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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2/27
    위키 페디아에서 대안사회로(2)
    해민
  2. 2006/02/26
    부시, 청정에너지 개발을 부르짖다. - 부시의 에탄올 에너지(5)
    해민

위키 페디아에서 대안사회로

위키페디아에서 대안사회로

현장에서 미래를  제117호 

김영식 


 중세 봉건제가 맹위를 떨칠 때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한참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금 어딘가에 대안 사회의 싹이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서 대안적인 모습을 찾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흔히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서 자유로운 이용에 주목하는데, 이러한 분배의 관점에서는 그리 큰 매력은 없다. 왜냐 하면 자유소프트웨어가 아니더라도 셰어웨어나 프리웨어 등 자본의 통제를 받는 무료 소프트웨어는 널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용자들이 익숙할 때까지 무료로 공급하다가 익숙해질 때쯤 유료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고 광고 등을 목적으로 무료로 배포하는 경우도 있다. 각종 검색 엔진들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진정한 강점은 생산자-이용자 공동체에 있다. 자유소프트웨어 생산자들은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하지, 시장에서 교환할 목적으로 생산하지 않는다. 또 자유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그 공동체에 기여(노동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다(접근이 허용된다). 노동한 량에 따라(혹은 기여한 양에 따라) 차등으로 분배받는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는 비-시장적 관계(non-market relations)를 유지하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협동 노동을 이끌어 내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특히 수많은 특허를 독점하고 있는 IBM 등 컴퓨터 자본이 자유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고, 자유소프트웨어를 그들의 기계에 적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소프트웨어 분야의 독점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이고, 그 만큼 자유소프트웨어가 기술적으로도 보안상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자본마저도 자유소프트웨어에 기여하게 유도하고 있다는 의미로, 자유소프트웨어의 강한 흡입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정신은 소프트웨어 이외의 영역으로 폭넓게 확장되고 있다. 예를 들어 IPLeft(http://ipleft.or.kr)의 정보공유라이선스운동이 있고 열린-음악 운동 (http://jazzbond.soundhome.cz/OML.html)도 있다. 미국의 MIT대학에서는 강의 자료를 공유하자는 오픈 코스웨어 (Open-Courseware, http://ocw.mit.edu/index.html)운동을 펼치고 있고, 과학자사회에서는 과학저널에 공적 접근(open-access)을 허용하는 공공과학 전자도서관(http://www.plos.org/)운동을 펼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들 운동은 거의 모두 개별 노동으로 생산된 생산물을 기부 받아 이용자들에게 분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위키페디아(Wikipedia)'라는 인터넷 백과사전 운동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처럼 전 세계적으로 생산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며 거대 백과사전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 결과 불과 4년 만에 230여년 전통 과 권위의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수준을 넘어가고 있다.




 

실패한 자유백과사전 : 누페디아


 위키페디아의 이러한 성공 뒤에는 과거 누페디아(Nupedia)의 실패 경험이 있었다. 누페디아(Nupedia)는 웹을 기반으로 하는 인터넷 백과사전이었다. 누페디아라는 말은 자유소프트웨어를 나타내는 GNU(그누)에서 '누(NU)'와 백과사전(encyclopedia)에서 '페디아(pedia)'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이름에서 풍기듯이 누페디아는 리차드 스톨만의 자유소프트웨어 운동, 일명 그누(GNU) 프로젝트의 정신을 소프트웨어가 아닌 문서에 적용하여 권위 있는 백과사전을 만들어 보자는 운동(프로젝트)이었다.


그러나 누페디아의 경우 '오픈 라이선스'와 같은 정보 공유 라이선스를 채용하는 것 이외에 기존 출판과정과 다른 점이 없었다. 전문가들이 글을 쓰고 전문 편집인들이 평가하였다. 물론 일반 사람들이 참여할 공간은 주어졌지만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 일단 글이 완성되면 웹상에 올라가는데 더 이상 수정되지 않는다. 누페디아는 일반적인 웹페이지처럼 '중앙'에서 기획되고 통제되었다. 소수 편집저자 몇 명의 헌신에 의존한 누페디아 운동은 자유소프트웨어 정신을 가져온다고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물적 토대인 전 세계 생산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데 실패하였다.


다시 시작된 자유백과사전 : 위키페디아(ko.wikipedia.org)


누페디아 운동을 딛고 위키페디아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새로운 위키위키(WikiWiki)라는 웹기반 소프트웨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키위키는 지난 1995년으로 당시 미국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이 '네티즌들이 협동해서 웹 페이지를 만들어보자'는 개념에서 만든 웹 소프트웨어이다. 간단하게 협동으로 웹을 구성할 수 있는 '협동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은 컴퓨터 엔지니어인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월드 와이드 웹(WWW)의 개념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개념을 다시 살렸는데, 웹에서도 누구나 소스 코드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웹페이지의 내용을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었다.


 위키위키 웹페이지를 보면 항상 [편집edit 혹은 수정]이라는 메뉴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누구라도 웹페이지를 완전히 바꿀 수 있게 허용하는 메뉴이다. 변환된 내용은 원 저자의 허락이나 다른 누구의 평가도 없이 웹페이지에 즉시 반영된다. 각각의 페이지에는 가장 최근에 바뀐 내용과 함께 그 웹페이지가 어떻게 수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역사 history]라는 메뉴가 있다. 이것을 통해 필요하다면 다시 원상 복구할 수 있다. 참고로 위키위키는 하와이 언어로 '빨리 빨리'라는 뜻이다. 이용자가 웹페이지 내용을 읽어 보고 맘에 들지 않으면 즉시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위키위키를 기반으로 한 위키페디아 백과사전에서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새로운 단어를 추가하고 수정하고 편집할 수 있다. 위키페디아에서는 모두가 저자가 되고 편집자가 된다. 그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단어를 추가하고 편집/수정하는 작업은 전 세계에서 집단적으로 일어나며 그 결과는 누적되었다.


자유소프트웨어에서 버그가 적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소스 코드를 볼 수 있어 버그를 잡을 확률 또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수정할 수 있는 위키페디아 역시 같은 경로를 따라 가고 있다. 백과사전의 내용 중에 발견된 실수나 빠진 부분은 즉시 교정되거나 추가된다. 모든 글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깊이가 깊어지고 내용은 풍부해 졌다. 2005년 9월 추산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35만 명가량이 참여하고 있다고 있다. 그 결과 2006년 1월 현재 영어판 94만 건, 한글판 1만 9천 여 건을 비롯하여 모두 260만 건 이상의 글이 수록되어 있고, 25개국 이상으로 번역 서비스되고 있다.


위키페디아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컴퓨터 서브와 인터넷 연결 하드웨어는 미국 산디에고에 있는 검색엔진 회사 보미스(Bomis)의 짐보 웨일즈(Jimbo Wales)에게서 기증받았지만 지금은 비영리 재단인 위키페디아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아직까지 보미스에 데이터의 교환, 전력소비에 사용되는 비용을 담당하고 있다. 위키페디아의 내용은 카피레프트 저작권 가운데 하나인 GNU 자유 문서 사용 허가서로 배포된다.


역 침투


자본주이 사회에서 자라나는 대안 사회의 싹은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자본주의를 뒤덮어 새롭게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흔히 어린 싹들은 꽃도 피우기 전에 밟혀죽기도 하고, 울타리 속에 갇혀 구경꺼리로 전락하기도 한다. 또 자라나면서 가지치기를 당해 대안적인 성질이 퇴색해 버릴 수도 있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도 내외적으로 ‘가지치기’를 당하고 있는데, 외적으로는 오픈소스운동이 등장해,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시장에 편입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내적인 문제로는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를 운영에 몇몇 엘리트들이 지나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들 엘리트들의 권리는 무력으로 강탈한 것이 아니라 높은 기술력과 공동체 기여도에 따라 권위를 획득한 것으로 민주적으로 부여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위의 불평등은 자유소프트웨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몇몇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에서는 직접 선거의 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데비안 리눅스 공동체)


위키페디아도 역시 몇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언제나 자유롭게 누구나 수정할 수 있는 백과사전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각각의 글들이 질적인 수준이 다르며 허위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위 누리꾼들의 일탈행위도 무시할 수 없다.


 2005년 6월 LA타임즈는 "이라크에서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논설을 위키위키 형식으로 걸고 실험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찬성과 반대의 글이 나눠져 고쳐지는 등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포르노 사진과 비속어가 난무해서 결국 닫아 버렸다. 2005년 4월에는 교황 베네틱도 사진이 '스타워즈' 시리즈에 나오는 악의 황제 사진으로 바꿔치기 한 적도 있었다. 전직 언론인인 존 세이겐탈러(John Seigenthaler)는 자신이 로버트 케네디와 존 F 케네디의 암살에 관여했고, 이후 13년간 소련으로 이주했다는 내용이 132일간이나 수록돼 있었던 적도 있었다. 또 미국 상하원 의원들은 정기적으로 위키페디아에 올라온 자신의 이력을 자신들에게 이롭게 관리하고 있다. 또 이 위키페디아가 자본에 위협적이라면 자본가들이 자본력을 동원해서 위키페디아 전체의 성격을 변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이러한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42개 항목에 대한 조사한 결과 위키페디아가 브리태니커만큼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2005년 12월 15일)


그러나 몇 차례 홍역을 치룬 뒤 위키페디아 운영진은 운영방식을 수정하였다. 익명의 이용자들은 새로운 단어를 등록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600여명의 자원 편집자들은 잘못된 내용이나 인신 공격적 내용을 찾아서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The Guardian 2005. 12. 9).


높은 수준의 대안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수준에서건 (민주적)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관리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지배자의 역할이 아니라 자본이나 정치/문화 권력 대한 대안 장치로 그리고 소수자를 위한 보호 장치의 역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의 경험은 보다 세밀한 접근을 요구한다. 그들은 자본주이 시장관계가 사라진 그 자리에는 정보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권을 허용하였고, 이를 통해 새로운 권력관계(착취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방치하였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도 엘리트층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위키페디아 운동에서도 익명이용자들의 등록 금지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공동체내에 차별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물론 자유소프트웨어의 경우 소프트웨어 특성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고, 위키페디아의 차별 역시 소수자를 위한 역차별인지 여부 대해서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위키페디아나 초기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은 공동체 내의 사람들에게 생산과 이용 모든 면에서 차별 없는 접근권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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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청정에너지 개발을 부르짖다. - 부시의 에탄올 에너지

 

부시, 청정에너지 개발을 부르짖다. - 부시의 에탄올 연료

                                                                                      노동자의 힘 97호

미국의 부시는 대통령은 1월 31일 국정연설을 통해 미국이 ‘석유 중독증‘에 걸렸다고 비판하면서 중동의 석유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또 2월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내 생전에 중동에 대한 석유의존을 끝내거나 줄일’ 것이며 특히 6년 내에  청정에너지 연료로 평가받는 에탄올 생산기술을 실용화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5년 6월에 이미 미국 의회는 에너지 법안 하나를 통과시켰는데, 이 법안은 가솔린 공급자는 현재 30억 갤런에서 2012년에 이르면 연간 80억 갤런의 에탄올을 첨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석유자본가 집안의 부시가 이러한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보고 있노라면 돈을 위해 제비 다리를 부러뜨렸지만 이후 크게 뉘우친 놀부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놀부의 뉘우침이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은 왜일까?



 

석유에 중독된 미국


서방 정부는 거대 석유 자본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미국정부는 1930년대부터 석유와 자동차 자본의 음모에 따라 전차(전기 자동차)는 물론 대중교통수단 모두를 축소했다. 결과적으로 10명중에 9명의 사람이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현재 2억대 이상의 자동차가 미국 내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결국 미국은 마약중독자와 같이 해마다 더 많은 석유를 공급받지 못하면 살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마약중독자는 마약이 끊기면 심한 타격을 입고 행동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1973년 아랍국가의 석유 금수 조치와 1979년 이란 혁명에 의한 공급 중단 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은 서방 국가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할 석유 공급을 위협했다. 이들 국가 중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나라는 전 세계 오일의 25%를 사용하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석유 공급의 문제가 심각해지면 질수록 석유를 생산하는 아랍이나 남미국가에 대한 정치공작을 증대시켰다. 이들 국가의 부패 관료들은 자국의 석유 시설을 미국 자본가에게 헐값으로 넘겼고, 산업 인프라는 미국식으로 석유 의존적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필요한 자금은 미국에 빚을 내어 충당하였다. 자국 원주민들은 땅을 강탈당했고 이 정책을 비판한 민주인사들은 감옥으로 보내졌다. 아마존의 열대 우림은 헐벗기 시작했고 강과 바다는 오염되어 버렸다. 그들은 마치 고이율의 사채를 빌려 쓰고 장기매매를 기다리는 노동자와 같은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이라크 침공만으로는 해답이 아니었다.


미국은 아랍 국가에 대한 석유 의존도를 낮추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 왔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은 여전히 석유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가격이나 생산량을 통제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아랍국가의 국가 주도형 석유산업을 민영화 시키는 것이 이후 중동지역에 정치적 미래를 통제하기 위해 중요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전쟁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석유는 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높인다고 더 많이 생산되는 그런 종류의 상품이 아니었다. 1970년 이후 미국 내 석유 발견량은 이미 소비량의 1/3 이하의 수준이었다. 새로 발견된다 하더라도 더 깊이 매장되어 있고 발굴이 어려운 지역이고 그 양도 작아서 더 많은 비용이 필요 했다. 아랍과 남미 국가도 예전처럼 녹녹하지 않다. 이라크를 침략했지만 아직까지 저항이 거세고 인접국 이란 역시 반발하고 있다. 17%의 석유를 수입을 수입하고 있는 남미의 베네수엘라에는 '참신한' 좌파 정권이 들어서 버렸다. 또 하나 중국의 산업 발전은 전 세계 석유 수급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부시, 대안에너지 찾아 나서다.


이와 같이 부시는 환경적인 이유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유로  에탄올과 같은 청정에너지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청정에너지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비난할 이유가 없다. 특히 에탄올 연료는 청정에너지의 탈을 쓴 수소에너지(기관지 노힘 59호 참조)나 위험한 원자력 에너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려할 가치가 있는 에너지원임에는 분명하다. 


에탄올이란 정확하게 에틸알코올이라 불리는 물질로 식용으로 제작되면 술이 된다. 제조과정도 술과 동일한데, 사탕수수나 옥수수와 같은 식물을 발효, 증류해서 만들어진다. 에탄올은 가솔린처럼 태워야 하지만 산소를 다량 포함하고 있어 가솔린과 섞어 사용하면 이산화탄소(일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또 에탄올 분자는 석유 속에 포함되어 있는 탄화수소보다 분자가 훨씬 작기 때문에 더 완벽하게 연소된다. 문제가 있다면 배출되는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은 대기 중에서 오존의 광화학적스모그의 생성촉진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 분야의 선두 주자인 브라질은 자국의 막대한 사탕수수 생산량을 바탕으로 에탄올을 대량 생산해서 자동차 연료의 40%를 대체하고 있고, 미행정부는 에탄올 정제회사에 1갤런(약 3.8리터)당 51센트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어 가솔린과 혼합해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여기에 작년 여름 새로 입법화된 '종합 에너지법'도 에탄올의 이용촉진을 유도하고 있다.


환경운동가, 청정에너지 공장에 반대하며 분신자살하다?


작년 11월 브라질의 환경운동가 프란시스코 안셀모 바로스 (Francisco Anselmo de Barros)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습지대인 판타날 (Pantanal)지역에 에탄올 공장 건설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다 온몸에 가솔린을 뿌려 분신자살했다. 환경운동가가 청정에너지 생산 공장을 반대하다 분신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자본주의 에너지 시스템에서 이 청정에너지가 환경을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이후로 브라질에서는 대량의 에탄올을 목적으로 대규모 사탕수수 공장을 건설하였다. 이 지역에만 2개의 공장을 설립한 바 있다. 이 과정에 식량생산 경작지가 감소하였고, 농토를 빼앗긴 소농과 소작농이 도시빈민층으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사탕수수 경작지는 숲을 태워 확보하였다. 이렇게 설립된 사탕수수 공장에서는 식물 비료 생산과 수송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였고, 발효시키고 세척하는 과정에 배출되는 엄청난 양의 폐수는 하천과 토양을 심각하게 오염시켜 버렸다.


판타날의 지역 중 165,000㎢ 넓이를 갖는 그리스보다도 넓은 지역이 원시 지역이다. 이 지역은 파라과이 강과 파라나 강의 유량을 조절하는 스펀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650종의 조류, 190종의 포유류, 270 종의 어류 및 1,100종의 나비가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이 에탄올 대량 생산을 위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하면 망한다.


자본주의 철학은 아주 단순하다. 항상 시장 하나만 생각한다. 또 모든 것을 따로 때내서 개별적으로만 생각한다. 에너지 문제는 이미 자본가의 생존 기반마저 위협하고 있고, 전 인류의 문제로 되어 버렸다. 그런데 바로 이 점 즉, 전 인류의 문제라는 점은 자본가에게는 새로운 ‘시장’으로 보인다. 확신컨대 부시의 청정에너지 정책에는 시장만 고려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도 삼성이나 LG와 같은 대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대안에너지인 태양전지 개발을 시작하고 있는 이유도 같은데서 찾을 수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면 좋은 것이다. 어떤 상품이 시장에 주목받으면 그 상품의 고유의 특성은 무시되며 교환 가치만 중요시된다. 자본의 눈에는 환경과 인간은 없다. 만약 청정에너지가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들은 이것을 시장에 상품으로 내 놓기 위해 모든 기술을 집중시킨다(과학기술자의 노동 강도를 극도로 높인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파괴되는 환경의 문제는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본이 하면 어떤 한 과학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다른 모든 시스템은 엉망이 되어 버린다. 브라질의 사례는 이점을 잘 설명해준다. 청정에너지 개발 문제는 청정에너지 자체만 봐서는 안 되고 자본주의 에너지 시스템을 건드려야 하는 유기적이며 총체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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