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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과 인권침해

첨단기술과 인권침해 [한겨레]2000-10-13 01판 26면 1254자 컬럼,논단 1933년 나치의 공세를 피해 유럽에서 건너간 지식인들의 망명 대학으로 알려진 미국 뉴욕의 뉴스쿨에서 지난주 사흘 간에 걸쳐 프라이버시(사생활) 관련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대학의 영향력 있는 국제학술지인 (사회연구)에서 주최한 이 자리는 전통 학계의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현실의 프라이버시 침해 위기를 진단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이번 주말에는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컴퓨터 전문가 모임'(CPSR) 주최로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대규모 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주로 현장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이 대회는 현재의 프라이버시 침해 기술의 수준이 현격히 달라졌다는 판단 아래, 변화한 지형에 맞는 프라이버시 침해 대비책을 구상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최근 들어 학계나 시민단체에서 이런 굵직한 행사들이 줄을 잇는 것은 첨단 기술에 의한 새로운 프라이버시 침해 사례가 오히려 선진국을 중심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달 워싱턴의 전자프라이버시정보센터(EPIC)와 런던의 인권단체인 프라이버시인터내셔널(PI)이 공동으로 펴낸 (프라이버시와 인권보고서 2000)은 이에 대한 풍부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을 비롯해 약 50개국의 충분한 관련 사례를 들면서, 전세계적으로 법 집행 기관과 기업들의 인터넷.위성.신체정보 등을 이용한 점점 복잡하고 시야로부터 숨어드는 감시와 불법도청 기법들이 프라이버시를 더욱 더 옥죄고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이 보고서는 미국이 전자 감시를 막으려는 법적 장치들을 제거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달러당 컴퓨터 저장능력이 두배로 늘어나는 동안에 인구는 기껏해야 2% 성장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를 기술적 풍요를 예찬하는 말로 받아들이면 크나큰 오해다. (데이터베이스 국가)란 책으로 유명해진 심슨 카핀클의 말을 빌리면, 오히려 그 통계 결과는 21세기에 다가올 프라이버시의 사망을 예고하고 있다. 정확히 이는 정보 기술의 폭발적 발전과 그 가용 능력이 우리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종국에는 삼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한다. 프라이버시 침해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그 피해 대상은 개인의 노출된 사생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어디서든 일상화한 감시의 시선에는, 종국적으로 인권 침해라는 문제가 걸려 있다. 더욱이 관련 기술의 첨단화는 이제 '더 이상 숨을 데가 없는' 것 이상의 심각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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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필터링은 검열수단

인터넷 필터링은 검열수단 [한겨레]2000-10-06 06판 26면 1271자 컬럼,논단 지난주 사이버공간에서는 한 경연대회의 재미있는 수상 결과가 발표됐다. 주최자는 인터넷을 통해 의사 표현의 자유를 실천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국 뉴저지주의 시민단체 디지털자유네트워크(dfn.org)다. 이 대회는 검열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필터링 프로그램을 막기 위해 기획됐다.이미 사이버패트롤, 사이버시터, 네트내니, 아이-기어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필터링 소프트웨어들이 인터넷의 음란.폭력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자율 장치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문제점을 지닌 사전 검열의 유형인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가상공간에서 네티즌들이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정보가 알게 모르게 걸러지거나 차단된다면 자연스런 기술적 검열의 형태라 볼 수밖에 없다. 정보를 거르는 행위의 유의미성을 떠나서, 필터링 프로그램들 자체가 이른바 '센서웨어'(censorware)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이번 대회는 사소한 것으로 보이던 필터링 과정이 심각한 검열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뒀다. 대상은 한 고교생에게 돌아갔다. 그는 학교 도서관에서 자신의 학교 웹페이지를 검색해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도서관 컴퓨터에 설치된 필터링 프로그램이 작동해 모든 '고'(high)란 단어를 '마약에 고무된'이란 뜻으로 파악해 자동 검열했기 때문이었다. 여러 네티즌들이 응모한 10개 분야별 시상도 이뤄졌다. 여기에는 인터넷의 음란물을 반대하는 한 보수적인 사이트가 음란물을 차단하려다 거꾸로 필터링에 걸려든 인과응보상, 인간 신체와 관련한 단어들의 필터링을 철저히 수행했다고 준 청교도상, 좋은 의미의 단어까지도 거르려는 과잉검열상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인터넷의 필터링과 관련해 유명한 일화를 남긴 셰릴 밥콕의 이름을 빌린 상도 있었다. 밥콕에 얽힌 내용은 이렇다. 로스앤젤레스의 변호사인 그는 한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등록하려다 거부당했는데, 그 이유가 비속어로 남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콕'이 필터링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밥콕은 웹페이지 관리자에게 시정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부당하자, 결국에는 콕과 같은 뜻이지만 필터링에는 걸리지 않는 '페니스'란 단어를 사용해 밥페니스로 등록해버렸다. 어처구니없는 필터링에 대한 그의 냉소적 표현이었다. 사전에 필터링이라는 빨간 색연필로 삭제되는 범위가 동성애자 운동 등 정치 성향을 지닌 사이트들에까지 이른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센서웨어가 인터넷 내용 등급제라는 사후 필터링 과정에 비해 부작용이 클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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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범위와 소비자 권리

저작권 범위와 소비자 권리 [한겨레]2000-09-29 01판 25면 1236자 컬럼,논단 미국영화협회(MPAA)가 프로그램의 저작권 수호를 위한 2번째 라운드에 들어갔다.1라운드가 해커들의 디브이디(DVD) 암호 해독용 프로그램의 파장을 막기 위한 시도였다면, 이번에는 아예 일반 소비자들의 '정당한 이용'에 대한 기본권에 도전장을 던졌다. 내용인즉, 협회 쪽이 고화질텔레비전(HDTV)에 디지털프로그램 복제를 방지하는 기술을 탑재할 것을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앞으로 이 기술이 표준으로 자리잡는다면, 복제방지 정보를 지닌 프로그램들을 일반 가정에서 녹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소비자단체들은 협회 쪽이 기술적 수단을 동원해 각 가정에서 누렸던 소비자들의 정당한 이용에 대한 권리를 뺏으려 한다며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소비자의 정당한 이용은 대개 이용의 목적과 특성, 원저작물의 성격과 이용정도, 그리고 저작물의 이용이 시장 능력에 미치는 효과 등을 따져 저작권의 적용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의 관점에서 보면, 소비자들의 정당한 이용은 저작권에 맞서는 최소한의 공적 수단인 셈이다. 명문화한 저작권 조항은 자주 정당한 이용의 권리와 부닥치게 마련이다. 대개 저작권자들은 소비자들의 정당한 이용이 저작물의 잠재적 시장에 해를 입힌다고 본다. 그래서 저작권자들에게는 설사 누군가의 저작물 이용이 비상업적 목적이라 하더라도, 그에 따른 잠재적인 상품 시장에서의 손실을 입증하는 것이 저작권을 지키는 중요한 전술이 된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저작권은 법조문에 의지하기보다는, 이를 보장하는 기술적 수단 속으로 기어든다. 하버드 법대 교수인 로렌스 레식이 주장했던 것처럼 이제 기술적 코드가 법이 된다. 일단 어떤 기술이 표준이 돼버리면 바꾸기가 어렵고 그 파장 또한 일반인들이 의식하기가 힘들어진다. 미국영화협회의 복제 방지용 장치는 바로 저작권 관련법이 수행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완벽하게 기술적 코드의 형태로 그 기능을 갖춘 경우다. 소비자는 정당한 이용에 대한 권리가 침해받는 사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저작권의 새로운 기술적 코드가 정착할 가능성이 한결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저작권과 정당한 이용에 대한 권리를 배치되는 개념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공적 권리로서 소비자의 정당한 이용을 저작권의 틀 안에서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곧 양자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저작권의 목표여야 하며, 이를 기술적 코드의 설계에 적절히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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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색해지는 저작권법 적용

옹색해지는 저작권법 적용 [한겨레]2000-09-22 02판 26면 1170자 컬럼,논단 지난주 미국에서는 특허.상표권 사무국(USPTO) 주최로 이틀에 걸쳐 남북미 대륙의 거의 모든 나라 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지적재산권 강화를 위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후원자는 마이크로소프트, 루커스아츠 등이 주축이 된 인터랙티브디지털소프트웨어협회(IDSA)였다. 주최 쪽과 후원 단체의 이름만 흘낏 봐도 그 기획 의도를 눈치챌 수 있겠지만, 이 모임은 디지털 환경에서 지적재산권 보호가 그리 녹록하지 않은 데 대한 적극적 대응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심포지엄의 마지막 날 오찬장에서 재닛 리노 미국 법무장관은 지적재산권 침해자는 마약을 거래하는 조직과 다를 바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리노는 또 이 위반자들이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당 국가들끼리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자고 주장했다. 이런 그의 말에서, 남미 국가들까지 끌어들여 대규모 심포지엄을 구성한 이유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남미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가운데 거의 절반 정도가 무단 복제품이라는 사실은, 미국 처지에서 그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지켜볼 수만은 없게 만들었다. 비록 직접적인 관련성은 적지만, 한창 논란이 일었던 음악파일 교환 프로그램인 냅스터와 디브이디 암호해독 프램그램인 'DeCSS' 등으로 대표되는 네티즌의 정보 공유에 대한 집단적인 흐름 또한 저작권 옹호론자들에게 상당한 위기감을 준 듯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지적재산권 심포지엄과 리노의 발언은 국내외 저작권 위반자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경고 메시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적재산권의 옹호에 대한 사법적이고 원칙적인 강경 대응의 논리가 얼마나 디지털 기술의 현실에 부합하는가이다. 디지털과 이를 담는 거대한 인터넷은 근본적으로 자유로움에 기반한다. 정보의 나눔과 공유 정신은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의 핵심이다. 리노도 이날 토로했지만, 지적재산권의 잣대를 새로운 디지털 현상에까지 확대시키기에는 현실적인 무리가 따른다.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최근의 중요한 판결들이 주로 기업의 손을 들어주고 있지만, 이것이 저작권 흐름의 미래라고 점치기는 어렵다. 디지털 시대의 지적재산권 문제는 단지 사법적 수단에 기대어 풀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디지털 정보와 이를 이용하는 주체들의 고유한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기업의 재산권 행사를 더욱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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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플러 미래예측의 허점

토플러 미래예측의 허점 [한겨레]2000-09-15 04판 25면 1195자 컬럼,논단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부인 하이디와 함께 (미래충격)을 펴낸 지 정확히 30년이 흘렀다. 토플러는 거의 10년 간격으로 (제3의 물결)과 (권력이동) 등 미래서를 내놔, 미래사회 예측과 관련해 국내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토플러의 책이 빛을 발하는 근거는 무엇보다도 그가 축적한 인터뷰 자료의 방대함이다. 그는 (미래충격)을 펴낸 이후 전세계 지도층 인사들과 인터뷰를 하는 데 거의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책들은 의사결정권을 지닌 엘리트층의 생각을 집약하고 있다. 그의 미래진단이 무리없이 먹혀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게다가 그는 전세계를 누비면서 확인한 정.재계 인사들과 과학자들의 현실인식을, 자신의 직관을 첨가해 정리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디지털 격주간지 (비즈니스2.0)은 최근 토플러와의 인터뷰와 각계 저명인사들이 내다보는 '제2의 미래충격'을 실었다. 이 잡지에 실린 토플러의 캐리커처는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그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그림 속에서 양탄자 대신 자신의 책 (미래충격)을 타고 선사시대를 배경으로 허공을 날고 있다. 예언자의 가운을 걸친 그의 모습과 득도에 이른 듯한 몸짓.표정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미래학을 예언과 구분해주는 가장 큰 근거는 현실의 인간활동에 바탕을 둔 논리적 예측일 것이다. 그럼에도 예언자적 이미지가 오히려 그의 풍모를 지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미래학은 인과적 논리에 따른 예측을 담고 있긴 하나, 현실의 인간활동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는 뭔가 빠져 있다. 그의 논의구조는 주로 엘리트층에 토대를 두고 있어,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대중의 맥락은 거세돼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큰 흐름을 지적하는 것과 달리, 일반 대중의 역동적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정보기술 정책 등의 의사결정권이 엘리트층에 고도로 집중돼 있거나 한 국가의 미래 경쟁력이 그 나라 거대기업들의 수준만을 반영하는 경우에는 미래예측이 한결 분명할 수 있다. 이제껏 그의 진단과 예측은 이런 대세에만 의존한 경향이 짙다. 토플러가 누누이 지적한 대로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이 넘치는 사회를 보기 위해서는, 그의 디지털 사회에서 소외된 대중의 목소리를 미래진단에 덧붙일 필요가 있다. 토플러뿐 아니라 각계가 되돌아봐야 할 것은 엘리트주의 미래학이 아닌 대중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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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정보, 기업자산인가?

소비자정보, 기업자산인가? [한겨레]2000-09-08 02판 26면 1160자 컬럼,논단 1990년대 초 개인정보의 상업적 유용을 심도있게 비판해 학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자 오스카 갠디는 기업의 소비자 관리 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파악했다. 소비자 신분 확인, 기업의 기준에 의한 유형화, 최종적인 소비자 자료 평가가 그것이다. 물론 각 단계의 끊임없는 연쇄과정에서 기업에는 점점 더 세밀해지는 소비자 데이터베이스가 축적된다.전자상거래라는 새로운 경제적 현실은 소비자 정보의 분류와 관리 능력을 한층 강화하고 확대시킨다. 인터넷이 촉진하는 소비자 정보 획득의 용이성과 분류기술의 다양성이 기업의 소비자 통제력을 배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만큼 소비자들은 사생활 침해와 정크메일(쓸모없는 전자우편) 세례에 시달린다. 지난주 세계 최대의 온라인서점인 미국의 아마존이 소비자 정보 정책을 수정한다는 뉴스가 언론에 보도됐다. 아마존은 수정된 약관에서 2300만명 정도의 소비자에 관련된 정보가 다른 기업과 공유될 수 있고, 기업합병이 이뤄질 때는 그 거대한 정보가 인수기업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아마존의 이런 조처는 올해 들어 도산한 토이스마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발빠른 전술적 대비가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토이스마트는 도산하면서 소비자 정보를 팔려다가 '제3자에게 정보를 유출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사생활보호 약관에 스스로 덜미가 잡힌 바 있다. 아마존은 엄청난 매출실적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정보 관리기술 개발에 무리한 투자를 한 탓에 수년간 적자를 기록했다. 아마존은 다른 기업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개인정보 관리기술로 고객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항상 최고의 인터넷 브랜드 인지도를 유지해왔다. 이 회사는 신용카드 정보와 인적 사항 등 형식적인 소비자 정보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구매행위에 따라 지속적으로 정보를 분류하고 그 성향을 토대로 미래의 소비를 예측까지 할 정도로 정보 관리에 치밀하다. 이렇게 촘촘히 관리된 아마존의 소비자 정보는 기업의 실질적인 자산이기 때문에 거래나 양도가 가능하다는 이 회사의 공식 논평은 부분적으로만 옳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정보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거래되고 있다는 칙칙하고 기분 나쁜 느낌을 갖는다면, 아마존의 실물자산 논리는 뒷골목에서 자행되는 폭행과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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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권없인 도메인 빼앗겨

상표권없인 도메인 빼앗겨 [한겨레]2000-09-01 02판 25면 1286자 컬럼,논단 인터넷 검색 사이트들의 검색순위 윗자리에는 섹스가 빠지지 않는다. 단단히 한몫 챙기는 인터넷 사업 분야에도 섹스는 늘 포함된다. 인터넷 섹스산업 열풍은 섹스와 관련된 도메인 이름의 선점 경쟁으로 이어진다. 신경제는 소비자들에게 도메인 이름을 확실히 기억하도록 유도한다. 실물경제의 '시장점유'에 대비되는 '정신점유'의 확보가 강조되는 것이다. 인터넷의 섹스산업도 이런 신경제 원칙에 충실하다.'섹스'란 검색어로 찾아지는 사이트들 가운데 으뜸은 섹스닷컴(sex.com)이다. 이 기억하기 쉽고 단순.확실한 도메인 이름의 가치는 2억5천만달러로 평가되며, 소유자는 포르노 황제 스티븐 코언이다. 그의 연간 순수익은 1억달러, 사이트 방문객은 매달 1억4천만명에 이른다. 이런 막강한 섹스닷컴에 게리 크레먼이란 한 벤처사업가가 대들었다. 도메인 이름이 자신이 94년에 등록한 것이라며 탈환작업에 나선 것이다. 그는 코언이 위조된 문서와 네트워크솔루션스라는 도메인 이름 등록업체를 통해 소유권을 훔쳤다고 주장한다. 코언은 사기행각으로 두번이나 감옥을 드나든 경력이 있는 데다, 소규모 포르노 업자들을 상대로 그들의 도메인 이름을 포기하라는 협박을 일삼아 이미 악명이 높은 인물이다. 이 사건은 누가 도메인 이름의 주인이 되는가 하는 관심거리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의 재산권 적용 범위에 관한 문제도 제기한다. 도메인 이름이 재산권 행사에 과연 포함되는지에 대한 논쟁의 소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크레먼은 도메인 이름 등록업체와 코언 양쪽을 다 고소했다. 그러나 그는 네트워크솔루션스와의 소송에서 졌고, 코언에 대해 절도 혐의를 제기한 소송에서는 최근 연방지법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섹스닷컴과 같이 애초 상표권으로 보호되지 않는 상태의 도메인 이름은 실물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재산권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으며, 따라서 절도죄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법원의 판결이었다. 도메인 이름은 재산이라기보다는 전화번호와 같은 서비스의 개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도메인 이름에 대한 서비스 개념 적용은 일면 재산권의 범위를 축소해 인터넷의 본질적 특성을 강조한, 매우 유효한 주장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거대기업의 도메인 이름이 수억달러에 거래된 뒤에 바로 그 가치를 견고하게 보호받는 현실에서는 다분히 공상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미 상표권으로 무장한 도메인 온라인 강자들이 법을 내세워 가해오는 법률적 테러로 인해 분쟁에 휘말리곤 하는 온라인 약자들에게는 서비스 개념에 기초한 도메인 이름 모델은 또다른 힘의 논리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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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저항운동도 이젠 사업

인터넷 저항운동도 이젠 사업 [한겨레]2000-08-25 01판 25면 1278자 국제·외신 기획,연재 인터넷은 자본의 효율성에 무한한 능력을 부여하는 동시에, 사회운동가들에게는 전자적 저항의 새로운 실험장이 되고 있다. 저항 대상 웹사이트에 한꺼번에 몰려들어 시스템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가상의 연좌농성, 정책 입안자나 악덕 기업인에게 일제히 항의 전자우편을 보내 수신기능을 마비시키는 것 등은 종종 쓰이는 전자적 저항의 수단으로 꼽힌다.이런 전자적 저항을 아예 사업으로 꾸리면 어떨까? 미국의 한 아방가르드 그룹 아트마크(www.RTmark.com)는 이런 온라인 저항의 사업화를 앞서 실행하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 장난감 업체인 이토이스(etoys.com)와, 이 업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운영되던 스위스 인터넷 아티스트들의 사이트 이토이(etoy.com) 사이의 도메인 이름 분쟁에서 이토이가 승리하도록 도움으로써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트마크의 사업은 순전히 네티즌들의 투자로 이뤄진다. 이들은 상업적 투자회사가 아니면서도 뮤추얼펀드의 사업방식을 도입해, 기업의 횡포를 막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환경.교육.노동.언론.지적재산권 등을 대상으로 한 펀드를 만들고, 각 분야에서 정해진 사업에 이를 활용한다. 펀드의 매니저들은 저항을 꾸려나가는 당사자들이다. 펀드 운영의 결과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화폐적 이득이 아니라 문화와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기대다. 이제까지 아트마크가 벌인 사업들은 현실에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저항 방식의 심각성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이들은 세계무역기구(WTO),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조지 부시, 오스트리아의 나치당, 미국 기업 맥도널드 등과 비슷한 도메인 이름을 지닌 패러디 사이트를 통해 각각의 공식 사이트를 비꼬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영화 (타이타닉) 제작 때 환경오염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여론 전파, 잘 알려진 바비인형 3천여개에 전혀 다른 음성을 넣어 유통시키면서 고정화한 성 역할을 조롱한 바비 해방군 사업, 멕시코 사파티스타 운동을 옹호하기 위해 미국 국방부와 멕시코 정부의 웹사이트들을 공격하는 플러드넷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등도 이들의 사업내용에 포함돼 있다. 아트마크의 장점은 저항의 유연성에 있다. 이들은 문화적 저항의 전략과 전술들을 다양하고 재치있게 구사한다. 물론 저항을 유희처럼 전락시키는 경향이 있고, 타자에 대한 물리적 손상을 제한하는 사업원칙이 저항의 강도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트마크는 그동안 없었던 전자 저항의 실험을 이끌면서, 인터넷을 통해 사회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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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침해 의혹 못벗는 '카니보어'

인권침해 의혹 못벗는 '카니보어' [한겨레]2000-08-18 01판 25면 1177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미국 행정부는 전화뿐 아니라 전자우편과 각종 데이터 교환을 대상으로 하는 도청에 관한 법의 개정안을 의회에 상정해 놓고 있다. 그런데, 여론에 문제가 생겼다. 연방수사국(FBI)의 인터넷 도청 시스템이 프라이버시(사생활) 권리를 가로막는 상징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이 시스템의 명칭은 카니보어(Carnivore)로, 육식동물이란 뜻이다. 네트워크를 흐르는 거대한 양의 데이터들 속에서 흥미롭거나 의심이 가는 표적(고깃덩어리)을 순식간에 찾아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카니보어의 작동은 감시대상이 존재하는, 인터넷서비스공급업자(ISP)의 서버에 이 시스템을 설치함으로써 이뤄진다. 연방수사국은 카니보어가 장착된 서비스공급업자 서버를 통해 네트워크를 흐르는 전자우편이나 정보 등을 탐지하고, 그 내용을 연방수사국의 하드드라이브에 복사해 저장시킨다. 이 시스템은 '패킷 탐지기'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불과 수초만에 수백만통의 전자우편 내용을 자동 검색한다. 이미 20개 정도의 카니보어 시스템이 재작년부터 사용됐고, 지금까지 25건 정도의 사건 조사에 이 시스템이 이용됐다고 한다. 그 가운데 16건이 올해 상반기에만 이뤄진 것을 보면, 카니보어를 이용한 감청은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법무부는 카니보어에 대한 거센 반대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카니보어의 소스코드에 대한 검증을 컴퓨터 전문가들과 대학에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이런 법무부의 평가작업이 신뢰도와 독립성 면에서 의심스럽다는 태도다. 이들은 일반 네티즌들이 검증할 수 있도록 연방수사국의 버지니아주 쿠안티노 소재 컴퓨터연구소에서 개발된 카니보어의 프로그래밍 소스코드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연방수사국은 연방판사가 승인하는 범죄 용의자들에 한정해 테러리즘, 해킹, 아동 성추행, 신용카드 사기, 마약 거래 등의 범죄를 감시하고 예방하기 위한 제한적 기술로 카니보어를 활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인권과 부닥치며, 감청 권한이 남용될 수도 있다. 특히 노동계, 학계 등의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하는 기제로 이것이 사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둔하게도 카니보어란 명칭을 붙여 스스로 감청의 부정적 혐의를 널리 알린 연방수사국이 이 흉악스런 장치에 대한 반대 여론에 어떤 대응자세를 취해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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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수준은 정보화지수

소득수준은 정보화지수 [한겨레]2000-08-11 06판 25면 1245자 국제·외신 기획,연재 최근 정보격차에 대한 재미있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금까지 설문조사의 대부분은 수입, 직업, 인종, 연령, 성, 지역별로 정보격차가 발생한다고 보고해왔다.특히 미국에서는 인종간 차이가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로 지적돼 왔다. 그러나 전자상거래 조사기업인 주피터커뮤니케이션스가 3만가구를 대상으로 벌인 조사를 토대로 인터넷의 미래를 전망해본 결과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주피터에 따르면 인종적 차이는 앞으로 정보격차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에는 미국내 소수인종 전체의 70% 이상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백인 중 인터넷 접속인구 비중 76%에 거의 근접한 수치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인터넷 이용률이 84%로 소수인종 전체 평균값을 올리겠지만, 라틴계나 아프리카계 소수인종의 인터넷 이용비중도 65%를 넘을 것으로 나타났다. 주피터는 또 현재 10대 중심인 인터넷 이용이 5년 안에 35~50살의 중간연령층으로 옮겨갈 것으로 내다본다. 앞으로는 인종이나 연령이 정보격차에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입격차는 다르다. 연간 7만5천달러 이상의 고소득자 중 인터넷 인구는 올해 1500만명에서 2005년에는 200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1만5천달러 이하의 저소득층 가운데 인터넷 인구는 400만명에서 900만명 정도로 느는 데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어바인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이 내놓은 또다른 조사자료에서도 지역이나 인종보다 소득에 따른 정보격차의 심각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미국은 경기호황에도 불구하고 계급간 불평등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소득격차가 컴퓨터와 인터넷 이용의 불평등에 가장 큰 결정인자가 될 공산이 크다. 물론 소득보다 영향력이 덜할지는 모르나 인종과 지역 등의 요인도 정보격차와 무관할 수는 없다. 이런 각 변인에 따른 차이들이 누적되면, 전체 정보격차는 훨씬 더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형식적이고 인구학적인 정보격차의 이면에는 실질적인 격차가 존재한다. 인터넷 접속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동등한 정보이용 능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보격차에 관한 앞으로의 쟁점은 누가 어떤 정보원을 가지고 어떻게 활용하는가다. 최근의 조사결과는 평등한 인간관계의 복원을 보장한다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각자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금전이 그 이용도의 차이에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휘두른다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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