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2010/05/12 00:33 잡기장

 

<최후의 만찬>

2004

 

 

<최후의 만찬-부분>

2004

 

 

<최후의 만찬-부분 :관객참여작>

2004

 

 

너무나 오랜만에 이 사진을 보면서 나는 내 어깨를 쓰다듬는다. 사실은 이제서야 진심으로 수고했다고, 정말 잘해냈다고 말해준다. 6년전에 오늘 같은날이 올줄 알았었다면 나는 조금은 편안하고 조금은 덜 조급하고 조금만 마음아파해도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전기를 빌렸다. 작년부터 꾸준히 읽고 있는 작가 시리즈 중에 하나였다. 르네상스 시대 같은 것은 너무 오래전이라 솔직히 볼 필요성을 거의 못느끼다가 라파엘로를 대강 훑어본 후 다 빈치도 보게 되었을 뿐이었다. 나의 잡다한 관심과 잡다한 기술들을 돌아보게 하는 그의 인생의 잡다함도 묘한 공감대를 주었지만, 나는 오랫동안 최후의 만찬을 잊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사실 그 책을 읽고 난 핵심이었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뭐 그런 거창한 생각도 했다. 2004년에 최후의 만찬을 기반으로 작업을 해보기로 했을 때,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해서, 또 최후의 만찬에 대해서 뭘 알았던가. 왜 하필 그 작품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 잡다한 삶에 내가 본능적으로 끌려서, 동질감을 느껴서,  그것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좀 오컬트적인 생각도 해 본다. 어쨌든 나는 그 작업을 했고, 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손에 꼽는 상처를 남겼다.

 

오늘 내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읽은 것은 얼마만큼의 운명일까. 그 많은 작가 시리즈를 읽던 중에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사실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집어든 것은 얼마만큼의 운명일까.

 

책을 쭉 읽고, 끝부분에 있는 최후의 만찬에 대한 설명들을 보면서, 아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꽤나 잘해내었구나, 아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주제에 그렇게 잘해내었구나 하며 혼자 나의 2004년도 작품에, 2004년도의 나에게 감탄을 했다. 뭐 웃기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감탄이 너무나 처음이라 너무나 소중했다. 나는 이제서야 나의 작품에, 나의 용기에 감탄해주었다. 내 작품은 괜찮은 것이었구나. 나의 6년전 작품도, 그 때의 나도 괜찮았구나.

 

 

그렇게 까페에서 혼자 책을 읽고 난 후, 사람들 앞에서 나의 졸업과 관련된 우여곡절을 얘기한 것은, 나의 최후의 만찬과 2004년에 대해서 얘기한 것은 얼마만큼의 운명일까.

 

 

나는 처음으로 가슴과 하나가 되어서 내가 했던 일에 대해서 뜨겁게 지지하고, 내가 겪었던 일에 대해서 담담하게 풀어놓았고,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사람들은 나의 작품을 보기를 원했고, 변변 찮은 홈페이지 하나 만들어 놓지 않은 나는 다음 주에 작품사진을 가져오겠노라고 했다.

 

전 같으면 허영에 쩔어서 무용담처럼 풀어놓았을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절절히 눈물을 흘리고 격한 분노로 풀어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적당한 온도로 그것을 풀어놓을 수 있을 만큼, 6년동안 성장했다 정말. 가슴과 하는 말이 어긋남이 없으면서 그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었다. 감사한다. 또 감사한다.

 

 

다시한번 본다. 2004년의 최후의 만찬을. 더이상 이사할 때마다 따라붙는 애물단지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꼭 이 작품을 포트폴리오에 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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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2 00:33 2010/05/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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