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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5 -- 다시 군대에 갔다.

다시 군대에 갔다.

예전에 와본 곳이데 어딘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연병장이다. 분명히 연병장이다.

 

한 낮의 뜨거운 햇살이 머리위로 쏟아진다. 마른 먼지가 플라타너스 나뭇잎에도
뽀얗게 앉아있다. 가만히 있어도 땀으로 팔뚝이 번질거린다. 손바닥은 온전히
살구 빛이지만 손등은 갈색에 가깝다. 손등을 보고 있자니 손톱의 반달이 유난히 눈에 띈다.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리듬을 타고 들려온다.
“삐이-익삑, 삐이-익삑”
귀에 익은 박자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쑥색 옷을 입고 <팔 벌려 높이뛰기> 체조를 한다.
제자리에서 팔 벌리며 두 번 뛰어야 하나의 구령이 붙고 그렇게 보통 삼사십 번 정도 한다.
말이 체조지 딱가리(기합)다. 맨 마지막 구령을 안 하는게 서로 약속인데 늘 그렇듯 누군가
구령을 붙인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한 쪽 구석에는 도하 훈련을 하고 있다. 강을 건너는 게 아니라 좀 큰 웅덩이를 외줄
하나 붙잡고 그네 타듯 건너야 한다. 건널 때는 반드시 다리와 몸이 “ㄴ”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이 엉덩이에 닿거나 다리가 빠질 수도 있다. 배가 나왔거나 뚱뚱한
사람은 죄다 빠진다. 웅덩이는 깊지는 않지만 고인물이라 냄새가 고약하다.
도하에 실패하면 딱가리는 없지만 자신은 물론, 동료에게도 고통을 준다.

우리 소대는 반대편 연병장 바닥에 앉아 조교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조교는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데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딴 데를 쳐다보지도 못한다.
그러다 걸리면 혼자 딱가리다. 다들 알아서 시선은 앞을 보지만 머릿속은 딴 생각일
것이다. 뙤약볕 아래 강의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다 둘 다 고통이다.
 
갑자기 조교가 묻는다.
“알~갈습니까?”
“네에~~”
“대답소리가 작습니다. 저~기 뭐가 보입니까?”
 이건 선착순 달리기 시키기 전에 늘 먼저 묻는 말이다. 분위기가 좋으면 “아무것도 안보입니다.”라고
 농담 따먹기 하지만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축구 골대요.”
“선착순 다섯 며엉~”

시든 풀잎처럼 쳐져있던 사람들이 용수철처럼 일어나 뛰어간다. 나도 얼떨결에 뛰어가지만
이미 선두그룹은 한참 앞서고 뛰어간다.
‘그냥...쉬엄 쉬엄 뛰자’
안 할 순 없으니 뛰긴 하지만 마지못해 뛴다. 절반이나 갔을까? 먼저 뛰던 사람들이 벌써
골대를 돌아 나와 엇갈려 뛰어간다. 약은 사람들은 슬쩍 끼어들어 그들과 같이 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천천히 골대로 뛰어간다. 축구 골대를 돌아 뛰다보니 조교가 있던 곳에서 다시
한 무더기 사람들이 이번에는 농구 골대를 향해 죽어라 뛰어간다.
‘선착순 3명 정도 겠군.’
축구 골대를 돌아 출발점에 도착한 나는 다시 농구골대를 향해 뛴다.
‘또 시작이다. 오늘도 뺑뺑이 인생이 시작이다.’

 

그러다 잠이 깼다. 꿈이다. 화들짝 놀라면서도 익숙한 내방 풍경에 안심이다.
 잠자리에 누워 생각해 본다.
오늘은 전부 9일 동안의 휴가를 마치고 첫 출근하는 날이다. 첫 출근하는 날 아침,
군대에 다시 가는 악몽을 꾸다니…

 

그동안 시간에 얽매지 않고 살았는데 당장 출근시간부터 맞춰야 한다. 눈부신
햇살은 없지만 눈 아프게 모니터를 계속 봐야한다. 호루라기 소리는 없지만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가 있다. 딱가리는 없지만 직장 상사의 쿠사리(꾸중)가 있다. 선착순은 없지만 실적평가니
결과분석이니 순위를 매기며 들들 볶는다.

 

“아…지겨운 뺑뺑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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