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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지만, 결코 빠르지 않은 그녀들의 권리찾기

[3호] 빠르지만, 결코 빠르지 않은 그녀들의 권리 찾기 -고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며 송 강 현 주 | 사회진보연대 노동차장 “청소일 하는 거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야. 이맘 아무도 모를 거야. 근데 내가 요즘 말이 트였어. 이제 하고 싶은 말 다해야지“ 고려대학교 시설지부(이하 고대 시설지부)가 창립총회를 하던 7월 1일, 부지부장님이 자신이 결의문을 읽겠다며 돋보기 안경을 꺼내 들고 하신 말씀이다. 96년부터 고대에서 청소일을 했다는 부지부장님은 이제 무서울 것이 없다며 들떠 즐거워하셨다. 내(정확히는 사회진보연대^^)가 고려대학교 청소용역 투쟁에 함께 한지 단 2주만에, 공식적인 대책위 논의가 완료된 후 3일만에 5~60대의 ‘어머님’들은 자신들의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지난 4월경부터 ‘불철주야’(고려대 학생들- 불안정노동 철폐를 주도할거야)와 인권운동사랑방 등의 지속적인 연대와 이후 투쟁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다고 해도, 여간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고용승계 보장하라! 근로형태 바꾸지마! 고려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98년까지 고려대에 직접 고용되어 있었으나 여타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99년부터 용역으로 전환되었다. 2002년 노동조합을 설립했었으나 당시 지부장의 해고, 학교의 압력 등으로 곧 흐지부지 해소되었다. 그 후 2003년 고려대 미화원 협의회(이하 고미협)라는 형태로 친목을 유지하는 모임 정도가 진행되어왔다. 고대 청소용역 투쟁은 근로형태 변경에 대한 반대로 시작되었다. 학교측과 설명회를 가진 용역업체들이 그동안 노동자들이 오전부터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해왔던 (실제)근무시간과 형태를 3교대(주간 6:00-16:00, 오후 14:00-22:00, 야간 22:00-6:00)로 변경하며 일요일과 휴일 근무도 하게 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더불어 (70%에 육박하는)60세 이상의 노동자들을 해고한다는 소문이 소장과 건물 반장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어머님’들은 거의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고미협’의 이름으로 매일 일이 끝나는 오후 4시, 토요일엔 오전 11시 제2 학생회관에 모여 총회를 가졌다. 일에 지치고 집으로 돌아가 해야 일이 많아도, 보통 90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매일 함께 모여 상황을 공유하고 크고 작은 결정들을 해왔다. 6월 22일 총회에서 향후 투쟁의 수준을 정하고 결의를 확인하기 위해 ‘근로형태 변경 시 근로계약을 거부한다’에 대한 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찬성 77표, 반대 2표로 나타났다. 다음 날부터 투쟁과 상황은 급속히 달라졌다. 고대 청소용역 노동자의 이름으로 본관 앞에서 첫 집회를 하고, 건물별로 대표자를 뽑아 학교와 직접 면담에 들어가고,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를 보이콧하고, 본관과 용역회사 사무실을 점거하는 등 짧은 기간 다양한 직접 행동을 만들어나갔다. 선정되었던 2개의 용역회사들이 용역 포기를 선언하고(실제로는 한 회사가 포기-9월부터 적용될 최저임금 인상분에 대한 문제와 노조 설립 등의 이유), 용역계약서에 60세 이상(남 65세) 노동자를 채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삭제하며 학교와 용역회사로부터 100% 고용승계를 보장받았다. 3교대는 폐기되고 대신 9월부터 2시간 연장근로가 시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7월 3일(토) JD one이라는 용역회사와 노동자들은 노조 총회에서 집단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스스로 세운 노동조합 노조가 없는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을 계획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었다. 2년전 노조 설립 실패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주도적인 행동과 발언을 할 만한 노동자들이 없는 상태에서 ‘노조를 만듭시다’라고 제안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이판사판 투쟁을 결의하면서, 우리가 나가도 후배들이 똑같은 고생하면 안되지! 당당히 외치면서 대표자의 필요성을 공감했고, 서로를 추천했다. “노동조합 만들까요?”란 질문에 당연하다며 당장 만들어야 한다며, 빠른게 아닐까 조금은 망설이던 우리를 오히려 무색하게 했다. 창립총회를 진행하는 순간에 모두가 격양되고 기쁨에 가득 찼다. 앞으로의 투쟁이 더욱 중요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함께 있으니 얼마나 당당한지 알 수 있었다. 그녀들의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고대 시설지부 투쟁은 짧은 시간에 승리를 이루어 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불철주야’의 헌신적인 노학연대, 여타 사회단체들의 지원과 시설관리노조의 결합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100여명의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흔들림 없이 2주간의 일정과 결정을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활동을 오래하지 못했지만, 대책위는 곧 평가를 진행하고 이후 활동방향을 고민할 것이다. “요즘 소장이 함부로 못해! 학생들한테 이를까봐 그러는 거야”라며 기뻐하시는 어머니가 그것은 이제 당신들이 당신들의 조직을 가지고 스스로 발언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녀들이 어머니, 아주머니에서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로 일어서 있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사실 그동안 노동자들의 높은 결합력은 학생들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 그래서 그녀들은 결합하는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다 여성이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면티에 청바지 입은 모습이다 보니 그냥 학생이려니 생각해 버린다. 큰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지만 아직은 불안한 그녀들. 이제 고대 시설지부는 명실상부한 노조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모든 일이 학생들 덕분인 줄로만 알고 있는 그녀들도 이제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돌아가며 무언가 말해야 하는 회의 자리에선 항상 ‘오메~ 떨린다. 아이고 인제 내 차례네!’ 아주 큰소리로 수줍어하다가도 차례만 되면 몇 시간이고 얘기할 태세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5~60대의 여성노동자들. 그녀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얼마 전 건물별 대표자회의에서 친분을 쌓기 위한 교육(놀이?)으로 ‘대단히’를 붙여 자기 소개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녀들에게 ‘대단히’란 말을 붙여 소개하기가 꽤 어려워 보였지만 재미있는 자리였다. 내 차례에 나는 이렇게 말해 보았다. “나는 대단히 잠을 많이 잡니다. 나는 대단히 술을 많이 마십니다. 나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대단히 기쁩니다. 그래서 어머님들과 연대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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