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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루시드 폴을 따라

내 마음, 루시드 폴을 따라

오늘은 약간 외도를 해볼까?

연주법이나 녹음상태, 멤버의 경력이나 장르와 사운드를 논하는 대신 가사를 따라가 보는 거다. 그들의 가사에 내 마음의 흐름을 실어보는 거다. 딱, 그렇게 듣고 싶은 음악이 루시드 폴의 음악이다. 특히 이번 음반은 바람이 가듯, 구름이 떠다니듯, 물결이 흐르듯... 그렇게 흘러가고 있으니 더욱. 가볍게 그들의 흐름을 따라 내 마음도.

Track 1 물이 되는 꿈.

꿈.

어릴 적 나는 구질구질한 골목길을 지나 군인 아저씨들을 만나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넓고 푸른 들판이 나타나는 꿈을 자주 꾸고는 했다. 눈앞에 순간적으로 펼쳐지는 들판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나는 너무나도 행복하게 웃으며 그 들판 위를 뛰어다녔다.

꿈이란 게 원래는 잘 기억이 나질 않기 마련이지만 그 꿈의 인상은 참 강해서 나는 중학교 때까지도 종종 그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생각한다. ‘와! 또 왔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이후로는 그런 아름다운 꿈을 한 번도 꾸지 못했다.

비슷한 꿈으로 폭포수가 떨어지는 계곡의 해수욕장에 놀러가는 꿈이 있었지만 그 꿈에서 나는 언제나 즐기지 못하고 헤매이기만 했다. 물에 뛰어들려 하면 갑자기 물이 없어져 들어가지 못하고 미끄럼을 타면 어두운 터널 속에서 끝이 나타나지 않아 울고 말았다.

그런 나의 어릴 적 꿈은 ‘여자 군인이 되는 것’ 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씩씩한 여자 군인 언니들이 어찌나 멋져 보였던지 나는 초등학교 2,3 학년 때까지 누가 뭐래도 군인이 되겠다고 고집하고는 했다. 그 이후의 꿈은 교사였고 그 이후의 꿈은 밴드의 보컬이 되는 것이었다. (곧 능력의 한계를 깨달았지만...)

꿈속에서 물과 꽃과 풀과 나무와 나비와 곤충을 보고 행복해하던 아이가 현실에서는 군인이 되고 싶어 했다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기도 하다.

나는 물과 꽃과 풀과 나무를 좋아했지만 그들은 내 주변의 대상이었을 뿐. 한 번도 애정을 느껴본 적은 없다. 그러던 내가, 약 10여 년 전부터 그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애정을 느낀다는 것은 그들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공감하는 것이다. ‘물아일체’라고 했던가. 그러나 ‘물이 되는 꿈’을 꾸게 되는 건 세상에 지치면서부터 시작된다. 타인의 비판에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할 때, 험한 시류에 꼿꼿이 제자리를 지키는 데 버거움을 느끼게 될 때, 복잡한 세상 더 이상 고통 받고 싶지 않을 때.

흐르는 물이 되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가 되고, 묵묵히 제 자리에서 그저 제 역할을 하는 흙이 되는 꿈.

루시드 폴의 ‘물이 되는 꿈’을 들으며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물. 물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꽃. 꽃이 되는 꿈. 씨가 되는 꿈. 풀이 되는 꿈.
강. 강이 되는 꿈. 빛이 되는 꿈. 소금이 되는 꿈.
바다. 바다가 되는 꿈. 파도가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별. 별이 되는 꿈. 달이 되는 꿈. 새가 되는 꿈.
비. 비가 되는 꿈. 돌이 되는 꿈. 흙이 되는 꿈.
산. 산이 되는 꿈. 내가 되는 꿈. 바람이 되는 꿈.
다시, 바다, 바다가 되는 꿈. 모래가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물. 비가 되는 꿈. 내가 되는 꿈. 강이 되는 꿈.
다시, 바다. 바다가 되는 꿈. 하늘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Track 5 들꽃을 보라.

그래서 김수영은 말했지.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때로는. 곧게 서 있다가 바람에 부러지는 것보다 바람이 불면 넘어졌다가도 곧 다시 일어나 제 자리를 지키는 풀의 생명력이 아름다운 것이다.

봄.
온 세상이 푸른, 눈부시게 맑은,
긴 잠을 깨우는,
봄.

봄.
저 햇빛은 붉은, 찬란하게 밝은,
세상을 키우는.
봄.

난, 대단한 게 별로 없어.
봄을 따라 왔을 뿐.

헌데,
올해도 사람들.
무정한 사람들.
날 짓밟으려 해.

참 어렵지.
사는 것,
내 뜻대로.
원하며, 사는 것.

참 두렵지.
잠시 여기 있을 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아.

누가, 나를 꺾는가.
누구의 힘으로 내 목을 꺾는가.

누가, 나를 꺾는가.
누구의 권리를 내 몸을 꺾는가.

- 루시드 폴. ‘들꽃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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