소프트에 일상적으로 서비스 사용료를 세금처럼 물어야 하는 때가 올 것이란 예측은 그리 과장이 아니다. 희망은 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에 적대적인 다른 기업들은 좀더 현실적이고 경쟁적인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아이비엠의 기업간 전자상거래 기반 소프트웨어 개발도 닷넷 전략에 대응한 열린 기술의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반마이크로소프트 전선은 이 회사의 독점적 횡포에 시달리며 자연스레 형성된 면도 있지만, 정보의 나눔과 열림의 정서가 가장 큰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남다른 점은 네티즌의 이런 새로운 정서에 전혀 아랑곳없이 냉혈한 상업적 이윤모델을 목표를 향해 독불장군식으로 나아가는 '무대포 정신'에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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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무환경 디자인쇼, 그 환상

미래 사무환경 디자인쇼, 그 환상 [한겨레]2001-05-19 05판 12면 131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의 '노동환경전'이 얼마전 막을 내렸다. 4개국에서 구성된 디자인팀이 신경제시대의 사무환경을 주제로 삼아 200점 이상의 전시작을 선보였다. 전시회는 이미 시장에서 유통되는 작품까지 포함하고 있어 마치 상품 선전장 같았다. 디자인 전시의 대상은 신경제의 전문직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 환경에 한정됐다. 디자이너들에게 블루칼라의 작업장은 미래 노동환경을 채색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 모양이다.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신경제 노동의 유목화와 일상화다. 어떤 장소를 막론하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기업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는 노동의 편재성과 노동.여가 시간의 경계를 흐리는 노동의 일상성을 첨단기술과 결합된 작품들로 표현하고 있다. 항공 화물 컨테이너의 외양을 빌린 유무선 첨단장치를 갖춘 날아다니는 사무실은 한 장소에 붙박힌 근무지에 대한 일반적 상식을 무너뜨린다. 위성통신과 컴퓨터 장비가 부착된 자동차는 사막을 횡단하건 절벽을 오르건 항시 대기 중인 또 다른 이동식 사무실이다. 입고 차는 컴퓨터는 물론이고, 스피커가 달린 베개와 컴퓨터 화면이 달린 간이침대는 잠시 누워있는 동안에도 수시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일에 쫓기는 사람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제공하는 첨단 디지털 식판의 화면을 통해 인터넷을 하면서 간편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창문 하나 없는 사무실 천장에 계절.날씨에 따라 입맛에 맞게 각각 50개의 다른 하늘을 만들어낼 수 있는 디자인은 미래 근무환경의 새로운 운치로 선전된다. 그러나 이렇게 현란한 기술로 치장한 디자인의 매끄러움이 사물을 지배하면 그 내용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시공간 극복의 첨단 사무실이 강조되면 작업장내 노동통제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의문은 사라진다. 신경제의 노동관리 방식이 디자인을 통해 과장되어 투영됨으로써, 관객은 그저 우스꽝스런 첨단 장난감들에 호기심을 가질 뿐 노동의 질에 대한 고민은 불가능하다. 단지 전시회 이면에 제록스재단과 같이 통제중심의 사무환경 디자인 설계에 심혈을 쏟아왔던 후원업체들이 버티고 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속내를 엿보게 해줄 뿐이다. 노동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기획 의도는 노동자의 현실적인 요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의 미래 사무실이 디자이너의 장밋빛 상상 안에서만 움치고 있다. 기획 자체도 사무직 노동자들의 일상적 통제를 위한 시험 무대이자 상품판촉의 시장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크다. 신경제 작업 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첨단 디자인을 구매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시종일관 전시 분위기를 이끄는 것이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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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되는 신체정보

거래되는 신체정보 [한겨레]2001-05-12 05판 12면 1308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980389559|WatchTV|recorded|KDVR|3134603|980127000'긴 암호처럼 보이는 이 숫자.문자 조합은 한두 가지 의미만 알면 쉽게 알아챌 수 있는 내용이다. 980으로 시작하는 숫자는 1970년 1월1일부터 지난 시간을 초단위로 계산한 것이고, 3134603은 지정된 프로그램 이름이다. 즉 "한 시청자가 (KDVR방송)에서 2001년 1월21일 일요일 오후 6시30분에 송출한 '킹오브더힐'이란 프로그램을 녹화해 같은해 1월24일 수요일 7시26분에 보기 시작했다"란 뜻이 된다. 시청습관이 이런 식으로 하루에만 100장쯤 기록된다면 당사자의 기분이 섬뜩할 것이다. 먼 미래의 얘기쯤으로 봤다면 완전 오산이다.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는 디지털 기술의 현주소다. 디지털기술을 응용한 텔레비전 녹화장치인 티보(TiVo)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영상테이프 없이도 내장된 하드웨어에 녹화해 입맛대로 골라 시청할 수 있는 차세대 개인용 기술이다. 문제는 인터넷에 연결된 티보장치가 가입자의 시청습관을 기록한다는 사실에 있다. 언제 무슨 내용을 몇번이나 봤는지에 대한 가입자 정보를 차곡차곡 기록해 장치 제공업자에게 즉시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시청습관에 대한 티보의 파악능력이 직접적으로 사생활침해 문제와 맞닿아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서 발견된다. '데일리미' '협송' '원클릭' 등의 기술처럼 티보는 소비자가 보길 원하는 정보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디지털 기법이다. 취향과 기호에 부합한다는 명목으로 이런 맞춤형 정보기술들로부터 얻는 혜택은 대개 소비자가 기업에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는 대가로 받은 것이다. 마치 자유계약의 미명 아래 '산노동'을 기업주에게 파는 노동자처럼, 소비자는 신체의 '산정보'를 닷컴기업과 거래한다. 얼마 전 (리퍼블릭닷컴)이란 책을 펴낸 미국 시카고대학 법학 교수 카스 선스타인은 닷컴기업의 맞춤기술에 지배될수록 민주주의의 다양성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제공하는 파편화하고 개인화한 정보 서비스에 길들여진 소비자는 점점 현실의 다양성을 고려할 능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사고의 협소화가 사회적 관심사의 공유를 막는다는 논리다. 다소 비약된 감이 없지 않지만, 그의 주장 또한 기업에 관리되는 신체의 가능성을 겨냥하고 있다. 이.삼중으로 짜여진 상업적 그물코에 걸려들어 분류.관리되는 소비자 정보란 확실한 상품가치를 지녔다. 티보가 '텔레비전은 바보!'를 외치며 맞춤서비스의 장점들을 늘어놓을 때, 이에 넋나간 소비자들은 자신의 알몸정보가 슬그머니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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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밤의 닷컴

철없는 밤의 닷컴 [한겨레]2001-04-28 05판 12면 1304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토머스 하트 벤튼은 1930년대초 산업자본주의로 급속히 재편되는 미국의 모습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벽화에 담아냈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도시활동'은 거대 도시에 피어오르는 밤의 이미지들을 콜라주로 구성해 유명하다. 벤튼의 이 응축된 작품에서 하나의 이미지 파편을 떼어내어 영상으로 담는다면, 중국계 미국인 웨인 왕 감독의 (세상의 중심)이란 영화가 제격일 것이다.다음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칸영화제 본선 진출작인 이 영화는 벌써부터 내용의 선정성으로 말들이 많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같은 주요 일간지들은 개봉을 앞둔 이 영화 광고의 지나친 선정적 문구와 도안으로 배급사와 조율해 광고 내용을 제한하는 촌극까지 벌였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저예산 에로물이 아니다. 그 중심에는 닷컴 세계의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밤의 문화가 놓여 있다. 웨인 왕의 제작 동기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밤이면 스트립쇼로 향하는 젊은 닷컴 재벌가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부터다. 마치 사탕가게에 들어온 코흘리개 아이들처럼, 매일 밤무대 아래에서 환각을 구매하는 닷커머들의 철없는 모습을 통해 감독은 닷컴 현실의 일그러진 단면을 발견한다. 영화는 닷컴 붐으로 재벌이 된 젊은 리처드가 스트립걸인 플로렌스에게 1만달러를 주는 조건으로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로 3일 간의 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리처드는 30살이 채 되기도 전에 닷컴계의 거부가 돼 스트립걸을 만나고 헤어졌던 한 실제 인물을 배경으로 삼았다. 두 주인공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살지만 꼭 닮았다. 뛰어난 경영능력 없이도 쉽게 일확천금을 거머쥔 닷커머에게 컴퓨터는 세상의 중심이다. 육체적 접촉 없이도 약간의 자극적 몸놀림으로 돈을 버는 스트립걸에게는 자신의 신체가 그 중심이다. 영화는 서로에게 세상의 중심으로 보이는 것들이 화폐에 중개될 때 한낱 허상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문화사가인 브라이언 팔머는 (어둠의 문화)라는 최근 책에서, 흔히 밤은 비록 모호하지만 권력과 힘의 파장이 수그러든 시간대라고 서술한다. 밤의 느슨한 문화를 통해서 낮의 지배 논리를 유추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된다. 팔머의 논의에 따르면 한 닷커머의 환각 여행은 왜곡된 어둠의 문화를 통해 본 낮의 지배적 닷컴 현실을 다루고 있다. 닷커머의 화폐로 매개된, 탐스럽지만 만질 수 없는 스트립걸의 육체에서 느끼는 허망함을 통해 관객은 현실 닷컴의 과장된 신기루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닷컴의 환상이란 마치 계속해서 꿈꾸길 바라는 몽정과 같은 것"이라는 감독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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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제는 죽지 않는다?

신경제는 죽지 않는다? [한겨레]2001-04-21 04판 12면 1315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신경제의 경기 침체가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른 모양이다. 전체 지면의 반절 이상을 줄인 디지털경제지 (비즈니스2.0)의 몸부림은 애처로울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잿더미에서 날개를 펴고 일어서는 불사조를 표지로 삼았다. 이른바 '신경제 불사조론'이다.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오늘에 되새기자는 취지다.그나마 한 경제 전문가의 주장이 현실적이다. 마이클 만델은 (인터넷 공황의 도래)란 책에서, 구경제의 호황과 불황의 주기적 반복 경향을 일컫는 '경기순환'에 대해 신경제 고유의 '기술순환'이란 개념을 가지고 설명한다. 그는 기술순환을 팽창과 수축 국면으로 나누고, 지금이 후자에 해당한다고 얘기한다. 기술 정체, 벤처자본의 고갈, 낮은 생산성, 투자 저조, 바닥을 치는 주식시장 등은 수축의 징후다. 그는 닷컴의 급속한 팽창이 그만큼 수축과 침체를 거세게 몰아간다고 본다. 신경제에는 경기순환이란 없고 영구적 호황만 존재한다며 구경제와의 질적 차이를 부르짖던 논자들에 비하면 진전된 논의다. 신경제 현실에 대한 좌파 내부의 논의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지난주말 미국 뉴욕에서는 미국내 거의 모든 진보적 인사들이 참여하는 '사회주의자 학술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대회에서 다뤄진 신경제 관련 소주제는 50년 이상 발행해온 진보지 (월간평론) 최신호에서 이미 대회의 예비 작업을 겸해 소개된 적이 있다. 잡지는 '신경제: 신화와 현실'이란 제목을 달고 신경제 논리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시도했다. 신경제 신화를 깨려는 방향은 크게 둘이다. 첫째는 신경제가 신산업혁명이라 칭할 정도로 생산성의 증대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초창기 산업혁명에 비해 디지털 기술의 생산성 기여도가 오히려 적었다고 본다. 둘째는 신경제에도 자본주의의 경기순환은 여전히 작동한다고 여긴다. 컴퓨터 정보체계가 시장 통제력을 증대하여 불황과 침체를 제거할 거란 믿음이 팽배했지만, 비합리적 과잉 투자에 이은 위기 상황은 구경제와 전혀 다르지 않은 시장의 비예측성을 뜻한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만델이 신경제의 고유 논리로 적용한 기술순환 개념도 전통적인 경기순환의 틀 안에서 재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신경제도 구자본주의의 연장선에 서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월간평론)의 필자들은 기본적으로 디지털 정보와 인터넷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 경제적 가치를 과대 해석해 새로운 경제 현실로 입론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한 유력한 디지털 경제지의 불사조론이 '개그'로 보이는 연유는 아직도 이를 못느낀 채 여전히 신경제론의 꿈과 희망에 갇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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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정보 민들레 홀씨되어

열린 정보 민들레 홀씨되어 [한겨레]2001-04-13 02판 25면 1340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정보란 여러 사람들과 나누면서 사용해보고 실험하고 비판하고 덧붙임으로써 무럭무럭 자란다. 소수에게 집중돼 접근이 안되는 정보는 곧 멍청해진다. 네트워크는 고여 있는 정보를 신선하게 바꿔주는 통로 구실을 했다. 컴퓨터 전문가들이 공동작업으로 이뤄낸 대안의 운영체제인 리눅스 프로그램은 네트워크를 통해 커온 '열린 정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하지만 자본주의 역사에서 정보 소유권에 대한 집착이 지금처럼 심한 적은 없었다. 정보의 '닫힌 모델'이 신경제 가치생산의 근본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대응은 질적으로 상반된다. 리눅스와 같은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국한되지 않는 정보의 사회적 공유론이 체계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닫힌 정보에 숨통을 트는 공유의 정신을 네티즌들 스스로 체득한 결과다. (해커윤리)라는 책에서 페카 하이마넨이 요약한 '열린 자원 모델'도 그 연장선에 있다. 정부나 기업의 개입 없이 인터넷을 통해 개인들이 직접 정보자원들을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자는 얘기다. 정보공유론에 대한 동조 움직임은 다양하다. 법학 쪽에서는 미국 하버드 법대 교수인 로런스 레식을 중심으로 '열린 법'이라는 모델이 실험되고 있다. 열린 법은 누구든 상관없이 인터넷상에서 법 초안과 법정 진술문 등을 지적 협업으로 만들어가자는 공개 포럼이다. 교육계의 중요한 변화로는 지난주 발표된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오픈코스웨어' 계획을 들 수 있다. 이미 여러 대학에서 도입한 원격교육 모델이 이용자를 제한하고 이윤논리에 근거한다면, 이 새로운 계획은 모든 이들에게 무료로 접근이 가능하고 다양한 논의들을 생산하는 공유모델에 기반한다. 매사추세츠공대의 이런 열린 교육 모델이 실현되면, 참여의사를 밝힌 940여 교수의 2000개가 넘는 강의 내용과 관련 자료들을 누구나 웹상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1억달러의 비용과 10년의 개발기간이 소요되는 이 계획의 혁명성은 단지 정보의 공개와 이용이라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원이 공개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보배양의 효과가 더 중요하다. 자발적인 이용자들이 주고받는 견해와 비판이 정보의 가치를 증식시키는 것이다. 리눅스의 작은 공유정신이 열린 법, 교육, 저널리즘 등의 다양한 이름을 달고 사회 곳곳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정보공유 모델이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점칠 수 있다. 지금까지 신경제의 새로움은 구경제에 비해 전혀 새롭지 못했다. 신경제 또한 정보 통제와 화폐 중심이라는 못된 구습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열린 모델의 사회적 실험들은 이 허울뿐인 신경제에서 먼저 고려돼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되묻고 있다.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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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낯선 디지털 예술

아직은 낯선 디지털 예술 [한겨레]2001-04-06 04판 25면 1334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미술관이나 화랑이 예술 작품을 불구로 만드는 닫힌 공간이란 부정적 인식이 늘 있었다. 프랑스의 기 드보르 같은 작가는 이렇게 박제화한 예술 공간에 반기를 들고 대중의 일상 삶에 예술을 병합.폐기하자는 급진적 주장을 펴기도 했다.요즘 현대 예술의 전시 환경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을 높여줄 신선한 변화가 일고 있다. 전통적 미술관들이 물리적 장소에 상관없이 인터넷을 통해 미적 표현물을 전시하는 기획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010101: 기술 시대의 예술'(www.sfmoma.org/010101/)이 그 예다. '010101'은 2001년 1월1일 정오라는 가상공간에서의 전시 기점과 디지털 코드의 상징적 조합에 의한 예술 실험이라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에 이어 미술관 전시도 병행하고 있다. 전시작들은 전통의 미술 도구뿐만 아니라 첨단 기술 장비들을 이용해 인간의 새로운 디지털 오감을 자극한다. 한국 작가 이불씨의 설치 작품을 포함해, 출품작들은 첨단 기술의 새로운 도구적 가능성을 제시했다. 머리에 쓰는 스캐닝 장치를 이용해 시각의 움직임에 따라 만들어진 그림, 시청각 디지털 장치를 이용해 실제 사물들을 가상화하는 작업, 반대로 컴퓨터 작업을 통해 가상을 현실로 구성한 작품, 입력 프로그램에 따라 구동하는 컨베이어에 작품을 자동 생산하는 조각 장비, 마치 컴퓨터 게임과 같은 서사 구조와 형식을 빌린 웹기반 작품 등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힘든 매체 기법들을 도입하고 있다. 앞으로 예술의 흐름에서 디지털의 자유로운 속성만큼이나 미학적 표현 수단이 더없이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온라인 전시물의 여유있는 감상이 초고속 인터넷 장비, 성능 좋은 컴퓨터, 각종 그래픽 연동 프로그램을 가진 관객에게만 허용된다는 점은 난제로 남는다. 힘에 부치는 컴퓨터들은 사이트의 초입에서 맥없이 먹통이 된다. 무료 입장 대신 이용자의 경제적 능력이 예술 관람의 1차 조건으로 버티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접속의 불균형이 생기면 디지털 예술은 좀처럼 일반인들의 손에 잡히지 않는 0과 1의 조합에 불과하다. 관람 중에는 다른 장벽에 가로막힌다. 사이트에 친숙하지 못한 이용자들은 낯선 인터페이스에 애를 먹는다. 뒤늦게 익히는 컴퓨터에 대개가 중압을 느끼듯, 전시 페이지의 전체 구조에 적응하는 데도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관객은 인터넷에서 경험하는 여러 제약에서 예술 수용의 또 다른 닫힌 구조를 느낄 공산이 크다. 게다가 80년대부터 사이버문화의 극단에서 주목받았던 다양한 전위예술가들을 전시에서 전혀 접할 수 없는 데서도 반쪽 잔치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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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해고를 해고하라

닷컴해고를 해고하라 [한겨레]2001-03-30 01판 25면 1293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경우없는 해고통보' '비인간적 대량해고' '노동자 정서의 절대 무시'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닷컴 해고의 특징이다. 전자우편을 이용하거나 대형 회의실에서 갑자기 불러 직원을 내쫓는 방법은 그나마 점잖은 축에 든다. 해고된 사실조차 몰랐다가 엉뚱한 경로를 통해 확인하거나 통보 뒤 몇 분 안에 신속히 짐을 싸야 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휴가나 출장을 간 사이에 자리를 정리하는 것도 흔히 일어나는 풍경이다. 이렇게 회사 밖으로 던져진 미국 닷컴 노동자만 지난 10개월간 적어도 6만5천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경기 침체와 불투명한 전망을 타고 닷컴 기업의 무분별한 해고 경쟁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주는 일반적으로 해고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기업 체질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는다. 과연 의도한 대로 이뤄질까? 가끔은 맞지만 대개는 아니다. 최근 발표된 경영자문회사들의 조사 결과는 오히려 해고의 부정적 효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머서경영컨설팅은 대량 감원을 행한 기업 중 70% 가량이 해고 뒤 5년간 이윤을 증가시키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베인앤드컴퍼니도 대량 또는 반복적인 감원이 3년 이상 해당 기업의 시장 성과를 떨어뜨린다고 발표했다. 기업의 경량화가 살아남은 직원들의 사기 저하, 과중한 업무, 정상적 의사소통의 단절 등으로 기업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악화시킨다는 분석이다. 경제분석가들은 닷컴 기업들의 해고 발표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서 벗어난 해당 기업의 초단기적인 선전 효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런 회사에는 주식 투자자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 것과 아예 투자를 멀리하라는 조언까지 하고 있다. 감원 발표를 통한 주가 상승 혹은 부양 효과란 마치 근육 강화제와 비슷해서 순식간에 이전보다 더 악화한 상태로 되돌린다고 본다. 결국은 해고가 문제 해결의 능사가 아니란 얘기다. 연일 터져 나오는 감원의 회오리 속에서 경기 둔화와 회복의 징후만을 재려 한다면 서글픈 일이다. 완전히 추락하는 노동자들의 사정은 아랑곳없다. 수치로 환산된 경제 진단에서 살아 숨쉬는 노동에 대한 감정 평가는 여전히 부실하다. 게다 닷컴 기업들의 비상식적인 해고 경향은 노동자를 신경제의 가장 중요한 지적 자산으로 떠받들고 사내 가족주의를 외치던 시절을 민망하게 만들고 있다. 그토록 기업들이 경청해 마지않던 보수적인 경제 전문가들의 목소리마저 닷컴 해고에 비판적이라면, 이에 더욱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한 경제 분석가가 토하는 자성의 한마디 말은 요즘같은 때에 그 의미가 명쾌하게 다가온다. "닷컴 해고를 해고하라."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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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발전 막는 비즈니스 특허

인터넷 발전 막는 비즈니스 특허 [한겨레]2001-03-23 01판 25면 1283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미 특허 5960411.1999년 9월 인터넷서점 아마존이 따낸 '원클릭' 쇼핑 특허의 발급 번호다. 원클릭은 웹브라우저에서 신상 정보를 실어나르는 쿠키를 이용한다. 소비자가 결제.배달 정보를 다시 기입하지 않더라도 단 한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쇼핑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상거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문제는 이 특허 발급이 특정한 사업 기법에 대한 독점을 인정함으로써 인터넷의 다양한 발전을 가로막는 데 있다. 원클릭은 특허의 대상이기보다 소비를 충동하는 영리한 마케팅 기법에 가깝다. 특허의 전제가 되는 발명의 독창성이나 고유성에 비춰봐도 한참 수준 미달이다. 지난주 바운티퀘스트(BountyQuest.com)라는 한 사이트에서는 이 특허에 반대하는 현상금 공모의 승자를 결정했다. 이 사이트는 각종 인터넷 특허의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특허등록 이전의 자료나 사례를 발굴하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준다. 비상식적인 특허에 대해 여론을 조성하고 관련 특허법 개혁을 유도해보자는 취지에서 생겨났다. 원클릭 특허의 무효를 입증하는 현상수배에 걸린 돈은 1만달러였다. 한 명의 승자를 가리려 했지만, 원클릭 특허처럼 웹을 기반으로 한 사례가 없어 3명에게 현상금이 돌아갔다. 휴대용 쇼핑 장치와 쌍방향 라디오 위성을 이용한 쇼핑의 88년 미국 특허와, 쌍방향텔레비전을 이용한 쇼핑의 95년 유럽 특허가 가장 가까운 사례로 꼽혔다. 현상금을 건 사람은 이 사이트의 초기 투자자이자 컴퓨터 기술서적을 발행하는 팀 오라일리다. 그는 지난해부터 아마존 사장과 몇 차례 주고받은 공개서한을 통해 원클릭 특허의 무용성을 주장한 바 있다. 오라일리는 이번 현상 공모를 통해 아마존이 원클릭 쇼핑 기법을 처음으로 깨달은 기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이려 했다. 물론 원클릭 특허를 무효 처리할 정도의 똑같은 선례를 찾지 못했지만, 무수한 이전의 사례들이 존재했음을 확인하는 행사였던 점은 분명했다. 응모된 것 가운데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시사만화가 게리 트뤼도가 93년에 그린 네 컷짜리 만화가 포함돼 있다. 가상현실 헬멧을 이용한 원클릭 쇼핑에 대해 점원과 소비자가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이 만화는 아이디어의 특허가 얼마나 무모하고 비상식적인가를 보여준다. 인터넷 상황이 아니란 점을 빼곤, 아마존의 특허 아이디어는 이미 만화 대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원) "자, 이 헬멧을 쓰시고 쇼핑해보시죠." (소비자) "잠깐, 내 카드를 깜박했네." (점원) "이미 손님의 카드정보를 입력.확보했습니다. 그저 편안히 쇼핑하세요."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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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상업성과 인터넷 미래

라디오 상업성과 인터넷 미래 [한겨레]2001-03-16 02판 25면 1315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구의 하원의원 메이저 오언스는 지난주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는 (WBAI)라는 지역 라디오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노동 현안을 다루는 전화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방송사 사장이 스튜디오에 들이닥쳐 진행자의 마이크를 꺼버리고 방송을 중단시켰다. 곧이어 오언스는 방송 책임자의 비상식적 방송 검열에 분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방송 중 마이크를 낚아채는 이런 촌극은 상업주의를 배격하며 태어났던 퍼시피카 재단 소유의 라디오 방송사에서 벌어졌다. 퍼시피카는 교육기관을 빼곤 미국 최초로 비상업적 방송의 인가를 받아, 1949년 캘리포니아주 버클리를 필두로 이제는 로스앤젤레스.뉴욕.워싱턴.휴스턴 등지에서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지역 공동체가 방송사의 예산을 정하고 편성을 자문하는 구실을 하면서, 퍼시피카는 명실공히 민주적인 조직 구조를 지닌 대안매체로 성장했다. 퍼시피카 재단은 몇년 전부터 상업적 모델에 사로잡힌 운영위원들이 등장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재단 운영진의 권력 집중과 이를 제어.감시하는 지역 자문위의 기능 한계로 빚어진 결과다. 반세기가 넘도록 지켜온 재단의 민주적 가치를 등지고, 이들은 사업 구상에 방해가 되는 사내 진보 인사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99년 5월 버클리 소재의 (KPFA방송) 사장.국장 및 핵심 직원 축출과 이에 반발한 직원들의 대규모 항의시위와 체포, 보안요원의 고용과 출입통제 등은 서막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WBAI)에서 단행된 사장과 일부 임원들의 해고 조처는 '크리스마스 쿠데타'로 불릴 정도로 잔인하게 방송사 직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오언스가 당한 수모는 이 유혈 폭풍이 몰아친 뒤 재단이 새로 앉힌 임시 사장의 지나친 프로그램 검열로 연출된 것이다. 상업적 모델을 도입하려는 운영위는 그동안 사회의 중요한 현안들을 다뤘던 프로그램과 관련 직원을 가차없이 잘라냈다. 이에 저항하는 각계 인사의 항의 서명, 언론유관 시민단체와의 연대투쟁, 안티사이트 개설(savepacifica.net), 거리집회 등으로 투쟁은 한층 격해지고 있다. 해법은 진보적인 추천인사로 운영위가 다시 구성되고, 이를 통해 애초의 설립 취지대로 비상업적 방송을 꾀하는 일이다. 이를 기약하지 않는다면 문제 해결은 당분간 요원할 듯하다. 라디오를 인터넷 못지않은 혁명적이고 민주적인 매체로 꿈꾸던 거짓말 같은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상업화와 독점의 괴물 앞에서 퍼시피카마저도 대책없이 흔들리는 절망의 시대를 넘고 있다. 라디오의 얼룩진 역사가 인터넷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도록 놔둬선 곤란하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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