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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8/03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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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7/30
    야간비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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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7/30
    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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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7/29
    "학교로"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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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7/28
    육하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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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7/27
    What is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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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07/24
    윤리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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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7/23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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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7/23
    몇 가지 생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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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7/21
    FTA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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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알바가 모두 끝나는 바로 그 순간에 내 블로그에는 3,000번째 손님이 다녀간 것이다... 이런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에다 알바로부터의 해방감까지 더해지면서 내 심장은 불이라도 붙은 듯 쿵쾅거리며 머리카락이나 손톱 끝 모세혈관까지 들뜬 감정을 배달하고, 이럴 때일수록 더욱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다보면 어느새 몸서리쳐지게 배가 고픈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덧) 디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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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야간비행
김애란 | 소설가

상경 후, 처음 방을 구하러 다니던 날의 날씨를 기억한다. 8월이었고, 숨막히게 무덥던 날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비지땀을 흘려가며 낯선 동네를 헤매고 있었다. 서울 물정이라면 둘 다 무지했고, 가진 돈은 터무니없이 적고, 날은 대책없이 덥기만 했던 어느날. 그럴듯한 방을 얻지 못해 소가지를 부리고 있던 나를 길가에 한참 세워두고, 작열하는 도시 한복판에 서 있던 어머니의 얼굴은, 땀과 파운데이션이 뒤범벅된 탓에 진흙처럼 금방 흘러내릴 듯했다. 우리는 너무 지친 나머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집에 들러 얼렁뚱땅 계약을 했다. 이상하리만치 천장이 높은, 깊고 서늘한 방이었다. 다행히 조건이 맞아 어머니는 내게 몇평의 애잔함을 떼어줄 수 있었다.

그날의 기다랗던 정오, 이 땅의 지난하고 유구한 상경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방을 구한 뒤, 머리를 맞대고 함께 팥빙수를 먹었다. 깊은 피로 사이로 투명하게 부딪치던 얼음 소리, 하얗게 질려 있던 여름 하늘.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수도(首都)의 볕은, 누군가를 미워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강렬했고, 어머니는 버스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연신 땀을 훔쳐댔다. 나는 멀어져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래전, 셋방을 스무번도 넘게 옮겼다는 아버지의 일기(日氣)도, 그날의 20세기 태양도, 저렇게 크고 어지러웠을까?’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나는 그날 우리들 머리 위로 떠 있던 크고 둥근 해를, 그 대낮의 따가웠던 서울의 빛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매일 몸을 뉘었던 방은 어둡고 선득한 곳이었다. 작은 문 안으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면, 세로로 놓인 관처럼 깊은 내부가 시원하게 나를 맞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방에 책상과 컴퓨터 등 참으로 학생다운 가재를 들여놓았고, 네모난 가구들이 만들어내는 깔끔한 각을 보며 흡족해했다. 나는 자주 밥을 거르고, 밤을 새우고, 술을 마셨지만, 스무살의 내 몸은 지나치게 건강해 아무 때고 벌떡벌떡 일어나 놀러 나갈 수 있었다. 음악은 잘 듣지 않았고, 책은 늘 엎드려서 읽었다. 빨래를 자주 미뤘고, 어머니에게 가끔 세금을 속였던 것도 같다.

내 몸엔 아직 읽고 쓰는 습관이 배어 있지 않았지만, 이따금 나는 대가리가 커다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써보곤 했다. 시인이신 나의 스승이 좋은 문장이라도 한번 칭찬해주는 날엔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웃었다. 나는 그 작고 불편한 방에 신을 벗고 들어갈 때마다 이상하게 쉬러 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방을 구하던 날 이후 영원히 내 머리 위를 떠나지 않던 태양,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비록 고향을 떠나오긴 했지만 나는 내 몫의 그 작은 어둠과 고요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 몸에 꼭 맞는 그 육면(六面)의 어둠 안에서, 내 가슴팍을 향해 하늘에서 닻처럼 내려온 형광등 줄의 흔들거림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좋아했다. 딸깍이는 스위치 소리 한번에 세계는 일순 조용해졌고, 나는 반듯하게 누워 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지나간 빛을 한껏 빨아 통통해진 야광별들이 천장에서 총총 빛나고 있었다. '중국의 붉은 별'도, 루카치의 별도 아닌, 납작 엎드려 가까스로 빛나던 형광색 스티커들.

그것은 이전 세입자들이 붙여놓은 무수한 별무더기였다. 나는 이사오자마자 그 별을 떼어내려 무척 노력했지만, 대체 어떻게 붙였는지 모를 정도로 그것은 손이 닿지 않았고, 희망처럼, 쓸데없이 접착력만 좋았다. 그것은 언제나 거기 있었기 때문에 보고 싶지 않아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보지 않을 수 없다면, 봐버리자고 생각하며, 꼼짝 않고 누워 야광별을 응시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거기 있는 별들의 수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나만한 크기의 몸을 가졌을 허약한 자취생들, 가진 것 없이 서둘러 몸을 섞었을 젊은 부부들, 월급과 적금, 어디론가 송금할 액수를 헤아리며 이마에 손을 얹고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젊은이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을 갖고 있었을 많은 사람들. 몇년째 책장에 꽂아둔 채 절대 읽지 않은 오디쎄우스는 아직 내게 '떠난다'는 말도 한번 못 붙여보고 있는데, '이 사람들, 언제 이렇게 많이 떠나오고 또 떠나갔던 것일까?'

모처럼 찾아온 고요 속에서, 아늑한 어둠을 방해하는 발광물질을 보며, 나는 퍽 심란해했다. 아무래도 좋을 마음으로 '야광별 따위라니!'라며 투덜거렸던 것도 같다. 그런데도 나의 독립과 사생활의 의미는 어떤 통속성 안에서 저 별빛처럼 자꾸만 초라해지는 듯했다. '당신들의 계급'이 아닌 '우리들의 취향'이라는 말이 입속을 맴돌았고, 이 방이 내 방도 당신의 방도 아닌 우리들의 방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는 그것이 좀 불편했다. 내가 여름을 피해 들어온 곳이, 비지땀을 흘려가며 힘들게 도착한 곳이 결국 비슷한 삶들이 떠나오고 떠나가는, 붙인 별을 보고서야 '아, 밤이구나!'라고 안도할 수 있는 어떤 범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말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방의 크기와 높이를 떠나,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잘도 기어들어오는 그 가짜 빛들과 그 별들의 운동 안에서 나 역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오랜 시간이 지나고, 결국 나는 별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 약하고 조금쯤은 천박하지만 그것들이 항상 빛 가까이에 있으려고 한다는 사실과 함께. 그 빛 역시 내가 알아야 할 빛 중에 하나라고 중얼거리며 말이다. 그곳을 떠난 지 몇해가 지났고, 그 방은 이미 헐려 사라졌지만, 이따금 나는 내 성정의 경박하고 아름다운 어떤 부분, 내가 껴안는 상스러움의 어느 부분들은 그 별들의 영향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토성의 영향 아래 있는 우울한 기질의 학자들처럼, 빛을 흡수한 뒤 천천히 사라지는 야광별빛의 영향을 받으며, 나는 길을 걷고, 물건을 사고, 가끔은 그 대가리가 커다란 모니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전화가 오면 다시 벌떡 일어나 놀러 나갔던 것은 아닐까 하고.

 

[창비주간논평(http://weekly.changbi.com/)에서 퍼왔음. 7월 25일자. 이 글 읽고 소설집도 사서 읽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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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 가장 뛰어난 시인들의 경우에도 첫 시집이 대표 시집이 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적 재능의 성격과 관련되는 것 같다. 수학적 재능이 그렇듯, 시적 재능도 매우 일찍 피어나는 일이 흔하다. 그리고 그런 재능의 극히 일부만이 나이 듦과 더불어 마모하는 일 없이 유지되거나 진화하는 것 같다. 미당은 만년의 다소 흐트러진 듯한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면, 생애 전체를 통해 자신의 시 언어를 한국어의 최정상에 두었던 매우 예외적인 시인이다. 이젠 너무 남용돼 아무런 울림도 주지 못하는 상투적 표현을 다시 끄집어내자면, 미당의 시 언어들은 지난 세기 한국어에 벼락같이 쏟아진 축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미당의 죽음 앞뒤로 문단 안팎을 소란스럽게 한 그의 정치적 몸가짐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미당의 경우를 두고 시와 정치의 관계를 따져보려는 논자들이 쉽게 치이는 덫은 문학과 삶, 또는 문학과 정치를 모순 없이 일관되게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의 유혹이다. 그래서 그의 행적에 비판적인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그의 시적 성취의 허약함을 찾아내려 하고, 그의 문학적 성취에 매혹된 사람은 되도록 그의 행적을 호의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할 상황논리를 구성하려 애쓴다. 이렇게 문학과 삶을 내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오캄의 면도날처럼 매력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명의 깔끔함이 아니라 사실 앞에서의 겸손함이다.

 

그렇다면 사실은 어떤가? 미당의 삶은, 적어도 그의 공적 자아의 행적은, 시시한 것이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젊은 시절 태평양전쟁 시기에 쓴 전쟁선동시든 갑년이 넘어 군사깡패에게 바친 생일 축시든, 그런 문자 행위가 그에게 절박한 신체적 위협과 함께 강요되었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미당은 천연덕스럽게 그런 역겨운 언어들을 자신의 이름으로 활자화했다. 그리고 아무런 뉘우침 없이 '종천순일從天順日'이라는 궤변으로 그 행적들을 얼버무렸다.

 

그가 비슷한 세대의 몇몇 반동적 문인들에 견주어 실제로 누린 것 없이 이름만 더럽혔다는 점을 들어 도리어 그의 순박함을, 그 '시인됨'을 높이 사주자는 견해도 있다. 그가 실제로 누린 것이 대단찮았느냐는 판단은 별도로 하더라도, 그 사실이 그 행위들의 역겨움을 눅여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그의 공적 자아는 시시한 것이었다. <<화사집>>의 서시序詩 격인 <자화상>의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가나 /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같은 대목은 그의 생애 전체를 미리 요약하는 예언의 울림으로 파닥거리지만, 이 구절들의 빛나는 진솔함이 그의 휘어진 생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

 

─ 고종석, <<모국어의 속살>>.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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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저녁만 먹으면 들어와서 몇 시간씩 자고 일어나니, 밤에 잠이 안 와서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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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학교로&quot;에 대한 추억

꽤나 오래된 기억이라 아마도 미화되었을테지만, 학교로 선본이 총학을 잡았었던 처음 두 해는 참 좋았었다. 이른바 태평성대였다. 그러니까, 총학이 무슨 뻘짓을 할 지 조마조마해 할 필요가 없었다.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 아니면서도(정확히는 "아니기 때문에") 총학이라는 것이 충분히 괜찮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었는데, 사람들은 이제 그걸 잊어가고 있다. 아쉬운 일.

 

지금 총학은 "운동권이 싫어요!"를 온 몸을 던져가며 외치고 있다. 그 외침은 눈물나게도 진실되어 보인다. 안쓰럽다.

 

소위 말하는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대립은 이제 아주 거대한 감정싸움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 대립(혹은 투쟁), 갑자기 완전히 멈춘다고, 지구가 두쪽날까? 혹은, 노동자들이 피를 토하고 쓰러질까? 지금보다 사정이 악화될까? 나는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문득, 아주 래디컬한 상식주의가 그리운 시점. 혹은, '아주' '래디컬한' '자유주의'.

 

덧) 지금 총학도 '관악 2만 학우' 운운하더라.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는다더니. 봉준호의 괴물이나 보러 가야겠다.

 

덧2) 자유주의나 개인주의는, 현실에 대한 가장 강력한 치료제이면서도(즉 현실에 가장 필요한 '운동'이면서도), '운동'이 될 수 없는 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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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하원칙

몸은 편하고 마음은 힘든 날.

 

1년 전까지 썼던 글들 중에는 건질 게 없다. 내 감정을 토로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거짓말이었다.

 

어떤 기억들은, 꼭 끄집어내어져야만 한다. 그런데 어떻게? 아마도 기억 속의 사건과 기억 밖에서 직접 대면함으로써. (지금은 기억 속에서만 자꾸 대면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 이게 더 어렵다.

 

점심밥과 저녁밥을 먹는 1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땅 밑에 있었다. 이렇게 웅크리고 앉아서 소설을 읽고 싶다. 누군가 반쯤은 농담투로 권해준 "지하생활자의 수기"라든가. 기왕이면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와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나는 육하원칙의 대부분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도 '산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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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Poetry

What is Poetry

 

 

When we refer to “language”, we should be aware that there are kinds of languages in use, that differ mainly in function. In our everyday lives, we communicate information about the weather, the newly published books, or the best way to get a good score, through the language which is said to be in practical use. Otherwise language persuades us to buy some clothes, to visit our friend's house, or to vote for a candidate. This time, it is in argumentative use. Lastly, there is another use of language that seems to exclusively relate to literature. The language in literary use creates concentrated and organized experience in many works of literature. The language in poetry may be called, as in other kinds of literature, to be in literary use.

 

             As to the poetry, it is experience. When it is said to be experience itself, it is not about experience. Actually, ordinary language is frequently about experience, so the language can have it as its object. The poetic kind of language, however, may not regard to experience as a thing or an object which can be transferred, handled, and analyzed. This kind rather composes, constructs, and synthesizes experience. While ordinary language analyzes experience and puts it under the process of our intellects, poetic language synthesizes it and opens its ways to our senses, emotions, imaginations, as well as intellects, or to something else if later discovered.

 

             As far as the language is “poetic”, here is made the distinction between poetry and other kinds of literature. The poetry is condensed in form when compared to other kinds. When a work of literature narrates something about an experience, it simultaneously hides something as it gives us impression that it provides everything we need to recompose in our mind the reality of the experience. Though, a poem is condensed in that it does not pretend to present everything, so it does not hide anything. It retains the comparatively intact reality in relatively short length and by limited words, which is ironical. But this distinction needs to be understood as a continuum which takes purely poetic language and purely ordinary one as its two extreme ends. They may exist only in our thought, and actual works of literature may be holding their position between the two. In other words, other genres of literature tend to use ordinary language more, but the poetry rarely does.

 

             We may pay more attention on our definition of poetry by considering a brief and famous statement that MacLeish suggested in his poem, “Ars Poetica”: “A poem should not mean / But be.” It seems that the verb “mean” implies, for to mean is to mean something, the existence of the meaning or the content of the poem, so experience is contained in the poem and may be, when readers read it, transferred to them as a thing, a bundle of words, independent of the poem itself. The verb “be”, on the other hand, shows that there is no other thing which is on a different level than the poem. A poem is something itself. So, a poem should not express out of itself something like content, reality, or experience, but should be experience itself.

 

             If a poem is divided into two parts—the poem itself, and the thing it expresses—, the latter is said to be transferred to a reader through the medium of language. As the very part of the reality can be carried through the language, the poem cannot help but distort the reality, or the experience. If a poem is, however, not divided, there is nothing conveyed to a reader. What is given to the reader is the poem itself, and s/he may only participate in it. As we read a poem, we participate in an event and experience it, constructing it with our other prior experiences. We participate in the being of the poem.

 

             Experience, as far as we consider it as the meaning contained in a poem, is presented through the medium of language that, to some degree, necessarily reduces and distorts the reality. If we strive to catch what the poem really means, there is always something leaking and we are sure to misunderstand or partly understand it. To experience is somewhat different. Its concern is the reality before it is articulated by language. When reading a poem, we should not try to turn the whole thing into some language-concerns, but rather make it our own experience which is not articulated and interpreted. What is the most difficult is that we should do it with language. So, poetry is a struggle to grasp the reality itself through the language that never touches it without distorting it. The struggle may not come to an end.

 

 

[영미시강독 수업에서 레포트로 제출했던 것을 아주 약간 손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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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보다는

윤리보다는 알바가 문제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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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무엇을 하라'고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윤리학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점점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질문이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면, 답은 좀 더 쉽게 '가능하지 않다'가 될 수 있겠다. '이렇게 하면 좋지 않습니다', '올바르지 않아요', '이렇게 하지 마세요'와 같은 비판/충고/불평을 듣고서, 대안이나 해결책은 당사자가 직접 찾으면 된다. 그런 과정에서 물론 일종의 매뉴얼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상황-의존적일 것이므로 '강령'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이런 게 억압이라고? 부정이라고? 초자아? 법?

 

그렇다면 원하는 게 무엇인가? 자유?

 

자유가 아니라 도대체 윤리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지금 여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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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생각

아래의 글은 최근 보건의료노조와 한 대학 총학생회 사이에 있었던 사건에 관한 것으로서, 현장에 있었던 총학생회장(직무대행)이 작성한 글이다. 우선, 이 글에는 "이상이 사실관계"라고 되어 있으나, 여러 가지 정황상 왜곡이나 오류, 누락 등이 있을 수 있고, 실제로 현장에 있었던 몇몇 사람들이 상황에 대한 다른 의견을 내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이 글을 기초로 몇 가지를 확인해 두고 싶어서 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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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대학교 학생여러분
총학생회장(직대) ㅇㅇㅇ 입니다.
새벽에 있었던 사건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1. 기숙사에 계시는 분들이 총학홈페이지, ㅇㅇㅇㅇㅇ 등에 제기한
소음에 대한 항의글과 총학 집행부 핸드폰으로 들어오는
"소음 항의"를 해결하기 위하여
저와 ㅇㅇㅇ 미디어국장은 집회의 장소인 노천강당으로 갔습니다.

 

[얼마나 많은 기숙사생들이 항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단지 노천강당을 빌려 쓰는 게 아니꼽거나 꼴보기 싫어서 의도적으로(적극적으로) 노조원들을 몰아내고자 이런 불평을 쏟아냈을 것 같지는 않다. 그 항의는 복잡한 상황 파악을 기피하는 일반 사생들의 중의라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소음 항의를 해결하기 위하여" 총학생회장과 미디어국장은 어떤 준비를 하고 가야 했을까? 즉, 어떻게 해야만 그 항의를 '해결하는 것'이 되었을까?

 

이미 진행되고 있는 행사를 완전히 중단시킬 작정이 아니었다면, (행사를 하는 것 자체가 아니꼬운 게 아니라 다만 시끄러웠을 뿐이었으므로) 어느 정도까지 행사에서 발생하는 소리의 볼륨을 줄여야 할 지는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 준비나 합의가 되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이 상황에서는 필연적으로 다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즉, 그냥 "줄여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줄이고자 하는 측에서는 상대편이 줄인 것보다 더 줄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고, 행사를 주관한 측에서는 상대편이 줄이라는 것보다는 조금 덜 줄이고 싶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객관적으로 얼마나 줄였는가 하는 것은 절대로 논쟁이 될 수 없다. 처음에 '시끄럽다'고 한 사생들에게 물어보았어야 하는 것.]


2. 보건의료노조 "ㅇㅇㅇ 단장"을 찾았으나 자리에 안 계셔서
우선 사운드를 총괄하는 무대 옆 콘솔 쪽으로 갔습니다.

3. 여기서도 단장을 찾았으나 안계시고, 책임자를 자처하시는 분이
계셔서 "ㅇㅇ대학교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잠을 못 이루고 있으니
볼륨을 줄여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4. 우선, 지금 진행 중인 한 곡만 끝나고 볼륨을 줄여주신다고 하여
한곡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오히려 의외인데, 바로 여기에서 주먹이 안 날아간 것만 해도 다행이다. 나는 솔직히 이 아저씨들이 몹시 무섭다.]

5. 한곡이 끝나자 소량의 볼륨을 줄이셨습니다.
그래서 현재 크기의 절반으로 줄여달라고 요청 드렸습니다.
역시 또 소량을 줄이시기에 다시 줄여달라고 요청 드렸습니다.
그러자 지금 진행중인 한 곡 끝난 후에 줄이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사실 관계에 대한 논쟁이 있는 모양이지만, '얼마나 줄였나'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양 측에서 모두 소리의 크기에 대해서는 자의적으로 파악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만 증명할 따름. 차라리 사생에게 물어보았어야 했다. 전화 연락 등의 방법을 사용해서.

 

요컨대, 음량을 줄여달라고 요구하는 측에서 계속해서 음량을 줄여달라고 할 경우, 그건 행사 주최측에 대한 도발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계속 줄여달라고 하다가 어느 선에서 물론 그들은 만족하겠지만, 그렇게 볼륨을 줄인 측의 입장에서 볼 때는 완전히 농락당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요구하는 측이 완전히 자의적으로 음량을 판단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으므로). 따라서 정확한 기준을 제시했어야 했다.]


6. 이러한 언쟁이 계속되는 도중에 총학 미디어 국장이
콘솔의 볼륨을 내렸습니다.

 

[이것 역시 도발적 행동인데, 딱히 할 말은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사람들이 자존심이 센지, 오만한지, 혹은 자신의 판단만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7. 이에 운용자는 바로 볼륨을 올렸고, 운용하시는 분 왼쪽에 계시는 분이
ㅇㅇㅇ씨의 멱살을 잡고 오른쪽에 계신분이 주먹으로 ㅇㅇㅇ씨 얼굴을
가격하였습니다.

 

[아무리 정상 참작을 하고 사실 관계에서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역시 이 부분(과 여기를 포함하여 아래에 계속되는 폭행에 대한 기술 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큰 짜증과 분노와 두려움을 느꼈다고 할 수 있겠다.

 

1) 싫다. (실현 불가능한 상상이라는 걸 잘 의식하고 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만) 손을 잘라버리고 싶다. 어찌 그리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지. 아니, 아무리 자기 감정이 상했기로서니 거기서 손찌검을 하는 식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발동하는지. 정말 유치원(혹은 유치장)에 다시 가라고 말하고 싶다.

 

2) 무식하다. 어쨌든 그 사람은 일을 다 그르쳤다. 바보. (일이라는 게 얼마나 의미있는지도 모르겠지만)]


8. ㅇㅇㅇ씨는 뒤로 넘어지고, 노조분들 수십명이 달려들었습니다.
저는 노조원들과 ㅇㅇㅇ씨를 분리시키려고 막고있는 중에
ㅇㅇㅇ씨가 일어나면서 노조원들에게 몸부림을 치고, 신발을
던지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사실 관계에서 문제가 있다는 의견들이 있다. 그러나 ㅇㅇㅇ씨가 무술인이 아닌 이상 여러 '노조원'들을 상대로 대단한 무공을 펼쳐 폭행을 가했을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ㅇㅇㅇ씨가 아무리 그 상황에서 싸가지없게 보였다 한들(분명히 그랬을테지만) 어쨌든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보는 편이 좀 더 적절할 것 같다. 아래에서 좀 더 확실해진다.]

9. 이어 노조원들이 ㅇㅇㅇ씨를 넘어뜨려 수십명의 노조원들이
ㅇㅇㅇ씨를 발로 밟는 등의 구타를 행하였습니다.
(노조원 한 분과 ㅇㅇㅇ씨가 싸웠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수십명으로 부터 구타 당한 것입니다.)

 

[이런 데에서.]


10. 어느정도 간부급의 사람3~4명이 오자, 수십명의 노조원들이
저와 ㅇㅇㅇ씨 머리채를 휘어잡고 천막쪽으로 끌고 갔습니다.

 

[여기에서도.]


11. 저와 ㅇㅇㅇ씨는 천막에서는 따귀를 5~6 차례 불특정 다수로 부터
맞았습니다. 머리채를 휘어잡힌채로 고개 숙이기를 강요받고
뒤통수를 4~5차례 타격 당하였습니다.

 

[정말 혐오스럽다. 이게 정확한 사실이라면, 소위 운동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니는 인간들의 일부가 (아마도 일상적/가능적으로)하는 짓거리가 무엇인지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부를 마치 썩은 살처럼 도려내지 않는다면, 운동의 구호도 공허할 뿐이다. 나는 이런 인간이 내뱉은 구호 따위는 조금도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바로 앞 문장은 분명히 오버한 것이지만, 일단 그대로 둔다)]

12. 총학이 노동자들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이게 무슨 행패냐고 하시면서
사과를 강요하셨습니다.
우선 먼저 볼륨을 내린 행동은 무례했다고 사과드렸습니다.

 

[모든 것은 여기에 기인하는 것 같다. 당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팩트에서 출발하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 살고 싶다. 사생들 잠은 못 재울 망정...]

13. 돌아가려고 하자 강제로 잡혔습니다. 계속해서 머리 숙이기를 강요 받으며
ㅇㅇㅇ씨의 핸드폰을 뺏고, 갖은 욕설을 퍼붓는 등의 강압적인 행동이 계속되었습니다.

14. 노조 규찰대원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우리끼리 해결하겠다" 면서
옆에 계시던 청원경찰 분들을 막았습니다.

15. 노조 규찰대원들은 일단 단대 학생회에 연락해서 해결하겠다면서
전화를 하자 농대회장, 농대 부회장, 법대 회장, 사범대 부회장 등이
와서 저와 ㅇㅇㅇ씨를 관망하였습니다.

16. 노조원들은 강압적인 행동으로 사과를 강요하였고, ㅇㅇㅇ씨가
먼저 폭행을 일으킨 것처럼 진술하도록 강요하셨습니다.
(ㅇㅇㅇ씨가 볼륨을 먼저 내린 것은 사실이지만, 폭행은
노조원들이 일방적으로 퍼 부은 것이었고, ㅇㅇㅇ씨는
이를 막기위한 몸부림 과정에서 신발을 던지는 등의 행동을 한 것입니다.)

17. ㅇㅇㅇ 집회 단장이 와서 학생처 주임선생님과 농대, 법대 회장이 있는 가운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에 사과를 하셨고, 저는 ㅇㅇㅇ씨가
볼륨을 내린 무례한 행동에 대하여 사과드렸습니다.

18. 청원경찰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ㅇㅇㅇ씨는 진찰을 받고
입원을 해야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고, 입원 수속을 밟았습니다.

19. 어두운 곳에서는 못 봤지만, 이두희씨의 옷은 군데군데 찢겨져 있었으며,
온몸이 피와 상처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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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사실관계 입니다.
노조 간부들과 여러 단대회장/부회장들은 대책회의를 하여
입장을 맞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 곳이 몸도 아프고, 정신도 혼미하여
입장이나, 향후 대책 부분에 대해서는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학생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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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내 입장인 바, 여기에 제기된 내용이 의심의 여지없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나는 내가 여기에 덧붙인 나의 의견을 수정할 생각이 없다. 이런 식의 지긋지긋한 정치는 제발 그만두라고, 제발 끝장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시위대의 폭력과 전경의 폭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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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를 말한다.



 

 

원래는 위에 저기(미디어다음)에 게시되었었겠지만, 나는 balmas님의 알라딘 서재에서 퍼왔다. 예전에 '강풀 만화' 재밌게 봤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 이런 목소리를 낸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는 왠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느낌(감동)을 받았었다. 그 때는 5월을 맞아서 광주 이야기를 해 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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