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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나는 일에 집중을 잘 못하는 편이다. 물론 여기서의 일이란 호구지책으로 하는 작업-일을 말한다. 정신 바짝 차려서 하면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은 일도 듬성듬성 몽상의 나래를 펴던가 이리저리 손에 잡히는 다른 소일꺼리에 기웃대던가 하면서 지지부진해지기 십상이다. 즉, 별 이유없이 일하기 싫어하는 인간이고 그래서 나중엔 결국 고생고생하는 인간이다.

 

그런데 요즘은 일에 집중 못하는 '확실한 이유'가 생겼다. 온종일 그 생각에 휩싸여 있느라 무언가 보아도 보는게 아니요 무언가 들어도 듣는게 아니다. 연신 담배를 피워대느라 흡연실로 쓰는 베란다만 들락거리다 끼니 때가 되면 대충 몇 술 뜨고 만다. 머신 앞에 앉아서 모니터를 응시하지만 뇌는 시각정보를 해독할 여유도 없이 다른 짓만 하고 있다. 밤이 오면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않아 하염없이 뒤척인다. 겨우 잠들어도 내내 그와 연관된 꿈만 줄창 꿔대다 새벽녘 퀭한 눈을 뜨게 된다.

 

별 이유없이 작업이 안될 때는 느긋하게 쉴거 다 쉬어가며 지낼 수 있었는데 작업을 방해하는 확실한 이유가 생긴 뒤론 무언가에 쫒기듯, 무언가를 내쫒듯 작업에만 매달리게 된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작업이 잘 될 리 없다. 참으로 괴로운지고...... 내 의지(...라는게 있다면...)와는 무관하게 나를 괴롭히는 그것, 그 생각, 그 집착......

 

해결할 방법은 없다. 그냥 버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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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나도 잘 모르겠어

돕의 글을 읽으면서 착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그처럼 '현장'을 주무대로 활약하지는 못하지만 소위 '운동권' 주위를 맴돌며 각종 음악작업이란 걸 생계수단 삼아 연명하는 처지에서 나는, 안쓰러움과 무기력함, 그리고 분노의 감정으로 그의 탄식에 공명하게 된다. 이것은 전혀 새삼스러운 경험이 아니다. 이른바 이땅의 자랑스런 '문예일꾼'이라면 그가 더 헌신적일수록 무수히 겪어온, 그리고 앞으로도 겪게 될 것이 분명한 경험이다. 또한 이것은 "문예역량을 단순한 도구로 사고하는 오류"라는 운동권식 언어로 명쾌하게 정리하는 것으론 불충분한 문제이다. 사실, 그들(또는 우리들)은 돕(또는 우리들)을 '단순한' 도구로 사고하지 않고 '가치의 위계질서가 적용되는' 도구로 사고한다. 즉, 더 훌륭한 도구와 덜 훌륭한 도구, 더 지독하게는 더 유용한 도구와 덜 유용한 도구로 사고한다. 가치평가의 기준이 통일된 것은 아니나 대개는 유명세라고 하는 지긋지긋하게도 통속적인 상징자본의 크기로 그 등급이 매겨진다. 누가 운동판의 유재석이고 누가 운동판의 박명수며 누가 운동판의 정형돈인지, '행사'의 기획자들은 잘 알고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야멸차다고? 그렇지 않다. 누가 이 자리를 빛내 줄 '초대손님'이고 누가 이 자리에 봉사해야할 '일꾼'인지 당사자가 더 잘 알리라 여기면서 그 질서에 흠집내는 투덜이를 댓가에 목맨 신심결여자로 공공연히 뒷말해대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내가 과연 더 야멸찬 것일까? 가슴에 발을 얹고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래도 인정할 건 하겠다. 그들(또는 우리들)보다 덜 야멸차기는 해도 좀 심하게 몰아붙인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을. 이렇게 씩씩대며 현상황을 성토해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음을 잘 알고있지만 마침 오늘 똑같은 불만을 토로해대는 지인의 얘기에 속상해 있다가 돕의 글을 대하자 감정이 많이 앞서버린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지 안을 생산해내는 일인데, 소심하고 무능력하고 별로 안 윤리적인 주제에 성질만 더러운 나같은 2차 관련자가 감당하기엔 너무 크고 복잡한 과제이다. 실컷 화만 내고 슬쩍 찌그러지는 것 같아 쪽팔리다는 느낌이 엄습해오지만, 머리를 충분히 식히고 더 많이 생각해보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다행스럽게도, 내 머리는 열전도율이 매우 낮아서 어떤 훌륭한 분(들)의 적절한 말씀이 나오시기 전까지는 잘 식지 않을 것 같다.


원래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위의 문제를 약간 다루고 좀 다른 얘기를 더 비중있게 하려고 했다. 기존의 운동가요(돕의 표현대로라면 "원래 진보진영에서 불려지던 노래들")에 대한 돕의 평가, 그에 기반해서 설정하는 자신의 음악(활동)에 대한 규정, 그러면서 남는 문제들 등에 관해 내 생각을 이리저리 말해 보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너무 열불내는 바람에 애초의 번뜩(이기까지나 했을까 설마, 그냥 쫀득이겠지)였던 생각들이 다 흐트러져 버렸다. 그것을 다시 추스려내기엔 지금 너무 피곤하고 밀린 일도 도사리고 있기에 이 역시 다음을 기약하는 바이다......(이럴거면 왜 쓴거냐...-_-)

 

그래도 정다운 미소를 머금은 채 전하는 "돕, 기운차리시오~"라는 인사말을 빼먹을 순 없겠다. 뻘글에 분노한 사람들이라도 웃는 낯에는 설마 침 못뱉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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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문자전담원

나는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병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어서 꼭 필요한 경우엔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사용하기는 하지만 웬만하면 문자나 메일을 선호하는 편이다. 왜 그럴까?


전화통화는 '리얼타임 소통'이다. 대화의 내용을 즉시 파악해서 지체없이 대응해야 한다. 머리회전이 그다지 빠르지 않은 나 같은 이들의 전화통화는 보통사람들의 그것보다 진의로부터 더 멀어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통화의 내용외적인 부분에서의 어려움도 있다. 내가 지금 전화통화하기 적합한 상황인지 고려해주지 않고 전화벨은 울린다(혹은 떤다). 보통사람들이라면 간단한 설명으로 '본' 통화를 미루는 데 어려움이 없어보이지만 나 처럼 소심한 이는 그것이 쉽지 않다. 더 싫은 것은 반대의 상황, 즉 지금 나의 통화시도가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더구나 상대방이 나보다 더 소심한 분이라면 어쩔 것인지 등을 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리얼타임이라도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는 전화통화보다 훨씬 덜 위험하다. 머리가 둔한 나라도 음성언어 이외의 정보들, 예를 들어 상대방의 행색, 표정, 몸짓, 그리고 그 옆에서 당사자 몰래 내게 어떤 신호를 보내주는 제삼자의 도움 등등을 활용하여 그 사람의 진의를 더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 내 의사를 피력할 때도 마찬가지의 도구들을 다 활용할 수 있어서 좋다. 이 경우, 내 진의를 왜곡할지 모르는 사각지대의 제삼자가 있는지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어려움은 충분히 감수할 만한 것이다.


어쨌든, 그런 고로 나는 문자나 메일을 선호한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메일이다. 물론 이메일을 말하는 것이다. 총린지 먼지하는 작자가 말하는 재래식 편지는 싫다. 나는 소심한 것 이상으로 게으르기 때문에 방안에서 손가락 몇 번 움직여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쓰고 접고 넣고 봉하고 또 쓰고 칠하고 붙이고 들고 나가고 걷고 찾고 넣고 다시 돌아오는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메일이 짱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내 편한대로만 할 수는 없기에 문자 주고받기라는 '준' 리얼타임 소통도 좀 해줘야 한다. 아무리 문자질에 능한 사람이라도 전화통화 만큼 빠르게 소통할 수는 없을 것이고 자타가 공인하는 느림보인 나같은 사람도 그럭저럭 충분한 대응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서 좋다. 설사 송수신의 인터벌이 통상의 경우보다 더 길어진다고 해도 그리 곤란해할 건 없다. 어떤 기술적 장애가 일어났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메시지가 내 단말기에 도착하는데 얼마 만큼의 지연이 있었는지 확신을 갖고 나를 추궁할 정도로 매정한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그래, 그래, 너는 빼고...미안하다 미안해~).


그러나 그렇게 '괜찮은' 수단인 문자질에도 나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다. 문자를 주고 받다보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내가 '가장 마지막 문자'를 쓰게 되더라는 것이다. 단순한 사무적인 내용의 경우에도 가급적이면 내가 마지막 문자를 써서 대화가 완료되었슴을 확인해 주곤하는데, 상대방이 이 문자를 제대로 수신했는지 못내 궁금해하는 쪽이 차라리 나인 편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속편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사적인 문자질에서는 더더욱 내가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인간적 관계를 지속-발전하고픈 상대방에게는 특히 더 예외없이 내가 최종문자를 보내게 되는데, 원체 별볼일 없는 사교 자원의 소유자인 내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당신과의 대화를 소중하게 여기는지 티를 낼 수 있는 이 정도의 성의표시 마저 소홀히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 힘들다.


물론, 최종문자의 내용은 "네~^^", "잘 알겠습니다...:-)", "그래!!!", "ㅋㅋㅋ~" 등등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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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나는 어떤 특정한 날을 잡아 무언가 기념하는 행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대단한 원칙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모든' 기념일을 다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으므로 아마 내가 게으름뱅이, 요즘 말로 귀차니스트여서 그럴 터이다. 기왕 챙기려 마음먹으면 너무나 많아지는, 허다한 기념일들을 모두 기억하는 것 자체가 내겐 어려운 일이다. 무릇 기념일이란 나 혼자만 기념해서 되는 날이 아니므로 항상 다른 사람들과 기념의 수준과 내용을 소통해내야 하는데 그 또한 나에겐 어렵고 귀찮은 일이다. 물론 가장 싫은 건 기념 '행사'이다. 설사 그 행사가 뻔한 요식행위를 넘어 감동할 만한 내용으로 모두의 환호 속에 진행된다고 해도 역시 싫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노래 부르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아무리 좋아하던 노래라도 그것을 행사에서, 다른 사람들과 한목소리로 불러야한다면 많이 질색해 하는 편이다. 이야기를 주욱 늘어놓고 보니, 나는 게으름뱅이일 뿐 아니라 아주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다. 하여튼, 그렇단 얘기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 자신의 생일에 대해서도 특별히 기념할 의욕이 없이, 그리고 다른 이들도 내 생일을 네버 마인드해주길 바라며 평생을 살아왔었다. 강력한 추진력과 교섭력을 지닌 룸메이트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던 십여년 전 정도까지는 말이다. 며칠 전,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내 생일파티가 열렸다. 말이 파티지, 나의 예전 룸메이트와 현재 룸메이트가 보쌈집에 나를 보쌈해다 놓고 셋이서 함께 밥 먹은 것이 전부다. 케이크에 촛불도 지폈고 선물증정식도 있었으니 파티가 아주 아닌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물론 해피버스데이투유 노래는 속으로만 불렀다. 나도 그것까지 용납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리 까다로운 나이지만 그래도 그러한 룸메이트들의 마음에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선물이 너무 후해서였냐구? 뭐, 꼭 그래서만은 아니고......

 

 

그들에게 감사한 건 감사한 거고, 여전히 난 내 생일이 그리 달갑지 않다. 그날로 말하자면, 대제국의 수장이 획기적인 정책을 발표하여 자본주의의 수명을 지금까지도 연장시킨 날이고, 제국주의에 맞서던 변방의 한 운동가가 사망한 날이며, 제국들 끼리의 처참한 전쟁에서 한 대도시에 기념비적인 공습이 개시된 날, 반제국주의의 기치를 앞세웠으면서도 주변의 약소국들을 짓밟은 또 하나의 제국에 항거해 민중봉기가 일어났으나 실패해 지금껏 수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떤 나라의 슬픈 기념일, 세계적으로 기려지는 노동계급의 투쟁과 연대의 기념일을 외면하고 지배자들에 의해 기획되어 최근까지 잔존했던 변방 어느 나라의 노동기념일, 그리고 남반부 어느 나라의 늙은 독재자가 무려 7선을 한 날 등등이다. 물론 길고 긴 인류역사상 그날 일어났던 가장 안좋은 일은 나라는 놈이 태어나버린 일일 터이다.

 

 

자, 그래도 그 흉일은 이미 지나갔으므로 다시 기운을 차리고 일단 열심히 살아보는 거다. 내년에 다시 닥쳐올 그날에 대해선 그 때 다시 열심히 우울해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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