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븟하고 즐겁게, 참 숯가마 한증막을 가다!

 

경기도에 있는 한 숯가마 한증막에 가게 되었다. 친구 민영이는, 진즉부터 ‘숯가마 찜질방에 한번 놀러가자’고 했다. 건강에 좋고, 쉬기 좋고, 기분전환에도 좋다나?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 모든 이유로  드디어 친구랑 동생이랑 함께 길을 나섰다. 친구 따라 강남에 간 셈이다.

 

김 서린 목욕탕이 답답하여 ‘목욕 빨리하기’라면 한 가닥 하던 사람이다. 숨이 막혀서 동네  사우나실에도 잘 안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뭔, 교외에 있는 한증막까지나?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흘러간 옛 노래가 되었다. 옛날 옛적 한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할머니 할아버지나 가는 곳이라고 여겼던 그 한증막에 귀가 솔깃해서 나 좋다고 따라나서게 되었으니 말이다.

 

“얘, 좋으면 너나 가라.”
"생각 보다 괜찮다니까. 함 가보면 알아.”
“얜, 젊은 애가 그런 델 좋아하고....., 그거 삭신 쑤시는 노인네들이나 가는데 아니니?”
“아는 체는? 숯이 항균작용 하는 거 몰라? 아토피 있는 얘들이랑 운동선수들도 단골이야. 몸 아픈데 ‘젊고 늙고’가 어디 있어?”
“너, 효험 봤어?”
“스파, 뭐 그런 거 부러워하지 마. 한증막은 우리 식인 거지. 해보고나 얘기 해......”
“하긴......넌 성악 하는 애니까. 몸 관리 노하우는 끝내주겠다.”

 

사양하는 것도 지나치면 실례고, 오는 복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디서 복을 줍고 어디서 좋은 체험 하냐 싶었다. 다행히 친구가 있어 등 떠밀고 옆구리 팍팍 찌를 때 그 재미가 어떤 건지 어디 한번 나서보자고 덥석 차에 오른 기분이란...... 싫지 않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기도 포천의 한 산자락이었다. 우후후~ 황량할 정도로 높은 저 절벽,웬 돌산을 사정없이 깍아서 이다지도 넓은 터를 만들었다냐? 그야말로 네모반듯하게 조성된 대단위 가마터가 눈앞에 나타났다.

 

샤워실에 들려서 대충 목욕부터 한 다음에 업소 측에서 내주는 면복으로 갈아입고 가마 쪽으로 갔다. 따뜻한 기운과 약간의 매캐한 숯 냄새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숯에 대한 안내판이 붙은 벽보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본 업소는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 백탄만 사용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백탄은 나무 안에 들어있던 일산화탄소나 기타 불완전 연소물들을 완전히 태운 숯이라고 했다. 백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를 우선 알맞게 태운 후 가마 밖으로 꺼내서 모래나 재를 끼얹어서 재빨리 식혀야 한다. 그러기에 백탄에는 기공이 많고, 두드리면 탱탱하게 맑은 소리가 나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백탄은 건강을 위한 생활참숯으로 폭넓게 활용되고,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있어서 목욕할 때 사용하면 전자파를 차단하는 효과를 본다. 음이온의 효과와 함께 원적외선도 방출하기 때문에 한증용 숯으로서 그만인 숯이 백탄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백탄만을 사용하는 곳이 이 업소이니만큼 안심하고 즐겁게 보내라는 등의 안내문이었다.

 

또 , 바로 옆에는 한증실에서 지켜야할 수칙이 쓰여 있었다. 휴대 라이터는 폭발 위험이 있으니 소지하지 말 것과, 음식물이나 음료수도 안 되고, 가마 안에서는 음주나 가무 등을 절대 금지하도록 하고 있었다. 고열이 나는 사람, 저혈압, 고혈압인 사람도 출입을 금한단다. 이정도 금지 조항이야 동네 사우나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사항이었다. 뭔가를 금한다는 금지조항은 어디서나 내용들이 비슷한 것이 특징인 것 같았다.

 

한증실은, 저온실과 중저온실과 중온실 그리고 중고온실과 고온실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특히 고온실에 들어갈 때는 전신을 감싸는 담요를 빌려서 머리끝에서 발끝가지 감싸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실내온도가 살인적이라 할 정도로 높다는 얘기다. 아마 암환자나 고온을 소화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곳인 것 같았다.

 

우리가 들어 간 곳은 중온실이었다. 중온실 내부 공간은 원형으로 돼있었다. 벽은 온통 황토색이다. 나는 늘 황토색만 보면 왠지 날 것의 싱싱함을 연상한다.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두자. 한증막 바닥은 이음새와 틈이 보이는 동그랗고 커다란 목판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 앉아 황토벽에 기대거나 누워서 자기 편안대로 한증을 하면 되는 거였다.

 

황토방은 높은 온도의 폐쇄된 공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지러움 증을 방지하고 장시간을 견디기 위해서인지 타올 하나씩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동생과 나도 친구가 준비해서 건네주는 타올을  머리에 둘렀다.

 

“고질인 어깨 근육이나 풀렸으면 좋겠네.....”
“난 뻣뻣한 목 근육 좀 좋아졌으면 좋겠다.”
황토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뻗고 앉았다. 어떤 자세를 취한들 흉보는 사람도 없고 상관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저 편안하게 있다가 다른 쪽 가마로 옮겨도 되고 폭포수가 쏟아지는 쪽으로 가서 산책을 해도 된다.
 
몽롱하고 나른한 김에 잠이 들었던가 보았다. 한참 만에 눈을 떴다. 숨이 막히거나 불편한 것은 없었다. 생각보다 몸이 개운했다. 얼굴에 땀이 살짝 맺혀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족탕이 보였다. 발을 담그고 있던 친구가 곁에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발을 ‘담거 말어?’ 잠시 망설이다가 화부들이 보이는 아궁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발갛게 타오르던 숯덩이를 이제 막 꺼내려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숯불을 꺼낼 때 불에 눈을 마주치면 눈이 좋아진대!”
“그래? 우리 아궁이 쪽으로 가보자!”

 

어디서 알게 된 상식인지 동생이 하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발길을 옮겼다. 화부 둘이 손잡이가 엄청 긴 부삽을 들고서 달아오른 숯불을 꺼내고 있었다. 아궁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둘러서서 손을 내밀거나 등을 갖다 대며 숯불을 쪼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내뿜는 열꽃을 향하여 눈이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한참 후, 사진 한 장씩을 찍고 나서 다시 한증막 안으로 들어갔다. 친구를 따라서 한증실로 들어가니 친구는 가지고 온 백에서 과일을 꺼내놨다. 파인애플과 정갈하게 깍은 사과, 그리고 이 계절에 웬? 청포도와 딸기까지 ...칸이 나눠진 그릇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와! 준비성 한번 끝내준다!”하고 말했다.
“근데 여기서 과일 먹어도 괜찮은 거야?”동생도 한마디 덧붙였다.

 

음식 반입을 금한다는 수칙을 의식해서 하는 소리였다. 친구가 웃으면서 눈을 찔끔 감았다. 오붓하고 은밀하게..... 우리는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과일을 먹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이런데 와본 것이 처음이라면 믿을까. 그러고 보니 난 안 가본데도 많고 안 해본 일도 많다.

 

이런 내 자신이 순간적으로 미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에서 허겁지겁 또 많은 말을 지껄였나 보다. 암튼 이런 한증막 첨이다. 친구 덕분에,

 

말로만 듣던 우리나라 식 숯가마 한증막~
모처럼 몸과 마음이 환골탈태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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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2 02:08 2010/02/02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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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유미별, 그도 ‘88만원 세대?’

 

“어디, 가까운 곳에서 한 이틀이라도 쉬다가 오시죠?”

 

유미별씨가 요즘 자주 듣는 소리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로부터다.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러운 뜻의 이름을 가진 유미별씨... 그가 밤낮 없이 일만하는 모습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미별은 일독에 빠져 산다. 어쩌겠는가? 뒷골이 당길 정도로 뛰지 않으면 자신이 꾸리고 있는 무용단이며 무용아카데미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데...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88만원 세대’라고 하는데 유미별, 그도 과연 88만원 세대일까...

유미별, 남자 이름으로는 꽤나 부드럽고 예쁜 이름이다. 여기다 하는 일이 무용이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십중팔구 여자로 알고 있다가 막상 만나보면 ㅎㅎ... 한바탕 웃음보따리를 터뜨리곤 한다.

 

우선, 퍽이나 예쁜 이름에 비해서 그리 잘 생긴 얼굴은 아니고, 키는 또 보통 키라고 해줄까 말까이다. 그러나 실망은 금물이다. 유미별과 한 두 마디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키고 뭐고 따질 것 없이 웃음과 편안한 마음이 공기처럼 감싸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만의 따뜻함과 붙임성이 짱인 사람이다.

 

그러니까 유미별, 이 사람은 무용안무가이자 무용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선생이다. 얼핏 보면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이다. 잘 봤다. 공부에는 그닥 취미가 없고 그저 뛰고 움직이고 구르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던 왕 개구쟁이였다. 여기다 말하는 것을 꽤나 즐기는 편이라서 격의 없이 사람들을 대하는 데는 그만인 성격(?) 쯤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회원들을 가르칠 때 까다롭거나 폼 잡는 일이 없다. 권위를 내세우거나 격의를 두지 않는다. 친절하고 성심성의껏 가르치기 때문에 그로부터 배우는 사람들은 무용을 편안하게 접근하게 된다. 유미별은 사람 앞에서 무게 잡지 않고 잰 채하지 않고 사근사근한 말투로 자기 일을 무척이나 열심히 사랑하는 선생인 것이다.

 

유미별은 본인 스스로도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다.’ 고 얘기할 정도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주구장창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쳐온 사람이다. 지금도 여전히 공연과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느라 밤낮 없이 바쁘다. 남들로부터 ‘좀 쉬어가면서 하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꾀부릴 줄도 모르고 시쳇말로 농땡이 치는 일도 없이 무지 열심이다. 그런 데도 한 달 살림은 늘 빠듯한 게 탈이다.

 

67평 홀의 임대료가 월 140만이다. 여기다 부가세 14만원을 합하면 154만원, 관리비는 평균 잡아 55만원이 된다. 그러니까 한달에 적어도 210만원은 장소사용료로 나가는 셈이다. 여기다 전화와 인터넷, 정수기비용 강사 월급이 대략 200만 원쯤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카드사용료와 이자비용도 있다. 시시콜콜 따지기로 말하면 세금이야 데이트비용, 기타 등등 한도 끝도 없이 지출품목은 늘어난다. 고정 지출이 대충 이정도요 교통비나 식비 오토바이 기름값과 보험료, 생활비 또한 어김없는 지출품목이다. 좌우지긴 오너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3년을 하루같이 뛰고 있는 중이다.
 

2009년 5/17일 제 5회 명동성당축제에서 단원들과 함께

이런 유미별, 때때로 무대 위에 쏟아지는 박수와 환호가 없다면 정말이지 유미별의 인생은 그야말로 흥도 없고 신명도 없는 밋밋한 인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대는 땀 흘린 만큼 환호와 박수를 보내준다. 유미별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예술과 생업을 병행해야 하기에 무용단과 무용아카데미를 동시에 붙들고 있는 것이다. 양손에 뜨거운 감자를 쥐고서 병행해가야 하는 현실일 수밖에 없다.

 

온 나라가 과히 영어 광풍이라 할 정도로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생까지 오직 ‘영어노래(?)와 공부만 강조하는 풍토에 예능 쪽은 점점 더 찬밥신세가 되가는 중이다. 여기다 천정부지로 솟은 부동산 비용, 때문에 젊은이들이 뭘 해보려 해도 도대체 이사회는 운신할 수 있는 토양이 돼있질 않다. 사정이 이러니... 어디 1인 창직에 대한 꿈이라도 꿔볼 수 있겠는가 말이다.

 

현실이 이러고 보니 유미별 같은 1인 창직자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돈 벌고 예술하고, 생계유지와 건물 임대료를 위시해서 온갖 제세공과금을 챙겨야 하는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유미별은 누구 말마따나 한 달에 단 88만원이라도 제대로 만져보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기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러운 별’ 유미별 넌, 과연

‘88만원세대’ 축에라도 낄 수 있는 젊은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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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2 01:59 2010/02/02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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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입양아 데려다준 거 아니에요.
              
아는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들과 딸, 두 남매를 오래 전부터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놓고 있는 언니다. “언니는 좋겠다. 심심찮게 미국 나들이도 하고..... 혼자만 다니지 말고 내 생각도 좀 해 줘 봐요.”하고 농담을 건넸던 게 엊그제였다. 그런 언니가 귀국한 것이다.

 

“일전에 애기 좀 데리고 갔다가..... 허리병이 생겼어.~”
“언니, 손자 보셨나요?”
“아~ 아니~, 애 데려가는 거, 입양아 데려다주는 거 말이야....”
“아! 홀트 아동복지회 그런 거요? 그래서 아픈 거예요?”
“글쎄, 이래저래 겹친 거지.”

 

둘이 만나 회포나 풀자고 명동성당 밑에 있는 ‘가톨릭 청소년문화의 집’에서 마주 앉았다. 언니는 아들이 취직하고 집을 샀다는 얘기며, 딸이 뉴욕으로 옮겼다는 얘기를 재밌게 했다. 하지만 나는, 입양아를 데려다 준 얘기’를 조금 더 자세히 해줄 수 없냐고 말했다.

     

“지금 하려던 참이야!”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야말로 조근조근이다. 그럼 그렇지! 꼼꼼하고 자상한 성격 하나는 알아줘야하는 사람답다. 혹시나 몰라서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에 아이의 여권에서 아이가 입양될 집 주소랑 이름을 적어놨다는 것이다. 수첩을 들추더니 아이의 이름을 말해준다. 박서영이라는 아이였다.

 

왜 주소는 적어놓고 그러셨어요?
그러게, 서운해서 그랬어. 괜히, 버려진 꽃 하나를 주워서 가슴에 담는 기분이랄까......

 

우리나라는 6.25 전쟁이 일어난 나라다. 그로 인하여 수많은 전쟁고아가 생겨났다. 한때는 이 고아들을 해외로 수출하기에 바빴다. 오죽하면 세계 고아수출 1위 국가라는 오명 아닌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을까. 하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의 입양역사에 대해서 운운할 생각은 없다. 그럴만한 지식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

 

다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역만리 타국으로 입양을 가야했던 한 아이에 대한 관심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여 시간을, 아기를 등에 업고 좁은 비행기 안에서 노심초사했던 언니의 심정처럼, 어머니로서 여자로서 같은 아픔을 느꼈을 뿐이다. 그것은 기도였고 염원이었다. 그 아이가 안정을 유지하도록 다독이느라 등골 빠지도록 맘고생, 몸 고생을 치룬 도우미 엄마가 겪은 자그만 에피소드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서영이는 젖도 빨지 않고, 깊은 잠이라고는 도대체 들지 못하는 정서불안의 아이였다고 한다. 생후 7개월 난 여아였단다. 애는 우는 것이 ‘앵앵’도 아니야. 온 힘을 다해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딱딱거리고 울어! 어쩜 그렇게 공항이 떠내려 갈 정도로 울기만 하는지....

 

포동포동하지 않으면 어때. 웬만만 해도 좋으련만, 아이는 그야말로 막대기처럼 빼빼 말랐어. 배가 고픈 것 같아서 우유병을 대주면, 입에 대고만 있지 정작 빨아먹지는 않는 거야. 난 그저 기도하고 다독이며 긴 비행시간을 보내야 했어. 어떻게 해야 이이가 편한 잠 한숨이라도 잘 수 있을

까만 생각하며 진땀을 뺐지. 

 

양부모를 첨 만났을 때 제발 까탈스럽게 굴지 않았으면, 보채지 말고 방긋방긋 웃어서 상견례 하는 첫 인상이 나쁘게 박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어. 양부모하고 다 잘 사는 것도 아니라잖아? 심하면 사춘기 때 가출도 하고. 첫 인상이 평생을 갈지도 모르는 거라서.... 꼭 껴안고서, 아이 예뻐. 뽀뽀해줄게. 얘야! 안심해. 널 이렇게 사랑하고 있어. 하고 끊임없이 말하며 기도하고 기도했지. 그리고 엄마, 아빠 만났을 때는 제발 울음 뚝 그치고, 잘 안기고, 잘 웃어. 라고 다독거렸어.

 

언니 맘고생 심해서 몸 아픈 거였네요? 편히 좀 가시지 그러셨어요?

 

아니, 돈 때문에 그러지는 않았어. 그땐 아픈 것도 몰랐다니까. 그럴 정신이나 있었게?
미국행 비행기 삯은 대략 200여만 원이 조금 넘는다. 논스톱으로 가는 직항로 삯을 기준으로 해서 그렇다. 이를 조금이나마 아껴보려고 재작년 여름엔 그야말로 언니가 먼저 입양기관을 찾았다고 한다. 홀트, 동방, 대한, 세군데 신청했는데 역삼동에 있는 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때 처음 해봤지. 아이 데려다주는 일은.......”

 

하지만 두 번째, 서영이 때는 복지회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럴 만한 이유라면..... 울기만 하고, 우유도 잘 먹지 않고, 잠도 안자는 아이여서 사람들이 애를 먹은 때문인가, 하고 짐작해 볼 뿐이야. ‘그래, 서영이를 데리고 갈 누구 좋은 사람 없을까. 전에 한번 일을 했던 홍지영씨 한 테 연락 좀 해보자.’ 이렇게 된 것 같아.

                                       

“복지회에서 말하기를 ‘와서 아이를 한번 보기나 하라’는 것이었어.” 직원이, 서영이를 안겨주면서 하는 말이 ‘다른 사람한테 가면 우는데, 아주머니에게는 잘 안기네요!’라는 거야. 서영이 하고는 이렇게 연결이 됐어.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거절을 못했지. 복지회 쪽에서 보면, 차분하고 꼼꼼하고 감동 잘하고, 비록 남의 말이라 하더라도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성실한 사람 하나를 콕 찝은 셈인지도 몰랐다.

 

그 어린 것이, 언니를 보자마자 ‘잘 따른다는데......’ 그만 측은지심이 발동했을 것이다. 언니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다. 늘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봉사할 준비가 돼있는 사람이었다. 토끼 같은 서영이의 눈을 보는 순간 가엾다는 생각이 물결쳤을 것이다. 알만했다. 서영이를 덥석 껴안으면서 “주님이 내게 또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군요!”하면서 받아드리게 된 것이다.

 

30시간이라고 했는데, 비행시간이 그렇게 긴 거예요? 공항에서는 어떠셨어요?

 

입양기관인 역삼동에는 6시까지 도착해야해. 아침 새벽에 택시를 타도 그 경비는 드니까, 미리부터 역삼동에 와 있는 것이 훨씬 안정감이 있는 거지. 그래서 전날에 근처에 있는 모텔에 투숙했어. 세수하고 화장 좀 하고 나가면 몇 시겠어? 수속 밟으려면 공항엔 최소 두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고, 새벽부터 서둘러야지.

 

사무실에서, 아이의 여권이랑 서류를 받아 챙기고, 짐도 챙겨야해. 아이 먹을 우유와 젖병이랑 짐 가방, 옷가방. 여기다가 내짐이 있는 거야. 바퀴달린 가방과 보조 가방, 아무리 줄인다고 해도 내짐만 해도 2개는 되잖아. 서영이 얘는, 포대기 두르고 등에 업어야 했어. 요즘은 웬만하면 아기띠를 사용해서 가슴에 안는 게 보통인데, 근데 서영이는 포대기 둘러서 업어 키웠다나봐. 그래서 꼼짝없이 나도 업고 가야했어.

 

공항은 복잡하고 활기찬 곳이다. 시끌벅적 시장바닥은 저리 가라다. 각자 바쁜 처지에 다른 사람한테 눈길 돌릴 겨를이나 있나. 그렇지만 온 세상이 떠내려갈듯이 빡빡대고 울기만 하는 아이, 이 아이를, 그것도 포대기를 두르고 전전긍긍하며 기저귀가방에 옷가방에 바퀴가방에 보조가방까지 주렁주렁 잔뜩 짐 매달고 가는 자그만 아줌마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나보다. 외국 사람들 중에서는 이 모습을 보고는 일부러 다가와서 눈을 마주치고는 빙그레 웃고 가더라는 것이었다.

 

힘들고, 창피했겠네요?

창피한 줄도 몰랐어. 애가 가엾다는 생각만 했어. 하도 우니까 말이야.....

‘나리타공항’에서는 대기 시간이 6시간이나 되었다. 직행노선을 타면 비행시간이 단축되련만,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를 타다 보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게 간 것이었다. 양부모로부터 제반 수수료를 미리 다 받았을 테지만 입양기관에서는 경비를 아끼려고 최대한 쥐어짜는 스케줄로 짠 것이다. 여기다 아이를 데려다 주는 도우미 엄마도 비행기 삯으로 45만 원 정도는 내게 한다.

 

애 딸린 사람은 할 일도 많다. 더구나 젖먹이 아이, 잠 한숨 안자고, 바스락거리기만 해도 앙앙거리며 울어재끼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은..... 도무지 옴짝달싹도 못하고 온 신경을 애한테만 집중해야만 했다. 나리타공항에서 머문 시간이 6시간이라지만, 기저귀 갈아주고, 먹일 우유 미리 타놓고, 짐을 끌고 화장실 두어 번 간 거 외에는 다른 건 엄두도 못 내고 지나갔다. 하긴, 졸음이 올까봐 애를 등에 업은 채 서서 먹은 캔 커피 하나. 이 정도였다.

 

이 와중에,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비행기에서가 아니라, 그래도 공항 대기실에서  변 처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유박스에 아이를 누이고 기저귀를 갈아줄 때 울어서 얼룩진 얼굴의 눈물 자국을 씻어줄 수 있었고, 더러워진 아랫도리를 씻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물티슈 그거, 써보면 알지만 금세 피부가 벌게지고 별로 좋지만은 않다.

 

비행기 안에서는 울다가 지쳤는지 ‘엥엥~’ ‘에에~’ 소리로 바뀌었다. 얘야, 대체 왜 그러니? 낯가림을 하느라 처음에는 울었다 치자. 근데 끊임없이 우는 건 대체 왜냐? 싶어서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며 끊임없이 스킨쉽을 시도하며 그저 계속해서 “예수님, 서영이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성모마리아, 성요셉, 세상의 모든 성인 성녀여! 이 아이를 위하여 빌어주소서!”하고 기도했다고 한다.

 

입양아의 약 70%는 양부모 될 사람들이 직접 데리러 오지만 나머지 30%는 데려다 주는 케이스라고 했다. 그나저나 어떤 경우라도 첫 만남에서부터 힘든 상황이 벌어지면, 누구라도 당황스럽고 짜증이 날일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노심초사하느라,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기내식도 못 먹고 아이나 어른이나 쫄쫄이 굶고 버틴 시간이었다.. 아이는 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의 찢어지는 마음을 아는 지나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뉴욕이 가까워지기 시작할때부터는 저도 지쳤는지 ‘칭얼칭얼’ ‘에에~’거리는 소리가 상당히 잦아들고 있었다.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아들 내외가 마중을 나와 있었어. 그래서 짐을 받아주니까 나도 일단은 한숨 돌리게 됐어.”

 

그런데 신기한 일이지.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셨구나. 했어.” 양부모 될 사람들이 좋아 보이는 거야. 탑승 장소에서 빠져나와  환영객들이 있는 쪽으로  눈을 돌리니 “아 , 저 사람들이구나!”하고 서영이 부모 될 사람들인 걸 알겠더라고...... 엄마 될 사람은 눈물이 글썽글썽해가지고 서영이를 받아 안았어. 아빠 될 사람은 그 모습을, 우리가 나오는 상황을 모두 비디오로 다 찍고 있는 거야.

 

아! 그거, 서영이의 생애사가 되겠네요.

 

그렇지. 다행이다 싶었어. 신기하다고 할 수 밖에, 애가 안 떨어지려고 빡빡대며 울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첨엔 놀래가지고 긴장을 하면서 몸에 힘을 꽉 주는 거야. 그리고는 이내 신기한 듯이 주위를 막 둘러보더라. 자기 엄마한테 안기면서는 크게는 아니더라도 ‘방싯’하고 웃는 거야.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거 있지? “하느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구나!”했어. 서영이의 할아버지, 할머니 될 분도 서영이 오빠의 손을 붙잡고 같이 나와 계셨어. 오빠도 같은 동양 애더라고....

 

코리아? 같은 한국이라서 서영이를 데려온 거 아닐까요?

 

그러면 더 좋겠지. 그 사람들은 나한테 선물을 건네는 것이었어. 초콜렛과 ‘서영이를 데려다준 당신은 천사’라고 적혀있는 카드였어. 휴우~ 그 때 내가 무슨 정신이나 있었겠어? 머리는 띵하고, 어깨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김에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었지만, 사람은 참 이상해. 그 경황에, 내 눈에서는 또 눈물이 흐르고 있는 거야.

 

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서영아, 잘 살아라! 너의 집은 뉴욕주 영 블로드 로드야. 잘 살아야 해! 널 위해서 때때로 기도할게. 안녕~ 난 그렇게 마지막 기도를 했어.

 

그래요. 언니? 저도 언니처럼 기도 해볼래요.
서영이를 위해서, 세상의 모든 입양아들을 위해서 기도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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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2 01:54 2010/02/02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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