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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6호] 그리스 혁명과 전 유럽 노동자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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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혁명과 전 유럽 노동자혁명   

 

                                                          
 

홍수전

 

 


  지난 2월 13일 그리스 의회에서 잔인한 긴축안이 통과되자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 민중들이 거리 시위에 나서서 격렬한 가두투쟁을 전개했다. 수도 아테네에서만 시위대가 10만명이 넘었는데 2008년 시위 이후 최대 규모였다. 통과된 긴축안이 공공부분 노동자 1만5천명 정리해고, 노동법 개악, 최저임금 20% 삭감 등 자본의 위기를 철저히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내용이어서 이에 대한 항의투쟁도 그만큼 격렬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미 실업률도 21%에 이르렀는데 그 중 절반은 청년 실업이었다. 게다가 몇 주 뒤에 유럽연합(EU) 각료회의가 열리면 여기서 훨씬 더 가혹한 긴축조치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돌면서 노동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그리스 사회는 지금 압력이 팽팽해져 터지기 직전의 상태이다. 그래서 투쟁의 규모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전투성도 크게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긴축안에 대해서는 그리스공산당(KKE)과 급진좌파연합(SYRIZA) 같은 좌파 정당들만이 아니라 극우세력인 LAOS당도 반대하여 현 그리스 연정에서 탈퇴하기까지 했다. 나아가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당과 신민주당 소속 의원 43명이 의회에서 반대표를 던져 제명당하기까지 했다.

 

 

준혁명적 정세

 

  이런 현상들은 그만큼 그리스 사회 내 팽팽한 압력으로 인해 지배계급이 자신의 힘을 결집시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음을 가리킨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보수우익 경찰간부들이 장악하고 있는 그리스 경찰노조가 2월초에 “합법적 행동”을 통해 IMF 관리들에 대한 반대 시위를 할 것이고, 그리스 형제자매들에 맞서 싸우는 것을 피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정부에 대해 위협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런 모습들은 준혁명적 정세의 전형적인 특징들이다. 

 

  그 동안 대규모 노동조합들에 의한 총파업이 여러 차례 진행되었는데 그 때마다 중간계급과 소부르주아 대중들도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에 합류했다. 현재 이들 중간층들까지도 좌파가 해답을 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는 특히 그리스공산당과 급진좌파연합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현 상황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은 위기 전가에 대한 반대 투쟁을 넘어서, 심화되고 있는 위기에 대한 그 자신의 해결책을 실행하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상황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현재 노동자들과 함께 생존권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중간층이 점점 더 해답을 우익에게서 찾는 쪽으로 등을 돌릴 것이다. 긴축안에 반대한 LAOS당 탈당파들이 인기가 치솟고 있는데, 이들은 이제 극우 민족주의 노선을 내걸고 위기에 대한 해결사로 나서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경찰노조의 움직임은 정부의 통치 능력 약화를 상징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한 ‘지도자’를 찾고자 하는 태세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공격이 부쩍 늘고 있는데 이 또한 파시즘이 대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결국 현재와 같은 준혁명적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이 권력 장악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다음 차례는 파시즘한테로 넘어가게 간다. 그래서 중간계급의 다수를 노동자 혁명 쪽으로 전취하고 경찰 같은 억압기구의 내부 규율을 해체할 수 있도록 노동자계급의 공세적인 투쟁이 필요한 때다. 그러나 그리스공산당이나 급진좌파연합 지도부들은 노동자혁명에 반대하고 기본적으로 선거를 통해 의회 다수를 장악하여 바꿔나가겠다는 노선을 고수하고 있어 지금 같은 준혁명적 시기에 파시즘의 대두를 위한 길을 열어주고 있는 꼴이다. 그리스 혁명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전략과 지도부가 필요하다. 의회주의 개량주의 정당이 아니라 새로운 혁명정당이 필요하다. 다행히 지도부의 의회주의와 개량주의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많은 평당원들이 있고, 이들 외에 전투적 현장활동가들, 신타그마광장 점거를 주도한 청년층들이 있어 이들 모두를 권력 장악 전략으로 규합할 혁명당이 빠르게 건설되어야 한다.  

 

 

유럽연합 탈퇴냐 고수냐? - 허구적인 딜레머

 

  혁명전위당의 부재로 인해 그리스 인민은 지금 잘못된 딜레마에 갇혀 있다. 유럽연합 탈퇴냐 아니면 유럽연합 고수냐 하는 두 가지 자본주의적 ‘대안’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물론 이것들은 전혀 대안이 아니다. 유럽연합 고수는 위와 같은 긴축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기본권을 말살하는 위기 전가를 통해 그리스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긴축으로 인해 공황이 더욱 심화되고 경제 파탄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공산당과 몇몇 소규모 좌파들, 그리고 극우 세력들이 주장하는 유럽연합 탈퇴는 어떠한가? 그것은 유로화를 포기하고 원래의 그리스 통화인 드라크마화를 다시 채택하는 ‘독립적인 자본주의 그리스’로 복귀하는 길이다. 이 독립 자본주의 그리스는 유럽연합 내 다른 자본가 국가들과의 경쟁 압박 속에서 더 혹독한 긴축과 재정감축을 위해 노동자 민중을 쥐어짜는 데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계급이 지배하는 그러한 그리스일 것이다. 유로화에서 이탈하는 데서 오는 초인플레와 실질임금 대폭 하락, 그리고 그리스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국제금융자본가 집단과 유럽연합 지배계급들에 의한 그리스 경제의 포위 봉쇄에 대해 독립적인 자본주의 그리스는 경제파탄의 고통을 온통 노동자 민중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리스공산당이 노동자혁명의 길을 회피하고자 극우세력과 손 붙잡고 제시하는 EU 탈퇴라는 ‘대안’은 노동자 민중들을 바로 이러한 상황으로 내모는 것일 뿐이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어느 일국에서의 노동자혁명과 그것의 남유럽 확산, 나아가 전 유럽적 확산이 아닌 한, 탈퇴하거나 고수하거나 현 자본주의 공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매 한 가지이고, 어느 쪽이든 자본가계급의 위기 전가 공격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제를 탈퇴냐 고수냐 사이에 선택하는 방식으로 제기하는 것은 그리스 노동자계급을 허구적인 딜레마에서 허우적거리도록 몰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스 노동자계급이 극우세력과 함께 민족주의적 해결책을 찾는 것은 자멸적이다. 그리스 노동자계급만이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남유럽의 모든 노동자계급들이 갈가리 찢겨서 각자 ‘자국’ 지배계급과 동맹하여 민족주의적 해결책을 찾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EU 각국의 노동자계급에게 탈퇴는 각 민족국가 지배계급의 노리개감으로 전락하는 길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유럽의 노동자계급은 전 유럽적 혁명전략1)을 추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일국으로부터 혁명이 시작하더라도 그 혁명의 전 유럽적 확산을 통해서만 오직 최종 승리할 수 있다. 이미 유럽연합이라는 준연방적 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노동자혁명 전략은 유럽연합 전체 노동자계급 차원의 전략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현실성을 가질 수 없다.

 

 

유럽연합 탈퇴가 아니라 전 유럽 노동자혁명!

 

  자본주의를 살려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이러한 대안들은 모두 가짜 대안이다. 유일한 진정한 해결책은 ‘노동자 살리기’라는 정반대의 전제에 입각한 대안이다. 긴축으로부터 그리스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생활임금과 사회보장과 노동기본권을 살려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리스 국경을 넘어 전체 유럽 노동자들의 투쟁을 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투쟁이 전 유럽 차원에서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으로 나아가고, 유럽 자본가계급에 대한 수탈에 기반한 사회주의 계획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스탈린주의 진영에서는 그리스공산당을 혁명적 전위세력인 것처럼 추켜세우며 유럽연합 탈퇴를 옹호하고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 살리기를 전제로 하는 이 가짜 대안을 마치 혁명적 대안인 것처럼 꾸미고 있다. 그리스 탈퇴가 곧 유럽 혁명의 도화선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유럽연합 탈퇴는 ‘일국적으로 고립된 국가 및 그 민족국가 통화체제로의 복귀’를 낳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에서 변혁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이어서 “[유럽연합 탈퇴를 통해] 그리스 노동자계급이 유럽자본주의 착취사슬 중 가장 약한 고리를 끊어낸다면 이것이 남유럽과 유럽 전역의 연쇄적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노정협, 노동자정치신문 83호, ‘2012년 격화일로의 유럽 정세’)

 

  그러나 위에서 밝힌 것처럼 탈퇴는 ‘변혁’과 아무 관계가 없다. 또한 “착취사슬 중 가장 약한 고리를 끊어내는” 일국 혁명 및 혁명의 확산과도 아무 관계가 없다. 오히려 유럽 노동자계급을 각 민족국가 지배계급의 노리개감으로 전락시키는 길을 닦는 것이고, 그리스에서는 유럽연합 고수 못지않게 노동의 생지옥으로 몰아가는 길이다.

 

  “그리스에서 변혁”이나 “착취 사슬 중 가장 약한 고리를 끊어내는” 일국 혁명은 유럽연합 탈퇴냐 고수냐라는 허구적인 딜레마를 내던져버리고 오직 전체 유럽 노동자계급의 전 유럽적 혁명전략을 추진하는 데서만 성공할 수 있다. 유럽연합 탈퇴를 통한 독립적인 자본주의 그리스가 아니라 사회주의유럽합중국2)이라는 목표 속에서만 약한 고리를 끊어내는 일국 혁명이 국제 반동에 의해 와해되지 않고 국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연대 속에서 혁명의 연쇄적 확산을 위한 강고한 혁명 기지로 복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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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

 

1) 이에 대해서는 양효식, <혁명> 창간준비 5호, ‘유럽 위기와 전 유럽적 노동자혁명 전략’을 참조할 것.
2) 위 노정신 인용글은 레닌이 유럽합중국 슬로건을 비판한 사실을 들어 “사회주의 유럽합중국 구호”가 “일국혁명과 세계혁명을 대립시키는 오도된 국제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레닌 당시 ‘유럽합중국’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공화주의 유럽합중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군주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유럽합중국‘ 슬로건이 일국의 부르주아 혁명 과제를 건너뛰고서 전체 유럽에 공화주의가 들어설 수 있는 것처럼 오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연합 내 어느 일국에서 전 유럽적 혁명으로 ‘건너뛰어’서는 안 되는 일국적으로 특수한 혁명 과제가 남아 있는가? “일국혁명과 세계혁명을 대립시키는” 것은 사회주의 유럽합중국 노선이 아니라 스탈린주의의 ‘일국 사회주의’ 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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