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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현실화 투쟁, 그리고 상관없는 이야기

[3호] 최저임금현실화 투쟁, 그리고 상관없는 이야기 류 미 경 | 사회진보연대 정책부장 어쩌면 평생 가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지면을 할애 받지 못할 지도 모를 여성이 있다. 내가 잘 아는 50대 중반의 여성이다. 최저임금현실화를 위한 행진과 최저임금위원회 앞 밤샘농성에 참여하면서 나는 그녀와 닮은 많은 여성들과 마주쳤고, 그 자리에 그녀와 내가 나란히 앉아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8년 동안 그녀가 접했을 세상의 단면들이 내 머릿속을 스쳤고, 그 이야기들을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과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 앉아 곱씹어 보았던 그녀의 일상을 내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기회를 언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56만원으로 당신이 살아보라! 최저임금 현실화하라! ‘최저임금 현실화’는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요구이다. 지난 2002년 ‘최저임금연대’가 발족하면서부터 이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본격 등장하게 되었고, 올해에는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이 민주노총의 주요 투쟁사안으로 제기되었다. 올해 최저임금이 정해지는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리기 전날인 지난 6월 24일,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1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밤샘농성을 전개하였다. 그 자리에 모인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제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계임금을 보장한다는 취지와는 정 반대로 오히려 저임금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현실을 증언했다. 노?사, 그리고 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이루어지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데, 2003년의 경우 56만원으로,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1/3에도 못 미칠 정도로 턱없이 낮은 액수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최저임금법은 정해진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모든 사용자가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이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임금 상한선이 되고 있다. 사용자가 최저임금법을 위반하지 않으려면 법정 최저임금에서 100원 정도만 더 얹어주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이 최저임금이 임금 가이드라인으로 악용되고 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적어도 전체 노동자 월평균 임금의 50%로 명시해서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할 것과,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있는 18세 미만 노동자, 양성훈련자, 수습노동자, 감시단속 노동자 등을 포함시킬 것, 최저임금 적용시기를 1월~12월로 정해서 회계연도와 일치하지 않아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없도록 할 것 등을 내걸고 투쟁에 나섰다. 그리고 올해의 경우,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라는 기준에 따라 최저임금을 766,140원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할 것을 목표로 했다. 올해의 최저임금은 결국 다음날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의 마지막 전원회의에서 641,84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제도개선의 문제는 전원회의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 논외가 되었고(이 회의에서는 ‘제도개선 전문위’를 결성하여 이 문제를 별도로 다루기로 했다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놓고 사용자쪽은 애초에 제시한 2.6% 인상안을 10.2%로 수정하고, 노동계도 전산업 정액급여의 절반 수준인 35% 인상안에서 13.1%로 수정안을 내놨고 표결을 통해 노동계 수정안이 채택된 것이라고 한다. 민주노총이 애초에 가지고 있었던 목표에 비하면 부족한 결과이다. 그녀의 이야기 그녀는 지금 노동부가 주관하는 여성가장 실업자 취업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양장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고 훈련이 끝나면 취업을 지원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한 달에 30만원씩 지원도 받는다. 정말 오랜만에 공부라는 걸 해서 필기시험, 그리고 실기시험에 합격해두었다. 그냥 집에서 아무 일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는 한 달에 30만원씩이라도 받으며 뭘 배우기라도 하는 편이 훨씬 나은 것 같아서 선택을 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훈련을 마치고 나면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앞길은 막막하다. 여기에 오기 전에 근무하던 곳을 생각하면 한숨만 난다. 고등학교 매점이었는데, 물건 주문하고, 정리하고, 쉬는 시간 10분동안 구름같이 몰려오는 아이들에게 정신 없이 물건을 판매하고, 장부 정리에 결산까지 매점의 모든 일을 모조리 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도 없었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구하게 된 일자리라 근로계약서 같은 것도 쓴 적이 없다. 그녀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젊은 매점 주인은 자신의 허구헌 날 사정이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 매점말고도 다른 가게를 운영하려다 보니 자금사정이 안 좋다며 월급을 조금씩 깎는다. 방학 때는 수입이 절반으로 줄어드니까 월급을 절반으로 깎을 수밖에 없으니 내키지 않으면 그만두라고 한다. 과로로 병원에 실려갔다 온 다음날 매점 주인은 힘들어하시는 게 안쓰럽다며, 젊고 건강한 사람을 다시 구할 수 있으니 그만두라고 한다. 결국은 매점 주인이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매점을 그만두게되었고 그녀는 일자리를 잃었다. 아마 최저 임금이 법적으로 56만원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녀는 놀랐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이도 많고 건강하지도 않은 내가 어디 가서 일자리를 다시 구하겠어? 이것도 얼마나 힘들게 구한 자리인데’라고 생각하며…. 그 전에 일하던 곳에서는 그나마 사정이 좋았다. 한 국립대에서 청소하는 일을 했다. 역시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는데, 소개해 준 사람은 그 대학교에 직접 고용이 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뭔가 달라진 제도로 용역업체에 고용되었다. 임금이 한 30만원 정도는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좀 지나서 대학이 용역업체를 다시 선정하는 기간이 돌아왔는데, 최저가 입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그녀가 고용되어 있던 용역업체가 선정이 안 되는 바람에 그녀는 그 대학교에서 청소하는 일을 그만둬야 했다. 남편이 있을 때는 자식들 뒷바라지하고, 시부모님 수발하는 일에서 벗어나 내 일을 갖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다시 농성장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과정, 그리고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기 위한 투쟁과 그녀의 삶은 별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는 최저임금이나마 쥐어주는 일자리를 구하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내가 그녀를 떠 올렸던 건 그날 밤 농성장에서 만난 많은 여성들의 삶이 그녀와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집안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음에도 , 그럼에도 식비나 공과금 이외에도 교육비며 치료비, 가끔 돌아오는 제사 비용 등 그녀들이 부담해야 할 가계비용은 어느 집과 마찬가지이다. 그녀들에게는 이를 감당할 만큼의 충분한 임금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원래 그녀들이 해야 할 일은 밖에 나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므로 해고를 당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해고가 두렵다면 열악한 노동 환경쯤은 충분히 감내할 것이라 간주된다. 가사를 돌보고 가족 구성원을 보살피는 주어진 일을 벗어나서는 이등 시민으로 간주되어 열악한 노동조건, 최저임금을 감내하도록 강요당한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는 투쟁은 여성노동자들의 요구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저임금 현살화 투쟁과는 별 상관없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 있었던 여성노동자들과 그녀가 함께 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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