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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심에 대하여

노동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심에 대하여 라는 글이 진보 종교홈피인 "뉴스앤 조이"라는 곳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나도 기독교인으로서 노동조합활동을 하는사람으로서 기독교인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이 아쉬웠던적이 많았다.

이글을 쓴 하종강소장은 특히 현장에서 일어난 사례로 눈앞의 상황을 비유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잔잔한 그의 말에도 확 - 쏠려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가장 바쁜 연설로 전국을 돌며 강의하는 시간이 빽빽하다. 

 

여기에서도 포스코건설노동자의 비유를 노동자와 기독교라는 주제로 성경의 출애굽기와 연관지어 설명하면서 환갑을 넘었거나 그에 가까울 정도로 나이가 많은 건설 노동자 들이 포항에 있는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는 행위를 자신이 산재 환자들에게 가서 느낀점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애굽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이 섬기던 그 신이 바로 지금 기독교들이 섬기는 신이라는것, 기독교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기독교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성경적인 일이라는것, 노동문제에 관한 매우 친자본입장을 대변하는 일간지에 대한 "이런 언론, 세계 어디에 또 있는지 대 보라’고 말하고 싶다" 라는 그의 분노, 

고대의 노예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주인인 귀족들에게 창을 들이대는 '불법 행위'를 했지만 결국 그러한 노력이 노예 제도의 철폐라는 역사의 진전을 이뤄냈다는 식의 시원한 풀이까지 우리의 막힌속을 시원스레 뚫어준다.

 

아래 하소장님의 원문을 읽어보시길...



노동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심에 대하여

 

내가 지금까지 26년 동안 해 온 일을 '노동운동'이라고 딱히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노동문제와 관련된 일 외에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가끔 언론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노동운동가'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직함으로 소개되는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고 있다. 교회에서는 '집사'이다. 가끔 가족들과 함께 기도 제목을 정해 놓고 금식 기도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참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노동 문제'와 '기독교'는 선뜻 서로 잘 연결되지 않는 단어처럼 생각한다.

 

노동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심에 대하여

그러나 기독교처럼 '일하는 사람' 즉 노동자들에 대해 관심이 많은 종교도 없다. 신·구약 66권의 성경들 중에서 제1권은 '창세기'다. 그런데 성경은 맨 앞에 있는 창세기부터 순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 맨 처음에 기록된 성경은 '출애굽기'다. 이집트 사람들 밑에서 시민권도 없이 죽어라고 일만 하던 히브리 노예들이 견디다 못해 노예 해방 전쟁을 벌인다. '모세'라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 홍해를 건너 탈출하면서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보는 ‘성경’의 시작이다. '출애굽기'란 글자 그대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창세기'는 그 뒤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야훼'는 노예들이 섬기는 신이었다. 기독교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주는 일을 당연히 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열심히 노동하면서도 현실 속에서는 행복하게 살 수 없는 피압박자들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와야 한다. 기독교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기독교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성서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는 일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우선 노동 문제를 기독교인으로서 올바르게 바라볼 능력이 결여됐을 거라는 겸손한 태도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

 

겪어본 사람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에 대하여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병든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나에게 매주 금요일마다 산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해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했다. 노동 상담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보다 더 큰 영광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이제 와서 고백하건데, 매번의 모임마다 하나라도 더 배운 사람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모임 첫날, 구로시장 허름한 건물 지하에 있는 그 단체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얼마나 습기가 차고 눅눅하던지 바닥에 깔린 비닐 장판은 물기로 미끈거렸다. 복사 용지에 출력해 가져간 교육 자료는 몇 분 만에 습기를 먹고 눅눅해져서 종잇장이 축축 늘어졌다. 그런 곳에서 팔이 잘리고, 허리를 다치고, 화상 입은 노동자들이 열 명쯤 모여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사무실 구석에 앉아 강의 준비를 마저 하고 있는데, 사무실 한 쪽이 갑자기 소란해졌다. 회원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는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크게 나무라기 시작했다.

"야, 인마. 너는 잘 된 거야! 팔 하나 잘리고 4000만 원 받았잖아! 네가 앞으로 평생 동안 노동자로 살면서 돈 모으면 현찰로 4000만 원 모을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잘 된 거라니까. 팔 하나 잘리고 4000만 원 받았잖아! 행복한 줄 알고 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야."

돌아보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팔이 없다.

"나는 팔 잘리고 나서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보상금 한 푼도 못 받았어! 너는 4000만 원이나 받았잖아! 너는 네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지?"

산재 사고로 팔을 잘린 뒤 4000만 원을 보상금으로 받고 절망에 빠져있는 노동자에게 그것보다 더 큰 위로는 없었을 것이다. 만일 그날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말한 사람이 나였다면, 아마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났을지도 모른다. 팔 다리가 모두 멀쩡한 내가, 팔 하나를 잘린 후 4000만 원의 보상금을 받고 절망에 빠져있는 노동자에게 그렇게 말할 자격은 없다. '아, 위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큰 고통을 당해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그날 이후 나는 감히 노동자를 위로하겠다는 건방진 생각을 버렸다. 산업 재해를 당한 노동자들과의 모임 이름도 둘째 날부터는 '교육'이라는 주제넘은 단어를 버리고 '간담회'로 바꿨다. 노동자들은 간담회를 마치고 밤늦게 돌아가는 내 머리 뒤에 대고 "바쁜 시간 뺏어서 미안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는데,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섭섭하게 들렸다. 그것은 그 사람들과 나를 철저하게 구별하겠다는 뜻이니까…. 그 노동자들이 성치 않은 몸으로 다른 산재 노동자들을 위해서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은 당연하고,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특별히 미안한 일이라는 뜻이 그 말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직접 일을 겪어본 사람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그토록 크다. 산 것과 죽은 것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예수님이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성육신'의 이유를 나는 그렇게 깨달았다.

이미 환갑을 넘었거나 그에 가까울 정도로 나이가 많은 건설 노동자 2000여 명이 포항에 있는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는 '불법 행위'를 아흐레 동안이나 했다. 그들 중에는 나이가 74세나 된 노동자도 있었고 평균 연령은 54세나 되었다. 이들은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할 때부터 그곳에 들어와 수십 년 동안 일하면서 "우리가 이 도시를 건설하고 공장들을 세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인생의 막바지에 놓여있는 현실은 건설 노동자로 평생을 살아온 것에 대해 일말의 자부심도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언론과 시민들은 건설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계약 관계가 없는 포스코 사무실을 점거했다는 불법 행위를 탓하기에 앞서 이들이 처한 현실에 먼저 주목했어야 했다. 죽음을 각오한 과격한 투쟁 방식은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선택이다. 강한 조직은 굳이 과격한 투쟁을 할 필요가 없다. 건설 노동자들의 투쟁 방식이 지나치게 과격한 불법 행위라고 탓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이 그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하여

대학생들에게 강연을 끝내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털모자를 썩 어울리게 쓴 학생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저는 네덜란드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고 이번에 한국의 대학에 입학한 학생인데요. 며칠 전에 철도노조가 파업을 할 때, 텔레비전 뉴스에서 시민들의 인터뷰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모두들 한결같이 자기가 불편하다는 것만 이야기하는지···. 파업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이 왜 한 명도 없는지, 참 이상했습니다."

그 학생이 살던 사회에서는 파업이 발생하면 "노동조합의 이러저러한 요구 사항은 타당한 내용이니 정부와 기업은 빨리 받아들여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적지 않게 보았을 테니 깜짝 놀란 것도 당연하다. 굳이 '톨레랑스'를 들이대며 비교하지 않더라도 우리처럼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그것이 합법적 파업이든 불법적 파업이든 짙은 혐오감으로 무장한 사회는 별로 없다.

건설 노동자들의 포스코 점거 사건에서도 언론은 대체로 포스코의 기계 설비 건설이 중단되면서 하루 100억여 원씩 손실이 발생하고 대외 신임도가 하락하는 등 그 경제적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점과 파업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강조했다. 사설의 제목들만 얼핏 봐도 알 수 있다.

'경찰에 가스불 뿜고 끓는 물 퍼붓는 노조'<세계일보>, '노조, 탈법 폭력 투쟁으로 얻을 게 없다'<국민일보>, '7일째 포철 불법 점거, 공권력은 어디 갔나'<중앙일보>, '이런 노조, 세계 어디에 또 있는지 대 보라'<동아일보>, '노조, 포항에선 불법 示威, 울산에선 배부른 투정'<조선일보>, '시민들도 항의하는 포스코 점거농성'<한국일보> 등이었고 <한겨레>가 '건설노동자 사태, 포스코가 중재력 발휘해야'라는 제목으로 그나마 간신히 체면을 유지했다. 동아일보의 사설 제목을 빗대자면 ‘이런 언론, 세계 어디에 또 있는지 대 보라’고 말하고 싶다.

언론의 이러한 보도 양태는 우리 제도 언론의 수구·보수적 성격에 포스코의 주도면밀한 개입이 맞아 떨어진 결과다. 포항건설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포스코가 관계 기관 회의를 통해 이미 지역 언론에 실어야 할 기사 목록과 작성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했으며 실제로 같은 내용과 제목으로 기사화 됐다지 않은가. 이러한 언론 속에서 우리는 수십 년을 살았다. 건설 노동자들의 포스코 점거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각이 이러한 언론으로부터 전형 영향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불법 행위'라는 잣대에 대하여

정규직 노동자들이 번듯한 복지 시설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을 때 건설 노동자들은 식당이 없어 비가 오면 빗물에 점심을 말아 먹고, 탈의실이 없어 건물 모퉁이나 차 뒤에서 작업복을 갈아입고, 휴식 시간에는 신문지 한 장으로 땡볕을 가린 채 쉬면서 일해야 했다. 그렇게 '자식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환경'에서 일하던 건설 노동자들에게 일부 사업장에서 최소한의 시설이라도 마련해 주기 시작한 것은 건설 플랜트 노동자들이 '남의 회사'에 '불법 침입'을 해서 목숨을 건 고공 농성을 며칠씩이나 한 뒤부터이다. 그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이들의 처지는 아직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건설 노동자들 대부분은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은 언제나 이렇게 '불법 행위'로부터 시작되었다. 평화적인 파업을 300일 넘게 벌이고 있는 '한국시멘트노동조합'은 노조가 해산될 지경에 이르렀지만 이렇다 할 불법 행위를 하지 못해 아직도 언론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하고 있다.

1600명의 교사들이 '불법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해직 당하지 않았다면 전교조는 아직까지 합법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400명의 공무원들이 '불법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파면, 해임 당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공무원노조는 아직까지도 합법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전교조나 공무원노조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죄송하게도 그러한 바람은 역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앞으로 경찰이나 판사들이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이는 '불법 행위' 역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선진국 경찰노조나 판사노조가 걸었던 길을 우리는 수십 년 세월이 지난 뒤에 따르는 것뿐이지만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것이 '역사의 순리'다. 은행 지점장들의 노조와 의사들의 노조가 우리 사회에도 벌써 설립되지 않았는가?

기독교 역사에서도 그런 일은 숱하게 있었다. 히브리 노예들이 해방되는 과정 속에서 이집트 가정의 장자들을 죽이고 우물물을 독약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죽게 만든 것 역시 당시 지배 계급의 시각으로 볼 때는 명백한 '불법 행위'였다.

건설 노동자들은 포스코를 점령한 '불법 행위' 때문에 형사적 처벌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불법 행위'는 다단계 하청이라는 건설 현장의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고 하청 회사 노동자들의 단체교섭 요구에 원청 회사도 응할 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판결과 법 제도를 마련하게 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와 같은 일을 일찍이 겪어서 하청 회사 노동자들의 단체교섭 요구에 원청 회사가 당연히 응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건설 노동자들의 불법 행위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불법 행위'를 시작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하나씩 확보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던 과거의 역사를 한번쯤 뒤돌아 볼 필요도 있다. 고대의 노예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주인인 귀족들에게 창을 들이대는 '불법 행위'를 했지만 결국 그러한 노력이 노예 제도의 철폐라는 역사의 진전을 이뤄내지 않았는가?

 

하종강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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