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송을 들어보렴"

2009/07/11 21:08

그들이 무섭고 싫다는 친구야, 이 방송을 들어보렴
[용산에서 쏘아올린 작은 공 ⑨] 가수 조약골 "참사 현장에서 진실을 파헤쳐갑니다"
09.07.11 09:59 ㅣ최종 업데이트 09.07.11 09:59 조약골 (dopehead)

 
 

지난 3월 어느 날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용산참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나는 당시 죽어간 용산 철거민들에 대한 노래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 현장에서 열리는 촛불문화제에 가서 같이 노래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친구에게 제안했습니다. 나의 제안에 그 친구는 제게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그 철거민들, 싸우는 것도 폭력적이고 좀 무서워서 싫어. 그런 방식이 나와는 어쩐지 맞지 않는 것 같아."

 

매우 놀랐습니다. 친구의 솔직한 대답 때문에 저는 다시 한 번 이 나라의 언론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용산의 철거민들을, 그리고 극한상황까지 몰리고 몰리다 마지막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또는 삶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고달픈 투쟁을 선택한 또 많은 사람들을 과격극렬분자로 묘사해왔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제가 사는 곳 이곳저곳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이 되고 있고, 나 역시 무주택 세입자로서 언제 어느 날 갑자기 철거민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는 경찰과 검찰에 의해 순식간에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린 용산의 철거민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 친구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고도 싶었고, 또 용역깡패들에 의해 장기간의 폭력에 노출된 철거민들이 또다시 폭력으로밖에는 저항할 수 없는 현실이 제게는 너무도 암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6월 18일 오후 1시 용산 남일당 참사 현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150일 범대위 대표자 특별기자회견'.
ⓒ 권박효원
용산 참사

 

 

참사현장을 제대로 보도할 '라디오방송'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의 철거 현장에서는 법에 대한 호소도, 이성에 대한 믿음도, 양심과 정의에 대한 신념도 말짱 도루묵이 됩니다. 오랜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쫓겨나야 하는 약자들에게 민주주의란 그저 휴지쪼가리에 갈겨쓴 낙서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 시멘트 같은 현실을 상시적인 폭력에 노출된 약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겨내고 돌파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런 무거운 고민을 안고 용산참사 현장에서 생활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저는 먼저 라디오 방송을 만들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웃 같은 저들이 망루를 짓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연들은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재개발'의 특집 인터뷰로, 참사 현장 실황중계로, 속보방송으로, 토크쇼와 공개방송 프로그램으로 하루에 두세 편씩 만들어졌고, 용산범대위 홈페이지를 비롯한 몇몇 웹사이트를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용산참사 현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계속 흘러나오게 됐습니다.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재개발' 페이지.
ⓒ 용산비대위 화면캡처
용산참사

 

 

점심시간이 되어 용산 현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무렵이 되면 저희들은 최소한의 방송장비를 챙겨 나와서 지난 1월 20일 사람들이 죽어간 남일당 빌딩 바로 그 앞에 앉아 기존 언론에서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을 쏟아냅니다. 그 소리는 반경 몇 십 미터에도 미치지 못해서 사실 라디오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족하지만 이런 앵앵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아야 생존을 위해 망루를 짓고 올라간 철거민들이 왜 그런 무시무시한 죽임을 당했는지 진실이 알려질 것 같아 저희 아마추어 디제이들은 하루라도 마이크를 놓을 수가 없답니다.

 

날이 더워서 방송 테이블 위에 파라솔이라도 치려고 하면 주변에 진을 치고 선 경찰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는 막아서고 빼앗아 가버리는 통에 저희들은 한낮의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노트북 컴퓨터가 녹아버릴 정도가 될 때까지 노래에 울분을 실어 내보내야 합니다. 파라솔을 치거나 천막 같은 것을 치려고 하면 불법농성에 사용되는 시위물품이라면서 용산경찰서에서 강제로 압수해버리기 때문에 정말 길바닥에 그대로 앉아서 방송을 틀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 라디오 방송 하나하나는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녹음되어서 언제든 다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100편 가까이 제작된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재개발의 프로그램 가운데 아마 하나만이라도 들어본다면, 이곳 용산 4구역 철거민들이 새총과 화염병으로 무장한 도심 테러리스트이고, 그래서 언제든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이들을 경찰의 최고 엘리트 대테러 진압 특수부대를 동원해 짓밟아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지역 거주민을 위한 재개발이 아니라 재벌 건설사들에게 천문학적인 이익을 안겨주기 위해 재개발이 계속된다면 사람은 언제든 죽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이 5명이 죽고 6개월이 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는 끔찍한 상황에서, 무리한 살인진압작전을 벌인 책임을 져야 할 정권은 아무런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는 채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 행동하는 라디오 활동가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용산참사 현장에 머물며 인간다운 삶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소외되고 짓밟혀온 목소리를 내보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이 버틴다면 우리도 더 질기게 버틸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이 UCC 시대라는 것은 다들 아실 테지요? 라디오 방송과 동영상 제작이 가능한 촛불미디어센터가 남일당 건물 바로 뒤편에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앞으로 몇 백편이든 몇 천편이든 철거민들 편에 서서 진실을 알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도심 한편에 텃밭을 만들어놓은 이유

 

그곳에 이제는 텃밭까지 만들어놓았습니다. 용역깡패들이 뿌리째 뽑아 짓이겨놓은 고추며, 오이며, 상추들이 이제는 제법 풍성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녹색의 식물을 보면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된다지요? 그래서 폭력이 난무하던 이곳, 사람들이 죽어간 곳에서 씨앗이 움트고 다시 생명이 자라나고 있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희망의 끈을 엮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곧 일차 수확을 하고, 다시 열무며 배추며 새로운 씨를 뿌려 아스팔트 위에 스티로폼 박스들로 만들어놓은 '행동하는 텃밭'을 확장시켜갈 것입니다.

 

  
행동하는 텃밭
ⓒ 조약골
용산참사

 

 

한 평에 일억 원이 넘는다는 도심 한편에서 이런 작물들이 자라나게 될 줄은 처음 용산에 들어와 라디오 방송을 준비하던 저도 몰랐습니다. 해골이며 목 잘린 사람이며 위협적인 문구들이 난무하던 흉흉한 철거촌 벽마다 아름다운 그림들이 그려지고, 그 아래에서 파릇파릇한 채소들이 자라나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슬슬 욕심이 생깁니다.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매일 노래를 틀다보니 용산 철거민들을 다룬 노래들도 하나하나 생겨나고 있다는 것도 제일 먼저 알게 됩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곡들이 이곳 용산에서 만들어지고 불립니다. 죽창보다 날카로운 언어들이 가을밤의 적막을 깨는 대금의 고요한 선율처럼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우리네 가슴을 뒤흔들 것입니다. 이윤밖에 모르는 탐욕스런 자본가 정권이 아무리 대테러 경찰특공대를 보내 우리의 입을 막으려한들 결국 시간은 누구 편일까요? 우리는 멕시코 치아파스 농민들에게서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결단코 진실의 소리를 알려나가려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녹색을 가장한 저들의 불도저는 도대체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까요? 포클레인의 삽날이 강하면 얼마나 강할까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분노는 점점 쌓여가고 폭발의 임계점은 당장이라도 넘어설 것 같습니다. 폭력적인 재개발을 멈추고, 용산의 유가족들이 진심어린 사과를 받는다면 어쩌면 저희도 행동하는 라디오 송출을 멈출 용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경찰을 앞세워 인권을 깡그리 무시한 채 용산 4구역 철거를 강행한다면 더 커다란 파국의 결말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끝까지 카메라와 녹음기와 마이크를 들고 그 현장에 똑똑히 서있을 것입니다.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대화에 응하라고 요구하던 철거민들이 왜 하루 만에 대테러 경찰특공대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철저히 파헤칠 것입니다.

 

  
행동하는 텃밭
ⓒ 조약골
용산참사

 

 

* 조약골 : 가수. 대추리 현장 지킴이로 활동하며 '평화가 무엇이냐' 등을 담은 음반을 냈다. 현재 용산 현장에서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재개발'> 기획 진행에 함께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곳 - 용산범대위 홈페이지 http://mbout.jinbo.net
■ <언론재개발> 블로그 http://blog.jinbo.net/yongsan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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