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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7/08
    [18호] 한미 FTA는 여성에게도 커다란 문제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2. 2006/07/08
    [17호] 여성노동자 활용하여 비정규직 확산 정당화하는 비정규직 종합대책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3. 2005/10/14
    10월 17일 세계 빈곤철폐의 날, 여성들은 연대한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4. 2005/04/25
    성매매방지법 시행 6개월. 그러나 여전한 성매매여성들의 죽음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18호] 한미 FTA는 여성에게도 커다란 문제다!

 

정지영 | 정책편집부장

 

한미 FTA 1차 협상이 끝났다. 김종훈 한미 FTA 한국 측 수석대표는 1차 협상이 양측의 기본 입장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쟁점이 되는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합의도 없었고 이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심각한 왜곡이다. 게다가 언론은 마치 쟁점이 되는 문제에서 한국 측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한국경제와 한국 전체의 이익이 달린 일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이 또한 거짓이다. 1차 협정에서 확인된 한미 FTA의 의제는 상품무역, 원산지/통관, 투자, 서비스, 금융서비스, 통신/전자상거래, 경쟁, 지적재산권, 노동, 환경, 총칙/분쟁해결, 농업, 위생검역, 섬유, 무역구제 등 총 15개 분과로 정리되었다. 이중 총 11개 분과에서 통합협정문이 제출되었고, 농업, 위생검역, 섬유, 무역구제 4개 분과에서는 이견이 커 통합협정문을 구성하지 못했다. 통합협정문을 제출한 분과에서도 쟁점별로 입장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이견에서 한국 측의 요구가 한국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애초에 한미 FTA 자체가 초민족 자본의 이해를 극대화하겠다는 신성불가침의 합의였다. 한미 양국이 협상 전부터 굳건히 합의하고 있던 사항은 모든 것에 우선해 투자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이고, 이견이 존재하는 분야도 한국 협상단의 요구는 민중의 이해보다는 그 산업의 이해가 더 우선시 된다. 제 아무리 언론이 한국 협상단에게 ‘국익’을 최대화하는 협상을 주문하고 협상단이 ‘국익’을 위한 협상안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한미 FTA가 노동자민중의 엄청난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명확한 것은 한미 FTA를 둘러싼 진정한 쟁점은 ‘한국이 더욱 잘 살 수 있을 것이냐’가 아니고 ‘초민족 자본의 이해와 이를 대변하는 지배세력의 전망으로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삶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혀야 하느냐’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수많은 민중들이 삶의 터전을 박탈당하고, 처참한 빈곤을 경험하며, 엄청난 노동착취에 시달린다. 나라 자체가 유지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는 지역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가장 큰 고통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도 점차 명확해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이런 파괴적 효과를 보완하고자 IMF와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은 ‘인간적인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면서 빈곤 친화적인 정책이나 여성들을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는다. APEC과 같은 경제협력을 논의하는 기구에 여성의제가 포함되고, 세계은행이 여성들의 참여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는 것도 이 일환이다. 하지만 무역, 투자, 금융의 자유화를 기본 목적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은 여성 참여와 같은 포괄적인 의제나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을 직접적인 의제로 상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 협정들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한 전반적인 틀을 변화시키는 것에 무관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글로벌 스탠더드’는 한미 FTA에서 직접 다뤄지는 내용은 아니지만, 여러 분과의 기본적인 전제로 인식되고 지배세력 또한 한미 FTA로 인한 글로벌 스탠더드 확산이 한국 경제의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미 FTA가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여성에 대한 통합, 여성인력의 활용과 무관하지는 않다.

 

따라서 한미 FTA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여성’이라는 이슈로 가시화되거나 구체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속에서 여성들의 입장은 산업별, 부문별, 협정 내용별로 달라질 수 있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3월 한국 여성경제인연합회 조찬 강연에서 미국의 노동시장이 획득한 다양성을 통해 미국의 여성들이 얻은 혜택들을 구구절절 설명한 후 “FTA로 인한 시장 개방과 경제정책 개혁이 촉진됨에 따라 기업관행의 투명성이 증진될 것이고 이는 양국 경제 전반과 특히 양국 여성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라 말했다. 1970년대 이래 미국의 경제적 지위 하락에 대한 대응으로 진행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의 세계화는 미국에서 탈산업화, 서비스 부문의 급격한 팽창, 자본의 금융적 팽창을 포함했는데, 이런 전환은 모두 여성 고용이 팽창되는 과정을 수반했다. 이런 과정은 여성들의 고용 확대를 가장 주요한 목표로 사고했던 미국의 여성운동과 맞물렸다. 동일임금, 훈련과 승진에 대한 접근권, 성희롱에 대한 강한 대처, 적극적 조치, 동등가치 캠페인 등 미국 여성운동가들은 작업장 내 평등과 여성에 대한 모든 직종의 개방을 위해 싸웠다. 이런 운동의 결과는 의료, 법률, 건축, 학술과 같은 전문직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더불어 많은 여성들이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도 되었다. 사실 버시바우가 강조한 미국 노동시장의 다양성은 이런 여성들의 성공에 빚진 바가 크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널리 선전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미국식의 자유화, 작업장 내 평등을 담보할 노동시장 기준이 여성에게 기회일 수 있다는 기대를 자극한다. 한국에서도 한미 FTA가 여성들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기대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미국 여성운동이 거뒀다는 이런 성공이 무엇을 대가로 했는가는 그 후광에 가려 은폐되고 오히려 세계화를 보완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 커다란 문제다.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에게 양가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세계화 하에서 자본의 전략이 여성에 대한 이중착취를 강화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한미 FTA가 여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윤율의 하락으로 위기에 처한 초민족자본이 1970년대 취한 전략 중 하나는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을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제3세계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노린 값싼 노동력의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이 여성노동자들은 강도 높은 노동착취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국가의 발전에 복무했다. 한국은 분단과 대(對)사회주의권 쇼케이스라는 독특한 지위를 통해 미국 시장을 보장받았고, 섬유, 전자와 같은 산업에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제3세계로 이전한 많은 공장들과 경쟁하면서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었고, 미국의 역개방 정책 하에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한국에서 단 한 번도 가족임금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현실화된 적은 없었고, 몇몇 성장을 주도하는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제한된 혜택이었다. 따라서 대다수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비공식 부문을 통해 가계의 소득을 벌충해야 했지만, 이들의 노동은 은폐된 채 ‘주부’라는 이름을 얻었다. 가정에서 가사의 일차적인 책임자라는 지위는 이들의 노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더욱 극적으로 들어났다. 맞벌이부부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직장을 가졌던 사무직 여성노동자들은 해고 일순위가 되었으며, 악화된 경제상황은 가계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여성들의 재생산노동을 더욱 착취하게 했다. 경제위기 속에서 줄어든 가계 소득을 벌충하기 위해 여성들은 비정규직 노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했고, ‘노동의 여성화’라는 말처럼 유연한 노동을 확산시키는 데 여성의 노동이 바탕이 되기까지 한다.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월급에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하면서도 아이의 교육비와 가계의 소득을 담당하기 위해 그만둘 수 없었던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한국 지배세력이 채택한 재벌 중심의 성장과 세계화, 그리고 적극적인 개방과 자유화 정책을 통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통합이라는 전략은 농업을 포기하는 정책을 수반한다. 이 속에서 여성 농민들은 재생산 노동과 농업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에 더해 부족한 농가 소득을 메우기 위해 식당이나 인근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성매매에 나서기도 하는 삼중의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여성 인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하면서 여성을 신자유주의 정책에 더욱 통합시키려 한다. ‘직장과 가사의 양립’이라는 정부의 여성정책 기조와 최근 주요하게 논의되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이중부담에 내몰린 여성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이로 인해 유연한 여성노동력의 활용이 여의치 않고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늘어가자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 바로 이런 정책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가족 내에서 일차적인 가사 담당자라는 여성의 지위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보육이나 노인 부양의 부담을 정부의 지원을 통해 시장화하는 방식으로 사회화하면서 이런 보육이나 돌봄 노동을 다시 여성들이 취업할 수 있는 저임금의 유연한 일자리로 둔갑시키면서 악순환을 지속시킨다. 이는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출혈판매를 지속하기 위해 다른 여성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정책이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는 전제 하에 좀 더 여성친화적일 부분을 지적하며 이 정책을 환영하는 여성단체들의 모습은 신자유주의가 여성의 불만과 현실을 관리하고 여성을 통합시켜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 FTA는 이런 여성의 현실을 한 치도 개선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한미 FTA는 장기화된 한국 경제의 불황 하에서 위기에 처한 한국이 재벌 중심의 자본과 지배세력이 택한 길이다.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라는 용어를 사회화시키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편입하기 위한 시도를 본격화했지만 재벌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는 결국 외환위기라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후 등장한 김대중 정권은 IMF 구조조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더욱 깊숙이 편입했다. 한국의 지배세력이 택한 이런 전략이 대다수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이해와는 날카롭게 대치된다는 사실은 여러 현상을 통해서 이미 드러났다. 한미 FTA는 세계화를 한 단계 구체화시키는 것인데, 이는 재벌과 지배세력이 대다수 민중을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살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미다. 하기에 대다수 여성들이 한미 FTA 체결 이후 겪게 되는 현실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장에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들도 크다. 예를 들어 한미 FTA를 통해 농업이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데, 이미 이중 삼중의 부담에 내몰린 여성 농민의 경우 삶의 극단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 등의 공공서비스의 개방과 시장화는 가족 내 재생산 노동에 대한 여성의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다. 여성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 청소, 가사도우미, 간병, 전화 교환원 등의 기업 및 개인 서비스 직종에서의 경쟁도 심화될 것이고, 이는 여성들을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과 엄청난 노동 강도, 저임금을 통한 착취로 내몰 것이다. 이런 직접적인 피해가 전부는 아니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이 여성을 유연한 저임금 노동력으로 착취하고 재생산 노동의 부담도 가중시키는 이중적으로 활용하는 것인 한, 그리고 한미 FTA가 이런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한층 더 구체화시키는 지배세력의 전략인 한 여성들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미 FTA는 여성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최근 많은 여성단체들이 한명숙 총리 지명을 촉구, 지지했으며, 국회에서 비준되자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한명숙 총리가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매진할 것을, 보육 등 돌봄 노동의 사회화를 통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정책을 펼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한미 FTA를 나서서 추진하는 여당의 총리에게 이런 기대를 하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가? 한미 FTA는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 여성의 재생산노동 문제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며 노동자 민중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살 길을 모색하겠다는 지배세력의 적극적인 의지다. 따라서 한미 FTA는 정부의 저출산 고령화 정책이나 여성인력활용방안에 대한 비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고, 여성들이 벌여내고자 하는 한미 FTA 반대 투쟁에는 이런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결합되어야 한다. 여성이 당당히 누려야 할 출산을 비롯한 재생산에 대한 권리조차 국가의 인구정책과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의 일환으로 통합하면서 여성에게 출산의 의무만을 지우는 현실, 여성이 부담하는 이중의 부담을 다른 여성의 저임금 노동을 통해 덜어내도록 강요하면서도 여성을 위한 것이라 포장하는 현실은 현재 한미 FTA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미 FTA가 세계의 민중들을 착취하고 삶을 박탈하면서도 초민족자본의 이윤과 살 길을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투쟁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여성들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이번 한미 FTA 저지 투쟁을 계기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서 노동권, 여성권, 식량주권, 건강권, 교육권과 같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여성운동의 과제와 방향을 모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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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여성노동자 활용하여 비정규직 확산 정당화하는 비정규직 종합대책

문설희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부는 지금 비정규직 법안 통과 이후의 후속대책 논의 중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는 지난 4월 당정 협의를 통해 비정규직 법안 통과 이후 후속 대책을 논의확정하였다. 우선 6월까지 <비정규직 종합대책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8월까지 하위법령을 마무리하는 한편, 7월까지 비정규직 차별 판정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련법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공공부문이 선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법의 재개정에 따른 공공부문 대책을 올해 연말까지 마련하여 시행하기로 하였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직업훈련계좌제 도입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원>
정부는 우리나라의 경우,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제한적이어서 함정(trap)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직업훈련 강화를 통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가교(bridge)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내세우는 방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직업훈련계좌제’.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 1인당 연간 100만원 한도에서 훈련비용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질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도 추진의 이유이다. 그래서 생활형편이 어려워 직업훈련을 받기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직업훈련 기간 생활비 대부제’도 2008년부터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등 사회안전망 강화>
비정규직이 저임금 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을 고려해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간 5인 미만 기업에서는 적용되지 않던 근로기준법을 시행령을 개정하는 방식을 통해 4인 미만 기업에도 적용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사업주의 고용보험 적용신고, 보험료 납부와 관계없이 보험급여를 우선 지급하고 사후적으로 보험료를 추정하도록 하는 제도를 활성화하여 비정규직에 대한 보험 실제 적용률이 정규직에 비해 낮은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노동법을 제한적으로 적용받던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 노동자)에 대해서도 산재보험을 내년부터 적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시간제 근로 청구제도 도입 등 건전한 비정규직 활용 촉진>
또한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학업, 질병 등의 사유로 시간제 근로로 전환하기를 원할 경우 이를 사측에 요구할 수 있는 ‘시간제 근로 전환청구권’을 인정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정부는 시간제 근로는 가사, 학업과 직장의 병행이 가능하고 기업이 일시적인 업무량 증감에 유연한 대처가 가능토록 하는 등 긍정적 측면이 크다고 보고, ‘시간제 근로 전환청구권’제도를 도입하면 청년층, 여성, 고령층이 큰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또한 육아기간 중인 여성노동자가 통상 근로시간의 4분의 1 내지 2분의 1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하는‘육아기간 중 근로시간단축제도’를 도입함을 통해 여성이 육아기간 중 경제활동이 단절되는 것을 예방하여 여성의 경제활동참가현상을 개선하고 육아와 직장의 병행을 가능토록 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방안의 실행을 위해 육아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 시 사업주가 대체인력을 채용할 수 있고 그것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이 제도의 주요 골자이다.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 근본대책 수립 등을 통한 비정규직 구조적 증가 요인 해소>
정부는 원하청 구조가 비정규직 노동자 증가의 주요한 원인으로 보고 시장거래에서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거래 실태와 개선 방안을 차질없이 추진해나가고 근본적인 종합대책을 수립하기로 하였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문제점
이러한 종합대책은 세가지 지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보인다.
우선 비정규직 문제를 ‘차별 문제’로 전환시키면서 사실상의 쟁점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억압과 설움의 원인은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 자체에 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에서도 명시되어있는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담보되지 않고 있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그런데‘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내제하고 있는 고용의 불안정성은 비정규노동자들을 위축시켜 스스로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힘겹게 하고 막대한 불이익을 감내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 자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문제의 원인을 비정규직과 정규직간의 ‘차별’로 규정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회를 넓혀주겠다는 조치 몇 가지로 생색을 내려 하고 있다. 게다가 그러한 조치라고 하는 것도 전혀 실효성이 없는 것들이라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의 경우만 하더라도 보험료를 누가 낼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하여 근로기준법 적용도, 노동조합 결성도 가로막히고 있는 현실을 간과하고 그것도 당장 내년부터 적용하겠다니 결국 이러한 실효성 없는 조치 몇 가지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생색만 내고 비정규직 문제를 ‘차별’이라는 표면적인 문제로 왜곡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대책이 오히려 노동유연화를 더 부추기게 될 것이라는 문제가 있다.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모범을 보여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도록 선도하겠다고 하지만, 예산이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예산지침도 어기지 않고 차별시정조치에도 걸리지 않기 위한 방안은 공공부문의 계약직 노동자들을 간접고용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즉 외주화 등의 구조조정이 보다 가속화되는 결과를 야기하는 것이다. 또한 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간제 근로청구 제도’ 도입 등으로 기업단위에서 정규직의 노동시간과 임금을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을 늘리는 구조조정을 더욱 ‘건전하게’추진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이러한 노동유연화 과정에서 여성이 처한 조건은 여지없이 ‘활용’의 기제가 되는데,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게 되는 현실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여성이 직장과 가사일 모두 차질없이 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녀들은 단축된 노동시간에 해당하는 저임금을 감내할 것을 요구받고, 또다른 여성들은 대체인력으로 불안정한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현상 개선책의 실상인 것이다. 비정규법안이 통과되고 그것의 안착화를 위한 후속대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여성해방’의 명목 하에 노동유연화가 정당화되는 아이러니를 목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무엇보다도 국회에서 표결처리만을 앞두고 있는 비정규보호법안을 부작용없이 안착시키기 위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문제이다. 즉 노동자들의 팔다리를 잘라내기에 앞서 고통을 덜 느끼게 하기 위해 마취제를 놓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 그 기만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안이 어떠한 점에서 잘못되었길래 그것을 안착화하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문제라는 것인가? 비정규직보호법안의 실상을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 주목하며 살펴보도록 하자.

비정규‘보호’법안의 실상과 여성노동자의 현실
정부가 지난 2월 날치기 처리한 비정규‘보호’법안의 내용은, 기간제 사용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것을 기간의 정함의 없는 고용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2년경과 시점에서 고용을 지속할지 여부는 사용자가 전적으로 결정한다. 이처럼 기간제 사용에 있어 일정기간동안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관행적으로 통용되어 온 ‘상시고용 원칙’ 및 우리 노동법제의 해고 제한 조치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정기간 경과 후에 사실상 정규직으로 전환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기간제 제한 장치로 설명하고 있으나 정규직으로의 전환 여부를 사용자가 전적으로 결정하는 한 그것은 기간제 제한 장치가 아닌 기간제 교체 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사용자가 기간제 노동자에 대해서는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무기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고, 차별시정절차가 작동하는 경우에도 다소나마 싼 임금을 지급할 수 있으며, 기업의 사정에 따라 일상적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있는데, 왜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려고 하겠는가? 이건 합리적 사용자를 전제하는 한 물으나 마나 한 질문이다. 이것은 경총이 작년 말 회원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조사에서, 기간 도래 후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응답한 기업의 비율이 11%에 불과하고 약 90%에 가까운 기업이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을 통해 명확히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계약직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파견노동자들 역시 일상적인 해고의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노동통제의 강화가 심화되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실지로 지난 98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파견법) 통과 시 파견대상업종으로 선정되었던 직종의 대다수가 소위 여성사업장이고,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거나 조직력이 미약한 경우였다는 점을 유념한다면, 일상적인 해고의 위협과 노동조건 악화 등과 같은 불안정한 현실은 그에 맞선 저항의 조직화를 무력하게 만드는 노동통제의 강화와 직결되는 것이다. 작업을 하면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아줌마 이빨 보이지 말아요!”라고 구박을 당하고, 그러한 비인간적 관리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당장 문자해고를 당하게 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있어서 노동통제의 문제와 고용불안의 문제는 서로다른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서 파견제 노동을 폐지하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너무나 정당한 요구이다. 그러나 정부는 노동자를 파견할 수 있는 대상 업종의 구분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파견대상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날치기 처리된 법안의 내용은, 현재 객관적인 요소로만 구성되어 있는 근로자파견대상업무의 요건을 주관적인 것을 가미하는 것으로 변경한 것이다. 즉, 현재는 근로자파견대상업무로 정해지기 위해서는 파견법에 규정되어 있는 객관적 요소, 즉 △직접생산공정업무가 아닐 것, △전문지식 ? 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일 것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날치기 처리한 법안에 의하면 그런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도 △노동부가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는 주관적 요소를 갖추기만 해도 파견대상업무로 정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파견법 제5조에 의하면 파견대상업무는 시행령으로 정하게 되어 있다. 즉 노동부가 최종적으로 파견대상업무를 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부가 자의적으로 파견대상업무를 정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법률에 의해 그 범위가 한정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현행법에는 파견대상업무로 정할 수 있는 요건이 객관적인 형태로 규정되어 있다. 이처럼 현행 파견법 제5조제1항은 파견대상업무가 무한정 늘어나는 것을 막아주는 안전판 구실을 해 왔다. 이것을 잘 아는 노동부는 파견대상업무를 늘이기 위해서는 위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판단하였고 그 내용이 바로 수정안으로 제출된 것이다. 그 내용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객관적 요소로만 구성되어 있는 파견허용 요건에 주관적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노동부에게 파견대상업무를 결정하는 전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신임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노동부 업무보고 시 노동부가 위와 같은 수정안을 제출한 이유는 파견제의 범위를 유연화하고 대폭 확대하기 위해서라고 솔직하게 시인하였다.
이번에 통과한 내용은 정부가 제출한 수정안의 노골성을 다소 감추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주관적 요소의 가미라는 기본 취지는 그대로 살아 있는 것으로서 국민들이 정부의 의도를 선뜻 알아채지 못하도록 위장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조만간 노동부는 거침없이 파견대상업무를 확대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종국적 귀착지는 파견노동자의 고용불안과 중간착취의 만연 및 노동기본권 무력화일 것이다.
또한 불법파견에 대해서 정부는 합법파견이든 불법파견이든 2년의 기간이 초과한 경우에만 ‘고용의무’를 적용하고, 불이행시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고용의무’란 말그대로 “고용할 의무가 한다”는 것일뿐, 현행법인 ‘고용의제’(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에 한참 못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법안에 의할 경우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은 파견노동자의 해고로 이어질 공산이 매우 크다. 불법파견을 받은 사용자가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도 불법파견에도 그것을 시정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파견노동자들을 해고하고 합법파견, 즉 도급화를 추진하는 데에 혈안을 올리는 사업장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이처럼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노동통제 강화, 노동기본권의 무력화와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에 시달리게 되는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현재 정부의 비정규법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비정규‘보호’법안이라는 그 이름에 모순되게, 이번 법안 통과로 비정규여성노동자들은 더욱 심각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이 예상된다.
실제 파견 여성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및 남녀고용평등법 등의 적용을 받기가 쉽지 않은데, 차별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가 중요한 상황에서 사업주가 다른 경우에는 비교의 대상조차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소수의 남성 정규직관리자와 이들의 지휘감독을 받는 다수의 여성 비정규직노동자 간에 근로조건의 차별은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다. 특히 상위직급의 관리자는 남성, 하위직급의 실무자는 모두 여성이고 비정규직인 구조는 성차별적 고용구조의 전형이다. 이 차별은 이 여성노동자들이 근속연수가 오래되고 숙련이 향상되고 업무성과가 좋아도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인 차별이다. 그러나 이 상식적인 판단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차별로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가장 큰 장애는 사업주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원청회사가 사용사업주로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였어도, 모자회사 관계에서 모회사가 사용자로 권한을 행사하였어도 입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입증이 충분하여도 법원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경우는 하청의 법인격이 부인될 정도로 독립성이 결여되어야 한다.
그리고 위법의 경우에도 그것을 제지할 방법이 묘연한 것이 현실이다. 법을 위반한 경우 그 책임소재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파견노동자들을 양산하는 정부의 법안은 비정규여성노동자들을 ‘보호’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노동법 개악 저지!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 나아가자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안은 이미 존재하는 비정규노동자를 아우르는 현실적인 ‘보호’가 되기는커녕, 비정규노동자들이 그나마 누려왔던 노동기본권을 철저하게 박탈시키는 결과를 낳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정규보호법안의 안착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것도 노동자들이 그동안 피땀흘려 되찾아온 삶의 권리를 후퇴시킬 계획에 불과하다.
따라서 비정규법안 및 후속대책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법안 철회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더욱이 정부의 노동법 개악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삶이 불안정해지는 데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여성노동자들의 삶의 문제가 관건적으로 걸려있는 만큼 노개악 저지 투쟁에 있어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드높여야 한다. 여성이 처한 현실을 매개로 노동유연화가 정당화되는 현실은 여성노동권 쟁취 요구없이 현재의 노개악 저지 투쟁 국면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설해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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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 세계 빈곤철폐의 날, 여성들은 연대한다.

10월 17일 세계 빈곤철폐의 날, 여성들은 연대한다.


권 형 은 | 인천지부 집행위원

10월 17일은 '세계 빈곤철폐의 날' 이자 8개월간의 세계여성행진이 최빈국 중 하나라는 서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서 마무리되는 날이다. 3월 8일 '여성의 날'에 브라질 상파울루를 출발한 행진이 빈곤철폐의 날에 맞춰 행진을 종료하게 된 것이다. 이는 1998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작성된 '빈곤 제거'와 '여성에 대한 폭력 제거'를 주제로 <인류를 위한 세계 여성헌장>이 근거하고 있으며 종속된 성(性)으로서 이미 가난했고 여전히 가난한 여성들이 스스로의 힘과 사회적 연대로 빈곤을 '철폐'할 것임을 상징한다. 그렇다고 빈곤에 대한 여성행진의 관점은 '여성만의 빈곤'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여성행진의 문제의식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억압에 따른 여성의 빈곤, 더불어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전 세계적인 불안정 노동의 확산과 금융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빈곤의 여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빈곤과 '빈곤의 여성화'는 한국에서는 특히 IMF 경제 위기 이후 극단적인 전개양상을 보여준다. 이윤압박 해결을 위해 자본이 목적한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정화는 가계파탄과 정리해고를 낳았고 이는 사회불안과 가족해체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여성은 주로 청소, 서빙 등의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노동시장 내에 편입되었는데 가사노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직종들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인 편견이 여성 노동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성별화된 직종들은 대개가 저임금의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띤다. 그러다 보니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은 대다수가 여성 노동자의 차지로 귀결된다. 더불어 다른 한 축으로는 노동의 불안정화가 심화, 확장되어가면서 '노동' 가치와 조건이 점점 '여성적'으로 -억압된, 그리고 평가절하된- 보편화되는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한 달 60~80여만 원의 저임금과 고용계약의 불안정성이 노동자 계급 일반에 확대적용 되기에 이른 것이다. 때문에 최근 얼마 전부터 '근로 빈곤층', '신 빈곤층' 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 층의 확산은 오늘날 빈곤의 새로운 화두와 연결된다. 오늘날의 빈곤은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에 대한 관점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 낸 편견에서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정권과 자본은 입에 풀칠만 하라는 60~80여만 원의 임금으로 노동자들의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희망마저 강탈하면서 '나라님도 못 구하는 가난', '게으르고 일하기 싫은 사람들에게 당연한 빈곤'이라는 편견에 기반해서 여전히도 구제와 동정, 시혜의 수준에서 빈곤문제를 사고하고 있다. '훈훈한' 미담으로 전해지는 지배계층의 '곳간 열기'의 21세기 판본으로서 기업이윤의 사회적 환원 전략이라든지 자활사업이나 EITC와 같은 국가정책들은 비정규직 천 만 시대에 노동력 초과 착취를 감추는 수단이자 정부, 기업 등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효과적인 전략으로 채택될 뿐이다.

성차별과 자본주의의 억압이 낳은, 빈곤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행진은 '여성들'의 행진이며 동시에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사회 변혁을 위한 연대의 행진일 수밖에 없다. 그간 여성행진은 인천, 수원, 부산, 대구, 광주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해왔다. 하이텍 알씨디 코리아, 한원 CC, 기륭 전자, 그리고 민주성노동자연대의 투쟁 등을 통해 전국 곳곳 여성들의 행진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0월 17일은 그 운동들이 만나고 시작되는 날로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전면개정과 자활법 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 발족식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오전의 여성행진 기자회견, 오후 문화제를 통해 여성노동자, 장애여성, 성매매 여성, 이주여성, 여성농민 등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신자유주의 반대, 빈곤철폐의 요구로 모일 것이다. 11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 APEC(아펙)정상회의가 예정된 부산까지 연대의 힘을 지속시켜 나가자. 사회구조가 양산해내는 '빈곤'의 정책적 수혜자가 아닌 노동에 대한 권리, 복지에 대한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는 빈곤철폐의 주체로서 여성행진은 계속되어야 한다.

10월 14일(금)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 제2배움터
;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불법파견과 인권 침해사례 고발을 위한 증언대회

10월 16일(일) 오후 12시, 대학로 마로니에
; 이주노동자 집회

10월 16일(일) 오후 1시, 대학로 마로니에
; 전국 비정규직 노동자 대회

10월 17일(월) 오전 10시 반, 국회앞
; 기초법 전면 개정과 자활법 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 기자회견

10월 17일(월) 오후 12시, 정부종합청사 후문
; 여성행진 기자회견

10월 17일(월) 오후 6시,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 무대
; 여성행진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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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방지법 시행 6개월. 그러나 여전한 성매매여성들의 죽음

성매매방지법 시행 6개월.

그러나 여전한 성매매여성들의 죽음

 

미아리 하월곡동 성매매업소 화재로 목숨을 잃은 5人의 여성,

그녀들의 명복을 빕니다.

 

문 설 희 |불안정노동 철폐연대

 

 

 

그녀들이 화염 속에서 죽어갈 때...

 

기분좋은 월요일이었다. 잘 쉬고 난 뒤의 상쾌한 기분으로 출근하여 뉴스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27일 낮 12시36분께 서울 성북구 하월곡1동 성매매 업소 밀집지역인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 4층짜리 건물에서 난 불로 여성 5명이 숨졌다. 4명은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3층 계단과 4층 방에서 숨졌고, 1명은 가까스로 구출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후 4시10분께 눈을 감았다. 경찰은 전날 밤 9시께 이날 불이 난 업소에 대해 단속을 벌여 업주 고아무개(54)씨를 성매매 처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업소 안에는 성매매 여성 9명이 있었지만 손님은 없어 업주를 불구속 입건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업주는 경찰의 단속이 끝난 뒤 여성들을 다시 업소로 데려가 새벽 6시까지 영업을 계속하도록 시켰다. (한겨레 신문)

일요일 오후, 누구는 야외로 놀러가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을 테고 누구는 나처럼 집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기도 했을 일요일 오후, 그녀들은 화염 속에서 목숨을 잃어갔던 것. 봄을 기다리게 하는 3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그녀들은 그렇게 죽어야만 했고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6개월, 그러나 여전한 성매매여성들의 죽음

 

미아리 화재참사 소식을 접하자마자 생각난 것은 지난 2000년 군산에서의 성매매업소 화재참사로 죽어갔던 성매매여성들의 죽음이었다. 닮은꼴로 벌어지곤 하는 비극. 언제까지 이러한 일이 반복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슬픔과 분노를 언제까지 맛보아야 하는 것일까.
자명한 사실은 이건 단지 ‘사고’가 아니라는 것, 단지 운이 나빠서 몇 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들을 죽게 한 것은 화마(火魔)가 아니라 여성의 몸을 사고파는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구조이며, 그녀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그러한 사회구조에 적극 편승하거나 혹은 그것에 무능한 모든 이들에게 있는 것이다. 여성들의 몸과 생명을 담보로 굴러가는 이 썩어빠진 세상을 뒤엎지 않는 한, 지긋지긋한 비극은 필연적으로 되풀이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분명히 해야하는 사실은 이번 일이 ‘되풀이된’ 비극이라는 점이다. 군산화재참사를 겪고 그를 원통해하면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작년부터 시행된 성매매방지법이다. 그러나 그러한 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법으로 없애고자 했던 비극이 되풀이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매매방지법 시행 6개월, 그러나 여전한 성매매여성들의 죽음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성매매방지법의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다면 그녀들이 경찰서에서의 조사를 마치고 다시 업소로 돌아갔다가 참사를 맞이하게 된 것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는 바는 무엇인가? 성매매방지법으로 인해 성매매업소 밖으로 나오게된 성매매여성들이 왜 경찰서를 나와서는 다시 또 성매매업소로 돌아가게 되었고 왜 변함없이 영업을 해야만 했던 것이며 왜 그곳에서 불에 타죽어야 했던 것인가? 결국 이는 ‘성매매방지법’이 그녀들의 삶의 조건을 바꾸어주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소한 그녀들이 경찰서를 나와서 업소로 다시 되돌아갈 필요는 없어야 했던 것 아닌가. 업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어야 했던 것 아닌가. 또한 최소한 화재로 목숨을 잃지는 않을 수 있어야 했던 것 아닌가. 화재에 취약한 조건이 사전에 시정될 수 있어야 했던 것 아닌가. 성매매방지법의 집행을 위한 단속이라는 것을 피해갔던 것, 성매매방지법의 집행을 위한 단속이라는 것이 결코 단속할 수 없었던 것을 깨닫지 않는 한, 성매매방지법이 아무리 제대로 집행된다한들, 비극은 필연적으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몸과 생명을 담보로 굴러가는 세상을 멈추어내기 위한 ‘근본적인’ 싸움을 진행하지 않는 한,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참사가 알려진 후, 성매매방지법의 시행 및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성매매방지법 시행 6개월째 발생한 이 비극이, 성매매방지법이 성매매여성들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역설해준다고 했을 때, 그렇다면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성매매방지법은 처벌규정을 통해 성매매를 금지시키겠다는 법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성매매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법이 강해질수록 성매매 여성들이 설자리는 더욱 좁아져만 간다.
우선, 여성의 삶의 조건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성매매를 단속의 대상으로, 금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녀들을 빈곤의 극한으로 몰아 죽게 하거나, 보다 극한 상황을 감수하고서 성매매를 하도록 내몰거나 하는 일에 다름 아니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면 장기(臟器)고 뭐고 다 팔아야 살동말동한 빈곤 앞에서, 현실적인 조건을 간과한 채 열심히 성매매 단속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여성의 노동력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고 노동조건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어엿한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고 구한다손 치더라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 한번 유입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선불금이나 포주에 의한 감시와 폭력 및 한번 창녀는 영원한 창녀라는 식으로 성매매여성을 억압하는 각종 장치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탈성매매하기 어려운 사회구조적인 현실이 해결되지 않는 한, 성매매를 아무리 ‘금지’한다고 한들, 성매매여성들이 아무리 ‘의지’를 가지고 성매매에서 벗어나려한들, 근본적인 문제해결과 연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를 곪게 할 뿐이다.
또한 현재의 ‘가족’ 재생산 구조를 전면적으로 혁신하는 일을 방기하면서 아무리 성매매방지법을 ‘제대로’ 시행시킨다한들, 성매매는 모습을 계속 바꿔가며 보다 끈질기고 더욱 악랄하게 지속될 것이다. 성매매는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기초단위로서의 ‘가족’을 재생산하는 과정의 또 다른 측면이기 때문에 결코 그 자체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조이데올로기와 연동되어있는 현재의 ‘결혼가족’ 재생산 구조는 ‘성매매’의 맞짝인 셈인데, ‘정상적인 결혼을 통한 건전한 가족’과 ‘성매매’는 양극단에서 서로를 반사시키고 있다. 하기에 ‘결혼’과 ‘가족’을 재생산하는 구조를 함께 변화시켜내지 않으면서 ‘성매매’문제를 바꿔내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전략이 가능하다고 믿는 순진한 발상이거나 혹은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님을 알면서도 면죄부를 얻고자하는 발상일 뿐이다.
무엇보다 현재의 성매매방지법이 정작 성매매여성들을 소외시켜오지는 않았는지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성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한 싸움의 방향을 엉뚱하게 설정한 채 정작 투쟁의 중심에 있어야 할 성매매여성들을 소외시켜오지는 않았던가? 그녀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하나의 집단성이 인정되어야 하고 결사하여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들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매매를 불법으로 여기고 금지하는 것은 의도치 않았다고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그녀들의 실존까지 불법화하고 금지하는 셈이 된다. 존재하는 여성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 목소리 없는 존재로 몰아가는 것은, 결코 그녀들 스스로의 조직화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입장은, 성매매여성들을 나약하고 무기력한 피해자로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성매매=범죄’일때 ‘탈성매매의 의지가 확고한 성매매여성=범죄의 피해자’라는 등식 또한 성립된다. 이러한 등식 아래에서는 포주나 구매자와 같은 범죄자의 축에 들지 않기 위해서 성매매여성은 비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연루되게 된 증거를 명확히 제시할 수 있어야하며, 불우한 희생이나 피해를 가시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결코 성매매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강제적인 피해자로 여겨지는 여성에게는 동정을, 자발적(?)으로 성을 즐기는(?)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에게는 비난을 가하는!-을 바꿀 수 없으며, 그녀들이 성매매를 반대하는 운동의 주체가 되어 당당히 설 수 있을 조건을 취약하게 만든다. 성매매여성들에게 있어 선택지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피해자’ 혹은 ‘비난받아 마땅한 문란한-혹은 의지박약한-혹은 길들여진-여성’이라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성매매방지법의 강화는 반성매매투쟁의 중심에서 스스로의 요구를 스스로의 목소리로 외칠 수 있어야 할 여성들이 오히려 발 딛을 곳을 잃고 집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는 아이러니한 결과와 직결된다.

하기에 성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해 성매매방지법을 강화해야한다는 것은 성매매를 근본적으로 근절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문제해결을 보다 복잡하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으며, 무엇보다 성매매여성들을 더욱 소외시키고 보다 무방비상태로 몰아갈 뿐이라는 점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할 것이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터져 나온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여성부를 규탄하던 성매매여성들의 목소리를 기억하자. 여성의 권익을 위한다는 여성부가 성매매여성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아이러니한 주장은 어디서 연유하는가? 이를 포주에 의한 강압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이들이 목적한다는 성매매없는 세상이라는 것이 결국 성매매여성들의 해방과는 정작 관계없는 세상이라는 사실, 반성매매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정작 성매매여성들은 안중에 없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성매매방지법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매매여성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성매매여성들이 진정 원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작년 10월 부산 완월동과 인천 숭의동 성매매 여성들과 여성단체들은 ‘부산과 인천 해당 지역을 집결지 프로젝트 시범지역으로 선포하고 탈성매매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라고 촉구하며, 법 집행보다는 성매매 여성들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탈성매매를 지원”하는 방안이 취해져야 함을 요구했다. 이처럼 성매매여성들이 요구하는 법이 성매매여성들의 조직화를 지원하고 극단적인 폭력에 처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탈성매매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을 때, 성매매여성들의 입지를 좁히는 성매매방지법 강화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뿐 아니라 배치되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성매매여성들이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발 딛고 설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해내는 것이다!


성매매여성들이 발 딛고 설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하는 투쟁을 진행하자!

 

지지금 정작 필요한 것은 성매매방지법 시행의 강화가 아니라, 오히려 성매매여성들의 조직화를 지원하고 극단적인 폭력에 처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법이란 것이 사회가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지의 부분적인 결과물이라고 했을 때, 법제정과 개정운동만으로 한정되지 않는 투쟁‘들’이 필요할 것이다.
여성을 돈으로 사고파는 행위를 통해 가부장적 권력을 확인하고 자본주의적 이윤을 창출하는 구조를 없애기 위한 현실의 투쟁, 즉 빈곤의 여성화를 반대하고 성의 상품화를 막아내며 가부장적인 가족제도를 전화하기 위한 투쟁‘들’이 긴 호흡으로, 하지만 민첩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성매매여성들이 반성매매투쟁의 주체로서 집단적으로 세력화하게끔 하는 실천을 일구어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반성매매운동을 성매매방지법에 힘을 싣는 일에 국한시킨 채 그것에 찬성하지 않는 입장을 성매매가 존재하여야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오인하는데서 연유하는 왜곡되고 비생산적인 논쟁은 제발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왜곡된 쟁점에 갇혀 헤매는 동안 또 다른 화마가 또다시 우리를 비웃으며 성매매여성들의 목숨을 앗아갈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모두 그녀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이번 화재참사를 접한 후 보다 묵직하게 가슴에 남겨진 이 통증은 아마도 부채감이라는 것일 거다.
경찰서에서 업소로 돌아온 후 그날의 영업을 마치고 술을 마시면서 그녀들은, 어쩌면, 단속에 걸려 경찰서에 갔다 돌아온 날이면 왜 그토록 불쾌하고 기분이 나빠지는지 이야길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삶의 굴레라든지 애환 같은 것을 술잔에 담아 털어 넣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경찰서에서 다시 업소로 돌아오기까지 그리고 변함없이 영업을 마치기까지, 하루의 일정을 그렇게 마치고서 잠이 들었다가 죽음을 맞은 것인지도. 내가 집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던 일요일 오후에 말이다. 그처럼 나와 그녀들은 다르다. 삶의 조건이 다르다.
하지만 또한, 나는 그녀들과 같다. 나는 그녀들과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이다. 극단적인 형태의 억압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러한 억압의 존재 자체는 나를, 우리를, 여성으로서 비인간화하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일과 같다. 하기에 나는 그녀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같은 꿈을 꿀 수밖에 없다.
가슴속에 묵직하게 남은 부채감을 책임감으로 전화시키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하여 씁쓸한 무력감을 맛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성매매업소 화재참사로 죽어간 이들이 남기고 간 이 묵직한 통증을 앞으로의 싸움을 위해 계속 곱씹자. 그리고 그녀들이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성적 상품으로 팔지 않고도 살수 있기 위해, 진행되어야 할 싸움을 미루지 말자. 우리는 모두 그녀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그녀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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