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여강(麗江) 순례기 ~~

여강(麗江) 단상 ~~

 

4월은 꽃밭인가. 그런가, 정말 그런가. 3월부터 아니, 2월 초입부터 들려오는 꽃소식은 반갑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지난겨울은 그리도 춥지 않았던가. 그 추위 속에서, 꽁꽁 얼어붙고 움츠러들고 주름살이 깊었던 우리네 마음이며 살림살이다.

 

삽질 한파 소식이 여린 마음을 지닌 가슴마다에 장송곡처럼 울리고 있었다. 이, 얽힌 매듭처럼 촘촘하고, 강산을 회치듯이 훼손하는 포크 레인을 앞세운 정교한 시나리오에 우리들은 무력하기만 하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슴은 안타까움에 쓰라리다. 이렇듯 조여 오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피어난 봄꽃은 우리에게 위안과 치유를 주는 것일까. 정말 그런 것일까.

 

        

 

아니다. 밑도 끝도 없는 언설을 펼치고 있는 나의 주장은 도시 타당하지 않다. 봄이 어김없이 환희와 위로를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 온 것은 맞다. 하지만 문제를 듬뿍 안고 있는 인간들이 문제다. 멀쩡한 강과 산을 파헤치다 못해서 송두리째 뒤엎는 만행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는 우리에게, 봄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 시대, 이 야만의 대한민국에 찾아 온 것이 다.

 

        

 

        

 

우리는, 수 십 년 동안 눈앞의 개발 이기에만 눈이 뒤집혀 이윤창출에만 혈안이 되어 살아온 토건장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잘사는 것이 무엇인지....’ 잘살게 해주겠다는 말에 혹해서 거짓과 사기와 반칙을 밥 먹듯이 자행하며 살아온 건설회사 사장 출신이었던 사람을 5년 동안 우리를 대신하여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으로 뽑았다.

 

어김없는 이 모든 사실이 천추의 한이 될지도 모른다. 작금의 문제가 벌어지도록 한 것은 우리들의 투표로 인해 빚어진 일이기에 국민들은 파괴의 덫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말의 가책과 책임으로 포크레인과 삽질이 트레이드마크인 대통령이 명명백백, 빽빽하게 저지르는 상식을 초월한 짓거리에 가슴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어찌하여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의 자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가, 우리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서 강산이 토막 나고 할퀴고 파헤쳐져 수 천 년 동안 걱정 없이 잘 살아오던 동식물들이 멸종할지도 모르는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지금 빠르게 속력을 내고 있는 삽질에 사라지고 멸종하는 천연기념물들의 주검이 구체적인 사실로 나타나기에 안타까워서 그럴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댓가를 바야흐로 톡톡히 치르고 있다. 어느덧 봄이 한창인데 토건족 대통령은 줄줄이 사탕처럼, 조기 두름처럼 엮어 시리즈로 이 나라 이강토를 포크레인과 삽질로 토막 나고 파헤쳐지면서 잘도 분탕질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런 작태에 하루가 다르게 훼손되는 4대강을 보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깊이 파고 강변에 콘크리트 제방을 깔고 담을 쌓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수 만년 생명을 품고 흐르며 우리 삶의 터전이 되어 왔던 한반도의 핏줄이나 마찬가지인 강물이 거대한 인공수로가 되는 것이다. 복에 겨워서인가. 본래 자연이었던 강을 인공수로로 만드는 나라가 어디 있다냐.

 

물도 강도 못 가졌거나 부족한 나라에서 궁여지책으로 수천 년 전에 벌리던 토건사업이 운하(運河)였던 것이다. 아니면, 지금 토건장이 대통령이 따라하고 있는 미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그 시행착오와 오류를 인정하고 인공으로 쌓았던 댐과 보를 허물어 다시 자연 상태로 되돌리고 있는 것이 대세요.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의 토건장이 대통령은 좋은 것은 못 배우고 어디서 나쁜 선례만 본떠다가 우리 강토에 대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강(麗江)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 고장 사람들은 예로부터 금모래 은모래 반짝이는 남한강이 하도 아름다워서 오직 흥에 겨웠으면 여강(麗江)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을까. 나는 지난 주말 ‘나눔문화’의 ‘여강 순례 길에서 이 모든 것을 똑똑히 보고 말았다. 지금 잘 살아있는 강을 살린다면서 하는 삽질은 4대강 죽이기 사업이고, 한반도는 이것으로 인해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첫째, 대규모 준설로 강물의 흐름이 크게 바뀌어 홍수피해가 커질 것이다. 삽질장이 대통령은 지금 강의 본류를 준설하고 있지만, 홍수피해는 주로 강의 지류에서 일어났었다. 하여 강 본류의 준설은, 여름철 폭우로 인해 강물을 범람하게 할 것이고 주변 마을은 물론 서울과 부산까지 위협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경고를 한다.

 

둘째, 댐 설치는 식수대란을 불러올 염려가 크다. 특히 강의 곳곳을 10개의 보로 막게 되는 낙동강은 전기라는 인공의 방법을 쓰지 않으면 흐르지도 못하는 강이라서 물이 상류에서 바다까지 흐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20일에서 200일까지 걸린다고 한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이는 만고의 이치다. 낙동강은 비가 오면 흙탕물이 되고 비가 그치면 시퍼런 녹조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셋째는, 한반도의 지형과 생태계 자체가 바뀌게 된다. 독일의 라인강은 운하건설로 현재 운하 건설 전에 살던 동식물들이 대부분 멸종되었다고 한다.

 

4대강 사업은 인재(人災)가 될 것이다. 한 번 시행하면 복구가 불가능한 이 사업이 우리 땅엣 펼쳐진다니 앞으로 닥칠 비극이 두렵기만 하다.

 

4대강 사업에 들어붙은 업체는 현대건걸, 삼성, 대림건설, GS건설 등 4개 건설재벌들이다.

 

그렇다. 포크레인 세력들은 여리고 약한 사람들의 절규에 귀를 막고 난폭한 음주 운전자처럼 정신 나간 질주를 거듭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도 한국, 그것도 바위늪구비에서만 집단 서식하는 멸종위기 2종인 단양쑥부쟁이는 그 마지막 쉼터를 잃고 있었다.

 

     

 

     

 

습지와 야산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표범장지뱀’ ‘삵’ ‘수달’ ‘수리부엉이’도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 세계가 비록 평화로울지라도 지금 우리가 편치 못한 이유가 여기 있고, 아름다운 꽃을 보고도 진정으로 반길 수만은 없는 처지가 이 모든 것이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이철제, 김종도 등 여주 민중미술인인 40여명은 때마침 신륵사 입구에서 펼친 설치미술전에서 사람이라는 말은 ‘살다’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모든 살아있는 것은 사람이다. 4대강의 삽질로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절규하며 온 몸으로 현장 미술작업에 여념이 없었고 ‘나눔문화’에서는 순례의 깃발을 높이 쳐들고 여강을 감싸 안으며 따뜻함 마음을 모아서 바치는 고천문을 올리고 있었다.

 

목졸린 강물이 바둥거리는 소리와 죽음의 행진곡인 포트레인 삽질 소리에 피눈물로 절규하는 4대강을 젓줄 삼아 목숨을 이어가는 강, 바람, 금모래, 은모래, 흰목물떼새, 해돋이 산길, 여강길, 누치, 빼어난 경관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이 댐공사로 지형변화를 일으켜 제명위기에 놓여 있으니 이를 지켜달라는 하늘에 바라는 발원문을 목 놓아 부르짖고 있었다. 머리에는 지혜를, 가슴엔 사랑을, 손에는 나눔을 실천하는 ‘나눔문화’ 다운 따뜻하고도 진솔한 발원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현재 남한강에는 우리나라에서만 사는 고유어종이 다수 서식하고 있고 특히 꾸구리는 차고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어종이라고 했다.(김익수 전북대 명예교수, 생물학) 이처럼 물이 차고 깨끗한 여강인데 무슨 물을 살린다고 파헤치느냐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찾아온 계절이 거저 주는 선물을 받지도 못하고, 꽃이 주는 부드러움과 위로의 메시지도 순수하게 느끼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지금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귀도 없고, 흐드러지게 핀 봄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눈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자. 움츠렸던 새잎들은 강철 같은 의지로 빛나고, 물을 머금은 얼굴은 산천을 연초록으로 물들게 할 것이다. 서로 앞 다투어 봄을 알리느라 하루가 다르게 훈풍을 몰고 온다. 자신들의 모든 것을 조건도 없이 주고 있다. 이러한 피조물, 봄꽃들이 피어 한 시절을 풍미하고 있다. 꽃은 꽃을 부르고 자연은 자연을 부른다. 우리도 하면 된다. 자연의 마음으로 꽃의 마음으로 강의 마음으로 사람을 부르고 사람다운 마음이면 된다.

  

그래, 그렇다. 강물이 강물답게 흐르도록 가만히 놔두면 좋겠다.

 

강물은 흘러야 한다.

'당신들은 어찌 이곳을 흩트리려 하십니까?'

 

 

엘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5/06 01:25 2010/05/06 01:25
트랙백 주소 : https://blog.jinbo.net/8434pjr/trackback/40

고뇌하는 김광수 소장님! ~~ 4/10

고뇌하는 김광수 소장님! ~~

 

 

아침 풍경은 어땠게요? 새벽 4시까지 이야기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소장님 힘 드셨겠어요. 포럼 회원들의 기쁨조(?) 노릇하느라고 어디 먼저 잠자리에 들 수나 있었겠어요? 이 사람, 저 사람하고 또다시 대화는 얼마나 길어졌겠느냐고요. 원하는 회원들이 어디 한 둘이었어야 말이죠. 말하자면 인기 짱이라는 거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살짝 문을 열어보니 그 와중에도 소장님은 일어나 계시더군요. 무릎을 모으고 그 무릎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사람처럼 조용히 그리고 골똘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내친김에 간밤의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저 엘자는 12시전에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동지가 있더군요. 바로 상승님의 부인이신 노경화씨입니다. 교육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뜨니 언제였게요? 하긴 간간히 들려오는 고성방가(?) 소리가 하도 궁금해서 간간히 거실 문을 살 짝 열어도 보면서 동정을 살피다가 얘기하다가 룸메이트인 경화님하고 과일 먹다가 하면서 잠이 들게 되었었습니다.

 

 

 

 

어쩜 그렇게,,, 천생연분이 따로 없더군요. 무슨 말이냐고요? 그 날 밤 둘이서 머물게 된 잠시 동안을 말하는 겁니다. 추위를 못 참는 거예요. 추위를 안타는 여자들은 동지섣달에도 내의는커녕 늘씬 날씬을 위해서 홑겹으로 견디잖아요. 4월 까지는 내복차림인 저 같은 사람은 아예 미와 늘씬은 붙들어 매놓고 사는 겁니다. 경화씨도 그런가 봐요. 양말 신어야겠다면서 양말을 신어야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만 하면 동지 하나는 확실하잖습니까?

 

 

뭐 전 가져온 숄도 깔고, 웃옷을 이불 속에 한 겹 더 덮고서 잠을 청했지요. 그랬더니 경화씨는 아예 빨간 잠바를 끌어당겨서 껴입더군요. 숙소가 태양열난방인데 작동해줄 분이 안 계신가 봐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아침에는 난방이 들어오는 것 같았어요.

 

 

궁합이 잘 맞았던지요.... 사전에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경화씨와 전 마당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똑같이 행장을 차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삼과, 그 고장의 작물이 심어진 곳 그리고 축사가 보이는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답니다. 산책을 시작한 거지요. 앗! 그런데 어느 결에 소장님이 산책을 나와 계시네요.

 

 

이렇게 우연히 소장님과 산책 길에 만나서 자연과 어우러진 김광수 소장님의 모습을 담게 되었어요. 하긴 진짜 찡한 모습은 거실에 홀로 깨어 앉아서 양손을 무릎에 얹고 사색하는 그때였는데.... (찰칵! 찍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주, 아주 깊은 사색요. 좀 더 사실에 가깝게 표현하자면 고뇌하는 모습이었어요. 자 그럼 김광수 소장님과 홍천의 아침 산책을 해보시지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4/22 20:17 2010/04/22 20:17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s://blog.jinbo.net/8434pjr/trackback/36

역설의 역설을 보다 ~ 송두율교수의 <경계도시 2 >를 보고

 

딴지일보에서 보내 준 초대권으로 <경계도시 2> 영화를 봤습니다.

2003년 9월 재독 철학자 송두율교수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에서 37년 만에 귀국을 감행합니다. 그의 부인 정정희씨와 장성한 두 아들을 데리고 그리던 고국이기에 이번에야말로 작심한듯 찾아옵니다. 그러나 송두율교수는 귀국 후 꼭 열흘만에 해방이후 최고의 거물간첩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귀국 차 탄 비행기 안에서, 미리 보낸 송교수의 귀국위원회가 보낸 변호사는 얘기합니다.

아마 큰 일은 없을 거라고요. 통과의례 쯤으로, 찾잔의 태풍? 그쯤해서 끝날 거라고요.......

 

<경계도시 1> <경계도시 2>는 저예산 독립영화입니다.

감독은 홍형숙이아는 여자감독입니다. 그동안 상영되지 못하고 있다가,

7년 만에 6년의 편집작업을 거쳐서 완성된 영화입니다.

 

2009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초대를 받아 상영된 이후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는 영화입니다. 촬영기사도 많아서인지 놓지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잘 찍었더군요.

 

 

                                                                

앞서 말한대로 송두율교수는 2003년도 가을에 와서 8개월 동안 곤혹을 치루고 집행유예로 겨우 풀려나서 독일로 내쫒기듯이 돌아가고 맙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정권 때 모든 기득권을 빼앗겼었다고 생각했는지, 보수 쪽의 반격은 놀랍고 집요했습니다. 광기에 가까운 역공에 시달리며 수갑을 찬 송두율 교수의 모습에 할 말이 별로 없더군요.

 

북한 노동당, 김철수였잖느냐고 공격하며 몰아치는 통에 37년 만에 귀국한 고국에서의 영어생활?

 

10여차례 자진출두로 시작하여 통과의례처럼 선처를 받는 선에서 모든 타향살이를 끝내려고 작정을 하고 온 것이, 그분의 실수였지 않나 느껴지더군요. 정말 웬만하면 고국에 정착하려고 하는 모습에서 노교수의 타국살이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성한 두 아들과 처를 데리고, 모든 분단의 아품과, 이 21c의 조국에서 벌어진 광기의 시절을 순화시키며 이제는 자신이 이룬 학문이며, 인간적 교류와 공감대를 다른 곳에서가 아닌 바로 조국의 땅에서 펼쳐보고, 국제미아로 떠도는 일을 마감하고 이제는 그만 그 외로움일랑 내려놓고 쉬고 싶은, 고향의 품에 안기고 싶은 애절함이 느껴졌습니다.

 

독일국적도 포기하고, 반성 비슷한 기자회견도 2번이나 하는.....기존의 입장을 많이 양보하는 모습,1993년 인가요? 김일성이 죽은 게? 그때 김일성 장례식에 와달라는 초대를 받았답니다. 가고 싶지 않아서 못간다고 했는데 간곡하게 청하더랍니다.

 

왜 있잖아요. 우리나라도 경축할 일이나, 국가 장례식에 될 수 있음 많은 국빈이 와주길 바라는 마음요. 북한에서야 오죽했겠어요? 자기네 김일성이 죽었으니..... 성대하게 치뤄야 어버이 수령 가는 길을 서운치 않게 대접한 것 같을테고, 살아있는 후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신도 살릴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가게 되었는데, 북한에 가서야 자기 이름 옆에 김철수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걸 보게 되었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미국에 가면 걔네들이 부르기 좋게 미국식 이름으로 고치는 사람있지요?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졸개들의 충성심에서 북한 사람 아닌 사람에게 어거지로

'김'가 성을 붙여서 한 건 했다는 식으로 그런 유치 우국추성심 경쟁 하나봐요. 이런 장난에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가 뭐가 그리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받았겠어요?

 

보수진영에서 한 껀 했다 이거지요.

어마어마한 토픽 감으로 신문과 방송을 대문짝 만하게 장식합니다.

진보진영에서도 아연실색하며 모두가 입을 다물고 침묵 모드로 전환합니다.

진보진영에서도 그렇게 몰아가는 상황에서 송두율 교수는 더 현실감도 상실한 것 같고

 

내 조국 내 맘대로 드나들고 싶고, 더이상은 외국에만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그런 상황을

이번에는 웬만하면 종지부를 찍으려던 것이 그야말로 순진한 발상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잔뜩 웅크리고 있던 보수들의 역습이 이일을 기회로 삼아 벌떼처럼 역습을 했으니까요.

 

왜 우리도 갑자기 잘 가던 길도 특수한 상황에서 밤길에 방향감각 상실하면 삽시간에 뭐가 뭔지 모르고 아무 것도 인지하지 못하잖아요. 밤새 왔던 길 또 가고 뱅뱅 돈 경험 그런 거요.

 

환영준비위원을 꾸렸다고 하는 자칭 송두율교수를 위한 위원회라는 진보진영의 어떤 사람은 아예 일방적으로 남한에 왔으니까, 여기 방식대로 전향서도 쓰고 뭐하고 뭐하라는 식으로 윽박지르더라고요. 진보의 탈을 쓰고 보수쪽에서 밀명을 받아 전향서 받아내는 특명을 받은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사람은 점잖은 사람도 아니었어요. 맨발에 천박한 모습으로 무지하게 닥달을 해제쳤습니다.

 

송두율교수는 아연실색 해서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굳게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남도 북도 아닌, 경계인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37년 동안 살았다는 분.

할말을 잃고 몰아치는 상황에서는 하도 넋나간 사람처럼 보이기조차 해서

저분 정말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세계적인 철학자 맞아? 의심이 갔으나

 

기자회견장에서나, 학술세미나에서는 말도 빠르고 정확한 언어구사에 분명한 발음을 하는 것을 보고

아! 지성이 살아있고 언어력도 대단한 분이구나, 겨우 안심이 되더군요.

 

하기사, 정말이지, 강한 악센트  하면 끝내주는 독일어를 37년이나 사용하며 가르치는 직업으로 강단에 선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한국말 벌써 잊었다 해도 이의가 없을 정도로 언어라는게 어려운건데.....성명서 읽을 때나, 2차례의 포럼에서 하는 한국어 구사능력을 보고는 대단하구나! 느껴지더군요.

 

이 나라의 뿌리 깊은 레드콤플렉스? 보수의 반격? 색깔론? 여전히 유효하며 정권이 궁지에 몰리 때마다 노인들 동원하여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한 최후의 싸가지 방법 잘도 써먹습니다. 법원 앞에 피켓 들고 나와 "송두율을 사형시켜라!" 여전히 어디서 동원되어 나타나서 그러는지 악을 쓰더군요.

 

여기서 역설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반공법이라는 것이 사람을 여전히 죽이고 있구나. 하여 저 악을 쓰며 사형시키라는 모습을 보니 그 역설에서 역설을 느끼겠구나! 우리나라 저런 증오심으로 무장한 세력 판치고 있으면 21C 글로벌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분단의 족쇄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송두율 교수를 보며

"그대 다시 고국을 떠나가리!!" 하는 구절을 한마디 입에 담아 읊조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내쫒기듯이 송두율교수 일가족은 그렇게 한국을 떠나 독일로 갑니다.

 

이래서야 우리에게 어찌 진정한 자유가 있을까 싶고, 성숙한 비젼이 있을까 싶고, 우리의 미래세대들과 북한의 자라나는 젊은 세대와 동포들 모두다 냉전의 희생자라는 생각입니다.

 

아, 대한민국이여, 어찌하여 너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냉전국가로 남았느냐?

아, 대한민국의 미래세대여, 자식세대여, 너희들은 이 갇힌 틀에서 깨어나와야할텐데.....

 

<경계도시 2>~ 우리의 역설을 잘 보여주는 독립영화였습니다.

경계도시를 통하여, 우리의 이중적인 면, 역설의 역설을 보고 다시 한번 전율했습니다.

강고하게 자리 잡은 꼴통들의 독소가 우리민족의 번영에 치명적인 흉기가 되고 있음을요.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면 송두율교수는 대부분의 혐의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답니다.

그러나, 송교수와 그 가족들의 상처는 8개월 동안 어김없이 도매금으로 유린되고도 남았겠지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3/12 20:49 2010/03/12 20:49
트랙백 주소 : https://blog.jinbo.net/8434pjr/trackback/28