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다

2010/01/26 09:34 잡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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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6 09:34 2010/01/2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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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2010/01/18 03:05 잡기장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계속 할 것 같은, 또 하고 싶은 말은 전에는 이랬는 데 지금은 이렇다.. 이다.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근본이 어디가냐라고들 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작년은 혁명같았다. 그래서 좀 지겨워지려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오늘도 아 이렇게 바뀌었네 하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삶이 원래 어렵고 더럽게 힘든 거라는 걸 알기는 혹은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갈수록 느끼는 것은, 비관하고 비하하고 우울하고 비웃기는 너무나 쉽고 긍정적이거나 칭찬하거나 행복하거나 하기는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자의 것들은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다.

 

 

 

작가로 산다는 것이 참 막막하고 지금 세상에서 얼마나 어이없는 직업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어쩌면 요즘 세상에서 제일 안정된 직업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갈수록 매체도 다양해지고 미술을 둘러싼 말들도 갈수록 어렵고 복잡해서, 가끔은 그것자체에 짓눌릴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그냥 옛날처럼 기술이 모자라서 혹은 뭔가가 불충분해서 장르자체가 한정 되었을 때가 맘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최적의 매체는 뭘까 생각하다보면, 하기도 전에 그 다양한 선택지와 방법들에 지레 맥이 풀려버릴때가 있다는 것은 뭔가 의지박약일까. 근데 물건 사거나 할때 너무 종류가 다양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거, 오히려 선택지들이 괴롭게 하는거, 그 다양함땜에 오히려 폭좁게 선택하는 거 뭐 그럴때랑 비슷한 기분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몇 가지 불운한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진짜 엄청나게 좋은 운을 타고난 부분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살아갈수록. 근데도 참 그 몇 가지 불운한 부분들이 훅 하고 마음속에서 불어나서 미칠 것 같은 때도 있다.

 

 

 

 

 

 

 

 

<뉴욕 갤러리에서 본 그림... 작가 이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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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8 03:05 2010/01/1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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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의 징후들

2010/01/11 22:12 잡기장

피곤하면 으레껏 나타나는 증상들이 있다. 

 

입안이 헌다거나 목이 쉰다거나 나의 경우 뜬금없이 오래 자는 것도 그렇고 뭐 근육통도 그러하고..

 

 

직장에 다니던 시절이라면 모를 까 요즘 같은 때의 나에게 저런 징후들이 나타나면 좀 당황스럽다. 어쩌지;; 뭐 이런 기분이 된다. 그러니까, 그렇게 피곤할 일도 스트레스 받을 일도 표면적으로는 없기때문이다. 스트레스 주는 직장상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은 일을 죽는 기분으로 해야하지도 않고...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아마도 마음의 병이 있는 상황이거나 그림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것이 엄청난 체력소모를 요하는 일인가보다 하는 거다. 지당한 말같기도 하지만, 사실 저런 일들이 특별히 신체를 더 많이 움직이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서 과연 피곤해도 되는 걸까 뭐 이런 생각이 드는거다.

 

 

근데 아마 피곤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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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1 22:12 2010/01/1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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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려는 자의 그 변태적임.

2010/01/10 01:50 잡기장

나는 틈만 나면 들여다 본다.

 

마치 눈에 캠코더 하나를 장착한 것처럼 그 장소 그 때로 돌아가 그 당시를 하나씩 카메라를 한바퀴 휘 돌리듯이 그곳을 돌아보고 생각해내려 한다. 그 곳의 냄새, 사물들, 그 모든 것들 말이다. 벽지는 무슨 색이었는 지, 그 방의 가구는 무엇이 있었는 지, 각각의 배치는 어떠했는 지, 둘의 옷차림은, 커텐은 있었는 지, 뭐 그런 것들. 그리고는 이 모든 행위가 얼마나 변태적인 가를 깨닫고 몸이 부르르 떨리도록 전율이랄까 소름이랄까.

 

몇주를 캔버스로 부터 도망쳤다. 작은 스케치북에 쓱싹 그리는 것은 그래도 다음장으로 넘겨놓으면, 표지로 정리하듯이 덮어놓으면 그만이다. 준비가 되었을 떄, 혹은 그냥 다시 가볍게 훑어보며 볼수있다. 하지만 캔버스는 다르다. 그냥 그것은 집안 한가운데 이젤 위에 올려 놓아야한다. 그 그림과 함께 숨을 쉬고, 식사를 하고, 그 앞에서 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

 

 

어렵게 어렵게. 하지만 순간 이 얼마나 변태적인 행위인가. 왜 그 고통을, 생각나는 것도 모자라서, 벌리고 들여다보고 후벼파고 또 더 벌리고 더 잘 보려고 하고 구석구석을 더듬어 보고. 그 모든 손길은 얼마나 변태적인가. 이런 직면은 정말 천형인 것만 같다. 아무도 시키지않았다. 어떤 것도 나에게 그것을 하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그냥 그걸 해야한다. 파고 파고 또 파고. 그렇게 파내는 기억이 얼마나 부정확하며 툭하면 왜곡되는 것인지 너무나 잘 알면서도 나는 그것에 철저하게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것을 얻으려고. 그래도 해야한다.

 

 

나는 너무나 두렵다. 너무나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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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0 01:50 2010/01/10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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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옛관계

2009/12/31 16:41 잡기장

 

 

옛관계들이 떠오르려 하나보다.

 

어쩜 바로 이 시기에 다시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을까. 오랜 공백에도 그냥 말걸고 말할 수 있음이

그녀와 나의 관계가 가진 참 좋은 점이다. 간만에 진심으로 꼭 얼굴 보자 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제 그렇게 짧은 대화를 하고, 괜한 옛생각에 그녀의 홈페이지도 가보고 거기서 어떤 이의 홈페이지로 링크를 따라갔다.

 

이상하게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괜히 헐뜯고 싶기도 했고, 괜히 비웃고 싶기도 했고.. 잘 안 맞는다고 생각도 했지만, 가끔 그 사람의 블로그에 찾아가서 삐딱한 마음으로 글을 읽기도 했다. 거기서 이 사람은 구리다는 근거를 찾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그 때 나는 이 사람에게 왜 미운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무튼, 문득 이제 옛 관계들이 떠오르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가치판단이 들어가지 않은 그냥 옛날 관계. 잊고 있었던 관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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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1 16:41 2009/12/3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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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00원

2009/12/26 16:37 잡기장

chelsea museum

 

보통 26500원입니다

 

라고 하면, 품목에 따라서 차이는 있겠지만 일상에서 딱 쓰기에 꽤 부담되는 돈이다.

 

그래서 오늘 코아마트 갔다가 계산대에서 26500원이라는 소리에 잠시 놀라고, 소심하게 정말요 소리도 못하고 지갑 속 현금을 몽땅주고 나왔다. 아 나름 31일까지 이 돈만 쓰자!하고 뽑았던 현금이었는 데, 일주일이 남았건만 다 써버렸다. 암튼 살짝 패닉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영수증을 확인했다.

 

 

호박고구마 4개 1봉지

쌈야채 1봉지

팽이버섯 1팩

느타리 버섯 2팩

건표고 1봉지

모시조개 1 봉지

휴지 30롤

 

 

휴지가 할인하길래 9900원 지르긴 했는데.. 아 그래도 저거 샀다고 그 돈이 나오다니... 쌈야채를 좀 많이 사긴했다.. 샐러드 먹으면 배도 부르고 간단히 해먹으니까..

 

괜히 억울한 마음에 영수증에 있는 품목을 다시 다 더해봤다. 맞다26500원.

 

웃기다. 먹을려고 다 사놓고 저 돈이 되니 괜히 억울하다 ㅎㅎㅎ

 

chelsea museum

 

요새는 집에 많이 있는 데, 그래도 집이 좀 큰편이라 덜 답답한 것 같다. 오늘 아침에 발레 가려고 일어나야하는 데 졸려서 비비적댈때 꿈인지 그냥 생각이었는 지 알 수 없지만.. 살짝 꿈이었던 거 같다. 가족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그래도 며칠 전 처럼 메모장을 열어야할만큼 분노가 타오르진 않았다. 하지만 혼자있지 않고 발레를 하러 가야해서 참 다행이었다.

 

 

 

너무 웃긴게, 갑자기 어제 음식점 아저씨가

밤에 외로워서 잠도 못 주무시는 거 아니에요

그랬던 말이 기분 나쁘다. 괜히 자존심 상하는 것 같다. 징그럽다.

어제는 듣고 별소리 다하네 했는데 ㅎㅎㅎ 나 자격지심인듯.

애인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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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6 16:37 2009/12/2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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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009/12/17 15:07 잡기장

 

 

어렸을 때 엄마가 점을 보고 와서 그런 얘기를 했었다. 점쟁이가 얘는 그림 시키길 참 잘한거라고. 얘는 자신의 응어리를 풀 곳이 있어야 하는 아이라고. 지랄맞은 세월동안 그림을 그리겠다고 어릴 때부터 싸우다가 그림그리기를 '쟁취'했던 나에게, 그림을 시켰다 혹은 시켜주었다 라는 말조차 너무나 역겨웠지만, 어쨌든 저 말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그 점쟁이가 정말 미래를 보는 사람이었다면, 정말 사람을 꿰뚫어볼 줄 아는 그런 대단한 역술가였다면, 그 그림으로 풀어야할 응어리가 자기 딸의 운명을 묻는 그 여자때문에 생기게 될 것도 알고 있었을까. 그랬다면, 그 점쟁이는 눈 앞의 여자를 어떤 눈으로 쳐다보았을까. 그리고 그 응어리의 깊이에 대해서 얼마나 가늠할 수 있을까.

 

 

나는 요새 나의 모든 상처를 후벼파고 있다. 아물것 같으면 다시 억지로 딱지를 떼서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보고 필요하다면 손톱을 길게 기른 손가락 끝으로 그 상처를 벌려본다. 예전처럼 어설프게 전쟁군인들이 급하게 벌어진 상처에 스테이플러를 찍듯이 그러지 않기 위해서 많이 노력한다. 그래서 요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를 계속 살게 해주는, 죽을 생각을 하지 않게 해주는 큰 기둥이 되어준다.

 

 

하지만 요즘들어 생각하는 것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상처를 후벼팠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인지, 그림을 그리다보니 상처를 후벼파게 되는 것인지. 내 몸과 마음은 정말 전쟁터와 같다.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그런 곳과 같다. 그래서 나는 자꾸 근육통을 느끼고, 계속 마음은 싸하다.

 

 

그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는 것. 내 갈길을 가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함을 안다, .하지만 분노는 분노이다. 아무리 그래도 분노는 분노이다. 그래서 그 분노가 다시 살아숨쉬게 되어서 힘이든다.

 

 

아침에 일어나 메모장을 열어 엄마에게 쌍욕을 한바가지 쓰고 다시 잠을 잤다.

나는 좀 따뜻한 세상에 있고 싶다.

 

상처를 자꾸 들여다봐야 나중에 이것이 다시 우울증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냥 막 따뜻한 세계에 있고 싶다.

누구를 증오하고 원망하고 억울함이 가득한 그런 세계 말고

그냥 잘 사랑받고 잘 사랑하는 그런 따뜻한 세계에 있고 싶다.

그런 걸 좀 나에게 허락해주며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글거리는 분노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그런 세상 말고

그냥 조용히 따뜻하게 그렇게 있는 세상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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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7 15:07 2009/12/1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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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

2009/12/08 06:07 잡기장

얼마 전에 다시 엄청난 폭풍이 밀려왔을 때, 그 동안 미루고 있었던 책장정리와 과외문제집 정리를 했다. 그러던 중에 정말 기절할 만큼 놀랬던 것은, 내 책상 밑 작은 책장에, 항상 야오이나 빼보곤 했던 그 책장에 뭉크의 일기를 번역한 한국어책이 있었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종로에 살았을 때 샀었던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3년은 넘게 내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고, 종로 집을 나올때 책은 무거워서 거의 다 두고 나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우연이라기엔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정말 이 엄청난 수확이 좋으면서도 이걸 갖고 있음을 몇년 간 전혀 몰랐다는 것, 뭉크라는 화가에게 관심을 지독히 쏟게 된 것이 매우 최근이라는 것 등등의 생각에 머리 속이 살짝 복잡했었다. 오랜 마비의 기간을 거치는 와중에도, 아마 나의 우울증이 나도 모르게 뭉크의 그것에 이끌렸던 걸까 하는 생각에 좀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이렇게 내 몸은, 혹은 내 정신은 나에게 무던히도 신호를 보냈었구나. 좀 슬퍼지기도 한다. 불과 3-4년 전의 나를 두고 "어린 나"라고 하면 좀 웃길 지 모르겠지만, 최근의 나에게 그 당시의 나는 너무나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라, 그렇게 어릴때도 나는 우울했구나 슬펐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어쩌다 어제 발레를 다녀오고 10시에 잠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마크 로스코의 전기를 마저 읽었다. 중간에 마네도 읽고 좋은 이별도 읽느라고 굉장히 중간 텀을 길게 쉬다가 마저 읽은 책이었다.2008년 봄에 뉴욕 현대 미술관 MOMA에 갔을 때, 나는 한 전시실을 거의 다 메우고 있던 큰 캔버스의 그림들에 엄청나게 정신을 뺏겼었다. 너무나 커서 거리를 두고 볼 수 밖에 없는 그런 그림. 하지만 나도 모르게 점점 빨려들어가서 코 앞에서 보게 되는 그런 그림. 다른 화가들을 엄청 몰랐던 무식했던 나는 미친듯이 사진을 찍고, 화가의 이름도 찍어 두었다. 그게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었다. 그 당시 내가 그 그림에 그렇게 빠져버렸던 것은 그 화가가 정말 너무도 잘 하는 화가라서 였을까 혹은 나의 우울증과 마크 로스코의 우울증이 만나던 순간이었던 걸까.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던 로스코의 마지막은 자살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우울증이 스민 그 그림을 나의 무의식이 알아 본 것일까. 이제 다시 그때 찍은 사진들과 책의 도판들을 보면, 그의 색채는 너무도 깊이 깊이 우울하다. 뭉크가 보여주는 우울과는 또 다른 느낌의 우울함과 고독함이 정말이지 가슴을 후벼판다. 이런 색채를 2008년 봄의 나는 너무나 아름답고, 세련되고, 멋지게만 느꼈었다. 무려 화려하단 생각을 했었는 지도 모른다.

 

 

 

 

사진을 보다가 또 깨달은 것은, 나는 이 그림들이 있는 전시실에서 한참을 있었는 데도 불구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 지 가다가 돌아서서 전시 전경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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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8 06:07 2009/12/08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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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하고도 무려 5일

2009/12/05 20:36 잡기장

행복한가? 라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으면 마치 불행하다 라는 의미인 것 같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정말 잘 모르겠다 라는 의미인 것 같다. 점점 세상 사는 일이 행복하다느니 불행하다느니의 언어로 갈릴 것도 아니고, 그냥 갈수록 감정을 설명해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어쨌든 오늘은 머리 속이 無였다. 감정도 無라고 느껴졌다.

아니 감정은 그 정도는 아닌가. 암튼 그쪽으로 수렴되는 중 정도의 레벨이랄까.

 

 

그저께 나는 엄마의 장례식을 그렸다. 그리고 덤덤한 마음으로 잠들었다고 생각했는 데, 꿈을 꾸었고 무거운 마음으로 어제를 보내다가 급기야 친구들 앞에서 울어버렸다. 뭔가 내 마음/상태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힘들었다. 말이라는 건 이토록 보잘 것이 없고 그런다.

 

 

어제 밤에는 복분자 한병을 혼자 조용히 비워냈다. 그런 비싼 술을 먹어서는 안됐지만, 그냥 돈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제 낮에는 엄마가 쓰던 지갑을 쓰레기통에 버렸고, 복분자와 함께 핸드폰을 처리했다. 

 

영화에서 깡패들이 망치로 물건들을 때려 부수듯이, 나도 망치를 들고 핸드폰을 내리쳤다.

근데 한번의 망치질을 통해 두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1)핸드폰은 생각보다 굉장히 튼튼하다는 것과

2)12시가 넘은시각에 핸드폰을 바닥에 놓고 망치질을 함은 아랫집에 매너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베개를 놓고 그 위에 종이 봉투 한장을 놓고 망치질을 시작했는 데 정말 더럽게 안 부숴지더라. 분명 액정이 한 큐에 나갈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는 데 슬라이드폰이라 그런지 액정에 기스만 나고 부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망치를 못 박는 쪽 말고 못뽑는 쪽으로 돌려서 내려 찍었더니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배터리를 떼어내고 전자판 같은 것을 섬세하게 뻰치로 뽑아 비틀면서 정성드려 부쉈다. 그리고 두부사고 버리는 통에 물을 붓고 핸드폰을 수장시켰다. 

 

 

저 과정 간간이 복분자를 마시며 울다가 그쳤다가 통곡했다가를 반복해서 나중에는 기진맥진 해졌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옷을 하나도 입지 않고 전기장판을 팍 틀어놓고 잤다. 

 

역시 술먹으면 오래 못자서 7시에 잠시 깨서 두통때문에 고민하다가, 얼마전 읽은 인터넷뉴스에서 해장을 하려면 전해질을 먹어야한다고 한게 기억이 나서 미니컵라면을 끓여먹고 다시 미친듯이 졸릴 때쯤 이빨을 닦고 다시 잠이 들어서 2시쯤 일어났다. 화방을 가야해서 나오는 김에 쓰레기통을 규격봉투속으로 싹싹 비워내고 그렇게 어제의 그 핸드폰도 집을 떠났다. 

 

 

분명히 어제는 꿈을 꿀 것이라고 생각했는 데, 나는 말끔히 잤다. 아주 깔끔하게 자고 일어났다.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북한에서 온 작가 작품을 구경하다가 소파에 앉아서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참, 꽃도 샀다. 저녁도 샀다. 그렇다. 돈 엄청 썼다. 그런데 그냥 그러고 싶었다. 쯧쯧. 

 

 

요새는 매일 꿈을 기록한다. 그래서 어제 꿈을 꾸지 않은 것은 뭔가 묘했다. 

하루종일 내 기분이 어떤 걸까 설명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잘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래서 행복한가? 생각했는 데, 그런 식의 행복/불행 따위의 층위가 아니었다.

 

 

노란 백합이랑 비슷한 꽃을 한 대 사왔다. 조금 큰 꽃이라 한대만 꽂아도 왠지모를 세련미가 있다. 사길 잘했다. 꽃집 아줌마가 향도 좋고, 봉우리가 피면 안 쪽은 분홍색이라고 하셨다. 

 

 

기분이 無 맞는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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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5 20:36 2009/12/05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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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홈페이지에 갔다.

2009/12/04 02:01 잡기장

김형경씨의 신간을 읽다가 그것이 뭔가 지금 내 마음의 흐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숙제가 생기는 것 같아서 힘들때도 있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직면하게 해준다.

 

 

홈페이지는 얼마 전 핸드폰 고지서 이메일 주소를 엄마 회사 이메일로 돌리기 위해서 갔었다. 얼른 이메일을 파악하고 방문했던 페이지들을 모두 지웠다. 무슨 부정이라도 타는 것마냥. 그때 메뉴 중에 유난히 눈에 띄었던 것이 나의 이야기 라는 메뉴였다.

 

 

그리고 오늘 애도에 관해 계속 고민하다가 용서와 화해에 대한 파트를 읽었다. 용서는 꼭 할 필요는 없지만, 하고 나면 그것의 좋음을 알게 될 것이란 말이 있었다. 그러니까, 용서할수 없어도 (어떤 철학자/심리학자는 용서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고 한다) 일어난 사건들이 더이상 자신을 괴롭힐 수 없도록 화해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다. 특히 부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 그래서 나는 외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의 장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홈페이지 생각이 났고, 전처럼 억누르지 않고 그냥 바로 직면하기로 했다. 그리고 방금 손수 그 주소를 치고 들어가 나의 이야기 메뉴에 글 몇 개를 읽었다. 

 

 

그것이 나의 엄마임을 몰랐다면, 아마 좀 귀엽고 자기 일 하는 아줌마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은근 그 글을 볼 사람들에게 눈치도 주면서 신세타령도 하고 간간이 일상도 밝혀놓는 그런 글들이었다. 사진이 떡 하고 나오기라도 할까봐 조금 무서웠나 혹은 어쩌면 보고 싶었을까? 잘 모르겠다. 오늘은 뭔가 지금까지보다 한껏 부드러운 감정이 들었다. 나는 아마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다. 정확히 그리운 것은 무엇일까. 정말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인정할수 없어서 괴로운걸까. 아니면 이건 그냥 떠나 보내기 전의 끝자락일까. 

 

그 글을 쓰는 아줌마는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을까. 사실 이게 정말 그 사람이 쓰는 글 맞나, 다른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 쓰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 말은 그 글들이 일면 너무나 낯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냥 지금 이순간은 갑자기 엄마한테 달려가서 울고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돌아온 탕아의 한 장면 처럼, 방황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왕자처럼. 그 곳에 가면 그냥 돈 걱정도 없고 사랑만 넘치는 것은 아닐까. 막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체 그 엄마는 누구인가. 일본에 살던 시절 우리 아빠의 부인? 그 여자인가? 분명 나를 오빠와 차별하고, 나에게 모든 이혼의 스트레스를 떠넘기고, 내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던 그 여자는 아닐 텐데...

 

여기까지 쓰니까 눈물이 그쳤다. 며칠동안 계속 목 깊은 곳에서 박하처럼 화 한 느낌이 있어서 왜 그럴까 했는 데, 그것은 울컥하려던 것들이었나보다. 그게 계속 곧 터질 때를 기다리며 며칠 잠복했었나보다.

 

 

나의 최초의 기억은 일본에 살던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집은 특이하게도 세면대가 화장실 밖에 나와있고, 그곳에 둥글게 커튼이 달려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커서 아빠랑 결혼하겠다, 오빠와 결혼하겠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 나는 일본에 살던 때를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어려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데, 혹시 그것이 그곳에서도 사실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어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섭고 두려워 진다.

 

 

뭔가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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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4 02:01 2009/12/04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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