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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3호] 트리폴리에서 보내온 글 - 이것은 철저한 민중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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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폴리에서 보내온 글]

 

이것은 철저한 민중혁명이다!

 

 

번역 : 양재훈

 

[편집자] 이 글은 리비아 혁명의 한 참가자가 미국의 인터넷 신문 ‘사회주의노동자’(SocialistWorker.org)에 보내온 9월 20일자 반론 기고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인터넷 신문을 발행하는 <국제사회주의자조직; ISO>은 8월 23일자 ‘리비아에서 실제로 승리한 것은 누구인가?’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사실상 리비아에서 승자는 리비아 민중이 아니라 나토(NATO)라는 취지의 주장을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기고 글은 리비아 혁명은 “철저한 민중혁명”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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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은 철저한 민중혁명이었다. 트리폴리는 트리폴리 바깥의 반군에 의해 해방된 것이 아니다. 안으로부터, 8월 20일 트리폴리 시 전역의 많은 지구들에서 민중봉기가 시작되었다. 21일 낮에는 다수의 지구들에서 카다피 보안군이 완전히 박살났고, 다른 지구들에서는 무너져가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어 반군들이 처음으로 트리폴리에 들어와서 보안군 잔당들과 교전을 벌였다.
  매 결정적인 국면마다 혁명을 추동한 힘은 대중들이었다. 벵가지와 서부 도시 진탄의 최초 봉기에서든 트리폴리 및 그 주변 지역의 봉기에서든 주민 대중들이 기본 동력을 이루었다.

 

  오늘(9월 20일) 트리폴리의 거리들은 일반 민중들이 장악하여 다스리고 있다. 트리폴리 지구들마다 인민위원회가 설립되었는데 각 지구 인민위원회는 산하의 무장한 소 지구위원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무장 소 지구위원회들은 그들 지구로 들어오고 나가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고, 현재 경찰이 없는 상황에서(경찰은 이제 막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실상의 치안행정 당국 역할을 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 리비아인 친구 하나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세상이 다 뒤집어졌어.” 지구 인민위원회들은 보안부대 건물들부터 카다피 궁에 이르기까지 구 지배계급 권력의 심장부들 내부를 공개했다. 누구든 지금 카다피의 별궁들을 거닐면서 구경할 수 있고, 보안부대 문서들을 열람할 수 있다. 지구 인민위원회들은 카다피의 저택들과 교도소들을 접수하여 일종의 박물관 같은 것으로 바꿔놓았다. 평범한 리비아 인민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돈으로 지은, 카다피의 딸 아이샤의 저택에 딸린 거대한 수영장은 이제 공공 수영장으로 바뀌었다. 몇몇 지구들에서는 주민들이 호텔과 레스토랑을 접수하여 카다피를 지지하는 그 소유주들을 내쫓고 주민들 스스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 봄 혁명 이후 이집트에 충만했었던 그 인민의 자기 권력 분위기, 불가능한 것을 상상했던 그 동일한 분위기가 여기서도 존재한다. 

 

 

2. 현재 혁명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세력들이 여럿 있다. 1) 지난 2월의 봉기 첫날 이래 트리폴리에서 운동을 이끌어온 트리폴리의 혁명적 지도자들. 이들은 나토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거의 없었다. 2) 트리폴리 출신 혁명가들로서 외부에, 벵가지나 튀니시아나 기타 외지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한 사람들로 지금 트리폴리로 돌아오고 있다. 3) 저명한 성직자들이 이끄는 이슬람주의 세력들. 4) 벵가지에 근거지를 두고 나토의 지원을 받는 국가과도위원회(NTC), 그리고 특히 그 안의 내각 역할을 하고 있는 NTC 집행위원회. 5) 트리폴리 출신 군 세력. 이들은 두 파벌로 갈라졌는데, 하나는 이전에 이슬람주의자였던 압델 하킴 벨하지의 지휘 아래 있고, 다른 하나는  이전에 카다피 측근들이었던 인사들의 통제 아래 있다. 과거 미국 CIA가 카다피와 공모하여 체포해서 고문하고 투옥했었던 벨하지는 동부 리비아에서 일정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고, 카타르 정부가 뒤를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리비아 전역에서 온 약 40개의 반군 카타이바(병단).

 

  이들 카타이바는 대부분이 소도시나 부족에 기반하여 조직되었고 재정도 보통 자체 독립적으로 꾸리고 있다. 많은 경우 카타이바들은 리비아 밖의 부유한 사업가들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카타이바들은 위에 언급한 집단들 그 누구의 권위 아래에도 들어가는 것을 거부해 왔다. 예를 들어 미스트라 병단은 트리폴리의 일부 지구를 접수하여 인민위원회들과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들 세력 가운데 최종 승자가 누구일지는 전혀 불확실하다. 미국이 미는 NTC는 매우 취약하며 민중의 지지도 제한되어 있다. NTC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미 벵가지를 포함한 여러 도시들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9월 중순 현재 NTC는 여전히 나라의 지배권을 놓고 다양한 반군 그룹들 및 정파들과 경쟁하고 있다.
동시에 NTC는 서방과 끈끈한 관계를 갖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현지의 UN군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해야만 했는데, 이는 많은 부분 거세게 올라오는 민중들의 압력 때문이었다.            

 

 

3. 반란 세력이 사분오열되어 있는 것은 카다피 지배의 특징에서 비롯한 결과물이다. 석유 자금(오일머니)에 의존하여 장기 집권한 카다피는 다른 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류의 정치 제도들을 발전시키지 않고서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리비아에는 집권당 같은 것이 없다. 관료집단도 그 규모가 매우 작으며, 군대도 취약하고 분열되어 있다. 카다피의 리비아에서 권력은 대개 비공식적이며, 카다피가 석유 자금을 하사하여 키우는 충성파 ‘장학생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행사되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인맥을 형성했는데 그 정중앙에 카다피가 있었다. 지배계급의 기반은 극히 협소했다. 일부 부족, 카다피 일가, 그리고 일군의 보안기관들이 카다피가 하사하는 ‘석유 장학금’의 주 수혜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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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에 리비아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전환했을 때도 경제 개방으로 수혜를 본 것은 지배계급 가운데서도 아주 소수의 일부 층뿐이었다. 이집트, 튀지니, 시리아의 혁명과는 달리 지배계급의 한 부분이 이탈하여 반란 진영으로 넘어온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리비아 부르주아지의 이 부분, 특히 이전의 군 장성들과 각료들, 주요 기업가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의사, 변호사 같은 중간계급은 자신들의 세력이 거의 없는 가운데 전적으로 궐기한 민중들의 힘에 의존하고 있다.
  이 대중 동력 또한 카다피 지배의 특수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리비아 경제는 극히 미분화된 상태로서 대외무역이 거의 다변화되어 있지 않다. 카다피 집권 40년 동안에도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석유가 나라의 일차적인 경제활동이다. 몇몇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개발 프로젝트를 차치하면 국가 재정지출의 대부분이 카다피 ‘장학생’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 아니면 대외 사업들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노동자계급도 규모가 극히 작다. 이웃 이집트와 튀니지에 비해 훨씬 작다. (다름 아닌 석유 부문 자체가 압도적으로 외국인 이주 노동에 의존하고 있고, 소비재는 대부분 수입하고 있다.)

 

  동시에 카다피 치하에서 인민들의 삶은 점점 더 곤궁해졌다. 집세와 식료품 가격이 치솟았는데도 임금은 거의 1980년대 수준에서 동결되었다. 약간의 국가 보조금도 신자유주의 전환으로 삭감되었다. 1990년대에 계속되는 유엔 금수 조치로 인해 석유부문의 시설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 시기에 국가 탄압도 계속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들 요인이 결국 혁명을 낳았다. 그러나 이집트, 튀니지와는 달리 강력한 노동자계급의 결여(수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정당들과 시민사회의 부재, 그리고 여기에 더해 시위 초장부터 카다피의 강경 학살 진압으로 리비아의 투쟁은 무장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무장 투쟁은 구 지배계급에서 떨어져 나온 분파의 지휘 아래 들어갔지만, 이것은 무작위의 우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반란에 나선 청년들은 자신의 부족이나 출신 소도시들에 기반을 둔 혁명 그룹에 들어갔고, 어느 사업가가 자신들에게 무기와 차량을 줄 수 있느냐에 따라 갈렸다. 반란자들의 정치적 수준은 매우 낮다. 반군의 승리에 재앙처럼 따라붙은 사악한 인종주의도 이 때문이다.

 

 

4. 혁명의 민중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리비아에서 정치구조의 취약성으로 볼 때 혁명으로부터 좌익 세력이 솟아나올 전망은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카다피 치하에서 그러한 전망은 더 희박했었다. 그리고 지금 혁명은 리비아 사회에 그러한 상황 발전이 일어날 공간과 여지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 조건이 빨리 오지 않을 수 있다. 거기에는 경제의 재편과 노동자계급의 성장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리비아는 역사상 처음으로 기회를 맞고 있다. 이 이유만으로도 이 혁명은 지지받아야 한다. 더욱이 이 혁명의 승리가 아랍 세계 전역에 걸쳐 -- 특히 시리아와 예멘에서 --  봉기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정상에 오를 세력이 카다피와 비슷한 방식으로 지배를 계속하리라는 것은 가능하다. 누가 리비아 혁명의 궁극적인 승리자가 될 것인지를 말하기에는 지금 너무 이르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최종 결말을 결정하려고 하는 세력이 누군지 알고 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계속해서 혁명을 자신들의 이익에 종속시키려고 한다. 제국주의 세력들은 반란 진영 가운데 국민적 기반을 결여한 것으로 보이는 세력을 밀어 왔다. 그리고 이것은 아랍 혁명들의 행로에 대한 통제권을 틀어쥐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저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자신들의 필요에 복무하는 제한된, 관리된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미국에서 활동가들에게 놓인 주된 임무는 이러한 현실과 대면하고, 리비아 혁명이 성장할 공간을 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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