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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가정기본법, 건강한 가정의 기본인가.
최예륜 | 정책부장
보건복지부가 제출, 지난 2월 국회에서 통과된 ‘건강가정기본법’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건강가정법이 무엇인지 간단히 말하자면, 이혼, 저출산 등으로 해체상황에 직면한 가정문제에 국가가 직접 개인하고 지원하는 법안이다. 그러나 법안이 시행되기도 전, 폐지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불평등 법이라는 비난 속에 국가인권위에 제소되는 등의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여성단체들에서 쏟아지고 있는 법안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들을 검토해보고, 현재 정부가 시행추진중인 건강가정기본법의 목표와 내용을 살펴보자.
건강가정기본법은 우선,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규정하며 ‘가정’이란 가족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로서,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 양육, 보호, 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단위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가정’은 ‘가족’ 이외의 공동체를 포괄할 수 없게 되고, 비혼동거/ 동성애부부/ 독거가구 등의 가정형태는 건강가정기본법의 가정에 해당될 수 없다. 이는 법안의 애초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가족형태의 변화와 위기상황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가족법 이외의 별도의 ‘건강가정’ 관련법을 추진하는 것이 법안 상정이 본래의 취지가 아님이 분명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지난 7월의 건강가정기본법 난상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가정’을 정의함에 있어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뤄진 가족을 정의하고 있다며, 가족중심주의를 전제하면서, 건강가정 지원사업에서는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적임을 지적하였다.
가족의 위기/변화 상황에 따른 구성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여기기보다는 건강한 가정을 기존의 핵가족(+부양할 노부모)으로 재정의함으로써 기존 가정으로부터의 이탈자를 방지하려는 억압적인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정부가 기존의 핵가족중심의 법 제도를 고수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핵가족의 가족형태가 파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이 양육과 노인 부양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다. 쉬운 이혼과 결별은 성인남녀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아이양육, 노인부양 문제는 당사자만의 문제일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부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라는 것이 건강가정은 자녀양육과 노인부양에 대한 책임을 다하여야 하며, 사회구성원은 가정이 해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가족의 위기인가 변화인가라는 허구적인 쟁점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혼인, 이혼 통계결과‘에 따르면 2001년 혼인건수는 30만 6천600건, 이혼 건수는 14만5천 300건으로 조사됐다. 또한, 통계결과에 따르면 현재 노인 1인 가구 가족은 전체 8.7%에서 2020년에는 전체 가구의 20%로, 자녀 없이 부부만 사는 가구 또한 현재 12.3%에서 2020년에는 18.8%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이밖에 부부(무자녀)가족, 이혼으로 인한 편부모 가족, 재혼 가족, 맞벌이 가족, 소녀소년가장가구, 미혼독신가구, 혼전동거가구, 노인부부 가구, 동성애 가구 등 이른바 비주류 가족형태는 이미 전체 가구수의 3분의 1을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가족형태의 출현에 대해 일각에서는 “가족의 사회화 기능결여가 초래한 결과”로 사회 전체의 가치관을 형성, 유지하는 자녀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존재하기도 한다. 또한 이에 대한 비판으로 이러한 가족형태 변화의 원인을 사회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가족형태의 발달과 개인의 삶이 중요한 가치관으로 대두되는 상황으로 제시하는 세력도 있다. 물론, 이들의 분석은 모두 맞다. 사회 전체의 가치관을 형성 유지하는 자녀교육을 수행하기에는,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사교육에 시달려야 하고, 부모는 모두 일터로 나가 늦은 시간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개인의 삶이 중요한 가치관으로 대두되는 달라진 상황이란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적극적 의사 표현과 사회참여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핵심적 이유는 대다수의 가정이 과거의 남성생계부양자 중심의 핵가족모델을 목표로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여성의 경제참여의 증대가 긍정적 요소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남성과의 등등한 지위로의 노동권의 보장이라는 측면보다는 전반적인 노동의 불안정화와 가사/육아 노동의 사회화된 시장을 저임금 여성노동자로 대체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현재의 가족위기의 상황은 개인의 가치관의 변화에 치중한 이러한 학자들의 분석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분명한 것은, 가족은 이전 시기에 비해 더욱 불안정해졌다는 점이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여성 해방과 남성과의 동등한 지위를 의미하지 않았다. 보수주의자들이 지적하는 가정교육의 역할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가정불안’의 책임은 일하는 여성들에게 떠넘겨지기 일쑤였고, 뿌리깊은 가부장제와 결합된 생계가장이 불명확한 핵가족모델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여성의 노동시장진출은 가정 내에서의 증폭된 갈등을 야기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사회 교육의 모순은 가정에 사교육비의 과다지출을 요구하였으며, 동시에 노인부양의 책임도 여전히 가족에게 있다. 또한 IMF 경제위기를 경과하며 해체되는 가정이 급증하였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변화는 기존의 아메리카 핵가족 모델(중산층)로의 지향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더 이상 가족은 기존의 체제가 요구해온 소비능력을 갖출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가족의 위기상황은 재생산의 위기(올바른 자녀교육기능까지 포함해서) 상황이며, 이러한 재생산의 위기에 기존의 가족이 더 이상 대처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가족/가정관련대책은 이러한 재생산의 역할을 가정내로 한정짓고, 국민의 의무로 강제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혼을 예방하고 출산을 장려하면 가족 위기가 해결되는가?
법안 제31조 ‘이혼예방 및 이혼가정 지원’에 따르면, 이혼하고자 하는 부부는 이혼 전 상담을 필수적으로 받고, 이혼이 불가피하다는 확인서를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받아야 법원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이는, 9조의 ‘가족구성원 모두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를 이혼을 어렵게 만드는 조항으로 강제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에 대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억압해 국가가 설정한 기본 단위인 ‘가정’에 헌신하도록 강제하는 ‘이혼허가제’라는 비판은 이미 여성민우회 등의 비판에서 드러난 바 있다. 혼인/출산을 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정상’이라고 외쳐대는 사회에서 쉽게 이혼으로 이어지는 ‘불행한 결혼’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이혼의 원인을 파악하려는 노력 없는 실질적인 이혼방지법이 불행한 결혼과 그로 인한 고통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암담하다.
한편 ‘1.17 쇼크’라 일컬어지는 출산율의 저하 또한 이 법안의 제정된 핵심적 취지이다. 법안 제8조는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출산률의 저하를 위기적 상황으로 인식하고 갖가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자연분만비와 미숙아 치료에 드는 건강보험 진료비 등을 전액 지원하는 등의 출산 장려책을 내놓는 데에는 진작부터 했어야 할 일이라는 수긍이 간다. 그러나 다른 한편, 출산장려차원에서 피임 목적인 정/난관 수술은 건강보험 대상에서 제외하고 말았다. 이는 자녀를 낳고 양육할 의무와 책임만을 강조한 것이며, 임신/출산과 한 쌍이 되어야 할 피임에 대한 지원을 포기한다는 것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요소라 하겠다. 문제의 원인에 접근하지 못하고 위기의 피상만을 건드리다 보니, 가정 내 불화, 갈등의 문제를 가정의례를 수립한다거나, 건강한 가정문화 형성을 위해 노력한다는 실없는 해결책이 제시될 따름이다.
건강가정기본법 폐지! 사회적복지 강화!
건강가정기본법은 소수의 성공한 자, 부를 가진 자와 실패한 자를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복지정책에도 여과 없이 관철되는 사례를 보여준다.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한 복지의 한정은, 늘어만 가는 이혼으로 발생하는 ’비‘정상 가정의 자녀를 책임지지 않는다. 또한 노인 부양 등의 문제를 가정 내의 의무로 떠넘기고 만다. (독거 노인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펼치는 단란한 ’정상가족‘의 모습을 담은 공익광고를 보라.) 재생산의 위기에 대처하지 못하는 현재의 가족 위기 상황에서 복지의 문제는 가족복지가 아니라, 탈가족화, 가족부양부담의 사회화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최저생계비, 최저임금 인상 등의 요구, 연금제도의 개혁, 보육, 부양시설의 확대 등 모든 사회운동의 요구들이 어디서 기인하고 있는가에 대해 간과한 채, 가족의 위기를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떠넘기는 건강가정기본법안은 폐지되어야 한다. 현재의 가족 위기에 대한 진정한 분석을 결여된 채 강요되는 ’건강‘, ’가정‘, ’기본‘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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