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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3호] 사회주의 전면화만이 민주대연합을 잠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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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전면화만이 민주대연합을 잠재울 수 있다

 

- 진보대통합에 드리워진 왜곡과 허위

 

 

고민택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구의 눈으로 보더라도 지금 세계는 대격변의 시기로 들어서 있다. 적어도 지난 한 세대 동안 세계를 풍미했던 일체의 사상과 이념을 포함해 지구촌 사람들이 ‘그러려니’ 생각했던 통념으로는 현 시기 몰아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다. 이 점에서는 지배계급이든 피지배계급이든 다르지 않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모두 지금 위기의 소용돌이로 빠져 들고 있다. 지배계급 자신도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는 지배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우며, 피지배계급도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정치적 전망과 구체적 대안을 세우지 못하고는 앉아서 고스란히 고통과 희생을 맞을 수밖에 없다. 누가, 어느 계급이 세계를 장악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지금 눈앞에서 피터지고 피 말리는 미증유의 대립과 갈등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지금 세계는 사실상의 전쟁 상태, 그것도 부분적, 지엽적이 아닌 총체적인 전쟁 상태에 돌입해 있다.

 

 

격변하는 세계

 

  미국의 패권도, G20을 통한 공조로도, 새로운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으로서도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지탱하거나 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매일매일 폭로되고 있다. 어느 특정 지역, 특정 국가도 이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세계가 단지 금융으로만 엮여 있는 것이 아니라 금융(세계)화 훨씬 이전에 이미 생산의 세계화, 시장의 지구화에 진입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생태계는 이미 지구적 차원에서, 아니 오직 지구적 차원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은 자기 홀로, 완결적으로 운동할 수 없다. 자본운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운동을 보장해주는 상부구조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국가, 부르주아 국가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자본은 반드시 국적(단일 국가든, 연방/연합국가든)을 가져야만 한다. ‘초국적’자본이라는 말도 국적을 벗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러 국가에 걸쳐 있다는 표현이지만 그렇더라도 반드시 모국을 필요로 한다. 자본의 상부구조, 즉 국가는 분할되어 있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세계(단일)국가는 불가능하다. 자본은 이미 지구를 단위로 운동(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상부구조를 지구 차원에서 가질 수 없는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바로 이 모순이 지금 세계적 차원에서 폭발하고 있는 중이다. 북아프리카, 중동, 유럽(연합)에서 나타나고 있다. 위기 전가를 둘러싸고 국가(자본) 사이의, 더 근본적으로는 계급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와 같이 시대의 격랑이 몰아치고 있는 중에 지금 한국사회 한쪽에서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뒤죽박죽으로 펼쳐지고 있는 이른바 ‘진보대통합(당)’ 이야기는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 아무리 한국사회가 거쳐 온 지난 역사와 구체적 현실을 감안한다 해도, 특히 앞에서 이를 이끌고 있는 세력(정파)과 인사들이 보이는 행태는 안일한 역사인식, 한가한 정세인식 나아가 부패하고 왜곡된 계급의식이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뿌리

 

  사실 민주대연합이든, 진보대통합이든 통시적으로 보면, 비록 동의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한 번쯤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간주하고 넘어갈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끼친 폐해는 고스란히 현재형으로 남아 있으며 앞으로 그 폐해를 다시 주워 담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생각하면 너무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진보신당 당대회와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를 통해서 결정되거나 정리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제 각각 아전인수 식 해석을 해대고 있는가 하면 또 다시 그것들을 추진하기 위해 암중모색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누구라도 2012년 총선과 대선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반복해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쨌든 겉으로 진보대통합은 일단 좌초했다. 또한 다시 추진되더라도 적어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을 포함하고 거기에 더 덧붙이는 방식의 진보대통합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이와 함께 진보대통합을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진보대통합 성사를 통해, 그 속에서 정치적 모색을 하고자 했던 조직(단체)의 의도도 전부든, 부분적으로든 타격을 입었다.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 결과를 놓고 그것을 성과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겠으나 그들이 능동적으로 펼칠 수 있는 정치력은 거의 없다. 그저 거기까지다. 민주노동당이 참여당과 통합되는 것은 분명 역사적 퇴보다. 그러나 확인된 것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명분과 힘 모두 너무나 형편없다는 것이다. 누워서 침 뱉기거나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조금 더 내려가서 보면 진보대통합론자들 중에도 민주대연합을 배제해야 한다는 부위와 ‘선’ 진보대통합을 말하는 부위가 섞여 있다. 전자는 후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후자는 단지 전자를 활용하거나 묶어두고자 할 뿐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과정을 통해 또 하나 확인 된 것은 이제 민주대연합을 부정하는 진보대통합론자들의 추진력은 바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설령 민주노동당 당권파(주류)가 진보대통합을 어떤 형태로든 받는다 해도 주도권은 여전히 그들에게 있다. 그렇다고 진보대통합론자들이 민주노동당을 배제하고 선 진보대통합을 말하는 세력을 규합해 독자적으로 정당을 구성할 수도 없다. 명분도 세력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럴 능력이나 의지가 애초에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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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대통합은 처음부터 자가당착에 빠져 있었다. 만약 민주노동당 전부를 떨쳐 낼 의사가 없었거나 민주노동당 일부라도 규합할 수 있는 근거를 스스로 갖지 못했다면 진보대통합은 시작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이 진보대통합에 응했던 이유가 바로 민주대연합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확정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진보대통합의 실질적인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보신당의 주류 역시 시차가 문제일 뿐 민주대연합을 받아들일 각오(?)가 돼있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진보신당 주류의 입장에서 보면 진보대통합이 좌절된 것이 아니라 민주대연합의 수순이 달라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 현 사태의 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대연합과 진보대통합 사이에 경계와 차이를 두려는 것은 허상일 뿐이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서 뻗은 두 가지이다. 논리적, 정치적 근거를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다. 그 둘은 이미 물적, 구조적, 역사적으로 끈끈하게 묶여 있다. 민주노동당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본가 정당과 결별한 적이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이면에서는 그들 정권의 협력자 역할을 하거나 그들 정권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얻고자 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이명박 정권 이후로 이러한 행태는 더욱 노골화, 전면화 되었다.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진보양당은 ‘야권연대’ 혹은 ‘반MB연대’라는 이름으로 자본가 정당과의 관계를 더욱 밀착시켜 나갔다. 이 점에서 진보대통합과 민주대연합 사이에 실질적 차이는 없다. ‘야권연대’는 그들 모두에게 상수다. 다만 2010년 6. 2 지방선거를 계기로 민주대연합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정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야권연대’에 대해서는 진보양당이 더 목을 매고 있다. 쌍차투쟁, 현대차비정규직 투쟁,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투쟁 등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투쟁 역량을 강화하기보다는 정반대로 ‘야권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약화시키는 행태마저 주저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참으로 가관이다. ‘야권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하고 처지를 개선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세상에 노동자의 투쟁을 약화시키면서 어떻게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하고 처지를 개선할 수 있단 말인가? 노동조합 상층 지도부 내에서 진보대통합과 민주대연합을 놓고 마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이념적, 노선적, 전략적 차이가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이해관계의 차이, 정치적 습관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정치적 혼동과 혼란에서 나오는 차이일 뿐이다. ‘야권연대’의 논리적, 현실적 귀결점은 ‘연합정권’이다. ‘연합(공동)정권’을 염두에 두지 않는 민주대연합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대연합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진보대통합이 이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결론적으로 진보대통합과 민주대연합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말장난에 불과하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노동당 배제를 불사한 이러저러한 형태의 ‘진보재구성’도 그것이 진보정당 맥락을 고수하고 있는 한 진보대통합론자들과 질적 차이를 가질 수 없다. 기껏해야 정치적 아마츄어리즘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진보재구성’도 진보대통합과 민주대연합 자장 안에 있다. ‘새노추’의 ‘새로운’은 ‘새통추’의 ‘새로운’과 다를 게 없다. 둘 모두 ‘탈노동’, ‘탈계급’을 바로 새로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새통추’가 주로 세력을 우선적으로 사고하는 것에 비해 ‘새노추’는 가치를 중시한다고 하는데 ‘새노추’가 말하는 가치가 다름 아닌 ‘탈노동’, ‘탈계급’이다. 둘 모두 ‘민주노총당’, ‘운동권당’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물론 ‘민주노총당’, ‘운동권당’이라는 개념과 현실에 극복할 요소가 분명 있다. 그러나 그들이 부정하는 맥락은 똑 같이 ‘탈노동’, ‘탈계급’ 맥락에서이다. 단지 하나의 조직을 같이 하지 않겠다는 것만이 그들 사이의 차이일 뿐이다. 이들이 자력으로 의미 있는 정치세력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역사의 복수와 대중의 역 반란

 

  민주대연합이든 진보대통합이든 그들이 말하는 근거는 대중이 그것들을 요구하고 있으며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것이야말로 대중을 속이는 것이자 대중을 우습게 아는 것이다. 대중이 요구하고 있고 바라고 있는 것은 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며 고통을 강요하는 현실을 끝장내야 한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안철수 현상을 통해 극적으로 표출된 것도 바로 이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어떤 논리와 주장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중에게 비친 다양한 형태의 진보세력(진영) 상층 인사들은 더하거나 뺄 것 없이 모두 부르주아 정치권, 기존 정치권의 일원이다. 그들의 지난 이력, 그들이 말하는 온갖 정치적 언사는 대중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진보대통합, 민주대연합 할 것 없이 그들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대중에게 완전히 무시, 외면당했다. 안철수 현상은 특히 진보세력에게 대중이 가하는 역 반란 성격을 짙게 내포하고 있다. 자승자박이 딱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대중이 그토록 무시하고 외면하는 기존 정치질서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그들은 거꾸로 호소한다. 자신들은 아직 기존 정치에 온전히 편입되지 못했다고. 대중이 이미 기존 정치권, 기존 정치질서, 기존 정치행태에 신물을 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진보대통합이나 민주대연합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은 대중이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이다. 그것만이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기존 정치권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스스로 그러한 정치 지형과 정치 구도를 만들어 놓고 대중들로 하여금 그것이 마치 대중 자신의 것인 양 강제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고는 다시 그것이 대중의 뜻이라고 둔갑시키고 있을 뿐이다. 대중이, 노동자가, 민중이 원하는 것은 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끝장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대 그 가능성을 기존 정치권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안철수 현상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당장 대중이 혁명에 나설 태세가 갖춰졌다는 것이 아니다. 아직은 안철수를 통해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중 탓이 아니다. 대중이 놓여(갇혀)있는 정치 지형과 정치 구조가 대중들로 하여금 자기가 자기를 배반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대중은 이명박을 택했다. 마치 노동조합에서 온건파와 강경파 지도부를 대중이 정세에 맞게 선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미 대중과 기존 조직(정당이든, 노동조합이든, 시민단체든)지도부 사이에는 냉정한 실리적 계약 관계가 구조적으로 짜여 져 있다. 서로를 믿지 않고 있다. 거기에는 그 어떤 정치적 공감대도 없다. 모든 것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다. 그것을 서로가 용인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이 뒤집어진 이명박 현상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기존 부르주아 정치권에 대한 반발일 뿐 진보대통합이나 민주대연합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대중을 우습게 아는 것이다. 대중이 진보대연합, 민주대연합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설령 그것들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들이 가져다 줄 결과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아서다. 물론 자본주의가 위기 속에서도 잠깐 잠깐 경기 상승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보대통합, 민주대연합도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권은 물론 진보정당에게도 대중이 가하는 역사적 복수다. 대중의 이런 선택을 탓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은 현재로서는 없다.  

 

 

새로운 국면

 

  진보대통합이든 민주대연합이든 당분간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가 끝난 후 마치 철지난 바닷가에 쓰레기만 덩그러니 남은 것처럼 개인들의 갖은 원망과 한탄만이 나뒹굴고 있다. 정작 여기에 응답해야 할 책임 있는 인사나 세력들은 침묵에 들어갔다.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가 저지시킨 것은 참여당과의 통합이 아니다. 진보신당 당대회와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가 남긴 것은 노동자계급을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도 이런 행태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니 더욱 기를 쓰고 달려들 것이 분명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더라도 노동자계급, 특히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지금은 새로운 국면이다. 물론 노동자계급이 진보대통합 좌초를 반겨야 할 근거는 미약하다. 진보대통합을 어렵게 몰아간 세력이 다름 아닌 민주대연합 세력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은 진보대통합과 민주대연합을 패퇴시키기 위한 운동과 투쟁을 벌이지 못했다. 그럴 수 있는 조직적, 정치적 태세를 갖추고 있지 못한 때문이다. 사실 진보대통합과 민주대연합이 기승을 부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이유는 없다. 아니 실망할 겨를이 없다. 말했듯이 진보대통합이든 민주대연합이든 결코 멈추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지금부터야말로 개량주의 지도부와의 지도력 다툼을 위한 투쟁을 전면적, 본격적으로 벌여 나가야 할 때다.

 

  진보대통합이든 민주대연합이든 그것들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은 사회주의를 전면화 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진보대통합으로 민주대연합을 꺾을 수 없다. 진보대통합이야말로 민주대연합으로 나가는 관문일 뿐이다. 진보대통합이 오히려 민주대연합에 의존하고 있다.  참여당과의 통합을 저지(?)하는 것으로 진보대통합의 올바름과 승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대연합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진보대통합을 먼저 부정해야 한다. 진보대통합을 부정하는 단 하나의 방안은 사회주의를 전면화 하는 길 뿐이다. 개량주의 지도부는 노동자계급에게 아직 그럴 힘이 없다고 말한다. 노동자계급이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말하기 앞서 먼저 확인할 것이 있다.

 

  대중을 말하기 전에 그들 자신이 자본주의 철폐와 사회주의 건설은 불가능하거나 심지어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백번을 양보해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진보대통합, 민주대연합은 자본주의 철폐, 사회주의 건설로 나가는 경로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민주의, 의회주의를 통한 자본주의 철폐, 사회주의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서구 사민주의 정당의 역사가 생생히 증명하고 있다. 지금 당장 전 세계 사민주의 정당의 모습을 보라. 거기에 그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는가? 오히려 그들 정당이 앞장서 노동자계급을 자본주의 체제 내에 묶어두고 있지 않은가! 이 나라에서는 다를 수 있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아니 어느 나라든 근거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역으로 묻는다. 그렇다면 그 길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는가를. 방법은 있다. 우선 그들 자신이 현재의 행보를 중단해야 한다.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노동자계급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혁명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혁명정당 건설을 통하지 않고 자본주의 철폐,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노동자계급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이 방안이 아닌 그 어떤 다른 우회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정당 건설이 가능하냐고? 우선 진보대통합, 민주대연합이 바로 그 가능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부터 보아야 한다. 진보대통합 논의 과정에서 서로들 자신들은 혁명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앞 다퉈 말하는 어이없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능하냐는 것도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떠나 말할 수 없다. 스스로 혁명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공공연히 말하면서 가능하냐고 묻는 것 자체가 허구다. 물론 가능하다. 혁명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정치활동, 조직활동을 일관되고 끈질기게 펼쳐나가는 것이다. 벌어지고 있는 대중투쟁을 진보대통합, 민주대연합을 위한 도구로,  ‘야권연대’를 위한 지렛대로 삼거나 거기에 가두지 않고 노동자계급이 권력이 장악하기 위한 과정과 경로로 계속해서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그럴 능력이 있냐고? 이제까지 왜 하지 못했냐고? 이제부터라도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제까지 하지 못한 것이 앞으로도 그것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아니 이제껏 제대로 시도해 본 적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시도도 하지 않고 능력을 키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시도한다고 해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든지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시도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나올 게 없다. 오히려 진보대통합, 민주대연합이야말로 성공했을 경우가 노동자계급에게는 그것이 바로 새로운 재앙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 세계적으로 계급투쟁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고 있다. 위기가 노동자계급 투쟁을 저절로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의식적인 노력과 실천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태세와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힘이 미약하거나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도 사태의 일면일 뿐이다. 그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개량주의 정치가 활개를 치게 놔둔다면, 개량주의 지도부를 계속해서 허용한다면 노동자계급의 힘을 키울 수 없으며 정치적 성숙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

 

  진보대통합, 민주대연합을 둘러싼 한 바탕 잔치는 끝났다. 아니 끝장내야 한다. 2012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요구를 들고 투쟁에 나설 태세와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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