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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9 -- 늦은 휴가

2005. 8. 27 - 8. 31 휴가 집안 문중에서 단체로 하는 벌초에 참석하려고 일부러 휴가도 늦게 잡았다. 휴가기간중에 잠시 여수에 들렀다. 전남 여수는 내가 한창 시절에 그곳에서 젊음을 보낸 군대 근무지이다. 10여년만에 처음 와본다. #1 2005. 8. 28. 밤 늦게 여수에 도착했다. 여수 오동도 방파제에서 바라본 여수항의 야경 #2 여수 시내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육교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장애인을 위한 장치이다. 특이하네.. 지하철에 설치된건 많이 봤는데 육교에 엘리베리터가 있다니.. 차라리 건널목을 만드는게 돈이 적게 들지않을까....위험해 보이는데... #3 돌산대교의 야경.. 많이 본 야경이지만 그래도 여기온 기념으로 한방... #4 #5 돌산공원위에 우뚝선 돌산대교 준공 기념탑... 누구 말마따나...박정희가 생각난다.. 돌산도 끝에 있는 향일암의 주차장에 가서 차안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일찍 해돋이를 사진찍고자 했다. 근데 밤 1시쯤 잤는데 눈떠보니 9시다....으이구... 그나마 구름이 많아 제대로 된 해돋이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측에 위안을 갖는다. #6 향일암을 오르다 보니 돌을 조각해서 기둥을 만들어 두었다. 양쪽에 두개 있었다. 상당히 큰 바위 한 덩어리를 깍아서 만들어 두었는데... (가운데 노란색 라이터) 이렇게 큰 조각을 해야 암자의 권위가 서는건지.... 향일암의 묘미는 향일암에 이르는 계단이다. 한사람이 겨우 다닐만한 공간에 길을 만들어 한층 운치를 돋군다. #7 #8 #9 #10 #11 #12 #13 #14 향일암에서 바라본 남해바다. 바로 아래보이는 주차장옆 돌출된 숲속에서 몇달동안 군생활을 했다. #15 기독교에 이어 불교에도 돈과 이름은 불가분인가?...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진다.. 권정생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지금 한국에 오신다면 십자가 대신 똥짐을 지실지도 모른다고... <우리들의 하나님/권정생/녹색평론사/96.12월 1쇄> #16 #17 대웅전뒤로 보이는 바위덩어리들이 마치 두부를 자른듯 장관을 이룬다. #18 #19 #20 #21 돌산은 갓김치가 특산물이다. 군시절에 태풍이 전라도 지역을 덮쳤을때 쓰러진 벼를 세우는 대민지원을 나온적이 있다. 그때 농민들이 참으로 주신 막걸리와 갓김치는 그 이후 먹은 어떤 술보다 달고 맛있는 안주였다. 혼자먹기엔 아까워 4만원어치(12Kg)나 갓김치를 샀다. #22 향일암 주차장옆 군부대. 예전 생각이 나서 아는 척을 했더니..이상한 눈으로 본다. 얼마전에 군부대 초병이 총을 뺏기는 사고가 나서 그런가... 그저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할 듯 싶네.. #23 무술목 해안. 돌산도는 재밌게 생긴 섬이다. 쉽게 말해 눈사람처럼 생긴 섬인데 눈사람의 목부근이 무술목이다. 이쪽 해안과 반대편 해안의 거리가 수십미터에 불과하다. #24 #25 여수 시내. 여수는 항구도시라 쉽게 배가 보인다. 서울에서는 보기힘든 배가.. #26 여수 오동도. #27 오동도로 가는 길에 여행온 듯 한 수녀님들. #28 신발이 특이하다. 수녀님 신발이 정해져있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낯설다. 하기야 더울땐 이런 신발이 최고입니다. 오동도안에서 #29 #30 #31 #32 #33 #34 #35 오동도에도 군초소가 있었고 여기서도 한 반년 근무했었다. 이곳이 들어가는 입구인데.... 민간인통제구역일텐데....통제한다는 표시가 없다. #36 #37 이럴수가.... [net]란 영화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혼란이 왔다. 여기 분명히 파출소만한 제법 큰 군초소가 있었는데... 어쩜 이렇게 흔적도 없이 치웠을까... 내 기억이 도둑맞은 기분이였다. #38 여기에는 화장실만한 발전실이 있었는데... 그게 고장이 나서 밤새 고치는 걸 도운적도 있었는데.. #39 겨우 찾은 흔적.. 바윗길을 좋게 하려고 시멘트를 발라뒀다. #40 저기 저 바위에서 기타치며 노래도 부르고 고기도 잡고 좀더 깊숙한 곳에서 기합도 받았었는데... #41 고래를 잡고 팔자 걸음으로 내려오던 계단... #42 오동도 등대에서 바라본 등대직원 기숙사 지붕.. #43 만성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의 터널. 차가 한대겨우 지나갈 공간이지만 터널 중간중간에 주머니처럼 공터를 만들어 차가 서로 엇갈려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터널은 한의 터널이다. 일제시대때 주민들을 동원해서 손으로 팠던 터널이고 여순사건때는 대한민국 군과 경찰은 반란군에 가담했다고 터널 뒤에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주민들을 집단총살했다고 한다. #44 #45 #46 #47 #48 만성리 해수욕장. 이곳에서 전투수영이란 야영훈련을 했다. 군에서 전투라는 단어는 영어의 관사같다. 전투축구...전투식량...전투부대... #49 만성리 해안의 검은모래. 예전엔 검은색 작은 콩만한 모래였는데... 이제는 좁쌀만하다.. #50 #51 해변에서 마을을 보며.. #52 여수여행을 마치고 다시 길을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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